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이명재의 시편 전반에 펼쳐진 세상은 시인을 둘러싼 저만의 특별한 시간과 그만의 현실이 빚어낸 활력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매우 예민한, 익숙하나 전혀 낯선 또 다른 세상이 겹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으레 그렇듯 제게 주어진 일상이 빚어내는 다양한 소리의 출렁임에 시인은 쉽게 흔들리기도 하나 결코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꿋꿋함마저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을 둘러싼 만만하지 않은 현실은 끊임없이 시인을 포위하고 있어 자주 내면의 자아를 의심의 눈초리로 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렇다. 누구에게든 하루하루의 일과는 대체로 새로운 듯 해도 지난 시간과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결코 새로울 수 없을 것이라 짐작된다.
출판사 리뷰
이명재의 시편 전반에 펼쳐진 세상은 시인을 둘러싼 저만의 특별한 시간과 그만의 현실이 빚어낸 활력으로 가득하다. 때로는 매우 예민한, 익숙하나 전혀 낯선 또 다른 세상이 겹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으레 그렇듯 제게 주어진 일상이 빚어내는 다양한 소리의 출렁임에 시인은 쉽게 흔들리기도 하나 결코 제 자리를 벗어나지 않는 꿋꿋함마저 확인하게 하는 것이다. 시인을 둘러싼 만만하지 않은 현실은 끊임없이 시인을 포위하고 있어 자주 내면의 자아를 의심의 눈초리로 돌아볼 수밖에 없다는 것도 그렇다. 누구에게든 하루하루의 일과는 대체로 새로운 듯 해도 지난 시간과 이어져 있다는 점에서 결코 새로울 수 없을 것이라 짐작된다.
눈 익은 골목길이 갑자기 좁아 들 때 있어요. 집집 사이로 꺾여 120든 담벼락들이 좁은 미로를 지나는 자동차를 쿵쿵 들이칠 것 같아요. 어제는 안 그랬는데 들어올 때도 안 그랬는데 나가는 골목이 나를 압박해 와요. 나는 살얼음 미끄러지듯 핸들을 꽉 틀어쥐죠. 흠칫 브레이크를 잡죠.그럴 때면 오늘처럼 짙은 안개 속으로 떠난 엄마가 손을 흔들어요. 미세먼지를 머금은 물방울들이 아버지의 눈빛으로 하늘에 젖어 있어요, 집에 들면 출타한 아내가 저녁 땅거미로 스러질 것 같고요. 거실에는 차갑게 식은 보일러가 윙윙 머릿속을 울려요. 산등성이 출렁다리 위에서 어쩌지 못하고 멈칫대던 가슴, 현기증이 달려와 휘이이 천길 바람으로 쏟아지는 아득함, 풀린 다리를 추스르지 못해 주저앉을 때 있어요. 의지를 벗어난 일상들이 캄캄 담벽처럼 조여들 때 있어요.
