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생활철학잡지 《뉴필로소퍼》
vol. 30 : 내가 한 선택이 내가 된다 키르케고르는 ‘인생이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무엇을 선택하든, 선택하지 않든 인간은 후회하기 마련이니 이 원리가 ‘모든 철학의 알맹이’라고 했다. 장 폴 사르트르는 ‘내가 선택한 것이 곧 나의 현실을 만든다’라고 했으며, 시몬 드 보부아르는 ‘여성 스스로 선택하는 자기 결정권, 즉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토록 ‘선택’은 여러 철학자들이 집중했던 삶의 기본 권리이자 의무이다. 《뉴필로소퍼》에서는 선택이라는 자유권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 선택과 짝을 지어 거론되는 자유의지와 결정론의 대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한대로 펼쳐지는 선택지 속에서 선뜻 결정짓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방황까지, 선택을 바라보는 다양한 위치에서의 시선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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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이외의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선택_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우주를 생각하다
무언가를 선택하는 기준은 아마도 상황에 따라 상이하겠지만 대체로 이런 생각의 바탕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어느 것이 더 내 마음에 드는가?’ 혹은 ‘어느 쪽이 더 내게 이익일까?’ 그리고 ‘어떤 게 더 안전한 선택일까?’ 등이다. 그런데 이런 조건에 충족하는 선택을 내림에 있어서 우리를 결정적으로 갈등하게 만드는 지점이 발생한다. ‘혹 내가 선택하지 않은 쪽이 더 나았던 것은 아닐까?’
호주 디킨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패트릭 스톡스는 결혼을 예로 들면서, 결혼이란 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결혼 서약에서 말하듯이 ‘다른 모두를 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를 선택했다면, 나머지 선택하지 않은 것이 더 좋은 사람일지, 더 나은 물건일지, 더 멋진 상황일지 알 수가 없다. 결국 선택이란 후회라는 감정을 동반하기 마련이며, 그럼에도 의외로 그 후회에 한없이 짓눌리지 않으며 자신의 선택에 맞추어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 또한 다행인 점이다.
그러면서 스톡스 교수는 한 가지 방안을 제안한다. 선택을 ‘다양한 가능세계를 평가하는 일’로 바라보는 방법이다. 여기서의 가능세계란 현실과 가장 가까운 세계를 말하는데, 가령 A와 B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A라는 가능세계’와 ‘B라는 가능세계’ 중에서 고르는 것이다. 많은 논란을 불렀던 철학자 데이비드 루이스의 ‘양상 실재론’과 맥을 같이 하는 이 가능세계 이론에서는 실제로 ‘A 가능세계’를 택했어도 아주 가까이 ‘B 가능세계’가 존재한다고 본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면서 동시에 포기해야 했던 나머지 선택지들도 단순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철학의 영역에서 이 가설은, 수없이 맞닥뜨리는 삶의 선택지 앞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갈래의 길이 곧 무수한 가능성 자체임을 말해준다.
물론, 다르게 선택했더라면 삶이 어땠을지 결코 알 수 없으므로 무엇을 후회해야 하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루이스가 옳다면, 내가 다른 선택을 내린 우주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런 우주 가운데 적어도 한 곳에서 나는 록스타다. (본문 25쪽)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존재할까?_ 결정 장애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선택을 거론함에 있어 ‘결정론’과 ‘자유의지’는 많은 철학자들이 빼놓지 않는 부분이다. 특히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은 존재’이며, ‘우리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고, 매순간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이와 대척점에 서 있던 결정론자들은 인간의 선택이라는 것은 없으며, 이미 선택의 결론은 정해져 있다는 결정론을 옹호했다. 한 사람이 깊은 고민 끝에 무언가를 선택했다 하더라도, 결국은 그의 뇌가, 혹은 이 우주가 이미 그의 선택을 알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살면서 내리는 결정은 정말로 독립적인 자유의지인가? 아니면 훨씬 우월한 지능을 가진 초월적 존재가 미리 결정한 결론을 그저 따랐을 뿐인가?
