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부모님 > 부모님 > 소설,일반 > 인문,사회
사실의 수명  이미지

사실의 수명
진실한 글을 향한 예술과 원칙의 대결
글항아리 | 부모님 | 2025.03.20
  • 정가
  • 20,000원
  • 판매가
  • 18,000원 (10% 할인)
  • S포인트
  • 1,000P (5% 적립)
  • 상세정보
  • 18.8x24.3 | 0.304Kg | 160p
  • ISBN
  • 9791169091275
  • 배송비
  •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 (제주 5만원 이상) ?
    배송비 안내
    전집 구매시
    주문하신 상품의 전집이 있는 경우 무료배송입니다.(전집 구매 또는 전집 + 단품 구매 시)
    단품(단행본, DVD, 음반, 완구) 구매시
    2만원 이상 구매시 무료배송이며, 2만원 미만일 경우 2,000원의 배송비가 부과됩니다.(제주도는 5만원이상 무료배송)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
    무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일 경우 구매금액과 무관하게 무료 배송입니다.(도서, 산간지역 및 제주도는 제외)
  • 출고일
  • 1~2일 안에 출고됩니다. (영업일 기준) ?
    출고일 안내
    출고일 이란
    출고일은 주문하신 상품이 밀크북 물류센터 또는 해당업체에서 포장을 완료하고 고객님의 배송지로 발송하는 날짜이며, 재고의 여유가 충분할 경우 단축될 수 있습니다.
    당일 출고 기준
    재고가 있는 상품에 한하여 평일 오후3시 이전에 결제를 완료하시면 당일에 출고됩니다.
    재고 미보유 상품
    영업일 기준 업체배송상품은 통상 2일, 당사 물류센터에서 발송되는 경우 통상 3일 이내 출고되며, 재고확보가 일찍되면 출고일자가 단축될 수 있습니다.
    배송일시
    택배사 영업일 기준으로 출고일로부터 1~2일 이내 받으실 수 있으며, 도서, 산간, 제주도의 경우 지역에 따라 좀 더 길어질 수 있습니다.
    묶음 배송 상품(부피가 작은 단품류)의 출고일
    상품페이지에 묶음배송으로 표기된 상품은 당사 물류센터에서 출고가 되며, 이 때 출고일이 가장 늦은 상품을 기준으로 함께 출고됩니다.
  • 주문수량
  • ★★★★★
  • 0/5
리뷰 0
리뷰쓰기
  • 도서 소개
  • 출판사 리뷰
  • 작가 소개
  • 목차
  • 회원 리뷰

  도서 소개

2002년 7월 13일,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 호텔에서 열여섯 소년이 투신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서정적 에세이를 주로 쓰는 논픽션 작가 존 다가타는 2003년 『하퍼스』 매거진의 의뢰로 이 사건에 관한 피처기사 톤의 에세이를 집필했으나, 편집부로부터 사실 오류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피드백을 받으며 게재를 거부당한다. 그는 얼마간의 개고를 거쳐 같은 글을 『빌리버』라는 잡지에 재투고했고, 『빌리버』는 이 글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게재엔 조건이 있었다. 내부 팩트체크라는 관문을 거칠 것. 그것도 철두철미하게. 곧 인턴 편집자 짐 핑걸이 이 작업에 배정됐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름, 날짜, 숫자…… 단순한 사실 확인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는 희생자의 마지막 궤적과 ‘비열한 도시’의 정서를 넘어 틀림없는 사실과 그럴듯한 허구,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미학과 윤리, 실제 벌어진 일과 재현으로서의 기록, 정확한 기술과 진실한 글쓰기의 관계를 둘러싼 타협 불가능한 논쟁으로 치닫는다. 좀처럼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목표는 하나, 독자에게 진실한 글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의 사실이라도 ‘묻어’ 있다면, 그 의도도 심문의 대상이 되는 게 이 분야의 규칙. 『사실의 수명: 진실한 글을 향한 예술과 원칙의 대결』은 그 심문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책이다. 원칙이란 틀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독자를 도발하는 작가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철저하게 물고 늘어지는 집요한 팩트체커. 둘의 대결에서 살아남는 것들은 독자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전달될 것인가?