― 「그럴 때」 전문
시인을 에워싼 현실은 늘 생동적이다. 무언가 끊임없이 솟구치거나 흘러넘친다. 주변의 요소들 역시 그렇다. 늘 꿈틀거리며 매 순간 시인을 욱죄이거나 풀어놓거나 한순간 내동댕이치기까지 한다. 미처 대응할 수 없는, 그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 듯 시인은 일방적으로 가차 없이 내몰리거나 때론 준비 없이 순간순간 이리저리 마구 이끌리기 다반사이다. 그것은 시인의 의지가 전혀 아니다. 스스로 솟구치고 싶은 강한 의지도 아니다.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이 순전히 타의에 의해 일방적으로 발의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눈 익은 골목길이 갑자기 좁아 들 때 있어요./ 집집 사이로 꺾여 든 담벼락들이 좁은 미로를 지나는 자동차를 쿵쿵 들이칠 것 같아요. 어제는 안 그랬는데 들어올 때도 안 그랬는데 나가는 골목이 나를 압박해 와요. 나는 살얼음 미끄러지듯 핸들을 꽉 틀어쥐죠. 흠칫 브레이크를 잡죠.’(「그럴 때)」의 세계에서 시인의 의식에 내재한 무의식과 익숙한 기억이 혼재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보름달의 둥근 지구 마당귀엔
소리들이 모여 산다
빨강 소리
하양 소리
서로 빛 섞은 분홍 소리
주황 소리 산다
속살 물소리로 우러난 연둣빛 줄기
초록 숲으로 무성한 잎
같은 소리로 자라오르다 문득
여름빛 짙어 오면 소리들은
각기 빛 다른 꽃잎을 펼친다
서로 옷자락 나눠 홀소리 우거지고
서로 팔다리 부딪혀 닿소리 엉키고
둥그런 이 땅의 마당귀에 울려 퍼지는
홀소리와 닿소리의 채워짐
저기, 무더기무더기 빛 다르게 펼쳐진
저 수많은 봉숭아 꽃잎
― 「다문화」 전문
시인의 시선은 자신이 속한, 자신이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할 뿐 아니라, 그 속을 꽉꽉 채운, 그 안에 펼쳐진 파노라마의 다양한 삶의 군상에 확장하고 있다는 것을 위의 시는 보여주고 있다. 오직 먹고 살기 위해서 이동할 수밖에 없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 그들은 자기네들의 처지보다 훨씬 나은 나라로 이동하면서 일감을 구하고, 그 대가로 먹고 살 뿐만 아니라, 저축을 통해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이제는 전혀 새롭지 않으나, 그들은 온 힘을 다해서 먹을 것을 구하고 한편으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온갖 위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똥이 묻었다
나이 더할수록 세월은 닳고 닳아
화장지도 얇아졌다
세 겹 네 겹 배춧잎처럼 두툼하던 두루마리들이
두 겹 한 겹 상춧잎이 되었다
똥 냄새 웅웅거리던 어릴 적 배설의 어둠은
문득 뽀얀 샘물로 엉덩이를 씻었다
세상은 날마다 달마다 풍요로웠지만
계절이 낯빛 바꿀 때마다 궁색해지는 가슴
해가 저물 때마다
겨울 잎처럼 휘날리는 부끄럼의 손때
내 어머니와 아버지
주름주름 얼굴 손 낡아갈 때마다
불빛 낮추고 씀씀이 낮춰가던 세월처럼
기어이 내 화장지도 얇아졌다
똥 찌꺼기가 손바닥과 화장지 사이에서
팽팽하게 마주 서는 순간
다시 접어 당기던 손가락에
똥이 묻었다
때 절은 손에 똥 때가 얹어졌다
― 「뒤를 본다·2」 전문
매우 직설적인 화법을 통해 시편 전편에 펼쳐내는‘똥’ 이야기는 이명재 시인만의, 이명재 시인에게 내재한 가장 자신 있는 설득력을 과하지 않게 펼쳐내는 힘이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뻔한‘똥’의 실체를 카타르시스화하는 동시에 ‘똥’이라는 대상을 시편 전편을 통해 재치 있는 만담가처럼 여기게 하는 것이다. 시인만의 표현을 통해 직접적이면서도 그만의 독특한 화법으로서의 개성적 기능을 갖는다고 하겠다. 삶의 현장에서 가장 확실한 근거로 뒷받침되는 그 어떤 강력한 에너지를 장착한 것처럼 지금 바로 쓸모 있는 기능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접근하기 어렵지 않으면서 뒤틀고 비틀지 않으면서 구차하지 않은 능동의 시적 언어의 배열을 통해 그 이면의 당연하고도 뻔한 의미를 달리 여기게 해주는 동시에 생동의 리듬까지 만나게 하는 것이다.
