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노동자와 민중의 시각에서 쓴 근현대 과학 이야기.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부터 21세기 AI 시대의 과학까지, 자본과 권력에 봉사한 과학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한편, 노동자와 민중의 편에 선 과학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어려운 이론이나 복잡한 기술 이야기보다 과학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어떻게 하면 과학을 노동자와 민중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삶의 언어로 서술한다. 풍부한 사례 제시와 일관된 관점이 장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의문이 떠오른다. 과연 박물학자들의 성과는 오로지 그들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졌을까? 가령 영국의 박물학자이자 싱가포르식물원 원장인 아이작 헨리 버킬(Isaac Henry Burkill)은 20세기 초 영국령 인도와 말레이반도에서 연구 활동을 벌였다. 말레이반도에서 그는 과연 혼자 탐험했을까? 지리를 전혀 모르고 식물이나 동물도 완전히 낯설었을 텐데 말이다. 당연히 현지인이 동행했을 것이다. 그러면 동행인이 단지 길 안내만 했을까? 이 나무의 잎은 어떻게 쓰고 꽃은 언제 피며 열매는 어디에 사용하는지, 저 등에 줄무늬가 있는 쥐처럼 생긴 녀석은 주로 언제 어디서 나타나며 무얼 먹는지, 머리에 빨간 볏이 돋은 저 새는 어디에 알을 낳고 새끼를 누가 돌보는지 등 선조로부터 내려온, 그리고 자기가 확인한 여러 지식을 알려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잎이며 뿌리, 꽃, 열매, 알 등을 모으는 일을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연에 경쟁은 있지만 지배는 없다. 영화 <라이온 킹(The Lion King)>을 보면, 사자가 절벽 위에서 잔뜩 무게를 잡고 포효할 때 그 아래에서 온갖 동물들이 그를 경배한다. 우리는 이것이 거짓임을 안다. 사자가 다른 동물을 지배한다면 왜 굳이 직접 사냥할까? 하이에나나 치타를 시켜 그들이 사냥한 것을 바치라고 하면 된다. 아니면, 오늘은 물소가 먹고 싶으니까 “한 마리 이리 오너라”라고 명령하면 된다. 하지만 사자는 자기가 직접 사냥해야 먹고산다. 지배자가 아니라 생태계에서 자기가 차지하는 위치, 곧 대형 초식동물을 잡아먹는 포식자라는 역할에 충실하다. 이처럼 인간을 제외한 어떤 생물도 ‘지배’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대 진화생물학에서는 적자생존이란 용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재용
과학과 일상의 연결, 과학과 사회, 과학과 미래 환경에 관해 책을 쓰고 말한다. 사단법인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지구환경에너지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있으며, ‘기후위기의 본질과 기후정의’, ‘통계로 보는 우리 사회’, ‘과학과 인간중심주의’ 등의 강연을 진행했다.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 년의 비밀〉 시리즈의 《멸종》, 《짝짓기》, 《경계》를 집필했다.그 밖에도 《궁금해! 지구를 살리는 미래과학 수업》, 《탄소 중립으로 지구를 살리자고?》, 《지속가능한 세상을 위한 통계 이야기》, 《녹색성장 말고 기후정의》, 《웰컴 투 사이언스 월드》, 《괴담으로 과학하기》, 《모든 진화는 공진화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과학 4.0》, 《과학이라는 헛소리》, 《과학이 알을 깨고 나올 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