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치열하게 소설을 쓰는 '행동하는 작가' 메도루마 이 십 년 만에 내놓은 네 번째 소설집이다. 1997년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2023년 한국의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아시아에서 가장 주목할 작가로 자리를 굳힌 그는 이번 소설집에서 오키나와인들의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진 전쟁의 기억과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중편 「신(神) 뱀장어」를 포함해 다섯 편이 실렸다.
80년 전에 벌어진, 주민 네 명 중 한 명이 희생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오키나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의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상흔이 여전하고, 오키나와 섬을 점령하고 있는 미군 기지들로 인한 폭력 사고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메도루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장의 참상을 펼쳐 보이며 여전히 진행형인 오키나와 전쟁을 예리하게 가시화한다. 탁월한 묘사와 유려하고 단호한 필치로 그려낸 소설들은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쳐흘러 숨을 멈추고 몰입하게 만든다.
출판사 리뷰
아쿠타가와상 수상 작가 메도루마 의 십 년 만의 신작 소설집
오키나와 전쟁을 둘러싼 다섯 가지 이야기
치열하게 소설을 쓰는 '행동하는 작가' 메도루마 이 십 년 만에 내놓은 네 번째 소설집이다. 1997년 일본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고, 2023년 한국의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하며 동아시아에서 가장 주목할 작가로 자리를 굳힌 그는 이번 소설집에서 오키나와인들의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진 전쟁의 기억과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중편 「신(神) 뱀장어」를 포함해 다섯 편이 실렸다.
80년 전에 벌어진, 주민 네 명 중 한 명이 희생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오키나와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의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상흔이 여전하고, 오키나와 섬을 점령하고 있는 미군 기지들로 인한 폭력 사고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메도루마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전장의 참상을 펼쳐 보이며 여전히 진행형인 오키나와 전쟁을 예리하게 가시화한다. 탁월한 묘사와 유려하고 단호한 필치로 그려낸 소설들은 시종일관 긴장감이 넘쳐흘러 숨을 멈추고 몰입하게 만든다.
오키나와 안팎의 폭력을 겨냥한 결연한 문학적 응전
메도루마는 십여 년 전부터 주 4회 카누를 타고 바다에 나가 항의 시위를 하고 있다. 헤노코 미군 신기지 건설 저지 운동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미군 기지에서 비롯하는 폭력의 연쇄를 끊어내기 위해 사투하고 있는 그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틈틈이 이 소설들을 썼다. 오키나와가 직면한 역사적, 사회적, 군사적 문제들을 현장에서 직접 응시하며 써내려간 소설들은 오키나와 안팎의 폭력을 겨냥한 결연한 문학적 응전이다.
그는 일찍이 "문학에 사회적 현실을 바꾸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으며 문학을 자신의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문학의 힘은 강하고 그가 내건 문학적 반기는 파급력이 크다.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은 세대이지만 전쟁을 '기억'하고 전쟁 폭력을 '증언'하고자 독창적인 문학적 상상력을 펼쳐 보인다. 그의 소설들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키며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각인된 생생한 상처를 들춰낸다.
전쟁이 초래한 상처는 수십 년이 지나도 피해자의 기억 밑바닥에서 되살아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안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생활에서도 끔찍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드리운다. 다섯 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각각의 주인공이 모두 고령자인 것은, 그 상처가 살아남은 피해자의 가슴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문신으로 남아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메도루마는 피를 토하듯 쏟아내는 그들의 절절한 육성으로 전쟁의 기억을 잊지 않고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피력한다.
쓰라린 상처에서 피처럼 쏟아지는 말 "잊어서는 안 돼"
표제작 「혼백의 길」은 오키나와 전쟁에서 남부로 후퇴하던 와중에 한 여성과 갓난아기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나'의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숨이 끊어지기 직전인 여성의 "죽여 줘"라는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칼을 빼어 들었다. 그로 인해 현재 86세의 고령인 '나'는 평생 자책과 후회, 우울로 얼룩진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이 소설에서 모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나'의 행위는 전쟁이 인간을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전락시키는지를 적나라하게 증명하고 있다. 메도루마가 「한국어판에 붙여」에서 말한 것처럼 "세상의 지옥이란 이런 것이다".
