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오랜 세월 흑해는 세계의 ‘끝’이었다
그러나 흑해는 언제나 역사가 ‘시작’되고 세계가 ‘연결’되는 바다였다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을 넘어
마침내 복원한 흑해 세계의 실체역사를 바라볼 때 우리의 시선은 주로 ‘육지’에 머무른다. 이때 육지는 ‘민족’과 ‘국민국가’를 경계로 나뉘며, 그 조각들의 만남은 대개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는 전쟁과 정복의 역사로 채워진다. 동유럽과 유라시아 지역을 연구해온 국제학 전문가 찰스 킹은 이러한 역사 서술의 접근법을 거부하고, ‘바다’를 역사의 전면에 내세운다. ‘흑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서구인들에게 흑해는 오랜 세월 문명과 기독교 세계, 유럽의 동쪽 끝, 다시 말해 ‘세계의 끝’으로 불리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야만, 이슬람, 아시아가 도사리고 있다고 여겨졌다. 이는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역작 『그리스와 튀르키예의 서방 문제』에서 서구인이 흑해와 동지중해를 바라볼 때 범한다고 지적한 잘못된 이분법 세 가지, 즉 기독교와 이슬람, 유럽과 아시아,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이다. 하지만 이런 정신적 지도는 분명 근대에 이르러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냉전을 거치며 흑해 세계는 소련의 영향권에 속하는 현실 사회주의 국가들로 채워진 ‘동유럽’과 동일시되었고, 그 결과 냉전의 이분법이라는 또 하나의 이분법이 덧씌워졌다. 이러한 이분법들 속에서 흑해 세계의 실체는 역사 속에 파묻혀버리고 말았다. 『흑해』는 이 같은 이분법들이 가리고 있는 흑해의 다채로운 역사와 문화, 정치를 하나로 엮어내고, 역사의 지층 속에 잠들어 있는 깊고 풍부한 흑해 세계의 실체를 복원한다.
이 책은 한때 의미 있는 지리적 공간으로 존재했을지도 모를 장소가 수 세기에 걸쳐 어떻게 점진적으로 해체됐는지, 바다를 가로지르는 인간관계의 연결망이 유럽과 유라시아의 정치적, 경제적, 전략적 환경 변화와 보조를 맞춰 어떻게 형성되고 사라지고 다시 형성됐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지리적 고고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대한 실험이다. 그 목적은 20세기 후반 공산주의와 탈공산주의의 얇은 지층 아래 묻혀 있던 잊힌 관계망과 정교한 인간관계를 발굴하는 것이다. 이 작업의 중심에는 바다가 자리한다.―129~130쪽
찰스 킹은 독창적인 구성을 통해 흑해 역사의 중층성을 드러낸다. 저자의 방법론을 개괄하는 1장을 지나, 흑해의 연대기를 이루는 2장부터 6장까지 각 장의 제목은 당대 흑해 지역을 지배한 세력의 언어들로 구성된다. 2장의 ‘폰투스 에욱시누스Pontus Euxinus’는 라틴어로 ‘환대하는 바다’를 의미한다. 기원전 700년부터 기원후 500년까지를 다루는 2장은 그리스 식민 도시들이 흑해 연안으로 뻗어나가 스키타이인과 교류하고, 이윽고 로마가 진출한 고대를 다룬다. 3장의 ‘마레 마조레Mare Maggiore’는 이탈리아어로 ‘큰 바다’를 뜻한다. 이 장은 500~1500년에 걸쳐 비잔티움제국과 제노바·베네치아 상인들이 활약하던 중세 시대를 조명한다. 4장의 ‘카라 데니즈Kara Deniz’는 튀르크어로 ‘검은 또는 어두운 바다’라는 뜻이다. 4장은 오스만제국이 흑해를 사실상 내해로 장악하고 노예 무역이 번성하던 1500~1700년의 시기를 서술한다. 5장의 ‘초르노예 모레Chernoe More’는 마찬가지로 ‘검은 바다’를 의미하는 러시아어이다. 5장은 러시아제국이 남진 정책을 통해 오스만을 밀어내고 흑해의 새로운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1700~1860년의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6장에 이르러 우리에게 익숙한 영어 단어인 ‘흑해Black Sea’가 등장한다. 6장에서는 증기선과 철도, 석유와 밀 수출로 국제화한 근대화 시기부터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 소련 해체까지를 포괄한다. 