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최종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으로, 인천시 송림동의 골목이라는 특정 장소에 대한 집요한 시적 기록이다. 정확하게는 ‘부동산에 미친’ 대한민국 인천시 송림동에서 벌어진 재개발 때문에 이미 떠났거나 미처 떠나지 못했거나 또는 그 와중에 부서진 존재들과 시인이 나눈 교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에 불려 나온 존재들을 일별해봐도 그것은 선명하다.
교회, 고양이, 이웃집 할머니, 미장원, 화분, 자그마한 공터, 꼬마들, 가파른 계단, 냉장고와 싱크대 등등, 사람이건 사물이건, 공간이건 이야기이건 송림동에서 함께 부대껴 살았던 존재들과 사건들이 집중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다. 시인이 느낀 존재들은 저마다 삶을 꾸려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송림동 골목 자체가 살아 꿈틀대는 장소이기에 그렇다.
출판사 리뷰
도시의 골목에서 피어난 들꽃 같은 시!
최종천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골목이 골목을 물고』는 인천시 송림동의 골목이라는 특정 장소에 대한 집요한 시적 기록이다. 정확하게는 ‘부동산에 미친’ 대한민국 인천시 송림동에서 벌어진 재개발 때문에 이미 떠났거나 미처 떠나지 못했거나 또는 그 와중에 부서진 존재들과 시인이 나눈 교감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에 불려 나온 존재들을 일별해봐도 그것은 선명하다. “포클레인의 이빨이 아삭아삭 식감도 좋은지/ 게걸스럽게 처먹고 있”(「6년이나 살았는데」)는 송림동 골목에 서서 시인은 그동안 함께 살아왔던 존재들을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쓸쓸하게 때로는 독설을 뱉으며 자신의 시로 불러들였다. 교회, 고양이, 이웃집 할머니, 미장원, 화분, 자그마한 공터, 꼬마들, 가파른 계단, 냉장고와 싱크대 등등, 사람이건 사물이건, 공간이건 이야기이건 송림동에서 함께 부대껴 살았던 존재들과 사건들이 집중적으로 담겨 있는 것이다. 시인이 느낀 존재들은 저마다 삶을 꾸려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송림동 골목 자체가 살아 꿈틀대는 장소이기에 그렇다.
송림동의 골목은 특이한 점이 있다.
막다른 골목이 많고, 돌아오면 바로 그 골목
골목이 골목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미로보다 더 미로 같은 골목은
서로의 그림자처럼 곁에 서서
같이 걸어주고 서로 어깨를 걸고 있다.
덩치 작은 못난 집끼리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지금 막 들어선 이 사람 어딜 갈까?
알아맞히기라도 하는 눈치다.
이 많은 골목들과 정이 들려면
어슬렁어슬렁 걷는 강아지의
꽁무니라도 따라다닐까 보다
_「골목이 골목을 물고」 부분
표제작인 「골목이 골목을 물고」는 송림동이라는 동네에 존재하던 사람과 사물들이 어째서 살아 숨 쉬듯 펄떡이는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이미 골목 차제가 “골목이 골목을 물고 놓아주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로 같은” 골목들은 서로 어깨도 걸기도 하며, 골목을 이루고 있는 “덩치 작은 못난 집끼리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산다. 그래서 낯선 누군가가 골목에 들어서면 “이 사람 어딜 갈까?” 서로 “알아맞히기라도 하는 눈치다.” 골목 자체가 살아 있는 생물이니 당연히 송림동 골목에서 존재했던 존재들이 모두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골목에도 찾아오는 필멸의 그림자가 있으니 “세월은 할 일이 없어 늙어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심심해서 늙는다.” 그런데 이 필멸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라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필멸이다. 왜냐면 송림동 골목은 “가난한 동네”(이상 「골목이 골목을 물고」)이기 때문이다. 즉 도시에서 생산된 가치와 부는 송림동 골목으로 되먹임되지 않고 송림동 골목을 집어삼켰다.
