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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실천지성 1
우리 신학의 선구자들 : 김수복·김원호·성염·최재선
우리신학연구소 | 부모님 | 2025.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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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기억과 기록 시리즈. 『가톨릭 실천지성 Ⅰ』은 한국 가톨릭 평신도 원로 4인을 심층 인터뷰한 책이다. 평신도 원로의 증언과 기록은 현대 한국 가톨릭의 역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격동의 한국사회의 단면 또한 들여다보게 해준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가톨릭의 현실 참여는 한국사회의 소중한 유산이다. 특히 가톨릭 신앙과 사회 참여를 통합했던 평신도의 헌신 덕분에 가톨릭교회는 한국사회 안에서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었다. 이 책은 험난했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4인의 귀중한 경험과 기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출판사 리뷰

기억과 기록 시리즈

민족사, 교회사, 천주교사회운동사에서 우리신학연구소 설립 목적 실현에 부합하는 경험을 역사화하기 위해 우리 신학의 눈으로 기록합니다. 우리신학연구소가 설립 이후 전개한 활동에 대한 기억도 평신도 운동, 평신도 신학운동의 사료로 남기기 위해 기록합니다.

01 | 천주교 평신도 사회 운동가 13인
02 | 625전쟁의 트라우마
03 | 가톨릭 실천지성 Ⅰ

가톨릭 평신도 신학을 개척한 선구자들의 오롯한 증언과 기록

“우리는 먼저 우리 신학의 기틀을 다져온 선배님들의 귀한 발자취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부터 시작합니다. 이를 시작으로 우리신학의 선구자들에 대한 기록을 계속 남겨 가톨릭평신도사, 가톨릭평신도지성사, 가톨릭평신도신학사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축적하고자 합니다. 이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사를 보완하고 한국교회의 자부심인 ‘평신도가 시작한 교회’라는 전통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의도에 맞는 첫 성과를 내놓습니다. 우리신학연구소를 시작할 때 우리 신학의 기초를 놓아주신 선배님들, 성장기에 도약의 기초를 마련해주신 선배님들의 삶의 기록입니다.”

『가톨릭 실천지성』 Ⅰ은 한국 가톨릭 평신도 원로 4인을 심층 인터뷰한 책이다. 평신도 원로의 증언과 기록은 현대 한국 가톨릭의 역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격동의 한국사회의 단면 또한 들여다보게 해준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가톨릭의 현실 참여는 한국사회의 소중한 유산이다. 특히 가톨릭 신앙과 사회 참여를 통합했던 평신도의 헌신 덕분에 가톨릭교회는 한국사회 안에서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었다. 이 책은 험난했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4인의 귀중한 경험과 기록이 오롯이 담겨 있다.

가톨릭 평신도 신학을 개척한 선구자들의 귀중한 증언과 기록
『가톨릭 실천지성』 Ⅰ은 한국 가톨릭 평신도 원로 4인을 심층 인터뷰한 책이다. 이들의 증언과 기록은 현대 한국 가톨릭의 역사를 보여줌과 동시에, 격동 속 한국사회의 단면 또한 들여다보게 해준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톨릭의 현실 참여는 한국사회의 소중한 유산이다. 특히 가톨릭 신앙과 사회 참여를 통합했던 평신도의 헌신 덕분에 가톨릭교회는 한국사회 안에서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된 평신도 4인은 많은 존경을 받으며 평신도의 모범이 되는 가톨릭 원로들이다. 험난했던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4인의 귀중한 경험과 기록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우리 신학의 기틀을 다져온 선배들의 귀한 발자취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의 성과다. 우리 신학의 선구자들에 대한 기록은 훗날 가톨릭평신도사, 가톨릭평신도지성사, 가톨릭평신도신학사 집필에 필요한 자료를 축적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성직자 중심의 교회사를 보완하고 한국교회의 자부심인 ‘평신도가 시작한 교회’라는 전통을 이어가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우리 신학의 선구자들
특히 이 책은 가톨릭교회 평신도 신학연구소인 우리신학연구소를 시작할 때 우리 신학의 기초를 놓아준 선배들, 성장기에 도약의 기초를 마련해준 선배의 삶의 기록이기도 하다. 선배들과 인터뷰하고, 남긴 기록은 반드시 기록해야 할 교회사의 주요 계기임을 확인시켜준다.

