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시인이자 수필가,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정정옥 시인이 네 번째 시집 『숨겨진 달항아리』(작가마을)을 펴냈다. 이번에 펴낸 시집의 표지화는 시인의 작품으로 붉은 말띠해인 병오년(丙午年)을 출발하는 의미를 담았다.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따뜻한 가족애와 불교적 정신세계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열어 보이고 있다. ‘벚꽃 바람처럼 밟고 가신 어머니’와 ‘장독대 뒤 자목련 나무 아래 숨겨진 달항아리 속/몰래 익은 보리 동동주’를 아버지에게 건네는 어머니 사랑을 기억한다. 또 코로나로 119로 실려 간 시어머니를 걱정하거나 ‘소금 같은 친구’를 ‘형제’라 부르거나 이웃의 다정함을 그린 ‘초장교회가 있는 우리 동네’ 등 시집 전편을 어우르는 것은 ‘사랑’이다. 크게는 가족이고 가까이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시인의 정서를 깊게 담고 있다.
이번 시집의 또 하나의 중심세계는 시인의 종교적 신념인 불교적 세계다. 연등을 달거나 관음전에 피어나는 꽃을 바라보는 일이며 염주와 묵주를 가슴에 품고 있는 시인의 정서는 진흙 고랑에서도 향기 나는 꽃을 피우는 연꽃이나 다름없다. 어쩌면 시인은 혼탁한 이 세상의 연꽃을 자처하는지도 모르겟다. 그 궁금증은 이 시집을 읽는 독자들이 가늠할 일이다.대보름날정월 대보름날이다용이 승천하는 날인지달님이 오시는 길목에 진보라 구름이 가득 메우고 있다 모래사장에 세워진 파란 측백나무 달맞이 집 너도나도 달 기다림의 기린 목이 된다 철썩철썩 파도만이 모래사장을 왔다 갔다모래성 만들어놓고 바람 앞에 촛불 가물 가물거린다붉은 횃불들 달집 속으로 들어간다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환호 소리와 불똥 티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송도 모래사장을 깍 메우고 있다남항대교를 타는 저 불빛들 갈매기도 함께 음률을 탄다봉래산이 품은 수많은 벌집 같은 창틈 사이로 쏟아내는 빛들 달은 숨어있어도 오늘따라 더 찬란하다 숨은 달의 축복 속에 자갈치 선창가에 고깃배 순산하는 소리 용두산 공원 저 높은 탑 부여잡고 색동저고리 갈아 입는다
벚나무에게 남긴 메시지남포동에서 서구청을 지나서 충무동 새 길을가끔 걸어서 다닌다대청갤러리 질러가는 길목송도 앞바다 자갈치 어선 바람과 합치는 바람은초장동 옛 색시들 치맛바람인가 까부라지게 진하다 잘나지도 않고 멋진 것도 아닌 앙상한 나무 한 그루 아래 잠시 발걸음 멈추던 곳 가파른 숨을 고르고 쉬었다 간 그 자리에접 벚꽃이 숭얼숭얼 겹겹이 피었다 목 고개가 떨어지게 쳐다보고 또 쳐다보다 그냥 두면 밤사이 바람이 다 삼킬 것 같았다 스마트 폰 속에 사방으로 가득 담았다자정이 지났을까 쌩쌩 윙윙 바람이 창문을 몸서리치게 흔들고 있다꽃잎 떨어져 훨훨 날아다니는 소리가 창문을 흔들고 있다오후 한 시에 그곳을 갔다 떨어진 꽃잎마저 다 쓸어가고 어제 보던 벚나무는 온데간데없고 쓸쓸하게 꽃잎과의 이별을 하고 이파리 몇 개와 아직 피지 않은 몇 송이만 나부끼고 있다 스마트폰 갤러리를 열어 보여줬다나무야 네가 어제는 이렇게 아름다웠다 눈부시게 우아하였다너무 슬퍼하지 마라 조금만 기다려라 초록이파리가 너를 감싸 줄 거냐 사진 속 벚꽃잎에 입 맞추고 어제는 너의 우아한 모습 쳐다보다가 내 목 고개가 많이 아팠다오늘은 아픈 너를 위해 고개 숙인다
