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원서는 『Хунну: Срединная Азия в древние времена(흉노: 고대 중앙아시아)』(1960년)으로, 그 무대는 현재의 몽골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이다. 시간적으로도 흉노 형성 이전인 기원전 2000년기부터 흉노 폐망 이후인 기원전 1세기 이후까지 다루고 있어서 번역서의 제목에 반영되었다.
저자의 반유럽주의적인 유라시아주의 세계관, 자연결정론, 민족형성배경인 ‘파시나르노스트’가 투영된 작품이다. 흉노를 ‘미개한 야만인’으로 묘사하는 편향된 시각을 거부하고, 흉노가 한(漢)뿐만 아니라 다른 유목민족들과도 다양하게 상호작용한 독자적인 문화 및 국가를 형성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흉노의 역사를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대륙 전체의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했으며, 유목민과 정착민 간의 관계를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분석했다.
구밀료프의 대초원 저작 가운데, 몽골제국사는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Поиски вымышленного царства』(1970년)로 영어책을 번역해서 국내에서 출판되었다. 이 책은 구밀료프의 저서로서는 국내에서 두 번째 번역서이다. 그러나 몽골 제국까지 이어진 흉노 민족에 대한 구밀료프가 첫 번째로 집필한 민족에 대한 역사서로서, 민족형성이론을 만들게 한 저서이다. 러시아어를 번역했고, 민족형성이론의 배경지식이 된 고고자료를 이해한 고고학자가 작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 리뷰
본고의 원문 『Хунну: Срединная Азия в древние времена(흉노: 고대 중앙아시아)』은 흉노, 투르크, 몽골을 다룬 구밀료프의 대초원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저서이고, 한국에 소개되는 구밀료프의 두 번째 작품이다. 영어를 번역한 몽골제국사를 다룬 저서는 국내에 이미 출판(상상의 왕국을 찾아서)되었다. 역자가 유라시아선사고고학을 전공하고 연구하기 때문에 원작에서 다루고 있는 흉노 형성에 배경이 된 고고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부족하지만 최신 자료를 담아서 해제로 설명했다.
몽골제국사를 다룬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Поиски вымышленного царства』(러시아원문)에서 예술적인 표현으로 인해서 역사서를 뛰어넘었다는 평가도 있었으나, 혹평도 따랐다. 번역서에도 구밀료프 특유의 문체 및 동서양을 넘는 참고문헌으로 인해서 많은 고민이 따랐는데, 되도록 가독성 높은 번역서가 되도록 했다.
중국역사서와 중국중심의 관점을 기반한 흉노연구와 본고는 차이점이 보인다. 하지만, 역자는 구밀료프의 관념과 역사연구관점을 전달하는 데 목적을 두었고, 그 내용에 충실하고자 했다. 원서는 1960년 출판된 이후, 구밀료프 사후에도 여러 번 출판되었고, 일부 내용이 고쳐졌다. 역자는 초판본이 구밀료프의 역사적 관점이 가장 잘 드러난다는 판단에서 이를 번역하고 해제하게 되었다.
구밀료프의 역사서술은 반유럽적이며 유라시아주의 세계관, 환경결정론, 민족형성이론을 담아서 서술한다. 그의 역사기술은 단순히 역사서에만 남아 있는 역사가의 관점에서 서술된 역사적 기술만이 아니라 전체를 파악하려고 했다. 그래서 모든 그가 쓴 책의 배경무대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배경이 크다. 고대 투르크역사 『древних тюрок』(1967년), 몽골제국사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Поиски вымышленного царства』(1970년)에도 같은 관점으로 집필되었다.
