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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필이 던진 짱돌 1
고용노동부 내부 출신 1호 장관의 고용노동 이야기
행복에너지 | 부모님 | 2025.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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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소아마비로 두 다리에 장애를 안고 태어나 세상의 멸시와 차별을 온몸으로 견뎌 낸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자신의 삶과 노동행정 철학을 담아낸 기록이다. 어린 시절 외딴 마을에서 라디오를 통해 “현대국가는 행정국가”라는 말을 듣고 공무원의 길을 결심한 그는,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해 고용노동부에 입직했다.

『이채필이 던진 짱돌 1』은 900여 쪽에 달하는 저작의 1~4장을 엮은 것으로,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고용허가제 통합, 고용보험제도 시행 등 굵직한 노동정책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행정가는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일자리’와 ‘사람’을 중심에 둔 정책 철학을 일관되게 펼쳐 왔다.

자서전이자 노동행정사 기록으로서 이 책은 노사관계의 법적 원칙, 제도의 형성과정, 정책의 시행 배경을 실사구시의 자세로 서술한다. 불합리와 비효율에 짱돌을 던지듯 문제를 직시한 저자의 배짱과 집념이, 우리 사회 노동 행정의 변화를 이끈 힘으로 드러난다.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이채필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역경과 도전으로 가득찬 삶과 더불어 고용노동부 소속 공무원에서 시작하여 장관에 이르기까지 노동 관련 업무를 하면서 확립하고 지켜 온 노동 관련 행정에 관한 신념 및 그에 따른 행보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소아마비로 인한 양다리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면서 세상의 멸시와 차별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저자는 어린 시절 장애를 트집 잡아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던졌던 울분의 짱돌을 대한민국의 각종 불법과 비효율에 던지고 싶었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노동행정가로서 저자의 삶과 신념을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속에 쏟아낸 글로서 『이채필이 던진 짱돌(1)』은 이 방대한 글의 제1장에서부터 4장까지의 앞부분에 해당한다.
제1장은 대학 4학년이 되어서야 고향 집에 ‘전깃불’이라는 것이 보급될 정도의 시골 농촌에서 ‘소아마비 장애인’이라는 딱지를 달고 차별과 멸시를 이겨내야만 했던 저자가 여러 역경과 도전을 거쳐 검정고시로 대학을 진학하고, 행정고시를 치러 고용노동부 공무원이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어릴 적 외딴 마을에 살면서 세상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라디오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세상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행정이고, 현대국가는 행정국가다”라는 말을 듣고 온몸에 전율을 느껴 행정공무원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제2장은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고용허가제 통합, 고용보험제도 시행, 직업능력개발계좌제 도입 등 이채필 저자가 고용노동 전문가이자 행정공무원으로서 봉직하면서 주도 및 참여한 노동정책을 이야기하고 있는 장이다. 저자는 30년이 넘는 노동행정가로서의 삶 속에서 행정가는 항상 ‘현장’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일자리’와 ‘사람’을 자신의 행정 목표로 천명한다. 제3장과 4장은 대한민국 노동 관련 이슈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노사 관계의 조절을 도맡은 경험을 골자로 하여 노사 관계에서의 ‘법률’의 위치에 대한 이채필 저자의 신념과 원칙을 엿볼 수 있는 장이다.

이 책은 저자의 자서전적 성격보다는 복잡다단한 노동 관련 정책의 생산과정에 대한 역사적 기록의 성격이 훨씬 더 강하다. 저자가 우수한 성적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노동부를 택하고 이후 산업안전, 고용, 직업능력, 노사관계 등 고용노동 행정 전반을 다루면서 실사구시의 자세로 정책을 개선하고 개발함과 동시에 법제화를 위한 다방면의 노력을 있는 그대로 기록함으로써 역사적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그 배경에는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더불어 그때마다 돌직구를 던지는 배짱이 있음을 읽을 수 있으며 이는 저자가 은근슬쩍 내보이는 실력과 끈기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간후기

『이채필이 던진 짱돌』은 단순한 개인의 회고록이 아닙니다. 이 책은 ‘대한민국 고용노동 개혁 시리즈’의 첫 권으로, 대한민국 고용노동 행정의 최일선에서 치열하게 일했던 한 공직자의 치열한 삶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고용노동부 내부 출신 1호 장관’인 저자 이채필의 생생한 체험과 고뇌는, 그 자체로 하나의 ‘노동사(勞動史)’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시리즈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고용노동 문제를 정책·행정·현장 중심으로 풀어낸 체험형 기록물로, 행정가의 시선과 실천이 어떻게 정책과 제도, 그리고 사람의 삶을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적 자산입니다.
