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 《포브스》 선정 뇌과학 필독서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추천
★★★ 뇌과학 전문가 박문호 박사 추천
★★★ 스티븐 핑커, 게리 마커스가 주목한 책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탄생 이전부터 지금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한 권으로 읽는 무한한 내면 세계의 지형도
지구상에는 여러 국가가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국제 사회의 승인을 받은 국가의 수는 약 200곳으로 추정된다. 지형과 기후 등 자연 환경을 비롯하여 나라의 주축이 되는 통치 체제와 이념, 이에 따라 여러 갈래로 나뉘는 문화와 집단, 민족 등의 인문 환경까지를 고려한다면 한 국가 안에서도 다양한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초점을 개인의 차원으로 옮기면, 외형은 물론 내면에도 ‘닮음’은 있을지언정 완벽한 ‘동일함’은 없음을 다시금 깨달을 것이다. 이는 레시피가 같다고 해서 똑같은 케이크를 연달아 구울 수 없다는 사실과 같다.
이처럼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에서는 복잡한 우리 내면 세계의 지형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전반부에서는 인간의 본성과 유전 연구의 기본 방법론, 뇌의 구조 및 기능 발달에 관한 신경과학적 기초와 환경 및 경험, 그리고 뇌 가소성을 다룬다. 이를 바탕으로 성격 특성과 지각, 지능, 성별과 신경 발달 질환이라는 구체적인 영역을 주제로 한 후반부로 진입한다. 이들 주제는 우리 뇌의 성장과 발달에 오랜 논쟁을 유발해 온 본성과 양육의 영역 가운데 무엇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가를 중심으로 논의한다. 그리고 논의를 마무리하는 단계에서는 현대 유전학의 성과가 인간 사회에 남기는 윤리적, 철학적 함의를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는 우리의 정체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며, 어느 지점에 서 있는가를 밝히는 안내서이다. 이처럼 현대까지 줄기차게 지속되어 온 본성과 양육의 논쟁은 공산주의와 우생학의 출현을 낳는 등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도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과학계에 유의미한 족적을 남긴 연구 결과가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 유전학이 본성에 무게를 실어 주기 시작하면서 유전자만이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에 저자는 유전자가 현재의 모습을 만드는 데 일조하지만, 우리의 미래까지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이 책에서는 유전자를 넘어 서로 다른 형질을 타고나 각자의 환경에서 자라 온 다양한 형태의 본성들을 수용하고 맞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모든 사람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가?
유전과 환경 사이에서 흔들리는 존재를 바라보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의 궤적을 다시 보다
확률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발달의 세계,
무한을 향해 뻗어 나간 가능성 끝에서 찾은
단 하나의 확실한 결론
■ 고르디우스의 매듭
‘고르디우스의 매듭’은 그리스 신화에서 고르디우스 왕의 우마차를 신전 기둥에 묶은 복잡한 매듭으로, 칼로 매듭을 끊어 문제를 해결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일화와 관련된다. 이는 발상의 전환으로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는 상황을 뜻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상징한다. 본성과 양육 논쟁 역시 그러한 문제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주제는 플라톤의 관념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재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근대기에는 ‘빈 서판’ 개념을 앞세운 존 로크의 경험주의와 데카르트를 필두로 경험 이전의 지식을 토대로 한 합리주의가 서로 맞서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식론의 차원에서 생득관념과 습득관념의 대립은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난제라 할 수 있다. 현대에 들어서도 여러 연구자의 주장이 이어지고는 있지만, 확실한 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은 듯하다.
본성과 양육 가운데 후자의 측면을 강조하던 행동주의는 가시적인 행동에만 집중해 왔다. 그 탓에 내면에서 일어나는 과정은 간과하면서 여러 한계가 드러나고 말았다. 이후 인지혁명을 계기로 내면의 인지 과정도 주목받기 시작했고, 유전학의 발전으로 본성의 영향력이 재조명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본성을 향한 열광의 흔적은 우생학이라는 세계사의 오점으로 남았다. 우생학은 백인 중심의 인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되어 피차별 인종의 인권을 탄압하고, ‘인종 청소’를 명분으로 한 대량 학살도 서슴지 않았다. 이처럼 극단으로 치달아 온 두 매듭은 서로가 얽히고설켜 도저히 풀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에서는 현대 과학에서 채택한 바와 같이 본성과 양육의 이분법을 넘어선 상호작용적 관점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유전자가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통념과 달리 뇌의 발달과 형성에 환경의 영향이 완전히 무의미하지는 않다는 의미다. 공격적인 성향의 아이라도 교육을 통해 공격성을 억제할 수 있듯,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요인에 양육의 비중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는 무엇을 타고나는가》에서는 유전자가 우리의 수많은 잠재적 형질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의 운명까지 확정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이에 저자는 이상과 같이 편견이 불러온 오해를 종식하기 위해 스스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처럼 칼을 빼 들기를 결단한다.