  출판사 리뷰

“팩트체크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진실에 다가가려는 사실들을 놓고 벌이는
야심 찬 에세이스트와 집요한 팩트체커의
끝장 논쟁

…사실 충돌, 사실 충돌, 사실 충돌…


“이에 대한 자료는 없었고, 이런 내용이 담긴 문헌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이 진술은 아무리 봐도 그대로 쓰기에는 지나치게 모호합니다.”

“글을 매끄럽게 정리한 겁니다. 그뿐이에요.”

“선생님 생각에도 독자가 ‘알아서 걸러 읽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라면, 처음부터 명확한 경고를 주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그것이 거짓된 역사라고, 그래서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말이죠.”

“그러기엔 이야기가 너무 흥미진진해서요. … 편집자님은 제가 이러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느끼시죠. 하지만 저는 그것이 제 일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느낄뿐더러, 이런 식의 자유를 택함으로써, 사실에 천착할 때보다 실제로 더 좋은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또한 그로써 독자에게 더 훌륭하고도 진실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고—자부하거든요.”

“선생님께선 지금, 현실 세계에 사는 실제 인물의 입에서 나온 인용문을 전혀 다르게 가공할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 핵심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질과 위상에 관한 모종의 진실을 찾아 그 진실과 교감하길 바라던 중에 그런 진실을 어느 감명 깊은 글에서 찾아냈는데, 알고 보니 그 감동적인 글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위조했다는 사실, 그러니까 단순한 재해석과 시적 윤색의 수준을 넘어 자기과시를 위해 노골적으로 위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크나큰 좌절감을 느낀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제가 그러고 있다는 겁니까? ‘자기과시를 위해’ 이야기를 ‘위조한다’고요?”

2002년 7월 13일, 라스베이거스의 한 카지노 호텔에서 열여섯 소년이 투신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서정적 에세이를 주로 쓰는 논픽션 작가 존 다가타는 2003년 『하퍼스』 매거진의 의뢰로 이 사건에 관한 피처기사 톤의 에세이를 집필했으나, 편집부로부터 사실 오류가 손쓸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피드백을 받으며 게재를 거부당한다. 그는 얼마간의 개고를 거쳐 같은 글을 『빌리버』라는 잡지에 재투고했고, 『빌리버』는 이 글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게재엔 조건이 있었다. 내부 팩트체크라는 관문을 거칠 것. 그것도 철두철미하게. 곧 인턴 편집자 짐 핑걸이 이 작업에 배정됐고,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름, 날짜, 숫자…… 단순한 사실 확인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대화는 희생자의 마지막 궤적과 ‘비열한 도시’의 정서를 넘어 틀림없는 사실과 그럴듯한 허구, ‘픽션이 아닌’ 논픽션의 미학과 윤리, 실제 벌어진 일과 재현으로서의 기록, 정확한 기술과 진실한 글쓰기의 관계를 둘러싼 타협 불가능한 논쟁으로 치닫는다. 좀처럼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목표는 하나, 독자에게 진실한 글을 내놓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의 사실이라도 ‘묻어’ 있다면, 그 의도도 심문의 대상이 되는 게 이 분야의 규칙. 『사실의 수명: 진실한 글을 향한 예술과 원칙의 대결』은 그 심문 과정을 적나라하게 담아낸 책이다. 원칙이란 틀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독자를 도발하는 작가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철저하게 물고 늘어지는 집요한 팩트체커. 둘의 대결에서 살아남는 것들은 독자에게 무엇으로 어떻게 전달될 것인가?

