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여성을 제외한 역사가 가능한가?”라는 강한 의문이 제기된 지 30년, 그럼에도 “여성사가 한국사를 보는 ‘관점과 방법’으로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가”란 문제의식을 가진 신진 사학자 7인이 ‘여성, 역사하다’를 기획했다. 관점의 편향성과 서술의 평면성이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행위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 여성사를 시도했고, 시대와 공간, 사회구조와 제도에 속박된 여성들이 어떠한 전략으로 자기표현을 수립하고 실천했는지를 추적한 글들을 묶었다.
시리즈 2권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에는 자아실현의 욕망, 권력욕, 명예욕 등 여성들의 욕망을 다룬 세 편의 글이 실렸다. 고려 의종의 둘째 딸 안정궁주와 악공 가영의 사건,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의 저주 사건, 함양 박씨·향랑·덴동어미의 사례를 통해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전략과 실제 성취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하며 여성들의 주체성을 복원한다.
몇 줄, 혹은 기껏해야 몇 쪽 되지 않는 사료의 행간을 읽고 상류층 남성과 가부장적 국가의 기록에 담기지 않은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한 작업이다. 남성의 시선을 답습해 조선 후기 열녀의 행적을 분석해 왔던 기성 역사학의 시선을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체제가 허용한 것을 영리하게 활용하기도 하고 때로 체제의 한계에 도전하기도 했던 여성들의 삶을 새롭게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신진 사학자 7인의 유쾌한 도발
“여성을 제외한 한국사가 가능한가?”
우연찮게 탄생한 ‘여성, 역사하다’
이 시리즈는 2024년 초 몇몇 여성 사학자들이 우연찮게 모여 ‘수다’를 떤 끝에 기획되었다. “여성을 제외한 역사가 가능한가?”라는 강한 의문이 제기된 지 30년, 그럼에도 “여성사가 한국사를 보는 ‘관점과 방법’으로 제대로 녹아들어 있는가”란 문제의식을 가진 사학자들이었다. 이들은 한국사의 대부분 기간에 절대다수의 여성이 문맹이었기에 사료에 구속되기 마련인 역사학자들은 여성의 목소리를 직접 듣지 못한 채, 남성과 가부장적 국가라는 틀 속에서 여성들을 조명하는 한계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이에 따라 필자들은, 관점의 편향성과 서술의 평면성이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여성의 행위 주체성에 초점을 맞춘 여성사를 시도했다. 그 결과 시대와 공간, 사회구조와 제도에 속박된 여성들이 각자 어떠한 전략을 가지고 어떠한 행위를 했는지, 자기표현의 전략을 어떻게 수립하고 실천했는지를 추적한 9편의 글이 4권의 책으로 묶여 선보이게 되었다. ‘여성, 00하다’의 탄생이다.
낯선 여성들, “딱딱하고 무거운 역사책은 가라”
시리즈에는 고려시대 절부(節婦)에서 20세기 식모, 커리어우먼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모두 역사의 ‘주역’이라기엔 거리가 있는, 낯선 인물들이다. 하지만, 지은이들은 몇 줄, 혹은 기껏해야 몇 쪽 되지 않는 사료를 뒤져내 그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인 끝에 옛 여성들의 기억, 욕망, 분투, 노동을 온전히 되살려냈다. 사료의 행간을 읽고 사실의 균열 지점을 섬세하게 추적해서 상류층 남성과 가부장적 국가의 기록에 담기지 않은/못한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고자 한 이들의 노력은 그 자체로 값지다. 여기에 때로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때로는 주인공의 독백처럼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허구적 서술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역사학자의 글은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다는 편견에서 벗어나 독자들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지려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녀들의 목소리를 소환하여 좀 더 쉽게 널리 전달하고 싶다는 소망을 반영한 성과이다.
공주의 외도, 궁중의 저주 그리고 수절의 진실
시리즈 2권 《여자, 기어이 욕망하다》에는 자아실현의 욕망, 권력욕, 명예욕 등 여성들의 욕망을 다룬 세 편의 글이 실렸다. 욕망을 성취하기 위한 전략과 실제 성취 과정을 치밀하게 추적함으로써, 여성들의 주체성을 복원했다.
황향주의 〈여자, 바람피다〉는 고려 의종의 둘째 딸 안정궁주가 천한 신분의 악공 가영과 통정한 사건을 추적하는데 고려 왕실의 근친혼 배경 등 체제와 관습을 조명함으로써 ‘간통’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이 과정에서 숙종의 막내 딸 복령궁주의 묘지명 중 “비록 왕녀였음에도 오히려 부인의 도리를 고집하였다”는 구절의 행간에서 고려 왕실 여성들의 실태를 읽어내기도 한다.