처음 원고를 접했을 때, 저는 한참 동안 책상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저자의 고백은 숨김이 없고, 미화도 없었습니다. 불편한 과거조차 덮지 않았고, 부족했던 순간들을 정직하게 드러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몸이 불편했던 저자가, 조롱을 멈추게 하려 돌을 던졌던 장면은 이 책의 제목과도 절묘하게 연결됩니다. 그 짱돌은 누군가를 다치게 하려던 것이 아니라, 침묵을 깨고,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의지의 돌’이었습니다.
이후 공직자가 되어 사회적 약자, 특히 실직자와 비정규직, 산업재해 피해자 등 가장 취약한 계층의 곁을 지키며 사회적 병리 현상과 싸울 때도, 그는 또 다른 짱돌을 들었습니다. 바로 ‘제도와 정책, 그리고 실천’이라는 이름의 짱돌이었습니다.
책 전반에 걸쳐 흐르는 그의 자세는 한결같습니다. 무엇이 되기보다, 무엇을 할지를 고민했던 사람. 높이보다 깊이를 추구한 사람. 그리고 고용노동을 단지 정책이 아닌 사람의 생애 전체를 품는 행정이라 여긴 사람입니다.
책 속에는 장관이기 이전에, 실무자로서 기피 부서를 전전하며 일했던 고단한 공직생활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사무관 시절 간부회의에서 던졌던 한 마디가 평생을 옥죄는 ‘말 감옥’이 되었고, 어떤 자리에 있든 그는 늘 최종 결재권자의 시각으로 일하려 했습니다. 이런 실천의 태도는 단지 경력의 결과가 아니라, 매번 현장에서 싸우고 부딪친 경험의 산물입니다.
『이채필이 던진 짱돌』은 회고록이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행동 매뉴얼이자 정책적 기록물입니다. 실무에 있는 공무원, 노사관계와 인적자원관리 종사자, 그리고 노동과 사람을 진심으로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큰 시사점을 안겨줄 책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공직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노동의 가치가 종종 희생되는 시대일수록, 이채필 전 장관의 진정성과 실천력이 재조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짱돌은 무모한 반항이 아니라, 사회의 관성을 깨는 용기의 상징입니다.
『이채필이 던진 짱돌』은 이제 시작입니다. 그가 고용노동의 중심에서 던진 이 작은 짱돌이 이 사회의 오래된 제도적 관성과 사회적 편견의 벽에 균열을 내고, 진심이 통하는 정책과 현장 중심 행정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대한민국 고용노동 개혁 시리즈’의 이 첫 권이, 우리 시대의 고용과 노동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의미 있는 기록으로 오래 남기를 기원합니다.




프롤로그 –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고시 2차 시험은 하루에 두 과목씩 나흘에 걸쳐 7과목을 논술 형태로 치렀다. 고사장 부근 한옥 민박집을 숙소로 구해 저녁마다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다음 날 아침이면 고사장으로 갔다. 첫날 시험을 치르고 돌아와 숙소에서 다음 날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내가 머무르던 숙소 옆방에 청춘 남녀가 투숙하여 밤새 요란스럽게 뜨거운 밤을 보내는 바람에 신경이 쓰여 도무지 집중하기 어려웠다. 방음이 되지 않아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그러다 새벽녘에 잠이 들었으나 눈을 떠보니, 아뿔싸… 시험 시작 20여 분 전이었다.