그는 민족형성은 지리적 환경, 사회경제적 발전 수준 및 기술장비뿐만 아니라 민족의 열정성 긴장이 그 배경이 된다고 여겼다. 열정적 긴장은 민족 집단 내의 열정가의 수, 일반인 및 준열정가의 비율에 의해 나타나고, 민족 형성의 순간은 열정가와 준열정가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생겨난다고 한다. 이때 ‘파시나르노스트, 즉 열정성은 개인이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데서 나타나는 활동과 이 목표를 위해 극단적인 노력과 희생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민족 내의 열정가의 수가 증가하고 감소하는 쇠퇴기에 따라서 민족의 흥망성쇠가 따른다고 보았다.
그는 민족형성이론을 통해서 특정 민족의 탄생이전-전성-쇠퇴를 설명하고자 했다. 그러한 이유에서 흉노가 역사서에 등장하기 이전의 모습을 찾기 위해 고고학 자료를 적극 활용했다. 시베리아 청동기문화인 주로 기원전 2000년기에 해당하는 글라스코보 문화, 안드로노보 문화, 카라수크 문화, 판석묘 문화 및 기원전 1000년기의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 가운데 파지리크 문화, 타가르 문화 등이다. 키셀레프, 오클라드니코프, 루덴코 등이 조사한 자료를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최신 기계 장비로 이루어지는 현재 사실과 약간 다른 점도 있지만, 고고문화의 특징 등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본문에서 이용된 고고학 문화에 대해서는 역자가 해제에서 최신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덧붙여 설명하였다.
흉노의 최대 전성기는 기원전 3세기경, 묵돌선우가 등장하면서이다. 강력한 유목제국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전개했고, 이때 중국과의 화친정책을 중심으로 흉노가 동아시아 주요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묵돌과 노상선우 이후 군신선우, 이지사선우 기간 동안 기원전 2세기 한 무제가 즉위하면서 중국이 부상하고 흉노의 이웃국가였던 중앙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외교를 하며 흉노와 경쟁했다. 구밀료프는 흉노와 중국 한의 경쟁을 교역을 위한 경쟁으로, 즉 무역전쟁으로 판단했다. 이에 따르면 흉노와 한 모두 자유무역을 위한 경쟁관계에서 크게 번영한 샘이 되는데, 서문을 쓰고 있는 오늘날과도 닮아 있어서 흥미롭다.
흉노가 다른 중앙아시아 민족과 달리 씨족부족이나 혈연중심이 아닌 ‘오르다(Орда)’라는 사회군사적 민주적 동맹체를 바탕으로 조직을 형성했던 것이 제국의 흥망을 가져온 원인으로 지목했다. ‘오르다’에서 전체 구성원의 모임에서 수장을 선출하며, 승인하는데, 이때 뽑힌 사람이 선우였고, 강력한 지도자가 뽑힐 때와 그렇지 못할 때 명암이 분명해서 불안정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인접한 중앙아시아 민족에서는 볼 수 없는 조직체였다.
흉노 쇠퇴기의 모습은 기원전 1세기부터 흉노의 내분으로 남과 북이 갈라지는 시점이다. 그 이후 남쪽의 흉노와 북쪽의 흉노가 서로 다른 길을 가며, 북쪽 흉노는 유럽으로 이동해서 훈(Huns)이 되었다는 설을 지지했다.
흉노 쇠퇴기의 촉발은 하려권거 선우의 후임을 선대 선우의 아내였던 전거연지(선대 선우의 아내)가 개입해서 선우 계승 질서를 무너뜨린 일이다. 즉 흉노 씨족 간의 민주주의 조직이었던 오르다가 무력화되면서, 선우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고, 선우가 난립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본고에는 언급되지 않았으나 부록에 실린 선우 계통도에서 전거연지가 여러 번 개입하는 일이 있었다. 구밀료프는 이를 일컬어 전거연지의 쿠데타라고 표현했다.
역자는 민주주의적인 정치체였던 ‘오르다’에 의해서 선출된 선우의 권위와 능력이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는 큰 원동력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려권거 선우 이후 호한야선우를 거치며 선우가 난립하게 된 것은 이를 반대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다.