“실제 사실과 다릅니다”
“그걸 제가 왜 고치죠?”
: 작가-팩트체커의 양보 없는 싸움


“편집장입니다. 재밌는 일거리가 생겼어요. 방금 존 다가타한테서 새 원고를 하나 받았는데, 팩트체크가 필요합니다. 그것도 철저하게. 저자가 자유롭게 각색한 부분이 제법 보이거든요. 본인이 인정하기도 했고요. 내가 알고 싶은 점은, 그게 어느 정도냐는 거예요. (…) 사실로 확인되는 건 뭐든 다 표시하고, 미심쩍어 보이는 것도 전부 표시해주세요.” 어느 날 편집부에 하달된 그 일은 언뜻 간단해 보였다. 그저 ‘사실 확인’을 하라는 거였으니까. 그러나 그리 간단한 작업이 아니라는 게 명백해진 건, 일이 시작된 직후―첫 문장에 관한 첫 대화에서였다.
『사실의 수명』은 작가의 원고가 페이지 한가운데, 이를 둘러싼 작가와 편집자의 논쟁이 가장자리에 배치된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그 이중 사각형의 구조 안에서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원고의 첫 문장을 가지고 세 페이지 분량의 의견을 교환하는데, 여기서 확인된 입장과 태도의 대립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양보도 타협도 없이 이어진다. 중심의 원고가 사건을 파고들수록, 가장자리의 논쟁은 더욱 심각해지고 첨예해진다. 대화는 대체로 사실 충돌에 관한 것이지만, 때로 입장 차이와 직업관의 차이, 한 편의 글(구성된 세계)을 받아들이는 방식(세계관)의 차이에 관한 것으로 번지기도 하면서, 갈등이 극에 달한 곳에서는 독자로 하여금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헛소리며 비아냥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이유로 이미 한 차례 거절당한 이력이 있는 존의 원고는, 이제야 임자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세밀하고도 철저하게 스크리닝을 당한다(?). 숫자 하나, 술집 이름, 날씨와 통계, 단 한 번 언급될 뿐인 이름 없는 등장인물의 출신지, 정치 스캔들과 관련된 이런저런 세부 사항, 온갖 가판대와 거기서 판매되는 품목들, 지나가는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 작업이 시작되고, 일견 사소해 보이는 모든 사실에 여기저기 붉은 줄이 그어진다. 그보다 덜 사소한 언급에는 더 엄격한 원칙이 적용된다. 작가 자신의 말이든 인용문이든 그 어떤 의견도 ‘근거’와 ‘증빙’이 없이는 통과되는 법이 없다. “선생님, 이 점 명확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혹시 이 부분을 고치실 의향은 없으신지요?” 팩트체커는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증거, 그런 대화를 실제로 나누었다는 기록, 그 사람이 정확히 그렇게 말했음을 증명해주는 자료,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걸 뒷받침할 근거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러나 검은 글씨가 빨간 글씨에 압도되고 본문이 붉게 물들어가는 수세에 몰린다고 해서 물러날 작가였다면, 애초 글을 그런 식으로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걸 제가 왜 고칩니까?” “저는 무리가 없다고 봅니다.” “이번 건도 그렇게 ‘정리’하죠.” 존은 시종 뜻을 굽힐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에세이를 망치려고 드시는군요. (…) 저는 관여하지 않겠습니다. 잘해보세요.” 급기야 작가는 사실 확인 작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하지만, 그래도 팩트체크는 계속된다. 눈동자가 초록색이면 자살 위험이 더 높다는 둥, 태권도가 인도에서 창시되었다는 둥, 중국어에는 자살을 가리키는 단어가 없다는 둥 굳이 근거 문헌을 찾아 확인할 필요조차 없어 보이는 오류부터 검시관 보고서의 세부 내용, 사건이 발생한 카지노 호텔의 구조와 고인의 생전 마지막 이동 경로, 추락하는 데 소요된 시간과 그때의 느낌까지…… 사실들은 하나둘 생사의 갈림길에서 걸러지거나 살아남으며 진실한 글이라는 합의된 토대 위에 축적된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을 끝의 끝까지 차근차근 털어오던 팩트체커가 온통 붉은 글씨로 물든 마지막 페이지에서 하는 말은, 진실을 위한다는 이 일의 의미가 작가 쪽에서뿐 아니라 팩트체커 쪽에서도 완전히 흔들릴 수 있는 것임을 역설한다.