이 책에서 인터뷰한 김수복 선생, 김원호 선생, 성염 선생, 최재선 선생은 평신도 신학연구소인 우리신학연구소와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모두 평신도로서 한국 천주교회 내 신학 연구와 사회 참여를 선도했다. 먼저 김수복 선생은 연구소의 초대 소장을, 성염 선생은 초대 이사장을, 최재선 선생은 연구소 이사를 역임했으며, 김원호 선생은 현 이사장이다.

김수복 선생은 평신도 신학연구소를 지향했기에 선생이 평신도가 주체가 되는 연구소의 좋은 역할 모델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선생은 초대 소장, 2대 이사장으로 이어지는 선생과 우리신학연구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선생은 이 직책을 맡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연구원들과 함께 연구소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댔다. 특히 평신도 신학연구소가 재정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백방으로 힘을 썼다. 2004년에 우리신학연구소에서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선생은 이 홈페이지를 마음에 들어 하며 그곳에 매일 성서 묵상을 기꺼이 게재하는 열정을 보였다.

김원호 선생은 빛두레신앙인학교 교장으로서 주간지 《갈라진 시대의 기쁜 소식》에 강론 원고를 한 달간 연재했던 일과 2004년에 출자회원으로 참여하며 인연을 맺었지만, 오랫동안 깊은 관계는 없었다. 그러다가 우리신학연구소에서 격월간 잡지 《가톨릭평론》 창간을 준비할 때, 재정적 지원을 해주어 《가톨릭평론》이 초기에 독자를 모아가며 제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 뒤 2016년 총회에서 그를 이사장으로 선임해 2020년까지 이사장을 맡았고, 2년 뒤 2022년 총회에서 다시 이사장으로 선임되어 현재까지 직무를 맡고 있다.

성염 선생은 우리신학연구소 추진위원회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1994년 1월 창립 총회를 통해 초대 이사장을 맡았으며, 이후 노무현 정부의 교황청 한국대사로 부임하기 전인 2002년까지 소장과 이사장직을 번갈아가며 연구소와 인연을 이어갔다. 연구소가 1994년 창립하고 다음 해 우리신학연구소 서울연구실이 연남동에서 쌍문동으로 이사했다. 이사간 집은 선생과 친한 이웃이 싸게 빌려준 저택이었다. 위치는 선생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앞이었다. 선생은 1998년 서울과 인천 연구실을 통합해 합정동으로 이사하기까지 4년 남짓한 시간 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연구소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다.

최재선 선생은 2002~2015년까지 긴 시간 우리신학연구소 이사를 역임하면서, 연구소의 비전 제시와 운영, 학술 모임 등에 크게 기여했다.

이 작업은 본래 인터뷰 결과를 충실히 기록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했으나, 필자들은 더 나아가 새롭게 자료를 발굴하고 다른 역사 기록과 비교하면서 지성사의 모습을 갖추어냈다. 그런 과정에서 시대적 교회적 맥락이 살아났고 역사학적 엄밀성도 갖추게 되었다.