두만선우 이전의 선우가 누군지는 알 수 없지만 시베리아 남부 청동기문화 및 초기철기시대 문화를 영위한 사람들일 것이다. 흉노 유물 가운데, 우윳빛 옥으로 제작된 ‘옥벽(표지사진의 중앙)’이 있다. 이 유물은 바이칼 지역의 후기구석기시대부터 발견되는데, 특히 본고에서 언급된 글라스코보 문화의 무덤에 매우 많이 부장되었다. 옥벽은 청동기시대를 거쳐서 흉노에서 다시 등장한다.
또한 청동솥 혹은 동복이라고 불리는 유물(표지 사진의 왼쪽)은 기원전 9세기부터 시작된 스키토-시베리아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가장 오래된 유물은 기원전 7세기경 투바 아르잔 2호 및 쿠반 지역의 켈레르메스 유적에도 있다. 또 청동솥은 흉노 이후에는 동북아시아 부여, 선비 등 여러 민족들이 사용한다. 이 외에도 서쪽으로는 헝가리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유물이다. 물론 크기와 재질 등은 변화하게 되지만 솥의 모양과 손잡이 등이 유지되며 ‘오리지널리티’를 유지하고 있다.
고고학 유적에는 많은 유물과 유적이 있는데, 그중에는 본질이 매우 오랫동안 보존되는 유물이나 특정 유구가 있는데, 민족의 고유성을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나올 수도 있지만, 보이지 않는 기간이 있는 유물도 있다. 마치 밈(meme) 현상과도 같다. 오늘날 20~30대 MZ세대들에게 빈티지 문화가 유행하는 것처럼, 중간에 단절된 기간이 있다고 하더라도 다시 등장해서 유행하게 되는 물건이 있다.
흉노 민족의 쇠퇴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시 묵돌선우, 무카카간, 칭기즈칸과 같은 열정가가 나타나서 유라시아 대륙이 통합되는 시점이 촉발되는 순간을 꿈꿔 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구밀료프
소련 및 러시아 지리학자, 역사학자, 고고학자, 동양학자, 철학자 이자 민족발생에 대한 열정성 이론(Пассионарная теория этногенеза, Passionary theory of ethnogenesis)의 창시자, 유라시아주의자이다. 시인 니콜라이 구밀료프와 안나 아흐마토바의 아들로, 1919년 아버지는 반혁명혐의로 처형되었다. 이 때문에 1938~1959년까지 4번에 걸쳐서 중앙아시아의 노릴스크, 카자흐스탄 등 여러 곳의 강제수용소에 투옥되었다. 이때 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민족성을 깨달게 되었고 그 뒤 역사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934년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역사학과에 입학했고, 흉노를 주제로 해서 박사학위논문심사를 받았다. 국가박사학위 논문주제는 투르크의 고대 역사 『древних тюрок』(1967년)이다. 몽골 제국사를 다룬 『상상의 왕국을 찾아서(Поиски вымышленного царства』(1970년)는 우리나라에도 번역출판되었다. 흉노, 투르크, 몽골 제국사를 통해 초원의 대제국에 대한 역사를 완성시켰다. 뿐만 아니라 볼가강 유적조사를 한 후 하자르 고고학에 대해서 『하자르의 발견(Открытие Хазарии)』(1966)에서 다루었다. 또한 그의 사상적 배경이 된 환경결정론과 민족형성론으로 두 번째 국가박사학위를 받았다.
