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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월 전 시집 : 진달래꽃, 초혼  이미지

김소월 전 시집 : 진달래꽃, 초혼
한글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 시인
스타북스 | 부모님 | 2025.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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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소월은 한국 시문학의 꽃 중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교과서와 드라마, 영화, 뮤지컬 그리고 가곡과 노래로 끊임없이 사랑을 받는 시인이다. 나라를 빼앗긴 깊고 무거운 어둠의 시대를 가볍고 찬란한 빛으로 바꿔준 김소월의 아름답고 맛있는 시어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고단한 일상을 위로해주고 메마른 감성을 촉촉이 적셔주는 치유의 공감을 느끼게 해준다. 소월의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심중에 남아 있는 말 한 마디는…’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등등 이러한 한글 표현은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감미롭고 입에도 착착 붙는 언어로 구사되어 있다. 따라서 김소월 시인의 시어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맛깔스러워 AI도 감히 흉내를 내거나 복제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한다.2025년은 광복80주년이자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집 출간 100주년이다. 따라서 이 시집은 100주년 기념 시집으로 흩어졌던 시들을 찾아 한데모아 총망라해 ‘김소월 전 시집’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또한 김소월의 한시 번역 시 중에서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중국의 가장 유명한 세분의 시 한편씩을 골라 3편을 실었다. 소월의 번역시는 원작의 ‘말뜻’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시에 담겨있는 혼이나 넋을 자신이 온몸에 두루고 우리말 버전으로 다시 썼다고 할 수 있다.

한때는 많은 날을 당신 생각에밤까지 새운 일도 없지 않지만 아직도 때마다는 당신 생각에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낯모를 딴 세상의 네 길거리에애달피 날 저무는 갓 스물이요캄캄한 어두운 밤 들에 헤매도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당신을 생각하면 지금이라도비오는 모래밭에 오는 눈물의 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버린 설움이외다- ‘님에게’ 전문
나이 차지면서 가지게 되었노라숨어 있던 한 사람이, 언제나 나의,다시 깊은 잠 속의 꿈으로 와라불그레한 얼골에 가느다란 손가락의,모르는 듯한 거동도 전날의 모양대로그는 의젓이 나의 팔 위에 누워라.그러나, 그래도 그러나!망할 아무것이 다시없는가!그냥 먹먹할 뿐, 그대로그는 일어라. 닭의 홰치는 소리.깨어서도 늘, 길거리의 사람을밝은 대낮에 빗보고는 하노라- ‘꿈으로 오는 한 사람’ 전문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소월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이고 그곳에서 성장하고 생활하고 사망했기 때문에 전기적 사실을 확인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회고담이나 신문 잡지에 난 관련 기사를 통해 그의 생애를 재구해 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소월의 본명은 정식(廷湜)으로 1902년 음력 8월 6일(양력 9월 7일)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외가에서 태어났다. 남산학교를 졸업하고 14세 때 세 살 연상인 홍실단(원명은 홍상일)과 결혼했으며 상급 학교로 진학하지 못하고 3년간 농사일을 거들었다.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1917년 오산학교 중학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은사인 김억을 만나 시를 쓰게 되었다. 오산학교를 다니던 1919년 3월 3·1운동이 일어나자 동급생들과 함께 만세 운동에 참여해 학업을 중단하게 되고 오산학교도 임시 폐교되었다.1920년 스승인 김억의 주선으로 ≪창조≫에 <낭인의 봄> 등의 시를 소월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이때 발표한 작품은 <낭인(浪人)의 봄>, <야(夜)의 우적(雨滴)>, <오과(午過)의 읍(泣)>, <그리워>, <춘강(春崗)> 등 다섯 편이고 그 후 ≪학생계≫,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했으나 소월은 이 초기의 작품들을 시집에 수록하지 않았다. 소월은 오산학교에 이어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서울로 이주해 1922년 4월에 배재고등보통학교 4학년으로 편입했다. 1923년 3월에 배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상과대학 예과에 입학했으나 학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이 있고 9월 간토대지진이 일어나자 10월에 고향 정주로 돌아왔다. 1924년에 김동인, 이광수, 김억, 주요한, 김찬영, 전영택, 오천석 등과 함께 ≪영대≫의 동인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12월 26일 자로 시집 ≪진달래꽃≫을 간행했다. ≪진달래꽃≫은 상당히 판매가 되었는지 발행처는 같은 매문사로 되어 있지만 총판이 ‘중앙서림’으로 되어 있는 것과 ‘한성도서주식회사’로 되어 있는 것의 두 판본이 유통되었고 그 원본이 각기 현재 전해지고 있다.1924년 이후에는 그의 처가가 있는 평안북도 구성군 남시로 이주해 생활했으며 1926년 8월부터 동아일보 지국 일을 맡아 본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 1년에 한두 편씩 작품을 발표했고 1932년과 1933년에는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다. 1934년에 다시 몇 편의 시를 발표했으나 그의 생활은 극도로 피폐해졌던 것 같다. 지국 경영은 일찍이 작파해 남에게 넘겼고 시대와 자신의 삶에 대한 울분이 겹쳐 거의 매일 술을 마셨으며 아내에게 살아 봐야 낙이 없으니 같이 죽자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1934년 12월 23일 밤에도 술에 취해 잠이 들었는데 새벽에 남편이 괴로워하는 소리를 잠결에 듣고 불을 켜 보니 아편 덩어리를 입가에 흘린 채 죽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소월의 사망 일자를 1934년 12월 24일 아침으로 보고 있다.소월의 사망이 알려지자 12월 30일 자로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에 사망 관련 기사가 실리고 1935년 1월에 서울 종로 백합원에서 소월 추모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서 김억은 소월에 대한 추모사를 낭독하고 그것을 ≪조선중앙일보≫(1935. 1. 22~26)에 <요절한 박행의 시인 김소월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1939년 12월 김억이 소월의 시를 선정하고 다시 편찬해 박문출판사에서 ≪소월시초≫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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