아버지가 마시던 와인햇볕이 뜨거운 칠월 초여름 누렇게 익은 보리 수염밭두렁과 논두렁마다 눕혀지고큰 마을 마당에는 타작할 논밭이 산더미만큼 쌓였다도리깨 내리치는 아버지의 얼굴엔 ㅤㄲㅜㄺ은 땀방울 도랑물이 되고 삼배 적삼은 등 뒤에 소금이 허옇게 그림을 그려 놓고 파도를 친다어머니가 주시는 와인 한 바가지 아버지의 얼굴에땀을 녹이는 소리 꿀떡꿀떡 목을 적시면 소금기 녹으면할머니 긴 담뱃대에서 품어 나오는 하얀 연기 부여잡고호랑나비 날아들고 연못에 잉어 떼들 목을 내밀다아버지가 마시던 와인은 진달래꽃도 머루꽃도 아닌장독대 뒤 자목련 나무 아래 숨겨진 달항아리 속몰래 익은 동동주 우리 집 와인 어머니의 사랑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정옥
시인. 2010년 《삶터문학》 시, 2012년 《시와수필》 수필로 등단했다. 부산여류시인협회 회장, 부산중구문인협회 부회장, 부산문인협회, 부산시인협회, 부산국제펜문학, 부산불교문인협회 이사를 역임했다. 부산문학상, 실상문학상, 부산문학인협회 아카데미 본상, 부산국제펜문학 작품상 등을 받았으며 (사)국제명인협회 시낭송 명인, 시사위문화예술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 『햇살 하나 대나무 끝에 걸어놓고』. 『관음전에 동이 튼다』. 『덕분에』가 있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가슴이 그랬다
너에게 가는 마음
달맞이꽃
대보름날
바람아
벚꽃 바람 밟고 떠나신 어머니
벚나무에게 남긴 메시지
별들의 만남
북두칠성 바라보며 놀던 밤
돌아 돌아서 왔던 곳
솔직한 것에 대하여
숨어 우는 바람
아버지가 마시던 와인
아키다의 출산
어느 대학생의 정복
울타리 위에 피는 꽃이 된다
야옹이가 화났다
저것은 바람의 소리
전시회 첫날
하얀 접시꽃
행복 나무
제2부
보고 싶은 사람
봄의 향기는 진하다
가을이 남기고 간 흔적 위에
나무의 삶
라일락꽃이 피던
목단화 피는 초행길
바다가 보이지 않은
봉래산 위에 뜬 달
아름다운 인연
산북도로
어머니 오늘은 어느 딸이 보고 싶어요
엄마
어머니의 반지
어머니 가시는 그곳은 어디셔요
시어머니와 찍은 사진 마지막이 아니길
우리는 성모 앞에 서 있다
친구의 근황
어머니의 슬픈 기억 속 이야기
진심
제사가 줄어들다
친구
무심한 세월아
초장교회가 있는 동네
제3부
만다라 꽃
연등에 이름 달고
감로사의 향기
관음과 함께
관음전에서 피는 꽃
금강경 독경 삼천 일 회향의 의미
금어사의 뜰
염주와 묵주
문을 찾아서 화두를 찾아서
가족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들
부처님은 중생의 세탁기 인가요
삼봉사의 가을
설날 아침
중생이
원으로 가는 길
진정한 불심이면 한다
이름을 개명하다
화두 하나 풀어놓고
제4부
개망초 피는 들녘
겨울이 오면
결혼 예식장
그의 어머니를 위한 기도
고향의 향수
김장
꿈만 먹다 만 세월
연보라 꽃피던 시절
단디 해라
모심던 날
숨기고 싶지 않은 마음
반성합니다
사진
완벽한 성격은 본인 자신이 힘들다
의사의 존재
임에게
먼저 떠난다던 사랑이
사랑 너 못다 쓰고 가는 세월
정 주지도 받지도 마라
한가위가 이틀 남았는데
저 소리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소리
남과 북의 운명
위대한 대한민국 청년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