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저자는 1938년생으로 어린 시절 8·15 광복과 6·25 전쟁을 겪은 세대다. 모두가 없이 살고 어렵게 살던 그 시절에도 저자는 늘 긍정적인 사고와 유쾌한 성격으로 시련을 이겨냈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 지난 90여 년의 삶을 돌아보며 자서전적 글을 남긴다.
자식들과 손주들, 그리고 이후의 후손들에게 남기는 이 글에는 저자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짊어졌던 가장의 무게와 그때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출판사 리뷰
90년을 살아보니 세상만사 별일 아니더라
후회도 고뇌도 바닷바람 타고 날아가더라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내며
아버지로서 살아온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
90여 년의 삶을 관통했던 온갖 일들을
마치 한 편의 소설처럼 유쾌하게 펼쳐내다
저자는 1938년생으로 어린 시절 8·15 광복과 6·25 전쟁을 겪은 세대다. 모두가 없이 살고 어렵게 살던 그 시절에도 저자는 늘 긍정적인 사고와 유쾌한 성격으로 시련을 이겨냈고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제 지난 90여 년의 삶을 돌아보며 자서전적 글을 남긴다. 자식들과 손주들, 그리고 이후의 후손들에게 남기는 이 글에는 저자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짊어졌던 가장의 무게와 그때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가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이 기록은 자서전 형식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것은 형식에 구애되지 않고 내가 살아온 시절의 나의 생각과 그 시절의 우리 주변 환경 등을 지금 시대의 사람들이 참고하는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그 시절의 젊은이들이 고민하던 과정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좀 웃기는 얘기 같지만 200세대의 마을에 전화 1대가 설치된 것을 큰 문화라고 느끼고 외지에서 전화가 왔다는 마이크 방송을 듣고 100미터가 넘는 거리의 전화기를 향해 달려가던 그때의 주민이었던 내가 주머니에 전화기를 넣고 사는 지금을 생각이라도 했겠는가?
지나간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을 일들이 많았지만 그때는 그런대로 심각한 현실을 나름대로 판단하고 실수와 성공을 번갈아 겪어왔던 내 인생사를 여기에 기록해본다. 자전거 1대도 어려웠고 호롱불로 밤을 밝히던 마을을 전깃불 넣고 수도를 가설하며 자동차 도로를 닦고 방파제를 건설하고 정치망과 멍게 미역 양식을 선도적으로 주선하여 민생의 생활을 향상시킨 당시의 일들은 그 시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를 매우 높게 평가할 일이지만 세월이 흘러 인생이 바뀐 지금엔 늘 이렇게 살아온 것처럼 옛날의 흘린 피땀이 잊히는 게 안타깝지만 누가 세월을 이기랴.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 것을. 남에게 보이기 꺼려지는 옛날 사랑 이야기도 남의 일이면 엿보고 싶은 사람들의 입가심으로 웃으면서 봐주길 바란다. 젊을 때는 나도 문학소년이었기에.
1961년 5월 박정희 소장의 군사혁명이 일어났고 두 달 뒤 나는 우리 마을 동장에 임명되었다. 박정희 장군은 내가 7사단 헌병대 근무 시 사단장을 거쳐 갔기 때문에 그의 가무잡잡한 모습을 기억하지만 혁명을 일으킬 줄은 정말 몰랐다. 그 시절 민주당이 4·19 혁명을 기회로 집권하고 민주당 신파와 구파가 내각책임제로 갈려 매일 소란스런 데모와 시위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기 때문에 차라리 군사혁명으로 사회를 강압적으로라도 조용히 만드는 것을 온 국민은 환영했던 것이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윤보선 씨도 마침내 올 것이 왔다고 탄식을 했음 직하다.
동장이라는 직책은 마을 행정 책임자이면서 동리의 어른이라는 구시대 의식 때문에 결혼을 하고 나이도 중년 이상이라야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혁명 후 24살이고 결혼도 하지 않은 총각이 마을의 대표이고 어른 대접을 해야 하는 데 대한 반감으로 마을 어른들 가운데 임명 반대 기류가 있었으나 군사혁명의 비상조치법에 의하여 무조건 계엄하의 군사 행정을 집행하는 데 반대는 아무런 효력이 없었고 나는 군에서 3년간 행정을 경험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군대식 행정 문서에는 능했던 것이다.
