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920년부터 1935년까지의 ‘음악회’는 식민지시기 경성의 근대화 과정에 있어 ‘최고의 유행물’이었다. 이를 통하여 경성인들의 일상을 면밀히 살펴보고, 음악문화 형성의 중심지였던 종로와 혼마치(지금의 충무로 일대)의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진 근대 음악회를 정치적, 사회문화적 맥락을 통하여 알아본다. 이 시기에는 특히나 일제의 문화정치와 일본 유학을 시도한 젊은 음악가들이 귀국하는 시점이 맞물려 음악적으로 중요한 시기이다. 1920년대에는 다양한 전공의 양악전문가들이 출현하고 양악을 향유하려는 조선인들이 증가하면서 음악회에 참석하는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같은 시기에 총독부의 문화정치와 함께 다수가 모일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이 종로와 혼마치를 중심으로 생겨났다.흰옷을 즐겨 입는 조선인과는 반대로 일본인들은 검은 옷을 즐겨 입었다. 일본에서 검은색이 “문명의 색깔”이었던 연유에는 일본이 개국 때부터 감지한 서구의 색은 검은색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서양인이 타고 온 흑선부터 서양에서 들어온 문명은 기차며 자동차며 죄다 검은색이었다. 일본은 조선도 검게 만들고 싶었다. 조선인에게 백의를 금지하고 일본의 흑의를 입혔다.
경성에서 생활하던 한 일본인 직장인은 경성을 떠날 때 음악부원의 송별회를 받고 레코드클럽 사람을 만나기도 하였다. 이는 직장 안팎에서의 음악동호회 활동도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전문음악가가 아닌 취미로 음악을 즐기는 재조일본인을 알아보는 것은 그들의 직업이나 위치가 음악을 향유하는 경제적 조건과 시간적 여유를 가늠하게 해주며 그들의 학문이나 지식의 기본적인 소양까지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이제 서양음악이 연주되는 신식 결혼식은 근대식 가정을 여는데 필수 코스였다. 당시 음악회장으로도 인기가 높았던 기독교청년회관, 천도교당, 예배당, 경성공회당은 신식 결혼식장으로도 유행하였으며 결혼식에서 풍금으로 <결혼행진곡>을 쳐주고 비단 저고리 한 감 혹은 10원이나 15원을 받는 고가의 연주 아르바이트까지 성행하였다. 결혼식을 풍자한 이혼식의 그림에도 바이올린 주자가 등장할 정도로 음악은 점차 조선의 음악이 아닌 서양음악을 지칭하며 근대문화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이해되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조윤영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공부하였다. 박사 논문으로 우수학위논문상을 받았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한국 근대 음악사이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계속해서 우리 음악문화의 비어 있는 틈을 메우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주요 연구로는 「서양의 소리, 경성의 공간을 침투하다-호텔과 백화점에서의 서양음악과 그 영향」(2023), 「식민지조선 여성 음악가에 대한 인식적 고착화-결혼제도에 따른 여성과 음악의 한계」(2022), 「식민지조선에서 베토벤 수용-음악 활동에 관한 사회문화적 접근」(2021), 「조선에 울려 퍼진 여성의 음악 소리-‘조선’ 여성이 ‘서양’음악에 주목한 이유에 대하여」(2019), 「음악을 통해 근대여성을 꿈꾸다-차미리사와 근화여학교의 음악활동」(2018)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