책은 탈냉전 이후 흑해의 미래를 전망하는 7장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이처럼 ‘흑해’를 지칭해온 여러 언어들로 차례를 구성한 것은, 그 자체로 흑해가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공간이 아니었고, 시대마다 서로 다른 다양한 문명권의 중심 무대였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 책이 쓰인 2004년 이후, 흑해 세계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거쳐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소용돌이로 치달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러시아와 그 인접 지역을 공부하고, 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지역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는 등 장기간에 걸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옮긴이는 이 책 출간 이후, 현시점 흑해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정학적 충돌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옮긴이의 말」을 통해 세밀하게 서술한다. 이로써 『흑해』는 흑해의 과거뿐 아니라 오늘, 바로 이 순간까지 망라한다.
경계와 변방에서 세계사의 핵심으로,
2700년에 이르는 흑해 세계의 전체사를 쓰다찰스 킹의 『흑해』는 흑해 세계의 2700년 역사를 아우르는 최초의 포괄적 역사서이다. 『흑해』의 독창성은 연대기적으로 ‘흑해’의 전 역사를 아우른다는 점뿐만 아니라, 흑해 세계를 구성해온 다양한 종족·집단들, 문화, 도시, 경제, 자연(바다, 강, 산, 평야, 산, 강)과 그들의 역할을 총체적으로 다룬다는 데 있다. 특히 저자는 흑해를 ‘문명 충돌의 경계선’이 아니라 종교 공동체, 언어 집단, 제국과 국가, 도시들을 연결하는 ‘다리’로 재해석함으로써, 페르낭 브로델의 지중해 연구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지역사 방법론을 성공적으로 적용했다. 방대한 사료와 폭넓은 연구에 기초하여 지리, 군사·정치사, 경제와 무역, 인구, 종교, 문화 그리고 이들 각각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저자는 이 모두를 유머와 통찰이 어우러진 유연한 서술로 한데 엮어낸다.
이러한 흑해의 전체사를 쓰기 위해서, 저자는 특히 세 가지 개념을 강조한다. 첫째, ‘지역region’이다. 저자는 지역이란 범주가 어떻게 구분하고 경계 짓든 본질적으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지역에서 중요한 점은 실상 ‘구분’이 아닌 ‘연결’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흑해 세계는 오랫동안 사람과 사물, 사상이 종횡무진 이동하고, 서로 협력하면서도 갈등을 빚는 인간관계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총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각 지역들은 정적으로 고정된 경계보다는 역동적으로 이동하고 교류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의해 규정된다.
어떤 넓은 지리적 단위를 다른 것과 구별해주는 본질적 특성들을 찾아내려고 하는 순간, 그런 특성들은 실망스럽게도 덧없어 보이기 시작한다. 근본적으로 지역은, 개인이나 민족이나 국가와 같은 그 지역의 구성 요소가 공유할지도 모르는 언어나 문화, 종교, 기타 특성들의 공통점에 관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역은 연결에 관한 것이다. 즉, 한 공간을 다른 공간과 구분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공동체들 사이의 깊고 지속적인 연결 고리에 관한 것이다.―32쪽
둘째, ‘변경frontier’이다. 변경은 ‘경계boundary’가 아니다. 제국이나 국가들 사이의 변경은 다양한 집단과 공동체가 자리해온 거점이자, 지역과 지역,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오간 경계 횡단자들의 주 무대가 된 공간이다.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해안과 내륙의 인간 집단·공동체들은 끊임없이 접촉하고 교류했다. 그 가운데 사람들은 확고한 정체성을 고집하기보다는 종교, 언어, 풍습 등 사회생활의 여러 영역에서 문화와 정체성이 뒤섞이고, 하나의 복잡한 그물망을 이루며 살아갔다.