교회와 세상을 위해 헌신했던 4인의 기록
김수복 선생은 광주와 전국에서 활동한 천주교 사회운동가이자, 해방신학을 한국에 소개하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해방신학 번역가다. 1971년 살레시오회를 퇴회한 후 광주로 돌아와 1년간 대건신학대학교에서 발행하는 《신학전망》 편집일을 돕다가 1974년 결혼한 후 가업인 건축업과 아세아극장 운영을 시작했다.
처음엔 사회의식이 강하지 않았지만 1979년에서 1982년까지 해방신학과의 만남, 5·18 광주민중항쟁, 성찬성 선생과의 재회를 통해 ‘역사’와 만나는 사회적 회심을 겪는다. 1982년에는 도서출판 ‘일과놀이’를 설립하고,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를 독학하며 해방신학 서적 번역에 매진하며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1986년에는 동아투위 기자들에게 《한겨레신문》 창간을 제안했고,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광주전남본부’와 함께 《국민신문》 창간에 참여했다. 1990년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광주지부 이사장을 맡았고, 1991년에는 남미의 『민중교리서』를 번역, 편집해 정의구현사제단 명의의 ‘신앙생활’ 교리서 시리즈를 발간했다. 1994년 평신도 신학연구소인 우리신학연구소의 초대 소장으로 취임했다.
선생은 자신이 관여한 일은 몸으로 하는 수고뿐 아니라 적지 않은 재정적 출혈을 동반해야 했다. 이런 비용은 가업 운영에서 나온 수입, 선생이 번역하고 받은 고료, 검소한 생활을 해서 절약한 돈으로 충당했다. 이렇게 사회적 회심에서 출발한 선생의 교회 내 활동은 출판사 창립, 새로운 교회 매체 창립, 교회 매체 기고 활동으로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가톨릭 굿뉴스》, 《가톨릭 프레스》 같은 인터넷 언론에 해방신학에 기초한 성경 해설, 묵상 글, 시사 평론을 활발히 기고하며 왕성한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김원호 선생은 30여 년간 특허법인 대표 변리사로 활동하며 특허업계에 파트너십 경영을 도입하고, 은퇴 후에는 씨알재단 이사장으로서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데 헌신하고 있는 특허법인 대표 출신 사회운동가다. 그는 처음엔 보수적 신앙관을 가졌으나 시국기도회 참여와 성서 공부를 통해 역사적 예수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하느님을 심판관이 아닌 자비로운 분으로 이해했으며, 신앙이 개인 구원에서 사회 참여적인 방향으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원죄 신앙’에서 ‘원복 신앙’으로 전환을 맞이했다.
1982년 유미특허법률사무소를 설립해 2018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국내 굴지의 특허법인으로 성장시켰다. ‘유미(YOU ME)’는 직원과 고객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자는 철학에서 지어진 그의 경영철학을 반영한 이름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천주교 사회운동에 관심을 갖고 평화학교, 신앙인사회학교 강좌를 수강했으며, 1996년 빛두레신앙인학교 교장을 맡았고,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1998년 종파를 초월한 진리 탐구 교육기관인 신앙인아카데미 설립을 지원하고 준비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열린학교 상담아카데미, 에코피스아시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우리신학연구소 등의 이사장직을 맡아 재정적으로 후원하면서, 자신도 직접 배움에 참여했다.
2004년 정양모 신부의 특강을 계기로 다석 유영모 선생의 강의록 출판을 지원하고, 2007년 다석 유영모와 함석헌의 사상을 계승하기 위해 사재를 출연해 씨알재단을 설립하고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 33년을 세상에 봉사하는 일에 전환하겠다는 소명으로, 씨알재단을 통해 헌법 개정 운동, 관동대학살 희생자 추모 그리고 역사적 예수를 재해석하는 영상 제작 등 사회 참여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여러 단체의 버팀목이 되어준 김원호 선생은 자신의 삶을 ‘주님만을 섬기고 사람을 도우라 하신’ 부르심에 응답하는 ‘봉헌 기도’의 삶으로 여기며, 스승인 예수의 발자취를 좇아 사회에 헌신하는 것을 세상에 온 까닭이라고 고백한다.