내 걸음으로는 시간 안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이쯤에서 포기하라는 신호인가? 잠시 고민하다가 어차피 여기까지 왔으니 가는 데까지 가보자는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헉헉대며 한성대학교 입구를 향해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데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멈추었다. 후진하더니 나를 태워주는 게 아닌가? 그렇게 운 좋게 입실하여 가까스로 지각을 면할 수 있었다. 워낙 경황이 없어서 내 일생의 중요한 은인임에도 고맙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서두에 이 경험담을 꺼낸 이유는 나의 삶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는 것, 즉 시련이 찾아온 뒤엔 종종 반전이 일어나기도 하였음을 말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어릴 적부터 장년이 되어서도 고난과 시련의 순간이 자꾸만 반복하여 찾아왔다는 점이다.어린 시절 나는 취학 통지서가 나오지 않아 학교에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두 살 아래 동네 또래를 찾으러 우연히 학교에 갔다가 학생이 되었고, 이후 내 걸음을 흉내 내며 조롱하는 애들을 쫓으려고 길바닥에 널려있던 돌을 주워서 던져보았다. 그 돌멩이가 아이들 옆으로 떨어졌는데 거의 명중할 뻔했다.
뒤돌아보는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바짝 옆으로 짱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까불지 마라”, “또 놀리면 가만 안 둬” 그때까지 나를 따라다니던 조롱은 그렇게 거의 끝났다. 그저 한두 명에게 짱돌을 던졌을 뿐인데, 아이들 사이에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어느덧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연민과 안타까움이 되었다.
몇 년 전 아내가 물었다. “장애로 사는 것과 억울한 옥살이 중 어느 게 더 힘든가?” 나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장애’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이왕이면 가고 싶은 곳 가보고, 하고 싶은 것 하며, 맘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힘에 부치는 노동이라도 뭐든 기꺼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모든 걸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장애는 나에게 분명한 불가능이었고, 일생을 따라다니며 포기가 무엇인지 나를 훈련시켜 준 고약한 핸디캡이다. 학창 시절 “건강한 신체(身體)에 건전한 정신(精神)이 깃든다”라는 구호가 널리 쓰였는데,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정신도 어딘가 부족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로 해석되어 나 같은 사람이 듣기엔 참 잔인한 말이었다.
대학 4학년(1980년)이 되어서야 고향 집에 전기가 보급되었을 정도로, 나는 호롱불을 켜고 살 만큼 낙후된 시골에서 자랐다. 거기에다 가난한 농사꾼 부모님에게 물려받을 유산도 변변찮은 척박한 환경에서 인생을 시작했다.
나는 결코 능력이 출중하거나 뛰어난 사람이 아니다. 다만 조금은 남다른 강단과 배짱은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나더러 꿰뚫어 보는 직관이나 순발력이 있다고 하는데, 스스로 보기에도 어려움을 만나면 어디에서 샘솟는지 모를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용기, 맞다고 생각하면 밀어붙이는 뚝심에, 좀처럼 쫄지 않는 편이다. 이런 성향과 기질로 인해 쉽사리 포기할 줄 몰랐고, 때때로 발현된 도전적인 아이디어가 나로 하여금 에너지 넘치는 자세로 이끌었다.
덕분에 조롱을 받던 아이가 장차 자신과 사회의 미래를 열어가는 역전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하필이면 ‘못 가진 것이 많았다’가 아니라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내면의 자산가였던 셈이다. 지나고 보니 삶의 여러 길목에서 닥친 고난에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주저앉지 않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며 받아들인 덕분에 열린 미래였다는 생각이 든다.
행정공무원이 된 사정이나 고용노동 분야에서 일하게 된 데도 특별한 사연이 있다. 어릴 적 외딴 마을에 살면서 세상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라디오였는데, 어느 날 우연히 “세상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행정이고, 현대국가는 행정국가다”라는 말을 들은 나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행정’이라는 단어에 감동을 받은 나는 대학 진학 때 법대나 의대가 아닌 행정학을 전공하고, 공무원도 행정고시에 응시하고, 운이 따라준 덕분에 행정가가 될 수 있었다.
