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김동인의 소설이다.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내게 되었다. 김동인은 근대적 문학 기법을 도입해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는 사실주의 소설을 정착시킨 작가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현실 속에서 인간의 내면과 사고의 왜곡, 욕망과 자기합리화를 냉정하게 포착해 왔다. 특히 「광염 소나타」는 예술과 도덕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천재적인 음악가가 예술적 완성을 위해 살인마저 정당화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 본성의 잔혹함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김동인의 소설은 사회를 직접 고발하기보다, 개인의 선택과 심리 속에 스며든 시대의 그림자를 보여준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연민의 대상이기보다 관찰의 대상이며, 그 냉정한 시선은 독자에게 불편함과 동시에 깊은 사유를 남긴다. 이러한 서사는 한국 근대문학이 현대문학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인간 내면을 중심에 두는 문학적 전환점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개화기를 기점으로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이 나뉘듯, 김동인의 작품은 개인의 정체성, 소외, 인간의 조건이라는 현대적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담고 있다. 과거의 현대문학을 읽는 일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마주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국 문학의 중요한 출발점에서, 지금도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김동인의 세계를 다시 만날 수 있는 단편선이다.
출판사 리뷰
현대 문학은 정체성, 소외, 인간의 조건과 같은 복잡한
주제와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게 특징이다.
김동인은 한국 근대소설에서 단편이라는 형식을 본격적으로 정착시킨 작가로 인간을 미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냉정한 시선을 끝까지 유지한 인물이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선하거나 악하다고 단정되지 않으며 욕망과 허위, 자기기만 속에서 스스로 무너져 간다. 김동인은 사회 비판보다 인간 심리의 해부에 가까운 접근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독자에게 불편함과 긴 여운을 동시에 남겼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읽고 난 뒤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생각으로 계속 이어지는 특징을 가진다.
광염 소나타 - 천재적인 음악적 재능을 지닌 인물이 예술적 완성을 위해 점점 극단적인 선택을 정당화해 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는 살인마저도 자신의 음악 세계를 완성하기 위한 재료로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한다. 아름다움과 잔혹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서사는 예술과 도덕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김동인의 인간관과 예술관이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난 대표작이다.
명문 - 겉으로는 존경받는 가문이지만 내부에서는 계산과 위선이 지배하는 모습을 통해 사회적 체면의 허구를 드러낸다. 인물들은 가문의 명성을 지키기 위해 도덕보다 이해관계를 우선시하며 서로를 이용한다. 품위와 전통이라는 말 뒤에 숨은 인간의 속물성을 차갑게 보여준다. 김동인은 이 작품을 통해 명예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허울로 변하는지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K박사의 연구 - 학문과 이성에 대한 집착이 인간성을 잠식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연구라는 명분 아래 주인공은 점점 윤리적 기준을 잃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냉철해 보이던 지식인의 태도는 결국 비인간적인 선택으로 이어진다. 이 작품은 지식이 인간을 고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어떤 날 밤 -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밤의 사건을 통해 인간 내면의 불안과 공포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사소한 계기에서 시작된 의심은 점점 커지며 인물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현실과 상상이 뒤섞이며 심리적 긴장이 극대화된다. 김동인의 심리 묘사가 가장 날카롭게 빛나는 작품 중 하나다.
무능력자의 아내 - 무능한 남편과 그를 감싸 안고 살아가는 아내의 삶을 통해 가정 안의 왜곡된 책임 구조를 보여준다. 아내의 헌신은 미덕처럼 보이지만 점차 개인의 삶을 소진시키는 굴레로 변한다. 연민과 불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관계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이 작품은 희생이라는 말의 이면을 조용히 드러낸다.
사기사 - 사기꾼이라는 인물을 통해 인간 욕망과 기만의 구조를 탐색한다. 속이는 자와 속는 자의 관계는 단순한 선악 구도가 아니라 이해와 욕망의 교차로 그려진다. 사기는 범죄이면서 동시에 일상적인 선택처럼 묘사된다. 김동인은 이를 통해 도덕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보여준다.
