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일반 독자들에게 르네상스하면 떠오르는 것이 ‘미술’과 ‘건축’으로서의 르네상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에도 분명 철학과 사상이 풍요롭게 논의되고 다양한 저서를 통해 수준 높은 사유의 지평을 넓혔다.
대략 14세기부터 16세기 중엽에 이르는 200여 년 동안 르네상스 본거지의 한복판, 즉 이탈리아(특히 피렌체)에서 지성사적 조류는 ‘휴머니즘’이 견인했는데, 그것은 이전 시기까지 이어져 온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스토아주의, 회의주의, 에피쿠로스주의 등 다양한 철학 유파와 활발히 접촉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부하는 절충적 모습을 보였다.
자연스레 그러한 양상이 과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학문적 물음으로 제기되었다. 그것은 중세의 연장인가 혹은 근대의 시작인가? 그것은 철학적이었는가 혹은 문학적이었는가? 그것은 새로운 인간 정신을 일깨우고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하려 했는가 혹은 그저 고전 고대의 문필을 복원하고 고양하는 데에 머물렀는가? 등등 지난 100여 년 동안 서구 학계에서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성격과 의미를 둘러싼 수많은 쟁점과 논쟁이 있었다.
출판사 리뷰
르네상스, 예술뿐만 아니라 지성사적·철학사적으로도 중요했던 시기!
일반 독자들에게 르네상스하면 떠오르는 것이 ‘미술’과 ‘건축’으로서의 르네상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에도 분명 철학과 사상이 풍요롭게 논의되고 다양한 저서를 통해 수준 높은 사유의 지평을 넓혔다. 대략 14세기부터 16세기 중엽에 이르는 200여 년 동안 르네상스 본거지의 한복판, 즉 이탈리아(특히 피렌체)에서 지성사적 조류는 ‘휴머니즘’이 견인했는데, 그것은 이전 시기까지 이어져 온 플라톤주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스토아주의, 회의주의, 에피쿠로스주의 등 다양한 철학 유파와 활발히 접촉하면서 때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때로는 거부하는 절충적 모습을 보였다. 자연스레 그러한 양상이 과연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학문적 물음으로 제기되었다. 그것은 중세의 연장인가 혹은 근대의 시작인가? 그것은 철학적이었는가 혹은 문학적이었는가? 그것은 새로운 인간 정신을 일깨우고 새로운 인간관을 제시하려 했는가 혹은 그저 고전 고대의 문필을 복원하고 고양하는 데에 머물렀는가? 등등 지난 100여 년 동안 서구 학계에서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성격과 의미를 둘러싼 수많은 쟁점과 논쟁이 있었다.
이 책은 바로 그와 같은 한 세기 동안 이어진 논쟁에서의 최신 연구성과를 보여 주는 르네상스 소장 연구자 크리스토퍼 셀렌차의 문제작을 번역한 것이다. 자연스레 이 책의 번역을 기회 삼아 우리 독자들은 르네상스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혜안을 갖게 될 것인데, 그것은 바로 미술과 건축 등 예술 세계 중심으로 이해되어 온 르네상스가 지성사적으로도, 철학사적으로도 무척 유의미한 시대였음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성격 규정에 대한 바론, 가린, 크리스텔러의 담론 논쟁
서구 학계에서 지금껏 르네상스의 성격 규정에 대한 담론은 한스 바론(Hans Baron, 1900~88), 에우제니오 가린(Eugenio Garin, 1909~2004), 파울 오스카 크리스텔러(Paul Oskar Kristeller, 1905~99)가 이끌어 왔다. 이 가운데 바론의 휴머니즘 논의는 ‘공화주의적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는데, 그는 피렌체 공화국이 밀라노의 참주와 벌인 1402년의 전쟁을 ‘자유’ 대(對) ‘폭정’의 대립과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서구 문명에 결정적인 시기로 보았다. 그가 보기에 피렌체 휴머니스트 문필가들은 밀라노의 참주 비스콘티 가문이 전제주의에 대해 공화주의적 자유를 적극적으로 옹호함으로써 정치적 수사와 행동을 효과적으로 결합할 수 있었다. 14세기 휴머니스트들의 정태적 고전주의를 대신해 이른바 ‘시민적 휴머니즘’(civic humanism)이라는 근대적 의식이 발현되었다는 것이다. 시민은 국가 통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비타 악티바’(vita activa) 혹은 ‘비베레 치빌레’(vivere civile)가 바로 그것이다.