신임 관리자 교육을 받는 동안 각 부처의 임무를 살펴보니, 일하는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부처가 노동부였다. 세상에 사람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여 은퇴할 때까지 생기는 고용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노동부야말로, 사람의 일생(一生) 가운데 가장 황금기(黃金期)인 ‘청년-중년-장년기’ 내내 직업생활의 가치가 높아지도록 도와주는 곳이었기에 보람이 클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하여 노동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정부의 고용정책을 총괄하는 고용노동부로의 확대 개편을 거치며, 눈 깜짝할 사이 30여 년의 세월과 청춘을 온전히 바쳤다. 필자의 공직 인생은 시작 단계부터 사고뭉치였다. 수습이 끝나고 처음 배치된 부서에서 맞이한 회의에서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간부회의를 마치며 “과장인 나는 과장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국장의 입장이 되어 일할 것이니, 사무관 여러분들도 스스로 과장이라는 생각으로 일해주세요”라는 과장님의 특별훈시가 있었다.
하늘 같은 상사의 당부 말씀을 듣고 공직자로 살아가는 데 지침이 될 만한 귀중한 말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2%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어 반문하고 말았다.
“제 위에 과장님이 계시지만 그 위에는 국장과 실장, 차관 나아가 장관이 최종 결재자인데 보고와 결재를 받는 단계마다 지적받거나 깨지면 되겠습니까? 그러니 과장님은 처음부터 최종 결재권자의 시각으로 일해야 하지 않습니까? 또한 사무관도 그런 입장에서 기안해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며 겁 없이 대들고 말았다.
예기치 않게 내뱉은 나의 말 한마디는 스스로를 가둔 ‘말 감옥(監獄)’이 되었고, 이후 평생을 전전긍긍(戰戰兢兢)하며 지냈다. 왜냐하면 “이 사무관, 장관처럼 해야 한다고 하더니 겨우 이 정도밖에 못했어?” 하는 지적이 돌아올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정제되지 않은 그날의 말대꾸 한 번이 공직 인생 내내 일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다잡아 주었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더 깊은 고민과 더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럴수록 사회의 여러 병리 현상이나 문제점을 진단하고 해결하는 ‘사회의 의사’가 되기 위하여 나는 ‘내 일의 주인공’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 열린 시각과 아이디어로 실천에 나섰다.
필자는 사무관에서 서기관, 과장, 부이사관, 국장을 거쳐 직업공무원의 정점인 고위공무원(가급)에 이르렀다. 이후 정무직인 차관과 장관직도 역임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늘 선두 주자로 앞서 나간 것은 아니었다. 특히 사무관이나 서기관, 과장을 맡았던 실무자 시절에는 ‘일하는 사람 따로, 실속 차리는 사람 따로’였던 현실 속에서 상사의 ‘근무 지시’, ‘직무대리 겸직’ 발령 등 일 구덩이에 빠져서 헤매기 일쑤였다.
나 역시 한 인간으로서 때론 서운한 마음이 들고 흔들릴 때가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애썼다. 왜냐하면 공무원 임용을 앞두고 받은 채용 신체검사에서 (한쪽이 아닌) 두 다리 모두가 소아마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야말로 금수저나 은수저는커녕 흙수저 출신으로 밑바닥(zero spec)에서 출발하였으니, 단지 공직에 헌신할 기회가 부여된 자체만으로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부처나 조직의 구성원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서에 맡겨진 과업을 이루기 위하여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처음부터 나는 정책을 수립하고 조정하는 본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는데, 이후에도 할 일이 많은 ‘비인기 부서’나 현안으로 부대끼는 ‘기피 부서’에 배치되기를 반복했다.