짐: 대관절 이 가운데 ‘진정한’ 권위를 가졌다고 믿을 수 있는 건 뭐죠? 그리고 이 시점에서 과연 그런 게 중요하기는 할까요? 설령 모든 의문점[을] (…) 틀림없이 아주 세세하고도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었다 한들… 음, 그랬다면… 글쎄요, 저는 제 소임을 다했겠지요. 하지만 그런다고 그가 죽었다는 현실이 달라지나요?(152)

거짓으로 밝혀진 글
: 축적된 사실이 진실에 다가가려면


픽션이라고 썼는데 알고 보니 실화였더라, 회고록이래서 읽었는데 알고 보니 꾸며낸 얘기였더라…… ‘충실한 사실’과 ‘진실한 경험’의 관계는 독서계를 비롯한 문화계 전반에서 꾸준한 논란거리가 되어왔다. 어떤 글의 사실성과 진실성이 경합하며 사건화될 때마다 폭로와 입장문, 언론기사와 인터뷰, 또 다른 입장문과 댓글과 비평이 쏟아졌고 독자는 그때마다 충격으로든 분노로든, 수긍으로든 냉담으로든 한 편의 글과 맺었던 관계를 재설정해야 했다. ‘작품을 위해서’.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낯설지 않은 그 논쟁이 이 책에서도 전개된다. 문제의 글이 발행되기 전, 작가와 편집자가 나누는 실제 대화 속에서.
잘못된 사실과 의미 있는 글 사이의 좁혀지지 않는 견해차는 어느 슬롯머신의 이름을 두고 시작돼 작가 윤리라는 중차대한 주제로까지 번진 두 사람의 언쟁에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행운을 믿어라Press Your Luck」는 1983년부터 1986년까지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게임쇼 제목이기 때문에, 그 게임쇼에서 유래한 이름을 가진 슬롯머신이 ‘그 무엇에서도 유래하지 않은 이름’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선생님, 텔레비전은 도통 안 보시나요? 혹시 그게 선생님의 예술적 감수성에 해가 될까요?

존: 저런, 에세이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을 놓치셨군요. (…) 이 슬롯머신 이름의 출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텔레비전 쇼가 한때 방영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진정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더구나 ‘행운을 믿어라’는 1980년대보다 한참 전부터 영어권에 존재해온 관용구이기 때문에, 저로서는 편집자님이 애청하셨다는 그 텔레비전 쇼가 이 게임에 영감을 불어넣었다는 둥 해가며 장단을 맞춰드리고 싶지 않네요.) 여하튼 기록을 남기는 차원에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레비가 생애 마지막 몇 분 동안 지나쳤던 풍경에 관해 보고된 수많은 세부사항 중에는 정확한 것과 더불어 부정확한 것도 당연히 존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곧이어 일어날 사건을 생각하면, 이 모든 건 지극히 사소한 부분에 불과하기도 하고요.

짐: 이 사실들이 사소하다는 의견에는 저도 동의하지만, 곧 중대한 국면을 앞둔 상황이니 만큼, 이제부터라도 정확성을 부수적이라며 도외시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은 안 드시나요? 이건 어떤 슬롯머신 이름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닙니다. (…) 전에도 선생님은 태권도 역사에 관한 제 의견을 깔아뭉개면서 기본적으로 동일한 논리를 펼치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글은 레비에게 일어난 일에 관한 실재적 이야기로 인식될 공산이 크고, 따라서 선생님이 그 일과 연관 짓기로 결정한 모든 세부 사항은 의미심장한 사실로 인식될 것이 자명합니다. (…) 한데 어째서 이런 문제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작업을 마다하시는 거죠?

