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나는 다나의 딸이지만 다나와 같은 짐승은 아니다.” 사람과 같은 모습이나 사람은 아닌 짐승, 다나에게서 태어나 인간에게 길러진 이종의 존재를 주인공으로,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경계와 낙인을 집요하게 드러낸다. 박서영의 첫 장편소설로, 「윈드밀」로 제16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꾸준히 펼쳐 온 현실을 낯설게 조명하는 상상력이 집약되었다.
멸종 위기종이자 전염병의 매개체, 보호와 착취가 동시에 작동하는 다나의 서사를 따라 정부와 언론, 벌목과 이주, 여성 혐오와 차별의 구조를 가로지른다. 반인반수의 시선은 ‘문제적 존재’를 규정하는 인간의 질서를 되묻고, 인류세적 현실 속 권력과 폭력의 논리를 냉정하게 해부한다.
출판사 리뷰
“나는 다나의 딸이지만 다나와 같은 짐승은 아니다.”
멸종 위기종이자 전염병의 매개체,
사람과 같은 모습이나 사람은 아닌 짐승
다나에게서 태어나 사람에게 길러진
이종의 존재가 품은 이물 같은 사랑
박서영 장편소설 『다나』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2017년 단편소설 「윈드밀」로 제16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서영 작가의 첫 책이다. 현금 지급기 안에 갇힌 옛 애인(「우천 시 다이빙」), 피부가 돌처럼 굳어 가는 언니(「나경」), 약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도시 괴담 같은 부작용의 변비를 달고 사는 수험생(「매달리는 인간」) 등 박서영은 실존적 상태를 실체적 사건으로 경험하는 인물들을 통해 현실을 낯설게 조명하는 소설적 상상력을 꾸준히 펼쳐 왔다. 박서영의 첫 장편소설 『다나』는 가상의 짐승 ‘다나’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수’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는다. 말 그대로 혼종적인 존재인 ‘나’의 시선으로 지금 우리 사회를 가로지르는 무수한 경계들을 한눈에 드러내는 작품이다.
‘다나’는 존재 자체만으로 문제적인 짐승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발견된 신비로운 열대 섬에서만 서식하던 ‘다나’는 처음 인간과 똑같은 외모로 섬 원주민이라 여겨졌으나, 여러 실험을 거친 결과 ‘사람은 아닌 것’으로 판정된 동물이다. 이후 인간 세계로 옮겨온 ‘다나’는 멸종 위기에 처한 ‘보호종’이자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희귀 전시 동물’인 동시에 야생에서는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소나무등벌레병’을 옮기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침입종’으로 규정된다. 국토의 70퍼센트가 산이고, 산의 대부분이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한반도에서 ‘다나’는 그 자체로 끔찍한 재난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다. 소설은 한국에 존재하는 단 한 마리의 ‘다나’인 ‘나’의 엄마가 동물원을 탈출하는 순간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시절 ‘다나’로부터 벗어나 인간의 손에 길러진 ‘나’는 숲을 파괴하고 질서를 교란하는 엄마를 직접 찾아 죽이기로 결심한다.
소설은 ‘다나’를 좇는 ‘나’의 시선으로 한반도 곳곳을 깊숙이 파고든다. ‘다나’의 존재를 재난이라 선포하고 방제 대책을 실행하는 정부와 지자체, 정보를 자극적으로 연출해 실어 나르는 언론, 그에 따라 숲속 나무를 베는 벌목꾼들, 이들을 둘러싼 시골 마을의 쇠락해 가는 풍경, 곳곳에서 마주치는 이주민들의 얼굴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단 하나의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생명체가 존재 자체만으로 ‘문제’가 될 수 있을까? 그 질문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시작되어 여성과 ‘암컷’을 동일시하는 여성 혐오적 인식을, 정착민과 이주민을 가르는 차별을, 감염인을 향한 낙인을 향해 뻗어 나간다. ‘문제적 존재’를 넘어 ‘문제’를 규정하는 인간의 질서, 보호하는 동시에 착취하는 권력과 통제의 논리를 날카롭게 드러낸다.