에우제니오 가린 역시 르네상스 휴머니즘에서 어떤 근대성의 발현을 찾고자 했지만, 그는 역사적 사건과 이념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바론과는 달리, 휴머니즘을 서양 철학사의 한 중요한 전기(轉機), 즉 근대로의 이행으로 보았다. 그가 보기에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본질적으로 고대인의 문화와 가치를 르네상스 이탈리아라는 역사적 환경 내에서 새롭게 고양하고 변용하려는 운동이었다는 것이다. 특히나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의 업적은 스스로 ‘그람마티카’(grammatica)라 부른 문헌학(philology) ― 이때의 문헌학은 현대의 좁은 의미에서의 문헌학이 아니라 인간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준다는 의미에서 넓은 의미의 ‘철학’에 속했다. 자연스레 그것은 형이상학과 신학에 매몰된 스콜라 철학을 싫어했으며, 구체적인 연구로 방향을 돌렸다 ― 에 근거했는데, 이 문헌학을 통해 새로운 종류의 철학 혹은 고대의 ‘필로소피아’ ―지혜에 대한 사랑 ― 개념을 새롭게 변용한 철학 ― 넓은 의미의 ―을 실천했다고 보았다. 요컨대, 가린은 ‘매우 실제적인 철학하기’(proprio effettivo filosofare) 혹은 ‘철학으로서의 문헌학’을 주장했던 것이다.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스콜라 철학(혹은 전통적 철학)에 반발한 새로운 ‘철학’으로 간주하는 가린의 대척점에 서 있는 학자가 바로 크리스텔러이다. 역사와 철학에 관한 거의 모든 점에서 가린과 크리스텔러는 양극적이다. 크리스텔러가 보기에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은 중세 수사학자의 계승자였기 때문에, 그들은 웅변을 성취하는 최선의 길이 키케로와 같은 고전 작품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믿었다는 것이다. 즉 이들 휴머니스트가 대부분 군주정이든 공화국이든 그곳의 서기이든가 대학이나 하급 학교에서 문법과 수사학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고전을 연구하고 고전 언어학을 탐구하는 ‘직업적 수사학자’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르네상스 휴머니즘은 “어떤 철학적 경향이나 체계라기보다는 인문 과정을 강조하고 발전시키려는 문화적·교육적 프로그램”일 뿐, 휴머니스트는 “전혀 철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에 기반한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다시금 정초하다
현재 르네상스 휴머니즘 연구는 바론이 강조한 ‘시민적 가치’가 여전히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크리스텔러적 ‘수사학파’의 견고한 성채를 가린을 따르는 ‘철학파’가 공략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철학파’는 대략 두 갈래로 나뉘는데(하지만 둘은 긴밀히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그 하나는 휴머니스트 방식으로 ‘철학하기’ 혹은 ‘철학으로서의 문헌학’을 규명하고자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휴머니스트 철학이 전통적인 스콜라 철학의 변증법보다는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이란 이를 주창한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아도(Pierre Hadot)에 따르면, “개인의 삶 전체를 변화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매 순간 실천해야 하는, 세계-안에서-존재하는 방식”이다. 철학은 본래 지혜에 대한 사랑으로 인식되었고, 지혜는 “단지 우리가 알도록 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게 만든다.” 이 책의 저자 셀렌차는 아도의 철학 모형을 따라 르네상스 시기에는 ‘철학자’란 말이 넓은 의미로 쓰였으며, 휴머니스트들이 생각하던 철학은 모든 삶의 영역에서 지혜를 찾는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관념은 고대 이후 지속되어 오다가 18세기 말부터 이론적이고 변증법적 방식의 철학이 주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페트라르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비판하면서 철학의 요체는 ‘영혼을 돌보는 것’이라고 말했고(알베르티가 그 뒤를 따랐다), 레오나르도 브루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의도적으로 누락해 그를 휴머니스트로 만들었으며,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진정한 철학자의 한 면모로 삶의 태도를 꼽았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소크라테스적 관점을 추구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철학이란 단지 앎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앎을 통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즉 논리적 정합성과 주석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르네상스 휴머니즘의 의미는 그런 지점에서 찾아야 함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크리스토퍼 셀렌차
미국 듀크 대학에서 “소(少)라포 다 카스틸리온키오”로, 독일 함부르크 대학에서 “신(新)라틴 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구겐하임, 부르크하르트, 앤드류 멜론, 훔볼트, 로만 프라이즈, 풀브라이트 펠로우로 연구했다. 연구 분야는 14~16세기 르네상스 지성사 및 문화사이다. 최근에는 르네상스와 근대를 잇는 지성사 연구로 시기를 넓히고 있다. 저서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근대 인문학의 기원: 1400~1800년의 지성사』(2021), 『페트라르카, 어디서나 방랑자인』(2017), 『마키아벨리의 초상』(2015), 『잃어버린 이탈리아 르네상스: 휴머니스트, 역사가, 라틴어의 유산』(2004), 『르네상스 피렌체의 경건함과 피타고라스』(2001), 『르네상스 휴머니즘과 교황궁: 소(少)라포 다 카스틸리온키오의 “교황궁의 혜택에 대하여”』(1999)가 있다. 공편으로 『그리스도교, 라틴어, 문화: 로렌초 발라에 대한 두 연구』(살바토레 캄포레알레), 『휴머니즘과 창조성: 로널드 G. 위트에게 바치는 글들』(2006), 편역으로 『맥락 속에서 본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라미아”: 텍스트, 번역, 서론적 연구』(2010)가 있다.
목차
옮긴이 서문 7
서문 31
감사의 글 37
약어 목록 39
1. 시작 43
2.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초 67
3. 이탈리아 르네상스, 피렌체에 뿌리를 내리다 109
4. 피렌체 휴머니즘, 번역, 새로운(옛) 철학 149
5. 대화, 제도, 사회적 교환 183
6. 누가 문화를 소유하는가? 고전주의, 제도, 속어 221
7. 포초 브라촐리니 247
8. 로렌초 발라 275
9. 라틴어의 성격: 포초 대(對) 발라 307
10. 발라, 라틴어, 그리스도교, 문화 339
11. 변화하는 환경 381
12. 피렌체: 마르실리오 피치노 1 401
13. 피치노 2 435
14. 15세기 후반 피렌체 문화의 목소리 469
15. “거의 숨도 못 쉴 지경이다”: 폴리치아노, 피코, 피치노, 피렌체 르네상스 종말의 시작 505
16. 콘텍스트 안에서 본 안젤로 폴리치아노의 『라미아』 541
17. 결말, 그리고 새로운 시작: 언어 논쟁 593
에필로그 635
참고문헌 641
찾아보기 6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