존: 저는 이 수많은 정보에 아무런 의미도 내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보다 여기서는 의미의 ‘탐구’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의미 탐구의 정수는 각각의 세부 사항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지도록 재구성하려는 시도에 있습니다. (…) 여기서 제가 강구하는 것은 진실이지만, 그게 반드시 정확성을 뜻하진 않습니다. (…) 우리도 다른 어떤 예술가와 다를 바 없이 상황을 각색하고 세부 사항을 변경하고 해석을 좌우하며 관념을 추구합니다. (…) 에세이는 시도입니다. 다른 게 아니에요. (…) 아마 개중에는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가를 근거로 평가받길 원하는 작가들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그런 작업엔 흥미가 없습니다.

짐: 글쎄요… 이해는 합니다. 이해하고말고요.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거부감이 드네요. 일단 저도 ‘논픽션’ 에세이가 사안에 대한 객관적 설명을 일차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거나 에세이 작가가 문화적 기억의 차원에서 사건의 진실을 보호할 윤리적 의무를 진다고는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생님과 같은 의견입니다. (…) 그러나 이런 관점을 레비와 같은 10대에게 적용하는 데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어쨌든 그 앤 라스베이거스에 사는 어린 소년일 뿐이잖아요―삶이 공공재로 취급되어 철저히 조작되거나 재해석될 수 있는 문화적 인물도 우상적 존재도 아니라는 겁니다. 달리 말해, 이런 식으로 글의 부정확성을 키우는 것이 비록 레비의 무덤을 더럽히는 정도까진 아닐지라도 무덤의 위치를 속이는 정도의 잘못은 될 거라는 얘기죠.

존: 도대체 왜 우리가 그의 무덤 위치까지 신경 써야 하죠? (…) 글쎄요, 어쩌면 제가 무신경한 것인지도 모르죠. 개인적 친분이라곤 없는 죽은 소년을 멋대로 ‘관념’이라 일컫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관념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라 일컬어야 할까요? 대상? 아니면 등장인물? 그에 관한 모종의 글이 쓰이는 순간 그는 ‘이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쩌면 제 입장에서 윤리적으로 가장 적절한 선택은, 순전한 가공의 인물을 자살 희생자로 세워 제 뜻대로 이용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설령 그랬더라도, 제 느낌상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논쟁을 벌였을 겁니다. (…) 제가 확신하는 부분은, 이 일에 상상력을 활용하지 않는 건 일종의 직무유기라는 겁니다. 세상에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는 글이 어디 있나요? 상상력이 가미되지 않은 문학작품을 과연 사람들이 읽고 싶어하기는 할까요?

짐: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제가 선생님의 작업에 의구심을 가지면, 상상적인 글쓰기에 반하는 것이 되나요? 이거 아무래도 제 말뜻을 완전히 곡해하신 것 같은데요. (…) 작가가 진실을 호도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사람들은 모멸감을 느낍니다. 다시 말해 특정 회고록이 ‘윤색’된 이야기라는 게 밝혀질 때마다 최근 10년 동안 벌어진 그 모든 미친 소동의 핵심은, 작가들이 때때로 ‘상상력을 활용한다’는 걸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핵심은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본질과 위상에 관한 모종의 진실을 찾아 그 진실과 교감하길 바라던 중에 그런 진실을 어느 감명 깊은 글에서 찾아냈는데, 알고 보니 그 감동적인 글을 작가가 의도적으로 위조했다는 사실, 그러니까 단순한 재해석과 시적 윤색의 수준을 넘어 자기과시를 위해 노골적으로 위조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크나큰 좌절감을 느낀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다 결국 다시금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하고요.