성염 선생은 로마 교황청립 대학에서 라틴 문학 박사 학위를 받은 철학자이자 번역가이며,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역임했다. 특히 그는 한국 천주교회 내에서 평신도 신학 운동과 사회 참여를 주도해온 평신도 신학운동의 불쏘시개로 평가받는다. 신학생이었던 그는 긴 고민 끝에 1973년 4월 신학교를 나와 그해 대건신학대학교 학술지 《신학전망》 편집주간으로 취직해 3년간 근무했다. 1974년 교수 충원 문제로 발생한 대건신학 사태를 겪으며, 교회의 권위와 순종, 민주화에 대한 과제를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1981년 9월 로마 살레시안 대학교에 유학해 5년 만인 1986년에 라틴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를 거쳐 1990년부터 2005년까지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는 1977년 분도출판사 임 세바스티안 신부의 청으로 구스타보 구티에레스의 『해방신학』을 번역했다. 이 책은 군사 독재에 항거하던 지성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1979년 둘째 동생 성찬성 선생이 번역한 『페다고지(민중교육론)』 출판 전력 등으로 인해 10월 추석날 밤 중앙정보부 남산 지하실로 끌려가 20여 일간 고초를 겪기도 했다. 선생이 풀려난 그날 저녁 유신 정권이 무너졌다.
그는 천주교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1977년부터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홍보부 차장을, 1980년부터 2년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로마 유학 귀국 후에는 (구)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과 언론지키기 천주교 모임의 공동대표를 맡는 등, 비인가 천주교 사회운동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1994년 우리신학연구소 창립에 참여해 초대 이사장을 맡았고, 이후 2002년까지 소장과 이사장을 번갈아 맡으며 평신도 중심의 신학 연구와 운동의 울타리 역할을 했다. 2013년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을 주도하며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공동대표를 맡았고, “이제 평신도가 앞장서 시대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3년 5월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주교황청 한국대사로 임명되어 4년간 봉직하며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펼쳤으며, 2017년 5월에는 문재인 정부 교황청 특사단 일행으로 로마를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를 요청했다. 그는 현재 경남 함양 지리산 자락 ‘휴천재’에 머물며 성 아우구스티노 연구와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노의 역작인 『신국론』과 『삼위일체론』 등 15권 이상의 저서를 번역해 서우철학상(2004)과 한국가톨릭학술상 본상(2020)을 수상했다. 그는 아우구스티노 신학의 핵심 메시지를 ‘사회적 사랑(amor socialis)’이라고 강조하며, 이는 현대의 ‘정치적 사랑(l’amore politico)’과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최재선 선생은 한국천주교회에서 ‘가난한 이의 교회’와 ‘인간발전’이라는 두 축을 통합하며 사회사목을 평생 실천해왔다. 특히 한국 카리타스의 전신인 인성회(仁成會)를 창설하고 30여 년간 실무를 이끌며 한국교회가 ‘원조를 받는 교회’에서 ‘원조를 주는 교회’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 아현동 성당에서 ‘애덕회(愛德會)’ 활동을 시작하며, 가난한 이들을 돕는 카리타스(Caritas) 정신을 처음 접했고, 이는 평생의 소명이 되었다. 그는 서강대학교에 입학해 미국 예수회 신부들의 엄격한 영어 교육을 받았는데, 여기서 익힌 영어 실력은 훗날 국제 원조 및 연대 활동에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군 복무 후 짧은 직장 생활을 하다가 가톨릭 구제회(CRS) 한국 지부에 입사해 4~5년간 사업부 실무자로 활동했다. 그때 전국을 다니며 농촌, 공소, 나환자촌 등 가난한 이들의 현장을 직접 방문하고 지원 여부를 심사했다. CRS 철수 논의가 있을 때, CRS 한국 대표의 요청으로 로마 본부와 직접 접촉해 한국 카리타스 설립안을 만들었다. 지학순 주교가 ‘인성회(仁成會)’라는 명칭을 제안했으며, 선생은 사무국장으로 인성회 창립에 참여해 30여 년간 실무를 담당했다. 인성회는 직접 사업을 운영하기보다 교구와 사회운동 단체들을 조정하고 지원하는 네트워킹 기구 역할을 수행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실험적으로 해외 구호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1년 국제 카리타스 총회에서 아프리카 주교들의 요청을 계기로 사회복지 주일 헌금을 해외 원조에 사용하기로 해 한국교회가 ‘원조를 주는 교회’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다. 1995년 북한 대홍수 때는 홍콩 카리타스의 캐시 젤버거와 협력을 통해 한국 카리타스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세계성체대회를 준비하던 1989년에는 오태순 신부의 요청으로 한마음 한몸 운동의 기초 개요서를 작성하고 초기 총무 역할을 맡아 운동의 기초를 정립했다.
그의 사목 실천의 중심은 ‘인간발전’으로, 이는 단순히 경제적 향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더욱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복음화의 여정으로 정의했다. 또한 오늘날 가난한 이들은 ‘숨겨져 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진단하며, 이들을 찾아 나서는 일이 시대의 징표에 응답하는 교회의 사명이라고 보았다. 30여 년간 인성회에서 활동한 후 은퇴했으며, 은퇴 이후에도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회사목 분야를 통합해 ‘인간발전부’를 신설한 일에 대해 1975년 창립한 인성회의 정신적, 구조적 지향과 놀랍도록 유사하다고 평가했다.

평생 교회와 세상을 헌신했던 4인의 기록은 후배들에게 소중한 이정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우리 시대의 지성사와 시대사를 구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사료로서도 큰 가치가 있다.