주의가 필요한 또 다른 용어는 ‘변경’이다. 내륙 아시아 역사학자 오언 래티모어는 변경이 경계와 다르다고 말한 적이 있다. 경계는 정치적 권력의 의도된 한계, 즉 국가나 제국이 특정 지리적 공간에 자신의 의지를 행사할 수 있는 가장 먼 범위를 나타낸다. 변경은 경계의 양쪽에 존재하는 구역이다. 변경은 독특한 경계 횡단자들의 공동체가 거주하는 곳으로, 이들의 삶과 생계는 정치체 간의 물리적 경계뿐만 아니라 민족, 종교, 언어 집단 간의 사회적 경계를 넘나드는 데 전문가가 되는 것에 달려 있다.―35쪽
셋째, ‘민족nation’이다. 근대에 이르러 역사는 ‘민족’이라는 관념에 속박되었다. 즉, 같은 언어·문화·역사를 공유하고, 한 장소에 뿌리내린 채 살아왔으며, 공동체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정체성이라 가정되는 민족은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민족과 민족에 토대를 둔 국민국가가 근대에 접어들며 처음 등장하고, 이후 인간 사회와 국제 정치에 대한 우리의 상식으로 뿌리내린 과정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이 때문에 저자는 민족이라는 관념이 등장하여 꽃을 피운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까지는 의도적으로 민족이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민족과 국민국가, 그리고 그것에 바탕한 역사라는 현재의 뿌리 깊은 편견을 먼 과거에 투영하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노력이다.
민족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언제나 목소리들을 침묵시키는 일이다. 이는 사람들 주위에 경계선을 긋고, 인간 공동체 사이의 연결 고리를 잘라내며, 복잡한 과거에 순수한 정체성과 불변의 경계라는 윤곽을 투영하는 작업을 수반한다. 사람들의 실제 생활과 문화는 대개 소음으로 가득하고, 때로는 합창 같기도 하며, 때로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독창은 거의 없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과거로부터 들려오는 그런 조용한 목소리 중 일부에 귀를 기울여보자고 요청한다.―41~42쪽
민족과 국민국가 신화가 지운 역사를 발굴하고
21세기 지정학적 충돌을 이해하는 참조점
‘방법으로서의 흑해’민족과 국민국가를 둘러싼 신화가 사상누각이라는 사실은 흑해의 역사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아도 여실히 드러난다. 흑해 세계에는 오늘날과 같은 ‘민족’들의 경계와 ‘국민국가’들의 경계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가 숱하게 존재했다. 가령 이곳에는 후에 ‘그리스인’으로 분류됐지만 그리스어 대신 튀르키예어로만 말하거나, 튀르키예어가 아닌 그리스어나 슬라브어를 가장 편하게 사용하는 그리스 출신 무슬림이 공존했다. 이는 다양한 세력이 교차하고 상호 침투하는 흑해 세계의 오랜 역사에서 비롯한 자연스러운 삶의 양상이었다.
