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에시선 92권. 신언관 시인의 신작시집 『둠벙』은 농촌 생태계를 상징하는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릴 적 얼기미 들고 나가 새뱅이, 송사리, 방게 잡던 아련한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출판사 리뷰
농사와 시가 하나 되는 둠벙의 시학
신언관 시인의 신작시집 『둠벙』은 농촌 생태계를 상징하는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릴 적 얼기미 들고 나가 새뱅이, 송사리, 방게 잡던 아련한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기계화 영농과 규모화의 증대로 경지 정리를 하게 되면서 둠벙은 사라지고, 농촌과 생태 환경도 파괴되었다. 그러나 시인은 과거 다양한 생물들이 인간과 공조하며 삶의 원형을 이루었던 『둠벙』을 소환하면서 생명공동체로서의 농촌과 평화의 세상을 활짝 열어가고 있다.
세상에, 이리 반가울 수가
방화골 논 물꼬 보러 가는 길
강변 억새풀 사이
덜 익은 개똥참외 열렸구나
하나는 주먹만치 컸고
하나는 이제 막 꽃잎 떨어졌구나
아들아, 이게 개똥참외란다
어디 한번 먹어보렴
손바닥으로 쓱쓱 문질러 닦은 뒤
반으로 쪼개 한 입 깨문다
똑같네요
그렇지, 그냥 저절로 생긴 거야
저절로 생겨난다는 건
감히 누구도 막지 못하는 힘이지
그 힘이 순리라는 거야
저 강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누구도 거역해서는 안된다는 뜻이지
그래서 개똥참외가 참 대단한 거야
―「개똥참외」 전문
나의 냉소와 비겁은
가을의 바람과 별빛에서 비롯되고
아픈 다리 쉬라고 어둠이 오면
이끼 늘어붙은 공허함으로 밤이슬이 맺힌다
결코 소박하지 못한 소망이
탐욕의 속내로 바뀌는 것 어렵지 않아
몸을 까맣게 끄슬리는 구덩에 박혀
젊음이 재로 되기엔 한낮이 짧기만 하다
고개 숙여 화염의 뜨거움을 맞는다
붉어진 볼에 스산한 바람이 스친다
가마솥의 물이 끓는 것은
그 안에서 숨 못 쉰 세월 때문이다
―「아궁이에 불 지피며」 전문
논물 뺄 때쯤이면
마른 장마 아니고는 며칠 비 내리는데
축축한 땅에 슬쩍 묻어도 잘 산다
부슬부슬 비라도 내리면
더위도 물리칠 겸 더욱 좋다
모종 사십 판 심고 돌아보면
두덕 따라 가지런히 예쁘다
트랙터 없는 시절에는
두덕을 어떻게 만들었냐고 묻는다
소에 극징이를 달아 이랴쩌쩌 몰면서 했지
아버지도 젊었을 때 해봤단다
할아버지한테 못한다고 데지게 혼났었지
대야에 모종 담아 나르면
엄마는 쳐다보며 늘 웃었지
그때도 장맛비는 내렸었지
눈물 감출 수 있어 좋은 날
―「들깨 심기 좋은 날 」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신언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2015년 『시와문화』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사랑한다』, 『그곳 아우내강의 노을』, 『낟알의 숨』, 『뭐 별것도 아니네』, 『엇배기 농사꾼의 늙은 꿈』, 『그래, 맞아』 등이 있다. 현재 고향인 청주 오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시를 쓴다.
목차
시인의 말·05
제1부
가재·13
개똥참외·16
가을걷이 한가운데 서서·18
아궁이에 불 지피며·20
벼 포기·21
해마다 날 환장하게 하는 풍경, 셋·22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24
들깨 심기 좋은 날·26
왜가리·28
가을 태풍·29
오월의 보리밭·30
괜한 걱정·31
까치집·32
겨울밤·33
허물·34
제2부
눈 쌓인 들판 바라보며·37
둠벙·38
장송 솔잎에 햇살이 눈부시다·40
묵언의 기도·42
뒤주·44
나의 소원·45
겨울 해는 여전한데·46
익숙한 표식·47
늙었다는 것 1·48
첫눈 오는 날·49
오리실에서·50
늙었다는 것 2·51
다솔사 응진전·52
봄날의 미혹·54
땅은·55
제3부
금줄·59
내 서 있는 이곳은·60
왜 시를 쓰는가·62
별에게·64
요망한 상상·66
요괴의 허상·68
바람 타고 날아오른 기억들·70
디딜방아·72
허허, 참·74
광장의 소리·76
노을의 소리·78
잠 못 이룬 밤·79
잡문(雜文)·80
조화(調和)·82
운해 속 한 점 물방울이어라·84
제4부
통일은 밥 먹고 하자·87
너의 통일은 틀렸다·90
저절로 통일 1·92
저절로 통일 2·93
프리 티베트·94
입만 열면·97
용서하소서·98
가을비 단상·100
대통령 놀이에 신난 아이들·102
1968년의 테제·104
기우일까·106
망팔(望八)·108
내가 만난 어느 빨치산·110
시인의 산문·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