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최현우의 두번째 시집. 평단의 호평과 더불어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얻은 첫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신작이다. 조곤조곤한 서정과 마음을 움직이는 비유가 여전한 가운데 세상을 보는 눈은 한층 깊어졌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불완전한 세상의 장벽에 부딪히고 깨지며 스러져간 삶의 단면들을 감각적인 언어로 그리며,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살아내는 현대인의 비극적인 억척스러움과 무감함”(성현아, 해설)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시인은 고통을 드러내면서도 절규하기보다는 침착하게 마음의 균열을 어루만진다. 우리가 외면해온 시대의 비극과 위태로운 삶의 풍경을 묵직하게 되짚는 “참회의 고백”(「마지막 빙하」)과 같은 시편들은 상처와 침묵으로 얼룩진 순간들을 되새기고 사람과 사람이 주고받는 위로의 본질을 성찰한다. 세상 곳곳에 자리한 통점을 날카롭게 감각하고 뜨거운 한 시절을 살아내며 한층 성숙해진 시적 자아는 이제 더 넓은 곳을 향해 나아간다.그런 일이다책장과 벽 사이에 끼어 있던쓰다 만 공책을 발견하는 일이곳에 살다가 저곳으로 옮겨본 적 있다는 것보이지 않는 곳볼 수 없는 곳그늘의 인대가 끊어진다(…)사각형 햇빛 한칸만 그 자리에 있다중단할 수 없는 이 빛자꾸만 대신하여 맨 위에 포개지는끔찍해서 아름다웠던햇빛 ―「영원한 햇빛」 부분
한번쯤 찾아오겠다던 사람이 온다던 여름에사람은 안 오고오지 말라는 일들만 다시 일어났습니다서글픈 이야기는 아니고요“살면서 가장 좋았던 적은 언제인가요?”살지 않아도 될 때요그렇게는 대답 못하고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다가그런 삶은 없었다고 대답했습니다좋지 않았던 건 아니고요무엇이든 더이상 반복할 수 없다고 확신했을 때오월 햇빛 어디 안 간다는 사람 생겼습니다그늘처럼 결혼했고요(…)온다던 사람이 있었습니다그래서 다시 쓰기 시작했습니다곰곰이 생각하고 일어난 일입니다―「지금이에요」 부분우리가 할 수 있는고작 그런 영원이란생명을 초월할 순 없겠지만평범하게 아득한 일입니다(…)사라지십시오그러면 아름답습니다매일 살고 다시 슬픈 우리는모두가 주인공이었던 것입니다―「주인공」 부분
가는 애들 밥 한끼는 먹여야 할 것 아니냐며 골목에 밥상을 놓다가 울어버린 사람과 그 밥상 위에서 가파른 골목보다 더 가파르게 기울어져 쏟아질 것만 같은 사발 속의 국물을 본 적 있습니까. 세상은 그토록 평평한 밥상입니까. 그래서 그보다 먼저 쏟아지고 아직도 쏟아지는 사람 같은 건 쏟아진 적 없다는 듯 보이지 않도록 하루빨리 닦아버렸습니까.밥을 끊는 결심이란생명이 생명이 아니라는 말이므로.대체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숟가락 대신 손가락을 들이대며우리는 왜 작은 영혼으로 거대하게 배부릅니까.―「밥이 잘못한 적 있습니까」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최현우
201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사람은 왜 만질 수 없는 날씨를 살게 되나요』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