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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이훈
현재 한림대학교 국제문제연구소 연구교수국사편찬위원회와 동북아역사재단 수석연구위원 역임한일관계사학회 회장 역임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 졸업일본 츠쿠바(筑波)대학 대학원 역사인류학연구과 졸업(문학박사)전공은 조선시대 한일관계사로 「표류민?외교문서?통신사」를 소재로 다수의 논저발표- 저서『조선후기 표류민과 한일관계』(국학자료원, 2000)『대마도, 역사를 따라 걷다』(역사공간, 2005)『외교문서로 본 조선과 일본의 의사소통』(경인문화사, 2011)『조선의 통신사외교와 동아시아』(경인문화사, 2019)- 역서『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번역, 역사공간, 2008)
책머리에
제1장 1682년 임술통신사 파견과 적례외교의 정착
머리말
1. 17세기 후반 ‘오삼계의 난’ 평정과 조일간 외교현안 감소
2. 30년 만의 통신사외교 재개와 전례(前例)의 부각
1) 쇼군 츠나요시(德川綱吉)의 습직(1680) 축하 요청과 ‘구례’(舊例)
2) 조선의 통신사 파견 결정과 ‘구신’(舊信)
3. 절목강정 교섭과 의제의 감소
1) 문위역관의 쓰시마 파견과 절목강정
2) 막부의 닛코산(日光山) 치제 중지와 의제의 감소
4. 1682년 임술통신사의 파견과 왕복 국서로 본 적례(敵禮)외교
1) 숙종 국서의 ‘구호’(舊好)
2) 쇼군 츠나요시 답서의 ‘사의’
5. 임술통신사(윤지완)의 외교력 발휘와 ‘약조’ 체결, 그리고 실리
맺음말
제2장 1711년 신묘통신사행의 의례 변경과 대일본 안보?실리(實利)
머리말
1. 18세기 초 조청?조일관계의 안정과 관방(關防)
1) ‘오삼계의 난’ 이후 조?청관계의 안정과 북한산성 축조
2) 남변의 관방과 왜관 통제
2. 쇼군 이에노부(德川家宣)의 습직(1709)과 쓰시마 번의 ‘조위역관’(弔慰譯官) 활용 및 ‘來朝’
3. 일본의 통신사 요청과 일방적 의례변경의 조선 통보
1) 통신사청래차왜의 ‘래빙’(來聘) 요청과 진청조목(陳請條目)
2) 통신사호행차왜(1711.1)의 막부측 인사에 대한 조선측 예물 중지 요청과 동래부사 서계
4. 신묘통신사 출선 직전(1711.5) ‘復號’(日本國王 호) 요청과 예조참의 서계
5. 신묘통신사의 일본 체류 중(1711.6~11) 통신사 접대 의례 변경 요청
1) 에도 왕복 시의 ‘5소 로연’(5所路宴) 및 객관의 ‘계하영송’(階下迎送) 요구
2) ‘3度宴’ 등, 에도죠(江戶城)에서의 의례 변경
6. 신묘통신사 조태억 일행의 ‘국휘’(國諱) 논쟁 수습과 국서 개찬(改撰)
1) 에도죠(江戶城)의 ‘전명의’(傳命儀)와 국서(國書) 전달
2) 쇼군 회답서의 ‘범휘’(犯諱)와 조태억 일행의 대막부 교섭
3) 쓰시마에서 조일 양국의 개찬 국서(改撰 國書) 맞교환(1712.2)과 예조참의 서계
7. 신묘통신사행의 외교적 성과
1) 대일본 안보외교의 관철
2) ‘교간약조’ 체결과 조태억 일행의 막부 ‘직소’(直訴) 전략
맺음말
제3장 1719년 기해통신사행과 ‘구호’(舊好)의 실태 - 연이은 의례 변경과 대일본 안보의 재확인 -
머리말
1. 임란 이래 100년 만의 조일관계 안정에 대한 자각
2. 1718년 일본의 통신사 요청과 조선의 수용
3. 전례에 없는 쓰시마 번의 강정역관 구두(口頭) 요청과 교섭의 교착
4. 절목강정과 연이은 의례 변경
1) 절목강정 장소, ‘쓰시마’
2) 비종실 ‘고산케’ 쇼군 요시무네(德川吉宗)와 막부의 의례 변경