즉, 내가 원하는 업무나 부서가 아니라 현안 과제를 처리하기 위하여 조직이 부르는 곳에서 일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내 눈에는 가는 곳마다 크게 주목받지는 못해도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할 일들이 태산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더 이상 잃을 게 없던 나로서는, 시작한 사무관으로 평생 일한다 해도 행운(幸運)으로 여긴 초심(初心)을 잊지 않으려고 각오를 다졌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스스로 맡은 일을 잘하는 것 외에는 뭘 바라거나 쪼잔하게 욕심내지 않게 되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내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밑바닥 정신’이 아니었을까 싶다. 금수저나 은수저가 불을 만나면 녹아 버리지만 흙수저는 불로 구우면 더욱 강해져 도자기나 항아리가 된다. “세상에 헛된 고통은 없다”라고 말하듯, 시련이 나를 죽이지 못하면 더 강하게 단련시켜 주었다. 나는 거의 모든 실·국에서 실무를 맡아 사업(정책) 분야에서 근무한 경험이 축적되고, 현안에 헌신한 실적이 쌓이면서 차츰 인정받게 되었다. 부족함이 많지만 그래도 나의 진의를 알아주고 너그럽게 받아준 선배와 상사 덕분에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나는 세상에 많은 빚을 진 셈이다.
운이 닿아 행정고시(제25회) 차석 합격이라는 비교적 괜찮은 성적으로 공직을 시작하긴 했어도, 나는 스펙이 뛰어난 다른 친구들처럼 장차관이 될 꿈은 꾸어 본 적도 없었다. 단지 ‘무엇이 되기’(what to be) 위하여 아등바등하는 것보다, 주어진 자리에서 ‘필요한 일 하기’(what to do), ‘원점에서 해법 찾기’(how to do)에 더 익숙해졌다. 이런 성격이 일중독(Workholic) 인생의 궤적을 걷게 한 요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커다란 조직이 나같이 작은 한 개인에게 신세를 지는 사례가 쌓일수록, 이상하게도 시원찮은 대접도 불만으로 느껴지기보다는, 남에게 빚지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더 크게 다가왔다.
이 책은 필자가 고용노동부 공직자로서 맡은 일을 어떻게 처리해 왔는지,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개혁을 추진하면서 돌파한 방법과 과정들을 살펴보고, 시행착오나 아쉬운 점, 그리고 우리의 미래 도약과 새로운 모색을 위한 제언을 담은 고백록이다. 또한 청와대와 관련 부처를 비롯한 행정부 내부에서의 사건들, 여의도 정치인과의 협력과 갈등 사례들, 정치적 이유로 얽히며 당한 고초 등 내가 직접 겪은 일과 인생의 궤적이 담긴 생생한 기록이다. 내 딴엔 『목민심서』나 『징비록』을 쓰는 심경으로 정리한 결과물이다.
특히 고용노동 행정을 하면서 필자가 매달린 지향점은 단순히 옳고 그름의 차원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정책이나 제도 개혁이 성장-고용-복지의 선순환에 더 도움이 되느냐였다.
이 책은 고용노동 정책을 만들고 효과를 내기 위하여 주야장천 고민하고 실천한 기록이다. 모두 3부작이다. 다만 이번에 [1편] 제1장 짱돌의 시작 – 나의 선택, 노동행정, 제2장 일자리와 현장 – 정책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제3장 소용돌이의 노사관계 – 법과 갈등 사이의 줄타기, 제4장 13년 만의 노동 개혁 – 복수노조 시행과 노조 전임자 폐지, 그리고 [2편] 제5장 안전과 정의 – 산업재해와 중대재해법의 이면, 제6장 이상한 나라의 국회와 행정부 – 행정과 정치, 관료제의 책무성, 제7장 개혁의 그늘 – 짱돌 이후, 성찰과 책임, 제8장 우문현답 - 밑바닥 정신으로 먼저 세상에 내보낸다. 이에 기업에서 노사관계나 안전보건, 인적자원관리 업무를 맡고 있거나, 고용·노동 정책과 행정을 다루는 공무원, 관련 연구나 사례분석, 공사 조직의 진단과 컨설팅, 리더십 개발 등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일독을 권하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실직고(以實直告)하는 것을 소명으로 삼아 영욕의 세월과 행적까지 그대로 담았다. 개인적으로 부끄럽게 생각했던 약점까지 드러내 정직해지고 싶었다. 스스로에 취해 더러는 자화자찬도 하고, 나의 잣대로 잰 나머지 뒷담화를 하기도 했다. 단편적인 기사로 드러나지 않는 내부의 비화(秘話)는 드라마적 요소로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에 충실하려 했을 뿐 호불호를 가려 쓰지는 않았다. 독자에게 약간의 재미라도 준다면 그것도 좋겠고, 이를 통해 어떤 시사점을 얻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필자가 감사드려야 할 분이 많다. 청춘을 바쳐 최선을 다해 일한 고용노동부 여러 상사와 선배, 열정적으로 일한 동료와 후배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일하면서 받은 도움과 조언, 때로는 반면교사가 되어주신 분들의 사연들이 담겨있다.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심적 부담 속에서도 끝까지 마무리할 수 있었던 데에는 ‘노동부 내부 출신 1호 고용노동부 장관’이라는 무게감이 주는 의무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에 소개하는 사례에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는 털끝만큼도 없다.
