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영국헌정사: 인민주의 비판을 위하여(Ⅱ)”의 서문에서
진리는 우리가 관철해내는 그만큼만 관철된다. 이성의 승리는 이성적 인간의 승리일 따름이기 때문이다.(…)단 한 사람이라도 떨쳐 일어나 아니오라고 외친다면, 그만큼 이긴 것이다!
― 브레히트, 『갈릴레이의 생애』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선포에 경악하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나이 탓에 초저녁잠이 많아졌는데, 그날따라 9시 뉴스와 『모래시계』 재방송도 못 보고 일찍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보니 지난밤에 계엄이 선포되었다가 해제되었다는 기막힌 뉴스가 인터넷에 떠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30년에 걸친 과천연구실의 작업에 대해 반성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1970-80년대는 전후 남한에서 ‘이념의 인간’이 부활한 ‘지식인의 시대’였는데, 이념의 인간으로서 지식인의 대표자는 물론 박현채 선생이셨다. 또 선생의 최대의 업적은 한국사회성격 논쟁에서 안병직 교수를 논파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1989-91년에 현실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지식인의 시대가 ‘불량배의 시대’로 이행하고 이념의 인간을 ‘욕망의 인간’ 내지 ‘정념의 인간’이 대체하기 시작했다. 물론 ‘의도의 인간’도 존재했는데, 다만 욕망의 인간과 정념의 인간에게 대항하기보다 오히려 부화뇌동하는 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과천연구실과 사회진보연대가 고고하게 이념의 인간으로서 지식인의 계승을 표방했던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 이어 노무현 정부와 급기야 ‘문재명 정부’가 출현하자 불량배가 지식인을 압도하는 인민주의로서 프로토파시즘이 대두했다. 동시에 민노총과 민노당/정의당을 비롯한 사이비 운동권이 ‘문재명 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 내지 ‘동지적 비판’을 고집하자 사회진보연대조차 과천연구실에 대해 거리를 두는 중이다.
물론 불량배도 지식인이라고 강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출세와 투기’만이 목적인 욕망의 인간과 ‘분노와 복수’만이 목적인 정념의 인간은 사이비 지식인일 따름이다. 주로 인문계 내지 문예계 지식인인 의도의 인간도 레닌의 비판처럼 ‘이론경제학과 역사과학’, 나아가 ‘일상생활의 리얼리티’에 무지하므로 사이비 지식인은 아니더라도 ‘쓸모가 있는 바보’(useful fool)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반면 진정한 지식인인 이념의 인간은 강령을 중시하는데, 그것은 정책과 제도, 1980년대식으로 말하자면, 운동과 체제로 실행된다. 또 강령의 실행가능성을 검증하는 이론을 중시하는데, 철학자의 ‘선험적 합리성’(rationality) 대신 ‘증거’(evidence)에 의해 지지되는 과학자의 ‘경험적 합리성’(reasonableness)을 견지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불량배의 시대에 맞서려면 알튀세르가 주창한 ‘마르크스주의의 전화 내지 일반화’를 넘어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을 더욱 심화시켜야 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내부에도 인민주의적 요소가 상존하기 때문인데, 발리바르가 지적한 것처럼,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비롯된 ‘내전적 정치관’이 『자본』에서도 ‘수탈자의 수탈’이라는 형태의 ‘종교전쟁적 정치관’으로 잔존한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만으로 히틀러주의나 스탈린주의 같은 전체주의에 대항할 수 없었던 것은 이들 삼자가 자코뱅주의라는 뿌리를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혁명기 자코뱅의 공포정치에 대한 퓌레의 자유주의적 비판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인데, 말년의 알튀세르와 달리 발리바르는 자코뱅주의와 전체주의의 위험을 간과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 내부의 인민주의적 요소에 대한 그의 비판이 불충분한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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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출판한 『자유주의의 역사: 인민주의 비판을 위하여』와 그 후속작인 『영국헌정사: 인민주의 비판을 위하여 (II)』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을 심화하기 위해 새삼 자유주의의 표준으로서 영국에 주목하려는 시도이다. 다만 전자가 이념(행위의 규범)으로서 자유주의라는 측면을 강조한다면, 후자는 제도(행위의 규칙)로서 자유주의와 그런 이념과 제도를 내재화한 자유주의적 행위자라는 측면을 강조한다는 것이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자유주의의 역사』의 부록인 「대선 불복 ‘20년동란’」과 그에 후속하는 『영국헌정사』의 부록인 「내전의 진화과정으로서 ‘대선 불복 20년동란’」은 프로토파시즘으로서 인민주의와의 투쟁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기대가 ‘지나친, 심지어 잘못된 희망’(ubertriebene, ja falsche Hoffnungen)이었음을 자인하는 자기비판인 셈이다. 이 말은 『역사소설』(1937) 「독어판 서문」(1954)에서 루카치가 독일과 스페인의 반파시즘 투쟁에 대한 기대를 자기비판하면서 사용했던 표현을 원용한 것임을 밝혀둔다. (…이하 생략…)
2025년 7월
작가 소개
지은이 : 윤소영
1954년 서울에서 출생1973-77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수학1986년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학위 취득1984-2019년 한신대학교 국제경제학과에 재직 1980년대 운동권 민중 민주(PD)계열의 이론적 기초가 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독점강화 종속심화 테제)”을 주창하며 그 기초를 세웠다. 1990년대에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의 마르크스주의 재구성 작업을 소개하는 데 주력했고, 2000년대에는 자신의 작업을 ‘마르크스주의의 일반화’라는 개념으로 정의하면서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4년 6월부터 과천연구실이라는 연구소를 설립, 다양한 연구 결과를 책으로 펼치고 있다.
지은이 : 김태훈
1984년 대구에서 출생2002-09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수학2009-21년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2024년부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전공의
지은이 : 송인주
1974년 부산에서 출생1992-96년 KAIST 생명과학과에서 수학2013년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박사학위 취득
지은이 : 이태훈
1974년 부산에서 출생1992-2003년 서울대학교 수학과에서 수학2007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
지은이 : 유주형
1977년 서울에서 출생1996-2002년 서울대학교 법학부에서 수학2002-18년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2014-17년 민주노총 정책실/기획실에서 활동2024년 서울대학교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
지은이 : 박상현
1970년 부산에서 출생1990-95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수학2009년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박사학위 취득2013년부터 부경대학교 국제지역학부에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