존: 지금 제가 이 에세이에서 그러고 있다는 겁니까? ‘자기과시를 위해’ 이야기를 ‘위조한다’고요?(131~135)

레비 프레슬리라는 소년의 자살 사건을 중심으로 사건의 경위, 소년의 행적, 비정한 도시와 그곳의 군중, 고인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사람들, 아는 것과 알지 못하는 것을 둘러싼 사실들을 조합해 특정한 의미를 길어올릴 예정이었던 원고는, 조각조각의 사실로 해체되고 그 하나하나의 무결성을 기준으로 재평가되면서 완전히 다른 종류의 작업물이 된다. 그렇게 따지니 이 원고는 사실에 입각해 쓰였다곤 하지만, 사실 그대로를 쓴 것도 아닐뿐더러 필요한 사실을 내키는 대로 수집해 편의대로 가공한 ‘믿을 수 없는’ 글이 될 소지가 다분한 글이다. 그러나 그 간극이 그리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의도든 팩트체커의 성실이든 독자가 기대하는 진실을 담보하진 못할 테니까. 그건 두 사람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인간들이어서도, 그렇게 해서 탄생한 글이 걸작의 반열에 들지 못해서도 아니다. 이 대결이 마지막까지 합의나 승복이 아닌 대결로 끝나버리는 것은, 다른 각도에서 글의 진실성이란 게 무엇을 통해 얻어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이 결국 독자 자신에게 있을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준다. 그래선지 『사실의 수명』이 유명 작가들과 언론으로부터 한결같이 받아온 평가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진짜 업계 사람들의
속 뒤집히는 티키타카


두 사람의 언쟁은 단행본을 원작으로 한 연극 「사실의 수명」으로 더 유명해졌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이 화합 없는 대립, 넌더리 나는 집착에도 불구하고 『사실의 수명』에는 책장을 넘기고 끝까지 읽어나가게 하는 무엇이 있으니, 그건 두 사람이 절묘한 대립각을 세우고 주고받는 말들 자체다, 그 말의 권위나 진위 여부가 아니라. 다시 말해 논픽션 미학에 관한 성찰이나 진실의 탐구가 아니라.
책은 희곡의 형식을 띠고 있기도 하거니와, 원고에서 다루는 사건을 중심으로 대화가 전개되고, 존과 짐이라는 두 인물의 확고한 성향 차와 대조적인 입장 차가 모든 대화에 기조로 깔려 있으며, 그래서 중간중간 두 사람의 감정이 은근하게든 적나라하게든 드러날 수밖에 없는 와중에, 바로 거기서 예상치 못한 케미스트리가 탄생한다는 점에서 애초 희곡으로 각색되기 딱 좋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는지 모른다. 심지어 두 사람이 책 출간 후 북토크 자리에서 본문을 낭독하는 장면도, 마치 희곡 대사를 읽는 듯이 보인다. 극은 브로드웨이에서 일명 ‘속사포 연극’으로 통하며 꾸준한 인기를 끌었고, 영국 등 해외로도 수출되어 공연 중이다.
이 책을 몰입해 읽을 수 있게 하는 또 다른 요소는 출판 전 과정에서 좀처럼 밖으로 드러나는 일이 없는 집필과 편집이라는 업業의 속사정이다. 실제 작가가 무슨 생각으로 어떤 문장을 쓰는지, 그걸 편집자는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는지, 둘은 독자와 어떻게 관계 맺으려 하고 무엇을 의식하는지, 사람들이 어떤 이해로 친해지고 어떤 오해로 멀어지는지, 어디서 말이 통하고 어디서 더는 통하지 않는지, 무엇을 붙들었다 어떻게 놔버리는지…… 거기엔 예술이나 원칙보다는 살아가는 방식에 가까운 뭔가가 있다. 어느 쪽에든 동조하거나 이입하지 못할지언정, 끝내 확인하게 되는 태도가 있다. 그 태도 때문에 이 작업이 책으로까지 나오게 된 것일까? 매기 넬슨은 『사실의 수명』을 추천하며 “읽다가 미쳐버릴 것 같으면서도, 강박적으로 읽게 된다”고 적었다.




