출판사 리뷰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
숭고한 인간성, 절대자 앞의 겸허한 고백…
정병수 시인이 담은 100편의 詩를 만나다풀과 나무와 산새/스치는 바람으로/둥실둥실 두둥실/구름 타고 구름을 넘어/구름 너머 구름 나라로
― 「쉼」 중에서
풀과 나무, 스치는 바람, 구름….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그에 비추어 본 삶의 가치를 성찰하는 정병수 시인의 첫 시집 『비움』이 출간되었다. 수록된 100편의 작품 속에서 그는 싱그러운 자연이 빚은 서정(抒情)을 맛과 멋을 내는 담백한 노래로 표현한다.
세상을 비춰주는 햇빛은/어둠을 밝혀주는 달빛도/동화 나라 창가에 별들은/더욱 못 되어도//이는지 자는지/가는지 오는지/뵈지 않는 흔적 없는/바람이 되려오
― 「바람이 되려오」 중에서
고운 꽃잎 보드라운/켜켜이 스민/그윽한 장미 향으로/숨결조차 고요한/살구꽃 살결에/살구 향으로/그렇게 담고 싶었어
― 「시를 담는 바구니」 중에서
“뵈지 않는, 흔적 없는 바람”이 되어 “시를 담는 바구니”를 “그윽한 장미 향으로, 숨결조차 고요한 살구 향으로” 가득 담고 싶어하는 시인은, “오름보다 이룸이, 이룸보다 누림이” 귀하다는 깨달음과 함께 “비움은 만족이니 낙원”이라는 절대자 앞의 겸허함을 고백한다.
오름보다 이룸이/이룸보다 누림이/귀한걸//길에/길 위에 살리/길만큼 가리
― 「길 위에」 중에서
가난한 자 복이 있나니/버리는 자 하늘 내림 맛보리라/비움은 만족이니 낙원이어라
― 「비움」 중에서
꾸밈이 없고 쉽게 읽어 감동을 주는 시, 두 번 세 번 마음으로 읽게 되는 시, 깊이 공감이 되는 시…. 시집 『비움』에는 맑은 시선과 온화한 목소리의 정제된 시어들이 “입에 말 몸짓말 하나 없이” 은은하게 그 향기를 전하고 있다.
입에 말 몸짓말 하나 없이/그냥 그렇게 있어도/하늘땅 넘나드는 시와 노래로/꽃은 마음이니까//그렇게/꽃 마음으로
― 「꽃 마음」 중에서
손끝에/온몸 마디마디에 묻고/핏줄에도 흐르고/그러다 못해 쌓여 엉기었다/어머니의 그리움
― 「그리움 1」 중에서
온몸에 스미는 풀 내음에/걸음 멈추니/들릴 듯 들릴 듯/초록 멜로디//푸른 향내/하늘을 여니/푸른 리듬 타고/하늘이 내린다
― 「하늘 내음」 중에서
한 편의 시에 “어머니의 그리움”이 떠올라 눈물 흘리고, 한 편의 시에 “푸른 리듬 타고 하늘이 내리는” 기쁨의 전율을 느끼는, 정병수 시인의 감탄이 담긴 언어는 독자의 가슴속 한 송이 “꽃 마음”으로 피어난다.
그의 시를 읽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고요히 잠겨든 감정의 깊이가 어느새 우리 마음을 물들일 것이다.
자연 세계와의 교감을 통한
존재 가치의 은유적 탐구
― 「바람이 되려오」를 중심으로 ―세상을 비춰주는 햇빛은
어둠을 밝혀주는 달빛도
동화 나라 창가에 별들은
더욱 못 되어도
이는지 자는지
가는지 오는지
뵈지 않는 흔적 없는
바람이 되려오
흘린 땀 식혀주고
오곡백과 만져주며
춤과 노래 실어 오는
세월 따라 임을 따라
있는 듯 없는 듯
아는 듯 마는 듯
― 「바람이 되려오」 전문
정병수 시인의 「바람이 되려오」는 자연과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삶의 의미와 존재성의 본질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바람’은 주된 상징으로 등장하여 존재 가치의 미묘한 속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야기는 "세상을 비춰주는 햇빛", "어둠을 밝혀주는 달빛", "동화 나라 창가에 별들"과 같은 자연적 요소들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자연의 이러한 현상은 외적으로 드러나 그 자체로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이들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아 감춰진 바람과 같은 존재가 되고자 한다.
이어 "이는지 자는지/가는지 오는지/뵈지 않는 흔적 없는"에서 무형의 바람이 일으키는 자유로운 흐름이 감지된다. 바람은 아무런 형체 없이 나아가고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이는 존재의 덧없음과 무상함을 내포하는 상징이자, 거대한 흔적 없이도 계속하여 세상과 연결되기를 바라는 의도를 암시한다.
"바람이 되려오"라는 독백은 시인의 내면에서 비롯한, 바람처럼 존재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를 알 수 없듯이, 그는 자신의 존재가 크지 않게끔, 그렇지만 세상을 널리 살피며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한다.
한편, 바람이 생활 세계 깊숙이 자리한 가치들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지는, "흘린 땀 식혀주고/오곡백과 만져주며/춤과 노래 실어 오는"과 같이 제시된다. 바람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고된 삶 가운데 휴식과 기쁨을 전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바람처럼 흐르는 여유로운 움직임으로 세상의 많은 이들에게 위안과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시인의 기대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에 놓인 "있는 듯 없는 듯/아는 듯 마는 듯"은 바람의 특성을 다시 한 번 환기하며,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내지 않은 채 세상에 스며들고자 하는 내면의 욕구를 함축한다. "있는 듯 없는 듯"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불가시(不可視)의 해방감에 가깝고, "아는 듯 마는 듯"은 타인의 삶에 온전히 개입하지 않되 나란히 공존하고 싶은 마음 상태를 나타낸다.
정병수 시인은 시집 『비움』에 수록된 100편의 작품 속에서 자연의 순수한 아름다움과 숭고한 인간성의 상호작용, "임을 따라" 살아가는 절대자 앞의 겸허함을 정제된 시어로써 표현해 왔다. 그의 시 세계에서 길어 올린 「바람이 되려오」는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존재 가치의 불완전성과 가능성을 동시에 발견한 시적 자아의 자기 고백적 은유이다.
철학자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은 실재하는 외부 세계의 모든 대상물은 항상 어떤 ‘의미’로 인식된다고 주장하였다.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의식 속에서 의미로 규정되며 우리는 그 의미만을 인지한다. 즉, 시인은 보이지 않는 바람을 인식 가능한 존재로 치환하여 탐구함으로써 내면적 성찰의 의미를 새로이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흐르는,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서도 수많은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 ‘바람과 같은 존재’는, 인간 본연의 유한성과 실존의 불안을 극복하고 초월자(超越者)의 세계로 나아간다. 이것이 시인이 세상과 사람들을 조용히 감싸며 바람처럼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는 까닭이리라.
풀과 나무와 산새
스치는 바람으로
둥실둥실 두둥실
구름 타고 구름을 넘어
구름 너머 구름 나라로
― 「쉼」 중에서
세상을 비춰주는 햇빛은
어둠을 밝혀주는 달빛도
동화 나라 창가에 별들은
더욱 못 되어도
이는지 자는지
가는지 오는지
뵈지 않는 흔적 없는
바람이 되려오
― 「바람이 되려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