■ 확률과 확정의 틈새
2010년대에 미국 연구팀에서는 특정 유전자 변이와 범죄와의 연관성을 제시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한국에서는 청소년 범죄와 유전자 간 연관성에 관한 연구 계획이 시민단체의 큰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의 형질에 일대일로 대응하는 단일 유전자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육안으로 보이는 단일한 형질이 유전적이라도, 이를 담당하는 유전자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형질과 유전자는 일명 ‘범죄 유전자’나 ‘지능 유전자’, ‘외향성 유전자’처럼 고정된 개념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 특성이 유전된다는 사실은 단지 그 특성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변이의 존재를 뜻할 뿐이다. 유전적 영향은 대부분 매우 간접적인 방식으로 작용하며, 자연 선택은 최종적으로 드러난 표현형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특정 변이가 특정 형질을 담당하는 유전자로 취급되는 것이다. 반면 심리적 기능은 유전자가 아닌 신경계가 수행하며, 유전자는 신경계를 구축하는 역할만 수행한다. 뇌 기능에서 나타나는 여러 변이는 대부분 신경계의 발달 방식에서 비롯되며, 발달 과정에서 유전적 변이 및 세포 과정에서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잡음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점에서 하나의 형질을 100% 담당하는 단일 유전자는 없다.
약 82억 명이 모여 사는 지구 위에서 자신과 완전히 동일한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물며 ‘자연적 복제인간’이라 일컬어지는 일란성 쌍둥이조차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한 사람을 수백 번이나 복제하더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마치 한 요리사가 같은 레시피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다. 주방에는 재료나 조리 도구의 상태부터 날씨, 수질, 기후 등에 이르는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에 결과물은 완벽히 같을 수 없다. 이와 같이 우리는 뇌의 발달 과정에서 신경망의 형성과 배선 방식에 따라 서로 다른 존재로 거듭난다. 그 과정은 지극히 확률적이며 무작위적으로 이루어진다. 양자역학의 세계에서 미동조차 않는다고 ‘믿었던’ 신의 주사위가 유전자의 영역에서는 이곳저곳을 끊임없이 굴러다닌다는 것이다.
■ 무한의 이면
유전자의 무작위적 변이는 다양한 형질을 낳았고, 그 조합은 세상에 하나뿐인 개체들을 만들어 낸다. 유전 기술 또한 인류 형질의 다양성에 근접한 수준의 발달을 이루어 왔으며, 앞으로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우리 앞에 펼쳐진 가능성의 크기만큼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의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도 모른다. 실인증, 투렛 증후군을 비롯하여 자폐증, 조현병, 양극성 장애 등의 신경 발달 및 정신 질환에서 공감각이라는 특이한 인지 현상의 사례에 이르기까지 발달의 무작위성이 남기는 ‘기준 밖의 결과’는 셀 수조차 없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유전자란 본디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멘델의 법칙에서부터 시작된 유전학은 게놈 프로젝트와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으로 인간 유전자의 전모에 관한 이해를 확장하였다. 이후 복제와 유전자 편집에 이르기까지 과거에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했던 기술이 현실화되면서 폭발적인 발달을 이루어 냈다. 그 혁혁한 발전에는 인간의 존재론적 위상을 흔들 수 있는 윤리적, 사회적, 정치적 문제를 배태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신체 능력이나 지능 같은 특정 형질로 사람의 질과 가치를 판단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렇게 유전자가 우리의 형질뿐 아니라 행동까지 지배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은 사람들 틈으로 파고들어 자유의지마저 의심케 하였다. 유전자가 결정하는 것은 사실 행동 자체가 아닌 ‘행동의 성향’이며, 성향은 상황에 따라 다른 과정이 작용하는 배경에 불과할 뿐임에도 말이다.
우리 안의 빈 서판이 수많은 가능성으로 채워져 있더라도, 그 위에 새로운 글씨를 더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처럼 우리는 경험을 통해 배우고, 환경에 적응하며, 성격에도 일부 영향을 받는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격에 기반한 습관적인 행동 양식을 발전시켜 나가지만, 상황에 따라 달라질 여지는 있다. 저자는 유전체에 부호화된 프로그램은 발달 규칙만을 명시할 뿐 구체적인 결과를 정할 수는 없으며, 프로그램에 영향을 주는 유전적 변이가 많을수록 결과의 다양성도 커진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어떠한 유전자형이라도 다양한 잠재적 결과를 지니기는 하지만, 그중 실제로 실현된 것은 바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이다. 이 사실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어느 특성이 유전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고 해서 그 특성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행동은 전반적으로 뇌 기능에서 비롯되며, 일부 예외를 배제하더라도 특정 유전자의 분자적 기능과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변이 가운데 상당수는 뇌의 발달 방식에 매우 간접적으로 작용한다.
현대 유전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유전적 변이가 형질 차이를 만들어 내는 원리를 설명하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