■ 별종 혹은 침입종 ― 낙인 찍힌 자의 자리
“다나가 사람과 다른 부분이라며 귀하게 만지던 목덜미의 털. 나는 어른이 되고부터 2주에 한 번씩 목덜미의 털을 깎았다.”(73쪽)
서른 살의 ‘나’는 인간 여성과 똑같은 외피로 ‘다나’ 정체성을 감추고 살아가는 숨겨진 ‘침입종’이다. ‘다나’의 특징인 목뒤 수북한 털을 주기적으로 면도해 제거하고, 어눌한 발음을 숨기기 위해 대화를 피한다. 그럼에도 ‘나’는 여지없이 ‘별종’으로 취급받는다. ‘나’가 속한 벌목꾼 집단에서 유일한 여성이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이유 없이 따라붙는 못마땅한 눈길을, 여자가 왜 이 일을 하냐는 질문을, 음흉하고 여성 혐오적인 농담을 침묵으로 버틴다.
『다나』가 보여 주는 차별적 경계와 낙인은 그 무엇보다 표면적이다. ‘다나’의 목뒤에 난 털이나 여성의 신체처럼, 숨길 수도 도망칠 수도 없는 표면으로부터 시작되어 끈질기게 들러붙는 차별적 낙인은 작은 시골 마을 곳곳에서 살아가는 이주민에게서도 발견된다. 싼값에 부려지다가도 이유 없이 배제당하는 이주 노동자들, 공공연히 상품으로 취급받는 결혼 이주 여성들에게서. 외모를 아무리 비슷하게 바꿔도 결코 인간과 같아질 수 없는 ‘나’의 발음처럼 ‘다름’은 금세 다른 방식으로 드러난다. 『다나』는 ‘별종’과 ‘침입종’이라는 낙인 너머 보이는 사회적 가장자리를, 차별의 작동 방식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 언어와 총 ― 인간의 방식
“나는 지금부터 가장 사람다운 방식으로 죽일 것이다. 무엇을? 산을 좀먹는 짐승 한 마리를.”(126쪽)
‘나’가 ‘다나’ 사냥 계획을 세우며 택한 단 하나의 무기는 바로 ‘총’이다. 총은 가장 인간적인 방식으로 비인간을 통제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자연 상태에서는 볼품없는 신체적 능력을 가진 인간도 총을 들고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단숨에 거대한 짐승을 쓰러뜨릴 수 있다. 자연이 정한 힘의 위계를 거스르는 총은 “수백 년 역사의 탄도학”이 집약된 문명의 결정체, 그 자체다.
『다나』에서 ‘언어’는 총과 같다. 언어야말로 인간에게 무한한 힘을 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다나’를 과학적으로 낱낱이 해부할 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는 상품으로 탈바꿈시켰다. 겉으로 언제나 침묵하는 ‘나’의 내면은 인간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신화와 상징, 역사와 과학을 넘나들며 자신이 속한 사회적 맥락을 체화하고, 숨겨진 과거와 미래를 예측할 때는 소설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또한 ‘다나’를 규정하는 모든 언어를 낱낱이 이해한다. 마치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지혜와 자유를 마음껏 누리겠다는 듯이. 총과 언어. 이 모든 인간적 도구를 총동원해 ‘나’는 엄마를 처단하기 위해, 자기 안의 절반의 ‘다나’를 죽이고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 “가장 사람다운 방식”을 택한다. 짐승에게는 없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엄마의 죄를 대신 ‘속죄’하며.
■ 돌봄과 착취 ― 폭력의 논리
“오염도나 굽은 정도에 따라 각기 다른 운명이 주어진다. 어떤 나무는 목재가 되지만 어떤 나무는 펄프 정도에 그치고 만다. 그걸 결정하는 건 나다.” (35쪽)
키우던 손에 의해 팔리는 가축처럼, ‘돌보는 손’과 ‘착취하는 손’은 같을 수 있다. 『다나』는 그 사실을 거듭 변주하며 우리에게 보여 준다. ‘다나’에게 먹이를 주고 소통 방식을 가르쳐 주었던 사육사는 ‘다나’를 성적으로 착취한 후에 유기하고, ‘나’를 안전하게 품어 주었던 ‘다나’는 ‘나’를 손쉽게 통제하기 위해 손발톱을 뽑는다. 숲을 돌보는 ‘나’는 상품성이 없는 나무를 가차 없이 벤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동물은 동물원에 속할 땐 환영받는 ‘전시 상품’이지만, 그곳을 벗어나는 순간 ‘유해 동물’로 지정되어 허가받은 ‘사냥감’이 된다. 어떤 존재들은 ‘사유재산’에 속해 있을 때만 안전을 허락받는다.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즉시 총구가 겨누어질 것이다.