멀리 풀벌레 운다
풀벌레 운다
아니, 웃고 있다
밤새워 푸른 목청의 날을 가는 풀벌레들이
내 무딘 언어를 비웃으며
밤새워 운다
잠시도 조용히 울지 않는다
잠시도 쉬지 않고 웃는다
울며 웃는 풀벌레는
내가 잠들 때를 기다린다
풀벌레가 울지 않는다
웃지 않는다
내가
잠들었기 때문이다
―「권태 ․ 3」 전문
이명재 시인의 시편들은 너무나 많은 소리로 넘쳐난다. 그것은 그가 속한 삶의 조건과 환경 그리고 시인이 가진 적극적인 삶의 의지가 작동한 탓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어떤 모난 현실과 끊임없이 교차하고 있는 현실의 다양한 빛과 그림자가 주는 조용하거나 강한 메시지를 외면하지 못하는 생래적 능동성이 작동한 탓일 거라고 짐작한다. 그저 그렇게 그저 그냥 대충 보아 넘길 수 없는 시인만의 삶의 결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든 제게 닥친 삶의 환경적 조건이 우선하여 절대적으로 그 주변에 기대어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게 다는 아니다. 각자가 처한 상황과 경우에 맞게 또는 그와 상응하는 또 다른 삶의 조건과 환경을 교차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순서를 조정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조금씩 또는 확실하게 다른 환경을 적극적으로 만들거나 순응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각각 처한 환경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기준을 충족시키거나 만족하게 하지는 않는다. 이명재 시인이 만난 세계는 그가 가진 남다른 감수성과 세계관이 작동하면서 생생한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그만의 것으로 만들어 내었음을 보았다. 한편으로 소외된, 그 어떤 병리 현상을 따뜻하게 껴안으며 생성의 기운으로 이끌고 있음도 진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명재
•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및 『문학마당』신인상으로 등단.• 한국작가회의회원/ 충남작가회의 부회장, 충남시인협회원, 예산시인협회장, 예산문협부회장.• 시집『똥집대로 산다』, 수필집『속 터지는 충청말』(전2권), 번역 『어린 왕자』 충청사투리편, 산문집『충청도말 이야기』,『사투리로 읽어보는 충청문화』(공저), 방언사전『충청남도 예산말 사전』(전4권) 외.[수상 경력] • 한글학회장/ 교육부장관 표창.• 2015년 한국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수혜.• 충남문화관광재단 문학창작기금 (3회) 수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홀소리와 닿소리
소나기_13/ 가로등_14/ 빗소리_16/ 서툰 휘파람은_18/ 노을_20/ 비 오는 날_22/ 디스크_24/ 민들레_26/ 다문화_28/ 오래된 받침을 떼어내다_30/ 파랑_32/ 어른 수업_34/ 가을밤_36/ 기미_38
제2부 어머어머 큰 산
그럴 때_43/ 천리마_44/ 대마도 노을_46/ 첫눈_48/ 벚나무 다리밋자루_50/ 가짜 뉴스_52/ 피싱 보이스_54/ 개구리알_56/ 의처증_58/ 등이 아픈 날의 바퀴벌레_60/ 엄마 생각_62/ 어머어머 큰 산_64/
제3부 뒤를 본다
뒤를 본다 ․ 1_67/ 뒤를 본다 ․ 2_68/ 뒤를 본다 ․ 3_70/ 뒤를 본다 ․ 4_72/ 뒤를 본다 ․ 5_74/ 뒤를 본다 ․ 6_75/ 뒤를 본다 ․ 7_76/ 뒤를 본다 ․ 8_78/ 뒤를 본다 ․ 9_79/ 뒤를 본다 ․ 10_80/ 뒤를 본다 ․ 11_82/ 뒤를 본다 ․ 12_84/ 뒤를 본다 ․ 13_86/ 뒤를 본다 ․ 14_88/ 뒤를 본다 ․ 15_89/ 뒤를 본다 ․ 16_90/
제4부 탄금대
11월_93/ 입춘_94/ 탄금대_96/ 오랜 사람을 만나러 갈 땐_98/ 겨울 냉이_100/ 빈집_102/ 스쿨존_104/ 만남은_106/ 가끔_107/ 꽃차_108/ 봉지 커피_110/ 권태·1_111/ 권태·2_112/ 권태·3_114/ 권태·4_115/ 권태·5_116/
작품해설 | 박해림
흘러내리거나 가득하거나 출렁이거나_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