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주변의 사물과 인연을 향한 세밀한 관찰로 평범한 삶 속 깊은 사유를 길어 올린 조귀순의 첫 수필집이다. 『자유문학』 등단 후 부천작가회의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해 온 저자는 가족사와 이웃, 자연과의 교감을 맑고 절제된 문체로 풀어낸다.
총 5부 구성으로 이름과 뿌리, 사물과 성찰, 고향과 글쓰기, 가족 관계의 변화, 타인의 고통과 생명 존엄을 다룬다. 일상의 사소한 풍경에서 삶의 지혜를 발견하는 글들은 진솔한 기록이자 세대와 시간을 잇는 성찰의 문장으로 읽힌다.
출판사 리뷰
진한 삶의 감동과 젊은 감각의 문장이 공존, 절제미까지 갖춘 조귀순 수필집
계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고 부천문화원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부천작가회의 편집위원장인 조귀순 수필가가 첫 수필집 『여치와 사담』을 출간했다.
조귀순 수필가는 주변의 사물과 인연을 향한 세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평범한 삶 속에 숨겨진 깊은 사유와 성찰을 맑은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자신의 이름에 얽힌 개인적 추억부터 가족사, 이웃의 모습, 그리고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진솔하게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오랜 망설임 끝에 꺼내놓은 글들이 독자에게 작은 울림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따뜻한 진심이 돋보인다.
첫 수필집 『여치와 사담』은 작가가 일상의 사소한 풍경과 사물에서 길어올린 생각의 조각들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자신의 정체성, 그리고 사물을 통해 깨달은 인생의 지혜를 총 5부에 걸쳐 풀어내고 있다.
제1부 ‘나는 귀순이다’에는 자신의 이름과 가족의 역사, 그리고 자신의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자신의 이름인 ‘귀순’이 “귀하게 대접받고 순하게 크라”는 뜻으로 지어졌음을 깨달으며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는 이야기다. 한국전쟁 당시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의 고통과 인내를 담은 「되탕」, 어머니의 부엌살림인 살강에 얽힌 속정과 설움을 다룬 「살강에 모다기모다기」 등은 개인의 서사를 시대적 배경과 연결하고 있다.
제2부 ‘여치와 사담’에는 주변의 사물이나 우연한 만남을 통해 삶의 깊은 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적 태도가 돋보인다. 도마, 잉어, 구두와 같은 평범한 소재에서 어머니의 생애나 타인의 고독을 발견하며 이를 따뜻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어머니의 닳아버린 도마를 태우며 그 삶의 결을 추억하는 「도마, 한 사람을 다듬는 시간」, 죽음에 대해 여치와 가상대화를 나누는 표제작 「여치와 사담」 등을 읽을 수 있다.
제3부 ‘주문(酒文) 자작’에는 작가의 고향 포천에 대한 그리움과 수필가로서 글을 쓰는 태도에 집중한다. 고향 포천과 현재 살고 있는 부천 등 삶의 터전이었던 장소들에 얽힌 변화와 추억을 기록하고 글쓰기를 술을 빚거나 옹기를 굽는 과정에 비유하고 있다. 고향 가는 길목의 효심 깃든 전설을 담은 「축석고개」, 현대화 과정에서 사라져가는 공간들을 기록한 「부천역에서」, 그리고 자신만의 진정성 있는 글을 굽고자 하는 의지를 담은 「글 굽기」를 만날 수 있다.
제4부 ‘김소이양’에는 어머니, 아내, 시어머니로서 겪는 관계의 변화와 그 속에서 얻은 깨달음을 다루고 있다. 자녀의 결혼을 앞둔 부모의 마음, 제사나 이사 같은 가정사의 변화를 통해 고정관념을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들의 여자 친구 이름으로 오해하며 벌어진 유쾌한 에피소드인 「김소이양」, 오래된 제기를 처분하며 전통에 얽매였던 마음의 상(像)을 버리는 「상(像)을 버리다」 등을 통해 성숙해가는 내면의 모습을 보여준다.
제5부 ‘나의 올리버 색스’에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과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있다. 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처럼 병이 아닌 사람을 보려 노력하며 소외된 이들이나 늙어가는 생명들에 대한 애잔함과 경의를 표한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의 여성성을 지켜드리고 싶어하는 「거울 속의 여자」, 시각장애 어르신의 자서전을 대필하며 느낀 삶의 무게를 담은 「유주, 빛을 향한 가지」 등이 수록되어 있다.
민충환 전 부천대 교수는 “예전의 기억이 회상되며 ‘글이 곧 사람’이라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겉포장만 요란한 글이 난무하는 요즈음 꾸밈 하나 없이 순수 소박한 글이 주는 진정성에 매료되어 오래도록 헤어나지 못했다”고 했으며, 동료 조성현 수필가는 “조귀순의 수필에는 지나온 삶의 진한 감동과 젊은 감각이 조화롭게 공존한다. 과거의 서사는 현재의 상황과 만나 재해석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다. 글이 늘어지지 않고 살아 숨쉬는 이유”라면서 또 “절제미는 조귀순 수필의 특징이다. 아울러 그의 글은 자신의 주장이 적정선을 웃돌지도 밑돌지도 않아 마치 계영배와 같다”는 추천사를 남겼다.
밤새 물기 마른 그릇들을 어머니는 살강 안에 모다기모다기 엎어놓았다. 아버지 생전에 쓰셨던 밥주발과 국대접은 따로 깊숙이 넣었다. 밥주발의 복(福), 국대접에 수(壽)라 새겨진 글자가 마치 기도문처럼 보인다. 아버지의 고봉밥을 푸면서 복과 명을 얼마나 빌었던 걸까. 청색 글씨가 희끄무레하게 바랬다.