3) ‘大君’호 부활 등, 구례(1682) 복구
5. 1719년 기해통신사 파견과 국서 왕복
1) 통신사(홍치중) 일행의 일본 여정과 전명의(傳命儀)
2) 국서의 왕복과 ‘구호’의 함의
6. 통신사의 귀국과 대일본 안보의 재확인
7. 기해통신사행의 이모저모
1) 「自我書給節目」과 일본측 접대에 대한 항의
2) 통신사의 또 하나의 임무, 파선운명 건 교섭
맺음말
제4장 1748년 무진통신사행과 통신사외교의 동상이몽 - 적례외교의 관철과 통신사 회의론 대두 -
머리말
1. 영조대 대외관계의 안정과 대일 현안 감소
1) ‘조용한’ 대청외교와 안보
2) 150년 만의 조일관계 안정과 대일 현안 감소
2. 쇼군 이에시게(德川家重)의 습직(1745)과 30년 만의 통신사 요청
1) 막부의 정권 교체와 쓰시마 번(對馬藩)의 조선 통보
2) 재판차왜의 ‘관백 퇴휴 축하 서계’ 요청 시도
3) 1747년 ‘통신사청래차왜’의 통신사 파견 요청
3. 통신사 출선 직전까지 계속된 절목강정과 조선의 대응
1) ‘퇴휴 관백’(太大君, 전직 쇼군)에 대한 예물?배례 요청
2) 조선의 대응과 절목강정의 완성
4. 1748년 무진통신사(홍계희) 파견과 조일 양국 국서에 보이는 인식 차
1) 영조 국서의 ‘구호’와 외교상대로서의 ‘大君’(현직 쇼군) 고수
2) 쇼군 회답서에 통신사의 자발적 파견 부각
5. 통신사외교의 동상이몽
1) 대일본 안보외교의 퇴색과 통신사 회의론 대두, ‘來朝’ 비판
2) 쇼군가 3대(太大君?大君?儲君)에 대한 의례 요구와새로운 세습 쇼군가 부각
맺음말
제5장 1763년 계미통신사행과 통신사외교에 대한 피로
머리말
1. 120년에 걸친 동아시아의 안정과 통신사외교에 대한 피로
2. 쇼군 이에하루(德川家治)의 습직(1760)과 15년 만의 통신사 요청
3. 순조로운 절목강정과 전례
4. 1763년 계미통신사의 일본 파견과 왕복 국서의 ‘隣誼?舊好’
1) 영조의 3사 인견과 통신사외교에 대한 인식
2) 통신 정사 조엄(趙?)과 출선 지연 등, 험난한 일본 여정
3) 에도죠(江戶城)의 전명의(傳命儀)와 왕복 국서에 기재된 ‘隣誼?舊好’의 외교적 함의
5. 조엄 일행이 본 통신사외교의 실태
1) 접대의례의 간소화와 통신사외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
2) 쓰시마 번(對馬藩)의 통신사 호행 실태와 재정 궁핍
6. ‘최천종 피살 사건’과 조일 통교루트의 위기
맺음말
제6장 1811년 신미 역지통신(易地通信)과 교린의 퇴색
머리말
1. 50년 만의 통신사외교 재개와 ‘쓰시마 역지통신’ 교섭
1) 막부의 재정 악화와 ‘역지’(易地) 논의
2) 쇼군 이에나리(德川家齊)의 습직(1787)과 통신사 ‘연빙’(延聘) 요청
3) 쓰시마 역지통신(對馬 易地通信) 교섭과 200년 만의 신례(新例)
2. 통신사 절목강정 교섭과 ‘성폐’(省弊)
3. 1811년 신미통신사(김이교)의 쓰시마 ‘역지행례’와 왕복 국서의 ‘역지’
1) 4도연 및 전명의에서의 4배례 중지, 이와치요(岩千代)의 의례 대행
2) 조일 양국의 왕복 국서에 기재된 ‘역지’(易地)와 외교적 함의
4. 교린의 가치 퇴색과 조일 양국의 실리 추구
1) 조선의 외교의례 비용 축소와 기사약조
2) 쓰시마 번의 재정 확보 기회
맺음말
종장 | 통신사 파견으로 본 조용한 외교와 국서
보론 | 「이양선의 출몰과 교린외교의 종언」
- 19세기 중엽 오사카?쓰시마 역지통신(易地通信) 교섭으로 끝난 통신사외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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