절반의 ‘다나’이자 절반의 ‘인간’으로서 인간이기를 택한 ‘나’는 인간의 논리에 따라 나무를 베고, 개에게 목줄을 매며, ‘다나’와 ‘소나무등벌레병’을 박멸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러한 ‘나’의 ‘인간 되기’는 바로 그 인간의 방식에 의해 처참히 실패한다. ‘다나’도 ‘인간’도 아니게 된 그 순간, ‘나’는 ‘이종’의 존재가 되어 이 세계를 다시 바라본다. 예고된 폐허의 풍경을 기다리면서.
■ ‘작품 해설’에서
‘나’가 겪는 존재론적 위기는 기존의 언어와 윤리로는 포착하지 못했던 인류세적 현실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감각으로 사유할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세계의 끝, 폐허에서 새로운 생존과 관계망이 시작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 이 소설은 한국 사회의 개발주의, 민족주의적 자연관, 이주와 외래종에 대한 공포, 동물권과 성폭력, 산림 정책과 비정규 노동 등 다양한 층위를 관통하는 인류세적 문제의식을 하나의 서사 공간 안에 밀집시킨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했다.’는 도덕적 비난과 판단에 갇히지 않으면서도 그러한 파괴의 구체적인 현장들을 두루 살피는 균형 감각. 그리고 그 파괴의 현장을 살아가는 취약한 몸들의 경험과 감각을 세밀하게 복원하는 섬세함. 그러면서도 인류세를 살아가는 다양한 종들의 얽힘과 파열이 던지는 복잡한 질문을 마주하는 냉철함. 관념적인 차원에서건 실제적인 차원에서건 세계 붕괴와 폐허를 목도하고 있는 우리가 지금 『다나』를 읽어야 하는 이유다.
―심진경(문학평론가)
경북의 한 동물원에서 동물 한 마리가 탈출했다. 나는 뉴스를 듣자마자 그 동물이 내 엄마라는 걸 알았다.
라디오를 진행하는 여자 아나운서가 탈출한 동물종의 이름을 발음했다. 다나. 그 구간에서 내가 탄 트럭의 타이어가 과속방지턱을 밟았다. 둥근 언덕을 지나며 사륜구동 트럭의 좌석이 붕 떠올랐다가 가라앉았다. 30년 만의 두 번째 탈출이라는 설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섬에 새로운 인간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러자 다나들이 하나둘 죽어 나갔다. 대륙인을 타고 온 병원균이 원인이었다. 지구에서 오직 다나섬에만 존재하는 신비로운 짐승의 개체 수가 빠르게 줄어들자 세계 여러 국가는 조바심을 내며 다나 수입에 나섰다. 주로 암컷을 포획했다. 수컷보다 폭력적이지 않고 약해서였다. 다나들은 작은 상자에 갇힌 채 선박에 실려 여러 나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내 엄마는 한국으로 들어온 한 마리의 다나였다.
나를 수식하는 건 나무 벌목이라는 생계 수단과 서른이라는 애매한 나이, 그리고 여자라는 성별이다. 하얀 피부와 주근깨투성이인 얼굴, 150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키, 누리끼리한 손발톱……. 이것만으로도 남들과 구분되는데 어눌한 발음까지 그대로 드러내면 내가 짐승의 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기분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저 숫기 없이 나무 베는 여자로 각인되고 싶다. 이것이 사람 집단에 동화되기 위한 나의 최선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서영
2017년 단편소설 「윈드밀」로 제16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목차
1부 7
2부 39
3부 89
4부 159
작가의 말 214
작품 해설_ 심진경(문학평론가)
인류세적 인간학에 대한 문학 보고서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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