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문장을 번역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숨결을 옮겼다”
『이방인』 오역을 지적했던 이정서, 『페스트』 새로운 번역으로 돌아오다10년 전 『이방인』의 오역을 지적하며 화제를 모았던 번역가 이정서가 이번에는 알베르 카뮈의 또 다른 대표작, 『페스트』의 새로운 번역을 들고 돌아왔다. 이번 번역은 단순한 개정판이 아닌, 문장 구조의 철저한 복원과 번역 철학의 실천을 담은 완역본으로, 기존 번역과 확연히 구분되는 독창성을 지닌다.
이번 『페스트』는 이미 2023년 하드커버로 출간된 『역병』의 개정 완역판이다. 제목은 『페스트』로 바뀌었지만, 단순한 표지 교체가 아닌 전면적인 번역 수정과 문장 개편을 거친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다. 특히 이정서 번역가는 이번 작업에서 원문 문장의 구조와 리듬, 문장 부호까지 살려내는 ‘구문 직역’의 방식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이정서는 『페스트』를 단순한 감염병 소설이 아닌, “문장을 통해 실존 윤리와 인간 연대의 의미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해석한다. 『이방인』이 뫼르소의 행동을 통해 ‘부조리’를 보여주었다면, 『페스트』는 리외의 문장을 통해 ‘윤리’를 말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이번 번역의 또 하나의 특징은 ‘La Peste’, ‘peste’, ‘l’pidmie’의 구분이다. 이정서 번역가는 각각을 ‘역병’, ‘전염병’, ‘돌림병’으로 철저히 구분하여 번역했다. 이는 단어의 반복 속에 숨은 카뮈의 의도를 살려내기 위한 것으로, 기존 번역이 놓친 미묘한 의미의 변화를 정확히 짚어낸다.
그는 이번 번역서의 머리말에서 “이제는 누구도 『이방인』을 어렵다고 말하지 않듯, 『페스트』 또한 마찬가지”일 거라며, 소설이 어렵게 느껴졌던 것은 작품이 아니라 번역의 문제였음을 강조한다. 이는 앞서 그가 『이방인』에서 ‘maman’과 ‘mre’를 구분 번역했듯, 『페스트』에서도 언어의 층위와 정서를 살리는 데 집중했음을 보여준다.
출간에 맞춰 이정서 번역가는 루카치의 말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 반드시 가야만 하고, 갈 수 있는 길의 지도가 되고, 어두운 밤길의 작은 별 하나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보다 기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방인』에서 시작된 번역가의 항해, 이제 『페스트』에서 별빛처럼 다시 빛난다『페스트』는 1947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곧바로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으로, 이후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소설이다. 그러나 프랑스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이 소설이 현실의 레지스탕스와는 상징적 거리감을 지닌다고 비판했으며, 이에 대해 카뮈는 “『페스트』는 단지 1940~45년에 국한된 알레고리가 아니다”라고 직접 반박한 바 있다.
새움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이번 『페스트』는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번역의 윤리를 실천한 한 번역가의 문학적 여정이자, 번역을 통한 철학적 독해의 모범 사례로서 독자들에게 다시금 읽히기를 기대한다.
편집자의 말 _ “카뮈의 인물들을 따라 함께 걷고, 생각하고, 질문한다”지금까지는 카뮈의 책을 읽으려면 “이번에는 끝까지 한번 읽어봐야지, 도전해 봐야지” 하는 결심 같은 것이 전제되었다. 어렵다는 선입견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서 번역가의 『이방인』이나 『페스트』는 그런 결심이 전혀 필요 없다. 몰입할 시간과 공간만 있으면 된다. 다만 조금 진지할 필요는 있다. 그래야 카뮈의 인물들을 따라 함께 걷고, 생각하고,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페스트』는 전염병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전염병은 단지 하나의 소재일 뿐이다. 이 소설에서 카뮈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이다. 페스트(역병)가 창궐하는 도시에 갇힌 인간들의 다양한 면면, 인류애, 인간 위에 군림하는 법과 제도, 온갖 모순(카뮈는 이를 ‘페스트’라고 본다)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지식인의 고통 등을 다루며,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한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이정서 번역가는 원작의 문장 구조 그대로, 쉼표 마침표까지 살려내는 것을 중시한다. 왜 그럴까. 읽다 보면 안다. 작가와 함께 걷고, 쉬고, 멈추고, 한탄하다 보면, 작가의 숨결과 깊은 속내가 우리에게 더욱 육박해 온다.
또한 직역은 딱딱하고 거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시라. 분명히 “이런 복잡한 구조의 문장을, 어떻게 이렇게 유려하고 아름답게 번역해낼 수 있을까” 밑줄 긋고 싶어지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날인 4월 18일 아침, 역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오던 의사는 더욱 핼쑥해진 미셸 씨를 발견했다. 지하실에서 다락방까지, 열댓 마리의 쥐들이 계단에 널브러져 있었던 것이다. 이웃집들의 쓰레기통은 그것으로 가득 찼다. 의사의 어머니는 놀라지 않고 그 뉴스를 받아들였다.
“이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다.”
그녀는 검고 부드러운 눈에, 은발의 작은 여인이었다.
“너를 다시 만나니 행복하구나, 베르나르, 쥐들 따위가 이걸 방해할 수야 없지.”
그는 동의했는데, 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모든 게 쉽게 여겨지는 게 사실이었다.
《서른다섯 살쯤으로 보인다. 평균 키. 벌어진 어깨. 거의 사각형의 얼굴. 짙고, 곧은 눈이지만 턱이 돌출되어 나왔다. 견고한 코는 균형이 잡혔다. 검은 머리칼은 아주 짧게 잘렸다. 입은 거의 언제나 다물어져 있는 두툼한 입술과 함께 아치를 이룬다. 그을린 피부, 검은 머리칼과 항상 어두운 색이지만 잘 어울리는 양복이 얼마간 시칠리아 농부를 연상시킨다.
그는 빠르게 걷는다. 보폭을 바꾸지 않고 보도로 내려서지만, 세 번에 두 번꼴로 가볍게 뛰어올라 반대편 보도에 오른다. 그는 운전하는 동안 딴 데 정신이 팔려서 코너를 돈 후에도 종종 방향등을 그대로 남겨둔 채 달리곤 한다. 언제나 맨머리다. 견문이 넓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