어머니에게 부엌이란 어떤 곳이었을까. 손님을 편하게 맞아들인 사랑방이었을까. 마음을 치유하는 쉼터였을까. 대청마루에서는 들리지 않던 어머니 목소리가 그곳에선 소통의 중심이 되었다. 나물을 무치고 녹두 부침개를 노릇하게 지져내던 들기름 냄새가 배어 있다. 손맛을 통해 한 사람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곳이다. 한 구비 돌아설 때 겪은 설움을 혼자 삭이던 쓸쓸한 모습도 그 안에 담겼다. 어머니의 삼동서가 나누던 이야기는 아릿하면서도 정이 물씬 들어 있다. 이웃 아주머니들과 밥을 썩썩 비벼먹으며 가까운 사이가 되고 웃음은 아궁이를 통해 굴뚝으로 빠져나갔다. 없는 살림에서도 고루 음식을 담아낸 그릇들 안엔 넉넉한 마음과 어머니의 속정이 숨을 쉬고 있었다.
― 「살강에 모다기모다기」 중에서
어머니의 도마는 내 도마와 살아온 결이 다르다. 내 것이 하루하루의 짧은 기록이었다면, 어머니 것은 삶 그 자체였다. 정월 초하루에 먹을 가래떡을 썰면서 온 가족의 기원으로 새 나이테를 만들었다. 두부를 만들 땐 보자기에 싼 두부 위에 도마를 얹고 그 위에 물동이를 올렸다. 두부가 단단해지도록 눌러놓을 때 어머니 마음 귀퉁이를 눌렀다. 내가 썰고 다듬으며 식구의 하루를 차렸다면, 어머니는 지극한 품을 다보록하게 담아냈다. 칼질 소리가 가벼운 날보다 둔탁할 때가 더 많았을 테다. 잉태와 유산, 한숨과 환희의 땀방울이 깊이 스며 있다.
불꽃이 도마 옆으로 퍼졌다. 마지막 길 떠나는 이를 예의 갖춰 배웅하듯이 빙 둘러 에워쌌다. 어머니와 나는 아궁이 앞에 앉았다. 둘 다 아무 말 없이 타들어가는 모습만 지켜보았다. 도마는 두툼하고 단단해서 장작불에 쉽게 동요되지 않았다. 모서리만 그을리다 불꽃이 붙을 듯 오르다 말다를 반복했다. 마치 꽃상여를 맨 상여꾼들이 서너 발 가다 뒤로 한 발 물렀다 가는 모양새였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걸까. 아직 더 내주고 싶은 것이 남은 건가. 그러다 어느 순간 속삭이다 결단을 내린 듯이 타올랐다.
― 「도마, 한 사람을 다듬는 시간」 중에서
나의 글은 고향 마을 시냇물에서 찰박거리는 수준이다. 음악이나 미술 지식도 짧다. 그러나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듯 한 줄씩 써나가다보면 내 글단지도 채워지지 않을까. 평생 가마를 구운 아저씨도 매번 좋은 그릇만 내놓은 건 아니다. 만들다 부수기도 했다. 굽다 보면 금이 가고 이가 빠지고 깨진 옹기가 수두룩이 나왔다. 구워낸 그릇이 다 상품은 아니었다. 불 속에서 다져져야 그릇다운 그릇이 된다.
정통 가마에서 구운 옹기는 백 년이 흘러도 숨을 쉰다고 한다. 그 안에서 발효된 간장 된장은 오랜 세월 고유의 깊은 맛을 품고 있다. 삶의 경험과 추억을 그려낸 내 글이 비록 눈에 잘 띄는 글은 아니어도, 숨 쉬는 옹기처럼 오래도록 진한 맛이 우러나는, 나만의 진정성이 담긴 글을 굽고 싶다.
“글은 소품이든 대작이든 머리가 있고 꼬리가 있는 생명체이기를 요구하는 것”이란 이태준의 「문장강화」 글귀를 되새기며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는다.
― 「글 굽기」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조귀순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났다. 계간 『자유문학』으로 등단하고 부천문화원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다. 부천수필가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에세이스트』 이사, 부천작가회의 편집위원장, 부천수필회원이다.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을 2020, 2023년 2회 수상했다.
목차
작가의 말 | 작은 울림으로· 4
제1부 나는 귀순이다
되탕‥11 | 수세미 보살‥16 | 살강에 모다기모다기‥20
십 원‥24 | 배냇저고리‥28 | 세일링, 그리고 달‥32
미신(迷信)을 미신(美噺)으로‥37 | 나는 귀순이다‥42
제2부 여치와 사담
도마, 한 사람을 다듬는 시간‥49 | 가을 귀동냥‥54
그 여자를 찾다가 남자를 만났다‥59 | 잉어‥63
여치와 사담‥68 | 구두에서 딩동 소리가 보여‥73
산세베리아‥77 | 잘 살았나봅니다‥81
제3부 주문(酒文) 자작
축석고개‥89 | 피자 한 쪽‥94 | 주문(酒文) 자작‥98
부천역에서‥102 | 풋콩‥114 | 글 굽기‥117
남편의 바람을 잡았다‥122 | 코끼리의 변‥126
제4부 김소이양
김소이양‥133 | 상(像)을 버리다‥138 | 뷰 좋은 집‥142
절구질하는 여인들‥147 | 색을 입는 사람‥151 | 오 프로‥155
아주버님 제삿날‥159 | 마음에 건 액자 하나‥164
제5부 나의 올리버 색스
호둘기‥171 | 거울 속의 여자‥175 | 나의 올리버 색스‥179
귀공자 냄새‥183 | 피아노 치는 여자‥188
고독은 그렇게 말을 걸었다‥193 | 청담동 소나무‥200
유주, 빛을 향한 가지‥205 | 바쁘다 콩‥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