오직 공익적 목적으로 이 글을 썼지만 세련되지 못한 표현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필자의 부족한 ‘필력’ 탓이다. 건너뛰거나 생략하느라 줄여서 기술한 부분은 맥락과 행간으로 이해해 주시고, 부족한 점은 너그럽게 봐주시길 바란다. 그럼에도 오류가 있다면 다른 방법이 아니라 이를 바로잡는 제2, 제3의 글이 나오길 소망한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 주신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대표 권선복 회장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원고를 꼼꼼하게 읽고 정성스럽게 다듬어 주신 한영미 작가님과 김소영 디자이너님을 비롯한 편집부 관계자 여러분에게 특별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또한 초고를 꼼꼼하게 읽고 이 글이 가져올 파장과 우려는 물론 구성에다 오타까지 잡아준 박도제 기자님, 정진우 기자님, 최상률 노무사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그리고 조언과 감수를 넘어 원고를 사정없이 칼질해 준 아내 하혜숙 여사의 지극한 사랑과 보살핌에 지극히 고마운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하려고 한다. 두루 감사하다.

2025년 7월 관악산 동편마을 서재에서
저자 이채필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채필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나 어릴 때 두 다리에 소아마비를 앓아 심한 보행장애가 있으며, 검정고시를 거쳐 영남대 행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공부하고, 1981년 행정고시에 합격하였다. 1982년 공직을 시작한 이래 노동부와 대통령비서실에 근무하였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노동부·고용노동부 차관과 내부 출신 1호 고용노동부 장관직을 수행하였다. 1997년 제정된 노조법이 13년간 세 차례나 유예된 복수노조 제도 시행과 노조 전임자 급여 금지를 위한 노사관계 개혁 실무를 뒷받침했고, 노사분규의 법과 원칙에 따른 자율적 해결 기조 확립, 산업보건 증진과 고용서비스 혁신을 비롯한 고용노동 정책개발, 인사 운영시스템 혁신 및 정부 고용정책을 총괄하고, 안전보건을 강화하기 위한 고용노동부로의 개편 등에 힘써 ‘고용노동 행정의 달인’, ‘노사관계의 포청천’으로 불린다. 2013년 공직을 마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장애인재단 이사장, 경상일보 대표,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일자리연대 대표, 6223 미래포럼 위원장,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 롯데·고려아연·더블유씨피 사외이사 등으로 활동했다.