이민정의 〈여자, 저주하다〉는 조선 후기 인조의 후궁 조 귀인이 정치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무속의 저주라는 양날의 검을 활용했던 사례를 분석한다. 그녀에 대한 악녀화가 젠더화된 구조에서 양산된 클리셰임을 지적하며, 남성의 전유물이던 조선의 정치 지형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욕망을 실현하고자 한 조 귀인의 삶을 재평가한다.
장지연의 〈여자, 수절하다〉는 조선 후기 합방도 못한 채 먼저 떠난 남편의 대상을 마친 날 자결한 함양 박씨, 정절을 지키려 자살한 향랑과 네 번 결혼한 끝에 “좋은 일도 그뿐이오, 그른 일도 그뿐이라”고 달관한 ‘덴동어미’의 사례를 들어 사대부들이 이를 어떻게 보았는지 살피면서 하층 여성들의 자살은 성폭력이 만연하고 자기결정권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저항이라 짚어낸다. 이와 함께 하층 여성들의 명예욕과 계산속을 신분이라는 조건과 교차 검토함으로써 사대부 남성의 열녀 담론에 균열을 내고, 남성들의 시선을 답습해 조선 후기 열녀의 행적을 분석해 왔던 기성 역사학의 시선을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이 시리즈는 ‘오로지 여성 사학자들에 의해 쓰인 여성사’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여성’을 넘어선다. 2권의 경우, 인간으로서 당연히 지닌 여성의 욕망이 그간의 역사 서술에서 소홀히 다뤄졌음을 일깨워주는 덕분이다. 여기에 여성의 욕망에 투영된 시대상을 읽노라면 체제가 허용한 것을 영리하게 활용하기도 하고 때로 체제의 한계에 도전하기도 했던 여성들의 삶이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12세기 말, 고려의 황도 개경을 뒤흔든 스캔들이 벌어졌다. 이른바 안정궁주 간통 사건이다. 의종의 둘째 딸 안정궁주가 당시 천한 신분으로 취급되던 악공樂工과 세기의 간통을 저지른 것이다.
안정궁주의 남편 함녕백 박, 그의 본명은 왕박이다. 이름에서 짐작되듯 왕씨 성을 가진 고려의 종친이었다. 함녕백은 ‘함녕(현 경남 고령)에 봉작된 백작’을 의미한다.
왕박의 형 신안후는 인종의 사위였다. 인종은 안정궁주의 아버지인 의종과 명종, 그리고 신안후의 부인 창락궁주를 포함하여 총 5남 4녀를 두었다. 즉 신안후는 왕박의 형이자 처고모부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왕박의 동생 연평공은 그의 ‘손위’ 동서였다. 연평공의 부인 경덕궁주가 의종의 첫째 딸이었고, 안정궁주는 그다음이었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장지연
대전대학교 역사문화학 전공교수. 전근대 궁궐, 도성 등의 물리적 공간에서 정치와 사상을 읽어 내는 작업을 하며, 문자와 언어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하였다. 공간, 언어, 젠더 등 다양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이념과 현장의 교섭 방식에 주목하며 이를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을 읽는 법, 단》,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경복궁 시대를 세우다》 등이 있다.
지은이 : 황향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BK조교수. 권력의 원천, 권력을 작동시키고 영속시키는 메커니즘에 관심을 갖고 전근대 왕실을 연구해 왔다. 특정 시기와 지역의 권력구조는 그 사회의 젠더 문제와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음을 깨닫고 젠더사로 연구 영역을 확장하는 중이다. 대표적인 연구로 〈10~13세기 고려 왕실의 구조와 편제〉, 《고려 역사상의 탐색》(공저), 〈고려 전·중기 왕실 여성의 편제와 그 특성: ‘주主’계열 칭호의 존재 배경과 활용 방식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지은이 : 이민정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객원 연구원. 조선 후기 국가론을 주요 연구 테마로 하여 17세기 이후 관료들의 구체적 정책 논의 속에서의 국가운영론, 유학 경전과 역사서에 등장하는 국가론의 이념적 기반에 대한 담론을 사상적으로 검토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로는 《영·정조대의 국가운영론》(공저), 〈효종 대 ‘有爲之志’의 정치사상적 의미〉, 〈영조 대 五家統法 시행과 국가의 지방통치 성격〉, 〈농암 류수원의 戶 政論 연구〉, 〈17세기 ‘事功’ 추구의 경세적 의미〉 등이 있다.
목차
⚫기획의 변
⚫들어가며
여자, 바람피다
12세기 경성 스캔들
족보가 꼬였다
고려의 이상적 부마상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콧대 높은 왕녀 그녀와 그의 속사정
여자, 저주하다
저주가 드러나다
인조가 사랑한 ‘악녀’ , 귀인 조씨 성공기
저주의 설계자
재앙의 뿌리 같은 여자
여자, 수절하다
함양 과부 박씨의 자살
박지원이 생략한 박씨의 유서
그녀들의 명예욕, 그녀들의 타산
사대부 남성이 이해하지 못한 하층 여성의 절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