목차
역자 서문
서론
I장. 시간의 안개 속에서
1. 고대 중국에서
2. 흉노의 탄생
3. 동부 대초원의 지리적 환경
4. 융과 흉노
5. 주(周)의 승리와 그 결과
II장. 대초원의 망명자
1. 흉노의 선사시대와 시베리아 고고학
2. 흉노의 형성
3. 시베리아의 발견과 문화적 혼합
4. 북쪽으로, 흉노의 진격
5. 흉노의 고대 이웃
III장. “모래 바다” 기슭에
1. 흉노의 첫 번째 중국 침입
2. 융과 중국인의 투쟁
3. 판석묘 문화
4. 흉노의 언어에 대한 견해
IV장. 대초원
1. 조나라와 흉노의 전쟁
2. 만리장성의 건설
3. 진(秦)과 흉노의 전쟁
4. 진의 몰락
5. 고대 중국의 역사서술 방법에 대하여
V장. 휘파람 소리 나는 화살: 명적(鳴鏑)
1. 묵돌(冒頓)선우와 흉노의 부상
2. 흉노와 한(漢)의 첫 번째 전쟁
3. 유목민 티베트인
4. 오손(烏孫)
5. 흉노의 국가 구조
6. 선우(單于)
7. 흉노의 귀족 가문
8. 흉노의 직위 체계
9. 흉노의 법률 제도
10. 흉노의 전사들
11. 흉노의 군대
12. 흉노의 수입원
13. 흉노 사회의 구조
VI장. 백성들에 대한 투치
1. 서쪽 국경 문제
2. 내부 정책
3. 중국과의 자유무역을 위한 전쟁
4. 동쪽 국경
5. 북쪽 국경
6. 흉노 국가 내 경제 공동체의 생활
7. 흉노의 종교
VII장. 드래곤의 부상
1. 흉노와 중국의 전쟁 재개
2. 흉노의 패배
3. 위청(衛靑)과 흉노의 전투
4. 중국 무기의 성공
5. 유럽의 발견
6. 서쪽의 가장자리
7. 한 무제와 그의 업적
VIII장. 천마(天馬)
1. 중국의 서쪽 진출
2. 아선우(兒單于)의 통치
3. 첫 번째 대완(大宛) 원정
4. 두 번째 대완(大宛) 원정
5. 쿠샨을 포위하다
6. 고된 전쟁의 결과
IX장. 죽을 때까지 싸워라
1. 실패한 음모
2. 이릉(李陵)의 항복
3. 흉노의 왕위 계승 변질
4. 연연산(燕然山) 전투
X장. 흉노 제국의 위기
1. 죽을 때까지 싸우다
2. 쇠퇴 직전의 흉노 사회
3. 올드-흉노 집단
4. 중국과의 전쟁
5. 오손과 중국, 흉노 사이의 삼각 외교
6. 흉노의 패배
XI장. 형제 대 형제
1. 전거연지의 쿠데타
2. 살육전쟁
3. 오손의 분열과 강거의 전쟁
4. 중국에 복종
5. 중앙아시아의 흉노
6. 탈라스 전투
7. 후기 정령(丁零)과 예니세이 키르기스인의 형성
XII장. 돌아온 자유
1. 동시대인의 시선으로 본 한 제국의 위상
2. 중국의 보호 아래 놓인 흉노
3. 왕망의 즉위와 이상주의적 개혁
4. 중국으로부터 흉노의 분리
5. 노용-올(Ноён-Уул)
6. 왕조의 변경
7. 적미의 부활과 왕망의 죽음
8. 한의 재건
XIII장. 분열
1. 흉노의 성공
2. 흉노 권력의 내분
3. 국가의 분리
4. 흉노의 약화
5. 강의 반란
6. 서역의 사건
7. 남흉노의 진화
8. 오르다의 형성 ―조직 민주주의
XIV장. 깨진 고리
1. 죽기 전에
2. 북흉노의 패배
3. 반초(班超)의 승리
4. 남흉노의 격변
5. 강(羌)의 정복
6. 북흉노의 부흥
7. 강의 반란
8. 중국의 서역 상실
XV장. 마지막 공격
1. 단석괴(檀石槐)
2. 흉노의 4지파
3. 흉노와 훈
민족명
편년표(기원전 16세기부터-서기 2세기까지)
흉노 계통도
역자 주 참고문헌
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