  목차

추천사 000
프롤로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000

제1장 짱돌의 시작 – 나의 선택, 노동행정
01 나는 이방인, 짱돌에서 찾은 희망 000
02 어머니의 외상값 받아내기 000
03 소 막걸리와 밀주 단속 000
04 감옥에 갈 뻔한 개구쟁이 악동 000
05 장애로 입은 좌절과 실패, 그리고 적응 000
06 한약 봉지와 검정고시, 그리고 대학 진학 000
07 행정고시를 치르던 날 000
08 운명처럼 만난 아내 000
09 내가 노동부를 선택한 이유 000
10 고용노동부의 임무 000
11 고용노동부와 소속 공무원의 역할에 대한 오해 000
12 시작부터 사고뭉치 000
13 첫 경험: 행정은 ‘사회의 의사’ 000
14 ‘취업알선장’과 ‘취업알선자 명단’ 창(窓) 봉투 개발 사용 000
15 공무원도 외화를 벌 수 있다 000

제2장 일자리와 현장 – 정책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01 “아빠, 내일 와”: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 000
02 누구를 위한 고용센터(Ⅰ): “이런 사무실이 좋습니다” 000
03 누구를 위한 고용센터(Ⅱ): 직원 위주에서 고객 중심으로 000
04 대통령 주재 행사 사회를 보던 중 목이 날아갈 뻔 000
05 외국인력 활용과 고용허가제로의 통합 000
06 지역 일자리 목표 공시제 도입 000
07 일자리 정부 천명과 대통령 주재 국가고용전략회의 000
08 민간 전문가들과 함께하는 ‘정책 포럼’ 운영 000
09 고용보험 제도 시행 관련 부처의 반대와 대통령의 결단 000
10 모성보호급여를 고용보험 기금에서 부담하게 된 사연 000
11 청년의 창조적 도전
: 글로벌 청년취업(GE4U)과 K-평화봉사단 000
12 ‘선(先) 취업, 후(後) 진학’과 고졸 청년취업 활성화 000
13 숙련기술 장려 분위기 확산 000
14 직업능력개발계좌제 도입
: 수요자 중심의 직업능력개발훈련 000
15 제100차 ILO 총회 기조연설
: ‘성장-고용-복지’의 균형이 지속 가능한 성장 이끈다 000

제3장 소용돌이의 노사관계 – 법과 갈등 사이의 줄타기
01 호랑이 차관에 들이받은 하룻강아지 사무관 000
02 임금 체불 시 지연이자 부과 제도 마련 착수 000
03 취약 근로자를 위한 노동변호사와
공인노무사 합동 서비스 000
04 근로자의 날 변경과 노동절:
3월 10일에서 5월 1일(May Day)로 000
05 분수령을 이룬 현대중공업 장기 파업과 노사정 대응 000
06 무노동 무임금 원칙과 ‘가정통신문’ 000
07 아버지의 심모원려 000
08 J 철강 노조의 파업과 ‘법대로’, ‘자율로’ 000
09 ‘민주노총’ 창립과 지역 노사정 협력 000
10 “한국노총은 정치활동에 정도(正道)를 지켜라” 000
11 쌍용차 사태에 대한 단상: 67년 역사의 ‘쌍용차’ 사라져 000
12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정부의 역할과 손해배상청구권 제한 000
13 야당 정치인들의 장관실 항의 방문 000
14 ‘국제노동기준과 한국의 노사관계’에 관한 국제토론회 000
15 ‘노란봉투법’ 정치적 추진과 노동 약자에 미치는 영향 000

제4장 13년 만의 노동 개혁 – 복수노조 시행과 노조 전임자 폐지
01 노동계 인사의 기행(奇行): “3일만 참으면 다 지나갑니다” 000
02 LP 판(板) 위의 CD
: 법과 원칙의 틀 내에서 노사자율적 해결 000
03 개별 노사관계에 대한 정치권의 섣부른 개입 000
04 노동조합의 운영 실태와 노동법의 비중 변화 000
05 복수노조 허용, 노조 전임자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 000
06 노동 개혁 공감대 형성과 노사정위원회 논의
: 공익위원 합의안 도출 000
07 탁월한 리더십과 정치력을 발휘한
임태희 장관과의 의기투합 000
08 노사정 합의 모색
: 전임자 폐지 대안과 복수노조 시행 안전판 000
09 「2009.12.4. 노사정 합의」 000
10 험난했던 입법 과정: 환노위 위원장의 정치적 과욕 000
11 환노위 위원장의 결자해지
: 소속 당의 반대에도 노조법 의결 000
12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위원 위촉과 노동계의 꼼수 대응 000
13 근로시간면제 제도 도입과 노조 활동 실태 000
14 복수노조 허용과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시행 000
15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 전임자 개혁의 의미 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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