그러나 민족과 국민국가가 탄생하는 역사적 과정, 구체적으로는 국경 전쟁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전후 질서를 확립하는 정치적 협상과 조약의 결과 불분명한 민족적 특성을 기준으로 대규모의 강제 이주와 인구 교환, 추방과 학살이 자행되었다. 이 같은 역사의 희생자들을 마주하고, 역사의 지층 아래 잠들어 있는 흑해 세계의 실체를 대면하는 일은 단일 민족 신화와 고정된 국경 안에서의 국민국가 개념이 강고한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특히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흑해의 역사는 민족과 국민국가의 신화를 넘어 여러 집단과 언어, 종교가 끊임없이 뒤섞이고, 지리적·정치적 경계가 요동치며, 정체성이 중첩되는 역사의 진면목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더욱이 흑해 지역은 에너지와 식량, 안보 등을 매개로 국제 정치·경제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무엇보다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우리에게도 더 이상 먼 곳이 아니게 되었다. 현재 이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민족과 국민국가의 신화를 벗어나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 냉전과 탈냉전을 거쳐 오늘에 이른 흑해 세계의 지정학과 그 역사적 연원을 오롯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에너지 정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곡물 및 원자재 공급사슬의 변동, 전장을 테스트베드로 한 전쟁 기술 실험까지, 이 모든 일들이 흑해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 사태의 배경을 단순히 러시아의 야욕이나 서방의 확장 정책, 그리고 그들 간의 대결로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지역이 품고 있는 수천 년에 걸친 역사적 복잡성을 놓치게 된다.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의 집착, 튀르키예의 중재자 역할, 조지아와 루마니아의 전략적 선택, 이 모든 것은 역사적 맥락 없이는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흑해』는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현대의 민족 분쟁과 에너지·환경 정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동체와 집단, 종교, 제국, 그리고 후대의 국가들을 연결하며 흑해가 어떻게 ‘경계’가 아닌 ‘가교’ 역할을 해왔는지 무수히 많은 연결 고리들을 탐구한다. 이런 점에서 흑해의 역사에 주목하는 것은 비단 세계사의 하위 분야, 지역별 항목을 한 가지 더 추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흑해의 역사를 탐구하는 것은 민족과 국민국가의 신화를 넘어서 역사와 세계를 바라보는 인식의 지평을 확장시키며, 단순한 진영 논리를 넘어 21세기 지정학의 핵심을 파악하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육지가 아닌 바다에 주목할 때 보이는 인간의 역사역사와 사회 연구에는 육지 중심의 편견이 깊이 뿌리박혀 있다. 우리는 역사와 사회생활이 땅 위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 예컨대 바다를 항해하거나 강을 타고 내려가는 여정은 단지 배우들이 목적지에 도착해서 펼칠 진짜 연기를 위한 무대 장치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대양과 바다, 강들은 단순히 통로나 경계가 아니라 인간의 상호작용과 교류라는 독특한 이야기들의 핵심 주역으로서 자기만의 역사가 있다. (……) 우리의 지리적 시선을 토지에서 수역으로 옮기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지역’이나 ‘민족’ 같은 명칭과, 우리가 세상을 분할하는 방식에서 이런 안이한 범주가 지닌 특권적 역할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또한 장소의 의미 자체에 관해, 그 의미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여러 민족과 문명 사이에 그어놓은 지적 경계선들이 생각보다 얼마나 훨씬 더 자의적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1장 장소의 고고학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 속 대홍수의 원형을 찾아서만약 홍수 이론이 맞다면(물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바다의 탄생을 목격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옛 호수를 둘러싸고 있던 신석기 공동체에 미친 영향을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물이 밀려오면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은 호숫가를 떠나 유럽과 근동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흑해의 형성은 대단히 파국적이고 기억에 남을 만한 사건이어서, 민간전승 형태로 근동 사람들의 구전 전통에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바다가 형성된 지 약 5,000년이 지난 후 디오도로스 시켈로스가 발견했듯이, 그리스어로 말하는 세계의 사람들은 여전히 홍수가 가져온 재앙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와 성경의 창세기에 담긴 더욱 오래된 홍수 이야기도 흑해의 수위 상승에서 기원했을 수 있다. 물론 대홍수 이야기는 많은 문화권에 존재하는데, 특히 저지대 농업 지역의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계절적인 하천의 범람에 의존하는 문화권에서 그렇다. 게다가 이런 홍수 신화가 반드시 단일한 실제 대재앙에서 비롯됐다고 믿을 이유도 없다. 그러나 만약 분노한 신의 진노에서 비롯된 재앙의 원형을 찾고 있다면, 흑해의 기원이 아마 좋은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장 장소의 고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