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10세기 초 천년왕국 신라도 그 생명력이 다하자 사회가 붕괴되면서 수많은 이탈자들이 생겨났고,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 또한 멸망의 순간이 닥치면서 대규모의 유민들이 발생했다. 이 같은 경계인(marginal men)들은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삶을 살아가야 했다.
누군가는 정착할 터전을 찾아 부단히 경계선을 넘나들었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환경에서 2등 국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차별받아야 했으며, 혹 어떤 이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갔고, 그리고 어떤 이는 그저 자유롭게 떠도는 삶을 선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들이 있었기에 고려와 발해를 잇는 연결고리가 가능했다.
경계인들을 내재화하기 위한 노력 덕분에 결과적으로 고려는 건국 이후 수많은 외침을 견뎌냈고, 또한 발해까지 포함하여 삼한통일을 이룬 국가로 역사에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렇게 경계선에 걸쳐 있던 중간자적 존재들의 사라진 역사를 되찾아 줄 차례이다.
출판사 리뷰
고려 태조 왕건의 가문은 설화에 따르면 북방 출신으로 옛 고구려 영토에서 기인하였다. 왕건 자신도 발해유민의 망명을 적극 수용하고 나아가 평양을 기반으로 북진을 준비한 인물이었다. 후삼국 최고의 무인 유검필은 역사상 특이하게도 북방민족 기병대를 휘하에 거느리고 고려의 통일전쟁에서 활약하였다. 유학생 출신의 어떤 고려인은 발해유민의 대거란 항쟁에 직접 무기를 들고 함께 뛰어들기도 했다. 또 발해유민은 독립운동을 벌일 때 다름 아닌 고려에 손을 내밀었고, 실패하였을 때에도 고민 없이 고려를 선택하였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민족 집단을 거느리고 고려에 정착하였고, 또 어떤 이는 아예 북으로 발해와의 옛 국경선을 넘어갔다.
어느 쪽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거나 양쪽 사이에 그저 옅은 색채로 존재하던 사람들. 우리는 이들을 경계인(marginal men)이라고 부른다. 온갖 사유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후삼국시대 말미의 유랑민들부터 조국을 잃어버린 발해의 유민들까지, 디아스포라를 겪게 된 이들은 자연스럽게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운이 좋다면 어딘가에 소속되어 사회 구성원으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나갈 수도 있었지만, 모든 이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것은 또 아니었다. 정복자 거란의 피지배를 받은 이들은 끝까지 발해인이라는 낙인을 달고 살아야 했고, 또 신생국 고려에 합류한 이들도 어찌 보면 국방을 위한 전쟁 도구로 활용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들이 자신이 속한 사회에 녹아들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차츰 경계인들은 각자의 터전을 마련하고 자신의 삶을 찾아 정착해 나갔다. 거란이 되었든 이후 여진이 되었든 혹은 가까운 고려가 되었든, 능력 있는 이라면 정부에 참여하여 공직을 맡거나 군사 지휘관이 되기도 하고, 점차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그들이 속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갔다. 그런 식으로 고려 안에서도 차츰 출신이 흐릿해지면서 어느새 고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고려인만 남게 되었을 때 비로소 경계인은 소멸한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우재훈
한평생 배움의 길을 가면서 25년 동안 약 7천 권의 책을 사고 또 그 이상 읽고 있는 활자 중독자이자 애서가.그 사이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하고 또 번역하여 세상에 내놓았고, 역사의 이면에 있는 편린들을 모아두는 블로그(historyteller.kr)에서 매주 길지 않은 역사 이야기를 쓰고 있는 전문 작가.특히나 오랜 역사 마니아로 동북아시아의 고대부터 중세까지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며, 심지어 역사를 더 깊이 있게 깨우치기 위해 여러 언어를 동시에 배우고 있는 평생의 학인.끝으로, 인생의 절반은 사회가 원하는 대로 살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스스로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는, 글 쓰는 게 곧 인생의 낙이자 취미인 조기 은퇴자.
목차
프롤로그: 고려인 강전의 미스터리
1장. 남북국시대 말의 위기
2장. 왕건 가문의 수수께끼
서경 프로젝트
거란 이슈
3장. 유검필 집안의 비하인드 스토리
동시대의 경계인들
4장. 강윤부터 강조까지, 강씨 일가의 비밀
강윤과 강전 부자
강조의 정변
5장. 발해유민들의 운명
정안국 그리고 올야
고려로 온 발해유민들
대연림과 흥요국
최후의 발해인
에필로그: 경계인의 소멸
참고문헌 및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