감상도 연민도 없이 골목이 되다
‘부동산에 미친 나라’ 대한민국은 살아 숨 쉬는 송림동 골목을 포클레인의 먹성을 앞세워 해체해버렸다. 그래서 너도나도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 짧지 않았던 해체의 과정을 최종천 시인이 세밀하게 포착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벌어진 일들을 다큐멘터리식으로 하지만 단지 고발이 아니라 생명력을 복원하는 방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무너지고 있는 담으로 둘러싸인
측백나무에 덩굴이 얽혀 있는
햇빛이 잘 들이치는 이곳
엄마 아빠에게 야단맞은 아이가
조용히 훌쩍이기 좋은 곳이다.
부부싸움에 박살난 것 같은
그릇 조각들이 햇빛에 눈을 부릅뜨고는
나를 뻔히 쳐다보고 있다.
_「자그마한 공터」 부분
이 작품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돌아가는 바람이 참 싱그럽다./ 가난한 동네에 아이들이 많다고 하던데,/ 이곳 송림동은 가난한 동네는 아닌 듯하다.” 아이들이 많아서 가난한 동네가 아니라는 이 진술은 역설(paradoxa)이다. 사실 “아이가/ 조용히 훌쩍이기 좋은 곳”이지만 지금은 “돌아가는 바람이 참 싱그”러울 뿐이다. 아이들이 없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최종천 시인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남루들을 숨기지 않는다. 남루마저 삶의 단면이기에 그럴 것인데, 늙어감만 있고 아이들은 없는 가난한 동네이기에 그 남루는 너무도 쉽게 눈에 띄게 마련이다. 하지만 최종천 시인은 섣부른 감상에 빠지지도 않고 연민을 통해 자기 우월을 과시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 자신이 송림동 골목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떼어 팔아 준 주인 할머니 보일러도
결국에는 도둑질이었다는 것.
나는 그 보일러 떼어 팔아 주고 주인 할머니
7만 원 내가 3만 원을 챙겼다.
유성철물설비 집에서 몽키와 스패너를 빌려 썼다.
_「유성철물설비」 부분
재개발 과정에서 버려지다시피 한 물건을 떼어다가 팔아먹은 사실을 천연덕스럽게 고백하면서, 그 도둑질에 ‘유성철물설비’도 어차피 공범이라는 유머는 시적 화자가 송림동 골목에 사는 다른 존재들과 “서로 어깨를 걸고”(「골목이 골목을 물고」) 살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너스레다.
최종천 시인의 이번 시집은 ‘부동산에 미친’ 천민적인 대한민국 자본주의에 대한 직격이면서도 시인이 먼저 분개하거나 시인 자신을 순결한 영역에 두지 않으려는 솔직하고 담백한 태도가 이룬 드문 성취이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는 생황에 복무할 때 가장 좋다.”
골목도 인상이 각각이다.
곧게 쭉 뻗은 골목은 조용하고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지만 구불구불한 골목은 이야기가 있다.
저기쯤에서 꼬마 하나가 맨발로 걸어 나올 듯하고
혹 무슨 쓰레기라도 있으면 귀신은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아 보인다.
더하여 내놓은 화분이 두어 개 있다면
걸어 들어가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송림동 골목들은 하나같이
계단을 하고 있다. 꺾인 무릎들
방 안에도 계단이 있고 계단은
다시 계단으로 이어진다.
인생을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다
미끄러지거나 추락한 사람들이
마치 살구가 먹을 사람이 없어 떨어져
옹기종기 모이듯이 모여 있는 집들.
사람이 한창일 때는 이렇게도 살았나 보다.
지금은 어린이 보기가 어렵다.
어린이가 없는 골목들이 무료한 시간을 재는 듯
하늘도 굽어보는 산동네 송림동.
_「골목들」 전문
내가 세 들어 살던 송림동 91의 87에서
한참 내려가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거기 아담하고 조그마한 공터가 있다.