저는 이 주장이 임의적인 추측이라고 확신합니다. 누군가가 실제로 사고 현장에서 이 차들 안에 있던 사람의 수를 세어본 게 아니라면 말이죠. 어느 쪽이든, 만약 실제로 ‘교통 체증’이 발생했다면, 현장에 있던 인원수는 백 명을 훨씬 웃돌았을 공산이 큽니다. (…) 저자는 차량이 ‘예순 대’, 고작 60대 있었다고 추산하죠. 만약 문제의 교차로와 연결되는 각 도로에 차량을 그 대수만큼—T자형 삼거리의 세 방면에 각각 차량을 총 대수의 3분의 1대씩—배치하면, 볼티모어 방면으로는 차로당 고작 다섯 대의 차량이 다니게 되고 라스베이거스 방면으로는 차로당 고작 세 대의 차량이 다니게 됩니다. 또한 설령 그 60대의 차량이 모두 라스베이거스 대로, 정확히는 레비의 추락 지점 부근에 있었다 해도, 각 차로에 고작 열 대의 차량이 있었던 셈이 됩니다. (차량 한 대의 평균 길이가 약 4미터라고 치면, 정체 거리는 50미터에도 못 미쳤겠지요.) 제가 직접 토요일 저녁 6시에 그곳에 가서 눈대중으로 헤아려본 결과, 인근을 오가는 차량 대수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예순 대 이상이었습니다.

미국 태권도 협회의 조사에 의하면, 태권도의 본류 격인 ‘택견’의 발원지는 인도가 아닌 한국이었습니다. (…) 제가 찾아본 바로는 태권도가 인도에서 기원했다는 저자의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라곤 지극히 지오시티스GeoCities〔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무료 홈페이지 서비스로 2009년에 폐쇄되었다스러운 웹사이트〕로 연결되는 링크뿐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인도의 한 왕자가 (태권도가 아닌) 가라테의 잠재적 창시자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요. “통설에 따르면 가라테는 450년경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인도의 어느 부유한 왕자는 신체에서 취약한 부위를 파악하기 위해 노예들을 침으로 찌르는 실험을 단행했다. 또한 그는 동물이 싸우는 모습을 관찰했다. 이를테면 그는 호랑이가 공격을 개시하기 전에 몸을 긴장시키는 방법과 발톱을 사용해 적의 몸을 찢는 방법을 눈여겨보았다. 또한 그는 다른 동물들의 움직임도 관찰하여 인체에 맞게 응용했다. 그 일이 끝나자 그는 다시 노예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고, 이번에는 침으로 찌르는 대신 실제 주먹질과 발차기를 했는데, 상대의 어디를 어떻게 때려야 대결에서 원하는 결과를 거둘 수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전설에 따르면, 이 기이한 실험으로 인해 100명이 넘는 노예가 죽임을 당했다.” 그런데 문제의 웹사이트에서 묘사하는 이 수상쩍은 이야기가 (태권도가 아닌) 가라테의 역사라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뒤이어 이 사이트는 자기들이 소개한 이야기의 정확성을 다음과 같이 부인합니다. “이 기록은 부분적으로 구전에 근거하고 있으며, 기록의 정확성은 구전된 내용이 정확한지 여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사이트에 게재된 이야기가 풍문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겁니다. 선생님, 혹시 더 믿을 만한 자료는 없을까요?

  작가 소개

지은이 : 존 다가타
에세이스트. 『명예의 전당Halls of Fame』 『어떤 산에 관하여About a Mountain』 등을 썼고, 『넥스트 아메리칸 에세이The Next American Essay』 『에세이의 잃어버린 기원The Lost Origins of the Essay』를 편집했다. 『빌리버』 『하퍼스』 『걸프 코스트』 등에 에세이를 연재했고, 아이오와대학에서 창의적 글쓰기를 강의 중이다. 논픽션 글쓰기로 구겐하임 펠로십, 하워드재단 펠로십을 받았다.

지은이 : 짐 핑걸
잡지사 『빌리버』와 맥스위니스 출판사에서 다년간 팩트체커로 일하며 다가타의 『어떤 산에 관하여』를 비롯해 『무엇이 무엇인가What Is the What』 『살아남은 정의Surviving Justice』 『폭풍의 목소리Voices from the Storm』 등 여러 도서의 편집에 참여했다.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작가로 활동하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목차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회원리뷰

리뷰쓰기

    이 분야의 신상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