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오스트레일리아 작가 중 가장 강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숨은 거장 제럴드 머네인의 소설선 『소중한 저주』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평생 오스트레일리아를 떠난 적이 없고, 출생지인 빅토리아주 바깥도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는 이 은자(隱者)와도 같은 작가는 그럼에도 자신이 태어나고 살아온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현미경적인 관찰, 문학에 관한 수도사와도 같은 엄숙한 탐구, 인간 의식과 마음에 관한 정교한 기술(記述)을 바탕으로 보편성을 획득하여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된 거장이다.제럴드 머네인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실로 독특한 경험이다. 그가 다루는 소재들은 모두 지극히 지역적이고 개인적인 것들이다. 그는 자신의 부모와 그들의 가족,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공간의 지형과 위치와 방향을 해부학적으로 꼼꼼하게 기록한다. 「하천 체계」, 「몇 나라들이 있었다」, 「에메랄드 빛깔 푸른색」, 「소중한 저주」 같은 작품들에서 그런 기록들은 주인공이자 화자의 내면의 지형으로 이어진다. 머네인이 궁극적으로 그려 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 내면의 풍경, 곧 ‘마음의 지형’이다.

아들이 폭풍우가 친 오후에 내게 희미한 몸짓을 했을 때, 그는 자신이 언제까지나 부분적으로는 생쥐일 거라고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5년이 지나면 천식에서 자유로워질 거라고 내가 5년 전에 말했던 걸 잊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잊지 않았지만, 나의 말이 맞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5년 전 자신에게 말해 주었던 걸 매일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제 막 지나간 폭풍우 속에서 숨을 쌕쌕거리고 헐떡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것을 기억했다. 그러나 단지 어린 시절의 그가 앞으로 언젠가는 더 이상 생쥐가 아닐 거라고 믿게 하기 위해 내가 그런 말을 했던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천’이라는 단어가 인쇄된 연푸른 수역의 윤곽은 흔해 보이면서도 살짝 뒤틀린 인간 심장 모양이었다. 지도에서 이 윤곽을 처음 알아보았을 때, 대략 타원 형태인 황갈색 수역을 보면서 내가 왜 살짝 뒤틀린 인간 심장을 생각했는지 자문했다. 나는 살짝 뒤틀린 것이든 흔한 모습이든 간에 내가 인간 심장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목격한 것 중 살짝 뒤틀린 심장 형태에 가장 가까운 건 1946년에 직판 장신구 개인 유한 회사에서 발행된 카탈로그에 실린 금 장신구 선(線) 그림의 일부로, 그것은 점점 가늘어지는 특정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제럴드 머네인
1939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교외 도시인 코버그에서 출생한 소설가, 시인이자 에세이스트. 《뉴욕 타임스》는 그를 일컬어 “생존 한 영문학 작가 중 가장 위대하면서 가장 덜 알려진 작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멜버른 교외에서 거의 일생을 살았고 빅토리아주 밖을 여행한 적도 거의 없다. 머네인은 자신이 여행을 자주 하지 않고 한 곳에 머무르는 이유가 사물의 표면만을 훑기보다는 깊이 응시하고, 주변 대상들의 패턴을 인지하기 원해서라고 말한다. 가톨릭 교육을 받았고, 열여덟 살에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석 달 뒤 자퇴했고 몇 년 후에는 가톨릭 신앙을 완전히 잃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교사 자격증을 딴 다음 1960년에서 1968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고, 1969년에 멜버른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 첫 소설 『태머리스크 로』를 발표했으며, 1980년 프란 고등 교육 대학에서 문예 창작 강사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교사, 편집자, 전업 주부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글을 썼다. 1995년에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은퇴 시까지 일곱 권의 책을 출간했고, 그 이후 2005년 발표한 에세이집을 제외하고 십사 년 간의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다가 2009년에 다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호주 예술원의 은퇴자 기금을 받았고, 패트릭 화이트 문학상, 멜버른 문학상, 애들레이드 축제 혁신 문학상, 빅토리아 주지사 문학 상 등을 받았다. 『평원』, 『국경 지대』, 『내륙』, 『책의 역사』 등 아홉 권의 장편 소설을 펴냈고, 대표 소설집 『소중한 저주』 외 세 편의 소설집과 두 편의 에세이, 한 권의 시집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