무너지고 있는 담으로 둘러싸인
측백나무에 덩굴이 얽혀 있는
햇빛이 잘 들이치는 이곳
엄마 아빠에게 야단맞은 아이가
조용히 훌쩍이기 좋은 곳이다.
부부싸움에 박살난 것 같은
그릇 조각들이 햇빛에 눈을 부릅뜨고는
나를 뻔히 쳐다보고 있다.
아이들이 없어도 너무 없어
나라도 앉아 있어 보자고 의자를 주워 와
던지니 척 정자세로 앉는다.
돌아가는 바람이 참 싱그럽다.
가난한 동네에 아이들이 많다고 하던데,
이곳 송림동은 가난한 동네는 아닌 듯하다.
-「자그마한 공터」 전문
예끼, 이 사람아
염치인지 체면인지 좀 있어 봐라
어이구 춥네요
잠깐만 앉았다 가도 될까요
그러고 들어와 앉은 지가
며칠째인가 벌써
이제는 아주 주인 행색이야
좋게 말할 때 나가게나
그동안 잘 먹고 잘 입히고
약까지 사다 먹이고
할 만큼은 해줬지 않나
내, 겨울 코트 입혀서
부축해 줌세그려
옳지, 그렇게 나가서
옆집 그 옆집
대머리 홀랑 까진
전당포 주인 있잖아, 왜
그 양반한테 신세 지고 있으라고
가끔 재채기로
저당 잡아 놓은 양심 풀어놓으라고
귀띔도 좀 하게나
어서 가보시게
_「이번 감기에게」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최종천
1986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눈물은 푸르다』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고양이의 마술』 『인생은 짧고 기계는 영원하다』 『그리운 네안데르탈인』이 있고 산문집으로 『노동과 예술』이 있다. 제20회 신동엽창작상, 제5회 오장환문학상을 받았다.
목차
시인의 말 / 4
1부
6년이나 살았는데 / 12
송림동 91의 87·1 / 14
송림동 91의 87·2 / 16
쉬고 있는 자전거 / 18
전도관 / 20
지게차 특급 / 22
흥미헤어라인 / 24
고양이들! / 26
고양이 홀로 남아 / 28
골목들 / 30
송림성결교회 1 / 32
송림성결교회 2 / 34
송림동 전도관 / 36
이사 가는 고양이 / 38
사라지는 화분 / 40
2부
바른재개발과 송림주택조합 / 42
가스 메타 / 44
떠난 집 / 46
유성철물설비 / 48
이런 개 같은 경우가 / 50
전도관 이야기 / 52
자그마한 공터 / 54
까치 온 날 / 55
풀들, 우거지다 / 56
현금 청산자 / 58
경진네바느질 / 60
제물포교회 / 62
장로회 제물포교회 / 64
짭짤한 부수입 / 66
버려진 가구들 / 68
3부
송림동의 슈퍼가 전부 망한 이유 / 72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 74
쓰레기봉투 앞에서 / 76
이번 감기에게 / 78
나은이네 집 계단 / 80
공손한 밥그릇 / 82
쌈지공원 은행나무 / 85
갓난아기 / 86
고양이 식사 / 88
영화 촬영집 대문 / 90
참, 이쁜 화분 하나 / 92
골목이 골목을 물고 / 94
가지 고추 상추 화분들 / 96
시간의 역사 / 98
무단투기 감시 카메라 / 100
4부
부동산에 미친 나라 / 104
주담대 / 106
개집 / 108
사이를 살다 / 110
송림동 재개발 현황 / 112
이발관 대 미장원 / 114
창조주 위에 건물주 / 116
개발을 하더라도 / 118
쓰레기 수거 거부 / 120
이사 비용을 받다 / 122
보유세 / 124
부동산에 미친 국민 / 126
계단들 / 128
도원피아노 / 130
경고문 / 132
해설
공간이 시를 불러 말하길,(정우영) /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