한 인간의 생애를 돌이켜보니 어느덧 한 세기가 가까워져 가고 있구나.
일제 강점기에는 그다지 살아본 경험이 없었고 다만 초등학교 입학하고 3개월 만에 해방이 되었으니 특별한 기억은 없으나 해방 바로 전에 동해에서 미군기가 일본 상선을 공격하는 장면이 아직도 눈에 선하게 보일 뿐이다.
그 후 6·25 전쟁을 겪으면서 다행스럽게도 이 땅을 지켰고 나 역시 입대하여 나라를 지키는 일에 남들처럼 힘을 보태었다. 5·16 군사혁명으로 먹고사는 문제가 개선되고 이상하리만치 초라한 초가를 걷어내고 슬레이트로 갈아 덮어 사람이 살 만한 공간을 마련한 것, 내가 못 배운 교육을 자식에게는 물려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 지난 시절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치고 힘겹게 서로 도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같이 의논하며 다투던 동기며 친구들의 모습이 하나둘 머릿속에서만 떠돌고 있구나.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병철
1938년, 동해 바닷바람을 타고 “짠” 하고 세상에 등장한 이분은 경상북도 영덕의 순도 100% 본토박이. 출생과 동시에 ‘인생대학교’에 자동 입학, 수료는커녕 2025년 현재까지 장학생으로 전 과정 이수 중인 인생 베테랑이다. 인생의 신입생이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85년간, 휴학 한 번 없이 출석률 100%를 자랑하며 ‘실전형 커리큘럼’을 몸소 소화 중이다.젊은 날의 한 페이지는 대구에서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콘셉트로 살짝 눌러앉아봤지만, 결국 ‘바다는 나의 고향이요, 고향은 나의 바다’라는 DNA의 부름을 이기지 못하고 짐 싸 들고 영덕으로 컴백. 바다와 씨름하며 평생을 어업에 바쳤고, 그 와중에도 ‘파도에 밀리지 않는 삶의 중심 잡기’라는 고급 과목을 마스터했다.장화 대신 슬리퍼를, 어망 대신 웃음을 드리우며 사는 지금의 작가는 여전히 “세상에 별일 다 있네” 하며 허허 웃는 긍정의 아이콘이다. 주변에서는 “저 나이에 어떻게 저리 젊은 생각을 하지?”라며 놀라지만, 정작 본인은 “마음만은 아직 스무 살”이라며 손사래를 친다.최근에는 ‘고등어는 언제 잡는 게 제일 맛있나’보다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괴롭지 않나’를 더 자주 고민하며, 인생대학교의 심화 과정인 ‘삶의 유쾌한 태도론’, ‘긍정 마인드 실전편’, ‘웃음과 여유의 콜라보’ 등을 수강 중이다. 주름은 조금 늘었지만, 그 안엔 수십 년의 파란만장도, 굽이치는 유머도 한 스푼씩 담겨 있다.오늘도 바다 냄새 스치는 영덕 어귀에서, 세월을 안주 삼아 인생의 농담 하나 얹으며 이렇게 말한다.“별일 없이 산 것도, 따지고 보면 별일이더라.”청춘은 끝나지 않았다. 단지, 바다처럼 조금 더 깊어졌을 뿐.
목차
여는 글
인생잡기 - 자서전적 기록
디딜방아
교회를 가다
동장 취임
세 번째 어머니를 모시다
야학 미향학원을 개설하다
추억
집짓기
결혼
신혼여행
첫딸
첫아들
아이들의 성장 과정
손자 이야기
형제의 독립
수산업(정치망과 미역 양식)
미역 양식 사업
미역 종묘장 운영
분가
정치망 제작 기사
아버지의 별세
대구로 이사(아이들의 진학)
귀향
당뇨병을 치료하다
다시 어업 시작
아이들의 결혼
진갑 잔치, 칠순 잔치
여행
경로회장
할망 뇌경색
무릎관절 수술
대장암에 걸리다 말다
임플란트 시술
기억에 남아 있는 일들(두 생명을 살린 이야기)
잊혀가는 추억들
세시 풍속
인생 이야기를 끝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