벗기운 대금업자 - 돈을 중심으로 얽힌 인간관계의 적나라한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대금업자는 탐욕의 화신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물로 제시된다. 인물들은 돈 앞에서 존엄과 감정을 서서히 내려놓는다. 김동인의 냉소적 사회 인식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안 돌아오는 사자 - 떠난 인물이 끝내 돌아오지 않으면서 남겨진 이들의 심리가 붕괴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기다림은 희망이 아니라 점점 불안과 공포로 변한다. 부재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인물들을 압박한다. 조용하지만 깊은 허무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독자는 이제 내가 쓰려는 이야기를, 유럽의 어떤 곳에 생긴 일이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혹은 사십 오십 년 뒤에 조선을 무대로 생겨날 이야기라고 생각하여도 좋다. 다만, 이 지구상의 어떠한 곳에 이러한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가능성뿐은 있다. 이만치 알아두면 그만이다.
그런지라, 내가 여기 쓰려는 이야기의 주인공 되는 백성수(白性洙)를 혹은 알벨트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짐이라 생각하여도 좋을 것이요 또는 호모(胡某)나 기무라모(木村某)로 생각하여도 괜찮다. 다만 사람이라 하는 동물을 주인공삼아 가지고 사람의 세상에서 생겨난 일인 줄만 알면.
이러한 전제로써, 자 그러면 내 이야기를 시작하자.
--- “광염 소나타” 중에서
어떤 날(여름일세) 박사는 책을 보고 있고 나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같이 앉았노라는데 박사가 머리를 번듯이 들더니,
“자네, 똥 좀 퍼 오게.”
하데 그려. 이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겠나. 그래서 똥이란 대변이냐고 물었더니, 대변 아닌 똥도 있느냐고 그래. 그래서 무슨 검사라도 할 일이 있는가 하고,
“뉘 변을 말씀이외까?”
했더니 벌컥 성을 내면서 뉘 똥이든 퍼오라데 그려. 너무 어망처망하여 가만있었지. 글쎄(의사는 아니지만) 검사라도 할 양이면 뉘 변이든 지적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박사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노라니깐 채근도 없어. 흥, 잊었구나 하고 다시 앉으려 하니까,
"퍼 왔나?”
--- “K박사의 연구” 중에서
기차는 떠났다.
어두컴컴한 가운데로 사라지는 평양 정거장이며 한 떼씩 몰려서있는 전송인들의 물결을 내다보고 있던 영숙이는 몸을 덜컥하니 교자 위에 내던졌다. 그리고 왼편 손을 들어서 곁에 앉아 있는 어린딸 옥순이의 머리를 쓸었다.
“옥순아, 집에 도로 가고 싶지 않니?”
옥순이는 무엇이라 입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기차의 덜걱거리는 소리에 옥순이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깐 옥순이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던 영숙이는 어린 딸을 위하여 공기침에 바람을 넣어서 잘 준비를 하였다. 그리고 옥순이를 눕혀놓은 뒤에 자기는 교자 한편 끝에 바짝 붙어 앉아서 머리를 창에 의지하고 눈을 감았다.
--- “무능력자의 아내”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김동인
평양 진석동에서 출생했다. 평양숭덕소학교와 숭실중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 학원, 메이지 학원, 가와바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전영택, 주요한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문예지 [창조]를 발간하였다. 처녀작 「약한 자의 슬픔」을 시작으로 「목숨」, 「배따라기」, 「감자」, 「광염 소나타」, 「발가락이 닮았다」, 「광화사」 등의 단편소설을 통하여 간결하고 현대적인 문체로 문장 혁신에 공헌하였다.1923년 첫 창작집 『목숨』을 출판하였고, 1930년 장편소설 『젊은 그들』 「광염 소나타」, 1932년 「발가락이 닮았다」, 「붉은 산」을 발표했다. 극심한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소설 쓰기에 전념하다 마약 중독에 걸려 병마에 시달리던 중 1939년 ‘성전 종군 작가’로 황국 위문을 떠났으나 1942년 불경죄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48년 장편 역사소설 『을지문덕』과 단편 「망국인기」를 집필하던 중 생활고와 뇌막염, 동맥경화로 병석에 누우며 중단하고 1951년 6·25 전쟁 중에 숙환으로 서울 하왕십리동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목차
서문
| 1장 | 광염 소나타
| 2장 | 명문
| 3장 | K박사의 연구
| 4장 | 어떤날 밤
| 5장 | 무능력자의 아내
| 6장 | 사기사
| 7장 | 벗기운 대금업자
| 8장 | 안 돌아오는 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