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연려술속』 권7와 권8을 번역 주해한 책이다. 편자는 미상이다. 『연려술속』은 조선 숙종대까지의 정치사를 보여주는 『연려실기술』에 이어서 경종대 전반과 영조 즉위 초반의 정치 상황을 편년체 형식에 따라 정리한 당론서이다. 전체 9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핵심 내용은 소론 탕평론과 노론 반탕평론이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영조 탕평책의 정치적 배경에 해당된다.
본서는 1722년(경종2) 9월 1일부터 1724년(영조 즉위) 11월 16일까지 주요 정치적 사건을 기록하였다. 권7은 1722년(경종2) 9월 1일부터 1723년 4월 9일, 권8은 1723년(경종3) 4월 14일부터 1724년(영조즉위) 11월 16일까지를 각각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는 임인옥사로 인해 김일경 등 급소(急少)가 득세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정치공세가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영조의 즉위로 한풀 꺾이고, 노론의 반격이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출판사 리뷰
18세기 조선 경종대부터 영조 초까지의 당쟁사를 정리하여 편찬한 당론서 네 번째권!
본서 『연려술속 4』는 『연려술속』 권7와 권8을 번역 주해한 책이다. 편자는 미상이다. 『연려술속』은 조선 숙종대까지의 정치사를 보여주는 『연려실기술』에 이어서 경종대 전반과 영조 즉위 초반의 정치 상황을 편년체 형식에 따라 정리한 당론서이다. 전체 9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핵심 내용은 소론 탕평론과 노론 반탕평론이 갈등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것은 결국 영조 탕평책의 정치적 배경에 해당된다.
본서는 1722년(경종2) 9월 1일부터 1724년(영조 즉위) 11월 16일까지 주요 정치적 사건을 기록하였다. 권7은 1722년(경종2) 9월 1일부터 1723년 4월 9일, 권8은 1723년(경종3) 4월 14일부터 1724년(영조즉위) 11월 16일까지를 각각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는 임인옥사로 인해 김일경 등 급소(急少)가 득세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들의 정치공세가 경종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영조의 즉위로 한풀 꺾이고, 노론의 반격이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권별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권7에는 1722년 9월 1일부터 1723년 4월 9일까지의 주요 사건들이 기록되었다. 여전히 옥사 연루자들에 대한 체포와 추문(推問), 국청 죄인에 대한 형률 집행결과들이 주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5일, 사간원에서 조성복은 4흉(四凶)의 선봉이고, 장세상의 효시(嚆矢)라고 주장하였다. 다음날에도 사간원에서 홍계적이 이이명김창집과 서로 머리와 꼬리가 되었다고 단정하였다.
11일, 경상도 진사 이덕표 등이 장희빈의 추보(追報)를 촉구하였다. 옥사를 계기로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으로 노론에 눌렸던 경종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의도된 발언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신사년(1701) 희빈이 신당(神堂)을 설치한 이유는 성궁(聖躬)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오히려 경종이 태어났을 때 송시열이 종통을 어지럽혔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에 더해 김춘택은 세자를 모해할 목적으로 먼저 희빈에게 화를 전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모가 노론 4대신에 이르러 더욱 참혹해져 마침내 이희지이기지이천기김용택 무리에 이르러 극에 달하였다. 즉 노론이 처음에는 세자를 흔들다가, 여의치 않자 중간에 희빈에게 화가 미쳤으며, 끝에 가서는 악역(惡逆)이 있게 되어, 앞뒤로 역모를 꾸민 것이 일관되게 이어져 왔다고 주장하였다. 이후로도 추보 문제는 노론에 대한 처벌 문제와 연계되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21일 자에 소개된 반교문(頒敎文)에서는 경종이 바라보는 옥사 관련자들에 대한 관점이 잘 반영되어 있다. 자신을 위협한 인물로 노론 4대신을 거론하면서 이들이 왕실의 우익(羽翼)을 제거하고, 관작을 팔아 용사를 모집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대리청정을 촉구한 4흉의 연명 차자 삼수(三手)의 음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임인옥사에서 확인되었다고 천명하였다.
