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어린 시절, 마루 밑에 몸을 숨긴 소녀가 있다. 문자 엄마라는 이웃 아주머니의 괄괄한 목소리에 심장이 요동치고, ‘나는 이 집의 진짜 딸일까’ 하는 의구심으로 몸이 오그라든다. 선수원의 수필은 이 상실과 결핍에서 태동된다. 따라서 『소화다리 아래 춤추는 노을』은 상실과 불안을 거쳐, 다시 삶의 감각을 회복해나가는 여정이다.며칠 전 읍내에 있는 일본식 점방들 사이에 유독 눈에 띄는 붉은 벽돌 건물인 금융조합을 둘러보고 소화다리를 향해 발길을 돌렸다.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고 십일 월 바람이 찼다.
소화다리 가까이 갔을 때, 엄청난 크기의 둥실한 석양이 산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얼어붙듯 멈춰 서서 장엄한 해넘이에 빠져들었다. 내 눈이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경외라 할까, 숭고라 할까. 잠시 눈을 감고 기도하듯 서 있었다. 몸 속으로 꽉 들어찬 알 수 없는 파동으로 나는 혼미했다. 이윽고 눈을 떴을 때, 해는 넘어가고 소화다리 아래 물길에 붉은 노을빛이 어리었다.
극도로 참혹했던 양민 학살의 현장이다. 소설 속에선 처절한 핏빛 장면으로 그려졌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출렁이는 물결 위로 어리는 노을은 그대로 참혹의 빛깔이며 서러움의 빛깔이다. 그래서일까. 소화다리 아래 노을은 유독 붉다. 차마 떠나보낼 수 없는 과거, 아픈 역사가 서려있는 이 다리에 서면, 솔바람과 대숲 바람과 갈대 바람이 뒤섞이며 하염없이 흐느낀다. 저만치 갯벌에 내려와 길게 누운 붉은 노을이 춤을 춘다. 투명한 소맷자락 휘저으며 바다로 바다로 빛길따라 떠나가는 혼이런가, 어느 무당의 살풀이런가.
작가 소개
지은이 : 선수원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하였고 덕성여대 국어국문학 전공했으며 1980년부터 16년 간 중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였다. 갱년기를 넘고 있을 무렵, 차(茶)를 만났고, 이후 우리 차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연구를 계속하며 한국차문화협회 이사를 역임, 현재는 한국차문화협회 전문사범으로 활동 중이다.2014년 느닷없이 전남 보성군 벌교의 전원주택으로 이주하면서, 자연과의 교감에 힘입어 글쓰기를 시작했다.2021년 격월간 『에세이스트』 100호에 「어린 날의 슬픈 방황」으로 등단하여 2024년 『에세이스트』 113호에 문제작가 신작특집을 하면서 중견작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