해방신학을 접하고 이를 참된 신학이라 믿게 된 선생은 해방신학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1982년에 출판사를 설립하였다. ‘도서출판 일과놀이’였다. 선생은 평소 책을 좋아하고 해방신학 관련 책도 출판하기 위해 이 출판사의 설립을 결심하였다. 선생은 자신이 출자해 만든 개인 출판사였지만 이 출판사의 활동이 공익사업이 되기를 바랐다. (「해방신학자 김수복」)

선생이 이렇게 관여하게 된 일들은 몸으로 하는 수고뿐 아니라 적지 않은 재정적 출혈을 동반해야 했다. 이런 비용은 가업 운영에서 나온 수입, 선생이 번역하고 받은 고료, 검소한 생활을 해서 절약한 돈으로 충당했다. 이런 비용이 커질수록 살림은 축이나 아내와 갈등의 원인이 되곤 했다. 이렇게 사회적 회심에서 출발한 선생의 교회 내 활동은 출판사 창립, 새로운 교회 매체 창립, 교회 매체 기고 활동으로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말수가 적고 어눌했던 그의 모습은 여전했지만 가슴에 품고 있던 뜨거운 열정이 활화산처럼 분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선생의 인생 후반의 모습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해방신학자 김수복」)

당시에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함께하는 정도였지만, 그러한 관심과 참여 속에서 신앙이 조금씩 변하였다. 그는 왜곡된 정보와 지식을 폭로하는 서적을 찾아 읽으면서 내세 중심의 전통적 가톨릭 신앙에서 좀 더 현대적이고 사회 참여적인 열린 신앙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 그는 신앙의 대상으로 그리스도를 믿기보다 예수의 역사적 삶을 통해 2000년 전 예수의 삶과 믿음으로 돌아가 오늘날 자신의 삶을 조명하고픈 의욕이 샘솟았다. 그런 역사적 예수 공부를 통해 예수가 믿은 하느님은 그동안 성당에서 배워왔듯 지옥 벌로 벌하시는 무서운 하느님이 아니라, 자비로운 분, 용서하시는 분, 나와 함께하시는 분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배움과 도움의 삶을 소명으로 여기는 김원호」)

  작가 소개

지은이 : 황경훈
종교학 박사.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자 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2016년 아시아 신학자 및 활동가들과 더불어 ‘Asian Lay Leaders(ALL) Forum’을 창립하고 상임이사를 맡아 아시아 청년 교육에 힘쓰고 있다. 쓰거나 옮긴 책으로 『Asian Theology for the Future』(공저), 『Vatican II, Ecological Crisis and Peace of Asia』(공저), 『아시아 공공신학』, 『대승불교, 그리스도를 말하다』, 『지혜의 땅, 아시아의 생명』 등이 있다.

지은이 : 박문수
연세대학교 신학사, 서강대학교 대학원 가톨릭 신학전공 석사?박사, 북한대학원대학교 정치통일 전공 북한학 박사. 저서로 『왜 지금 샌프란시스코 체제에 주목하는가?』(2025), 『6?25전쟁의 트라우마』(2025) 외 공저 포함 45권, 논문으로 「정보사회의 그리스도교: 가톨릭교회의 미래전망」, 『한국 가톨릭 어디로 갈것인가』(서광사, 1997) 외 70편, 역서로 『희망의 문턱을 넘어』(시공사, 1994) 외 공역 포함 9권. 현재 (사)우리신학연구소 소장, 팍스 크리스티 코리아 교육연구이사로 활동 중이다.

지은이 : 경동현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에서 교의신학으로 석사, 가톨릭대학교에서 사목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천주교회 공동체운동의 공공성연구”, “한국천주교회 영성의 공공성 회복을 위한 연구” 등 한국천주교회의 공적 역할에 주된 관심을 갖고 연구 중이다. 현재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실장과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상임이사로 있다. 저서로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천주교』(공저), 『우리시대, 우리신학을 말하다』(공저), 『잉여의 시선으로 본 공공성의 인문학』 등이 있다.

지은이 : 이미영
우리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우리신학연구소에서 창간한 《가톨릭평론》의 초대 편집장을 맡아 2016년부터 2020년 초까지 4년간 활동했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한국 평신도의 삶과 신앙을 조명하고자 ‘한국천주교 사회운동 이야기’를 기획?연재했다. 가톨릭대 종교학과 대학원에서 가톨릭신학을 전공했고, 우리신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공저로 『팬데믹 시대의 가톨릭교회』, 『시노달리타스와 한국천주교회』, 『함께 걷는 시노달리타스 교회 이야기』 등이 있다.