국왕의 심중이 확인된 다음날 경기도 유생 권서봉은 이이명과 김창집에게 육시(戮屍)를 더하고, 조태채와 이건명에게도 시행하기를 청하였다. 또한 4흉을 수범과 종범으로 나누는 것은 실정에서 어긋난다고 주장하였다. 노론의 상징인 4대신에 대한 엄정한 징치(懲治)를 관철시켜잔존 세력을 완전히 괴멸시키려 했던 것이다.
권8에는 1723년(경종3) 4월 14일부터 1724년(영조즉위) 11월 16일까지 급소의 공세가 경종의 죽음으로 중단되고, 영조의 즉위에 고무된 노론의 반격이 시작되는 상황을 담고 있다. 옥사가 점차 마무리되는 것과 함께 집권 소론의 공세는 회니시비(懷尼是非)로 확대되었다.
5월 4일, 경기 유생 김홍석 등이 송시열과 윤선거 부자간 갈등 양상을 김장생 등 관련 인사들의 기록과 행적에 근거하여 나열하면서 성혼을 파산서원에 추가 배향하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16일, 전 부사(府使) 어유봉이 송시열을 무욕(誣辱)했다고 김홍석을 논척하였고, 이튿날에도 윤현 등이 송시열을 도봉서원에서 출향(黜享)한 일을 거론하면서 김홍석의 주장을 논박하였다.
그 뒤로도 사헌부에서 김수항과 김창협을 석실서원에서 출향할 것을 청하였고, 부사과 이진수는 노론계 서원의 훼철 등을 주장하였다. 여기에 더해 진사 정봉징은 회니시비를 촉발한 『가례원류』 문제를 다시 제기하였다. 그렇지만 1724년(경종4) 7월 25일 경종이 승하하면서 급소의 공세는 한풀 꺾이게 되었고, 30일 영조가 왕위를 계승하자 노론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11월 6일, 유학(幼學) 이의연이 김일경의 작성한 토역교문(討逆敎文) 내용을 비난하며 집권 소론세력을 대상으로 반격에 나섰다. 9일에는 청주 유학 송재후가 선정신 송시열의 복향과 권상하의 복관(復官)을 청하였고, 이봉명은 조태구와 유봉휘를 흉역의 괴수로 규정하고, 김일경은 대대로 악행을 답습하였다고 논척하였다.
11일에 이르면 영조가 직접 김일경의 교문에 쓴 말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하면서 유배를 명하고, 또한 비망기(備忘記)를 내려 그를 구원하려는 자에게 역적을 비호하는 형률을 베풀어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다.
이후 정국 주도 세력이 소론에서 노론으로 교체되면서 신임옥사는 새롭게 조명될 수밖에 없었다. 이어지는 『연려술속 5』에서는 그 과정을 보게 될 것이다. 특히 『연려술속』 권9에는 두주(頭註) 형태로 방대한 자료를 제시하여, 1725년 을사환국과 1727년 정미환국으로 신임옥사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뒤집어지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였다. 본서는 이러한 측면에서 18세기 영조 탕평정치를 이해하는 관건이 되는 자료라고 간주할 수 있다.
목차
책머리에
『연려술속 4』 해제
번역
연려술속(燃藜述續) 권7
임인년(1722, 경종2) 9월 / 10월 / 11월 / 12월
계묘년(1723, 경종3) 1월 / 2월 / 3월 / 4월
연려술속(燃藜述續) 권8
계묘년(1723, 경종3)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갑진년(1724, 경종4) 1월 / 2월 / 3월 / 4월 / 윤4월 / 5월 / 6월 / 7월 / 8월
갑진년(1724, 영조 즉위) 9월 / 10월 / 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