더불어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선택을 행하는 자율성을 마비시킨다는 분석도 동의하게 된다. 여러 장의 그림 포스터를 펼쳐놓은 뒤, 한 그룹에는 마음에 드는 포스터를 곧바로 골라보라고 주문했고, 또 다른 그룹에는 자세히 살펴본 뒤 각 포스터에 대한 장단점을 분석해본 뒤 최종적으로 한 개씩 선택해달라고 주문했다. 며칠이 흐른 뒤 그들에게, 그때 각자가 고른 포스터가 지금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지 물으니, 첫 번째 그룹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답했지만, 두 번째 그룹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인 배리 슈워츠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오히려 자유를 방해하고 과한 고민과 집중이 종래는 오류를 양산하는 결과를 보인다고 했다.
과거에 비해 현 시대는 너무 많은 선택지들이 우후죽순 펼쳐지는 세상이다. 끝도 없이 스크롤하며 핸드폰 화면을 내릴 때 그 안에 펼쳐진 여러 텍스트와 이미지에 우리는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가. 슈워츠 박사는 선택의 폭은 줄일 수 없지만, 우리가 고려해야 할 선택안의 숫자는 줄일 수 있다고 힌트를 던진다. 하지만 자본주의 세상이 첨단화의 기술과 만날 때 인류에게 있어 선택지가 줄어드는 일은 아무래도 요원한 일인 것 같다. 다만 무엇이든 최선의 선택만을 원하는 사람과, 자신이 한 선택에 만족해하는 사람. 이 두 부류의 사람 중에서 단연코 후자의 자세를 갖는 것이 행복에 좀 더 가까이 가 닿는 것이라 결론을 맺는다.
젊을수록 최선책을 찾으려 애쓰게 되므로 결정 장애로 괴로워하는 젊은이가 많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내 생각에,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적당히 좋으면 그만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것 같다. (본문 57쪽)
“내 삶의 편집권을 쥐고 있다면” - 철학하는 엄마 이진민 인터뷰, 국내 필자들의 철학 에세이
독일 뮌헨 근교에서 살고 있는 이진민 작가를 이메일 인터뷰로 만나본다. 출산과 동시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진민 작가는 해외에서 조용히 체류하는 겉모습과는 달리, 1년에 한 권 이상의 책을 꾸준히 출간하는 왕성한 에너지의 철학 작가이다. 도움받을 곳 없는 타국에서 두 아이를 양육하면서 그의 유일한 양육 조력자는 책 속에 누워 있던 철학자들이었다. 분리불안을 보이는 아이를 보며 ‘불안한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 홉스를 떠올렸고, 아이들에게 자유의 경계를 설정해줄 때엔 ‘무 위해성의 원칙’을 알려준 밀에게서 도움을 받았으며,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을 제거하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슈클라의 조언은 그의 육아 철학의 기둥이 되었다.
이번 호에도 국내 필자들이 자기만의 영역 안에서 자유롭게 풀어가는 철학 에세이를 실었다. 임이랑 작가는 지친 몸과 영혼을 맡길 수 있는 여행지의 숙소라는 공간에 대하여, 미술작가 박보나는 에어브러시로 요철 없는 그림을 그리는 어느 젊은 화가에 대하여, 그리고 철학자 황진규는 앙리 베르그송의 신경계 발달론을 토대로 인간의 무궁한 잠재성과 비결정성인 자유를 설명해 나간다.
“어떤 선택이 내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어버리는 것 같아도, 그건 내 삶의 편집권을 가진 상태에서 어느 쪽에 초점을 두고 어느 쪽을 아웃포커싱 하는가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우리는 대체로 시간이 지나서 그 방향으로 다시 갈 수 있어요.” (152쪽)

새로운 흥밋거리를 찾아 화면을 스크롤만 할 뿐 아무것도 선택하거나 행동하지 못하면, 우리의 본질, 즉 선택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내 존재는 미완성 또는 파편화 상태에 머물 수밖에 없다. 사르트르는 의도적인 행동이 없으면 우리가 진실성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살거나, 외부 영향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다.
▲ News From Nowhere중압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감각은 다들 한 번쯤 경험해보지 않았을까? 어떤 차, 집, 직장을 골라야 하지? 그럴 때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이면의 무의식이 알아서 작동하도록 두는 건 어떨까? 동전을 던져 앞면과 뒷면 중 무엇이 나올 것 같은지 가늠해보라. 내심 앞면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면 바로 그게 당신이 바라는 선택이다.
▲ ‘별생각 없음’이 주는 힘 _ 안토니아 케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