「이슬」은 항구에서 하역 작업을 하는 일꾼들이 종군 경험을 털어놓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중 야스요시의 고백은 충격과 비애를 불러일으킨다. 전장에서 한 방울의 물이 없어 수많은 이들이 죽어갔다. 새벽에 기온이 내려가면 사람 몸에서 나온 수분이 이슬이 돼 바위에 떨어지는데 그 이슬을 핥아먹고 겨우 살아남았다는 경험이다. 벌거벗은 시체 주위에 떨어진 이슬을 핥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은 전쟁의 비극을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긴 분량의 「신(神) 뱀장어」는 전쟁 중 일본군 대장 아카자키에 의한 마을 주민 가쓰에이의 죽음과 긴 시간이 흐른 후 가쓰에이의 아들 후미야스와 일본군 대장 아카자키 간에 벌어진 긴박한 언쟁이 주 내용이다. 전쟁 중에는 아버지가, 전후에는 아들이 일본군 대장과 맞선 것이다. 아버지가 살해된 지 40년이 흐른 후 가쓰에이는 본토에서 우연히 아카자키를 만나 사과를 요구하지만 아카자키는 사과는커녕 살인 행위에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 이 작품은 본토와 오키나와의 충돌, 전쟁의 갈등이 세대를 거듭해도 해소되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피해자의 입장은 무엇인지, 가해자의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잘 짜인 구성에 탄탄한 서사를 갖춘 소설로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버들붕어」는 오키나와 전투 당시 북부에 살던 어느 가정의 비극과 현재의 헤노코 미군 기지 건설 현장을 교차시키며 폭력의 연쇄를 환기시킨다. 전란을 피해 산속으로 몸을 숨긴 가요는 불의의 사고로 남동생을 잃고 만다.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가요는 남동생이 죽기 전 우물에 무심코 던져둔 버들붕어의 존재를 다시 목격했다고 믿으며 미군 기지가 존재하기 이전의 오키나와를 상상하고 평화를 기원한다. 이 작품은 메도루마가 처음으로 헤노코 앞바다에서의 시위 활동을 소설화한 것으로 주목할 만하다.
「척후」는 열다섯 살에 전쟁에 동원된 주인공이 마을을 살피는 척후병이 돼 친구의 아버지를 고발한 기억을 다루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으나 그의 첩보로 인해 친구의 아버지는 스파이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지금 아흔 살이 된 그는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때의 일을 말하지 못한다. 이 작품은 미국과 일본, 오키나와의 삼각구도 속에서 배태된 불신과 의심이 결국은 오키나와인을 희생양으로 만들고 마는 비극을 잘 보여준다.
메도루마 이 전하는 위대한 인간의 존엄!
현대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고 일본 문단에서도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작가 메도루마 은 오키나와의 비극적인 역사와 일본 본토와 미국인에 대한 오키나와인의 의식을 예리한 시각과 돋보이는 상상력으로 써왔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한층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숨을 멈추고 몰입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읽는 이를 사로잡는다. 주인공들이 한결같이 털어놓는 것은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키나와 전쟁의 비참한 기억과 괴롭고 억울하고 불합리한 체험을 증언하고 재현함으로써 결코 잊지 않겠다는 절박한 외침이다. 잊지 않음으로써 깊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위대한 인간의 존엄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이번 소설집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소설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큰 특징으로 오키나와어와 시마고토바(오키나와의 여러 섬의 말), 일본어가 뒤섞여 사용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시의 복잡한 언어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치다. 특히 시마고토바는 각 소설에서 화자의 입을 통해 노골적으로 사용된다(책에서는 이탤릭체로 구분해 표시했다). 메도루마는 이 기법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때 그 장소'로 돌아가 마주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듯하다.
메도루마 소설의 힘은 폭력을 감지하는 예리한 감수성에서 비롯한다. "불안과 강박, 공포와 광기로 넘쳐난 전장을 마주하는 것은 불편하고 충격이지만, 어정쩡한 거리에서 타협하지 않고 철저하게 그 끝을 겨누는 방식은 메도루마 의 변하지 문학적 방법론이다."(조정민, 「옮긴이의 말」) 이 책은 오키나와 문학이 이뤄낸 값진 성취일 뿐만 아니라 '행동하는 문학'이라는 숭고한 가치를 오롯이 보여주는 메도루마 최고의 소설집이다.
할머니는 오키나와 전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면서 "미군보다 우군(일본군)이 더 무서웠다"고 말했다.
내 소설도 그런 '기억을 둘러싼 싸움' 속에서 씌어졌다. 미군 기지와 자위대 기지 강화에 반대하는 행동을 이어가면서 틈틈이 쓴 작품들이다.
귀와 마음을 단단히 닫고 빗속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따라가기엔 역부족이었다. 진창이나 구덩이에 발이 빠지고 넘어져 바닥에 주저앉아 발버둥 쳐도 도와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나 역시도 쓰러진 사람에게 손을 내밀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니 도리가 없다. 그렇게 이해하려 해도 옆을 지나쳐 가는 이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거세게 일었다. 그 분노가 이대로 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지워버리고 오히려 다시 일어서는 힘이 됐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메도루마
현대 오키나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메도루마 은 1960년 오키나와 북부 나키진(今?仁)에서 태어나 류큐 대학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1983년 「어군기」로 작품 활동을 시작하며 류큐신보 단편소설상을, 1986년 「평화거리로 불리는 길을 걸으며」로 신오키나와 문학상을, 1997년 「물방울」로 아쿠타가와상을, 2000년 「혼 불어넣기」로 기야마 쇼헤이 문학상과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23년 제7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했다.지은 책으로 『메도루마 단편소설 선집』(전 3권)과 장편소설 『무지개 새』, 『기억의 숲』 등이 있다. 그 외 산문집으로 『오키나와―풀의 소리 뿌리의 의지』, 『오키나와―땅을 읽고 시간을 본다』, 『오키나와 '전후' 제로 년』, 『얀바루의 깊은 숲과 바다로부터』 등이 있다.
목차
한국어판에 붙여
혼백의 길
이슬
신神 뱀장어
버들붕어
척후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