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완치를 목표로 재배치되는 일상 속에서도 암 경험자가 누려야 할 존엄과 자유는 무엇인지 치열하게 탐구한 기록이다. 30대 중반 급성골수성백혈병을 진단받은 저자 김도미는 당사자를 지나치게 통제하고, 죄책감을 강요하는 암 치유 문화를 비판하며 “몸에 대한 윤리는 나를 잘 돌보는 데에도 있지만 나를 즐겁게 하는 데에도 있다”라고 역설한다.약 3명 중 1명이 암을 경험한다. 암 경험자가 많은 만큼, 세상에는 ‘암 극복 서사’가 넘쳐난다. 이제 조금 불온한 질병 서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불만 많은 암 경험자’ 김도미의 모험기는 완치만큼이나 존엄한 삶이 중요한 암 경험 당사자들에게도, 어떻게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분명 자유를 줄 것이다. “이 모험에 당신을 기쁜 마음으로 초대한다.”나의 쾌유를 위해 주변 사람들이 건넨 말들은 안타깝게도 잘 와닿지 않았다. 이런 격려사들은 미디어에 등장하는 ‘암 극복자’의 문법을 따랐다. 치료 중 응급 상황이 생기거나, 암이 재발할 가능성은 늘 있기에 사람들은 암환자에게 통제적이거나 지나친 수준의 성찰과 자기돌봄을 요구했다.「시한폭탄이라 말하는 일상에 대하여」 중에서
나는 여전히 내게 말을 건네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을 믿는다. 어설픈 디자인의 총천연색 사탕 껍질 같은 것에 들어 있기는 하지만, 포장지 속에 귀중하게 싸 들고 온 당신의 우정을 믿는다. 그리고 그런 믿음이 당신과 나의 대화를 가능하게 할 거라고도 믿는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말이다.「환자 역할의 고단함」 중에서
이런 몸으로 낭만적 사랑을 하고 싶다는, 혹은 누군가와 입 맞추고 어루만지고 싶다는 욕망 또한 단순히 파트너가 없어서 하는 우는 소리만은 아닐 것이다. 상처도 기쁨도 쾌락도 기꺼이 누리고 싶다. 때로는 서로를 오염시키고 오염당하면서, 불결하고 불경하게.「불결하고 불경한 몸」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도미
함백산 아래에서 자라 이제는 북한산 아래에 살고 있는 암 경험자. 상경 후 대학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는 바람에 사적인 불만에 공적인 이름을 붙이는 법을 배우고 말았다. 가부장제, 여성혐오, 자본, 계급, 정상성 같은 딱딱한 말에서 출발해 나의 혼란을 설명하는 말을 찾아갔다. 학생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그들과 함께하는 대신 근처를 기웃거렸다. 활동가의 일이란 내 깜냥에 가당치 않은 일이라 생각했다.전공과는 다소 무관한 일을 잠시 하다 퇴사하고, 신규 핵발전소 건설 후보지 중 한 곳이었던 지역에 머무르며 반대 운동을 하던 주민들에게 필요한 실무를 조력했다. 이를 계기로 활동가로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됐다. 평소 관심 있었던 여성인권단체의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비슷한 성격의 민간위탁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다.활동을 계속할지, 공부를 시작할지 고민하며 몇 달간 휴식기를 보내던 중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진단 3일째가 되던 2022년 6월 6일 입원 치료를 시작했다. 사회학을 접하고, 반성폭력 활동을 했던 이력이 암환자를 향한 통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친구들의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는 동안, 나의 이야기가 소위 ‘암 투병기’라고 부르는 글들에 대한 대항담론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2022년 12월 30일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았다. 아픈 몸이 된 이후로 먹고사는 문제의 무거움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