  목차

간행사

해방신학자 김수복_박문수

탄생
어머니를 통해 만난 천주교 신앙
운명을 결정한 살레시오회와의 만남
사례지오중학교 | 사레지오고등학교 | 살레시오회 수련기 | 서울 가톨릭대 신예과 | 임장 교육(Assistenza) | 가톨릭대 신학 과정
다시 세상으로
《신학전망》 편집부 | 결혼 | 가업 승계
사회적 회심
해방신학 |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 | 다시 만난 성찬성 | 도서출판 ‘일과놀이’ 창립 | 교회 현장으로 | 더 큰 세상 속으로 |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신앙생활’ 교리서 | 해설판 공동번역 신약성서 | 우리신학연구소 | 왕성했던 50대와 대비되는 가업의 쇠락 | 바보 노무현 | 회갑 기념 문집
인생은 60부터 70
인터넷과 일기 | 사회운동 | 황반변성 | 해방신학자 김수복

배움과 도움의 삶을 소명으로 여기는 김원호_이미영
한국전쟁의 비극 속에 아버지를 여의고
외롭게 지낸 어린 시절
가난하고 내성적이던 사춘기 소년
사제 성소를 꿈꾸던 소년의 첫사랑
학업보다 성당 활동에 열정을 쏟던 대학 시절
1970년대 시국이 바꿔놓은 신앙관, ‘원죄에서 원복으로’
위기가 기회로, 일터에서 쫓겨나 변리사가 되다
사업 안정과 더불어 시작된 천주교 사회운동과의 인연
IMF 위기를 넘어
열린 신앙을 향한 배움과 지원
다석학회와 씨알재단 설립
‘에코피스 아시아’,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우리신학연구소’의 이사장을 맡아
인생 3모작의 마지막 부르심

평신도 신학운동의 불쏘시개, 성염_경동현
어린 시절과 신앙의 뿌리
운명을 결정한 살레시오회와의 만남,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평생의 친구, 김수복 선생과의 만남
사레지오고등학교
살레시오회 수련기
전순란 선생과의 만남
첫 직장, 《신학전망》 편집장과 대건신학 사태
『해방신학』 번역으로 맺어진 임 세바스티안 신부와의 인연
평신도 사도직 운동과 정평위를 통한 천주교 사회운동 참여
로마 유학 시절(1981~1986)부터 서강대 철학과 임용까지
비인가 천주교 사회운동 단체를 통한 신도운동 전개
우리신학연구소와의 인연(1993~2002)
주(駐)교황청 한국대사 시절(2003~2007)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을 통한 신도운동 참여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4?16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
문재인 정부의 교황청 특사단으로 로마 방문
평생의 소임, 교부문헌 번역
교회의 품에서 살아온 가정, 살아갈 가정

가난한 이의 교회와 인간발전, ‘사회사목’의 산증인 최재선_황경훈
‘가난과 발전의 경계’를 평생 산 사람, 최재선
할머니에게서 배운 몸에 밴 신앙과 ‘애덕회’ 활동
‘서강고등학교’에서 미국 신부들과 겪은 일들
가톨릭 구제회(CRS)와의 인연과 활동
결혼과 신접살림, 그리고 배우자의 유학
한국 카리타스?인성회 창설과 국내외 원조 활동
인성회와 사회운동과의 관계
교회와 국가의 협력-필요성과 그 함정
사회사목의 두 중심축과 인성회의 변화
‘한마음 한몸 운동’의 기초 정립
사회복지 10년 만에 해외 원조로
북한 원조와 홍콩 카리타스의 캐시 젤버거
‘사회복지관 꼰대’의 꿈: 가난한 이들의 교회
가난과 그리스도교 영성
본당의 역할과 소공동체
‘타가이타이 비극’과 가난한 이의 자존심
‘타가이타이 비극의 치유자’ 데스몬드 신부
주교들도 가난 체험이 필요하다!
회심으로 나아가게 하는 현장생활체험
사목 일꾼의 지속적인 양성 필요성과 방향
아시아 교회와의 연대: 필요성과 현실적 제약
가난의 영성과 오늘날 신앙인의 회심
‘가난의 영성’의 배반, ‘구조적 죄악’으로서 가난
사회교리의 중심축 ‘인간발전’의 전도사
‘인간발전’, 최재선의 신학 및 사목 실천의 발판 | ‘인간발전’ 사회교리의 심화, 교황 바오로 6세와 프란치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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