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 학생들과 함께 보고 토론했다. 이 영화는 일본의 한 초등학교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해 돼지를 기르던 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이 돼지를 어떻게 처리할까를 토론하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잡아먹는다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교육 | 학교라는 이름의 정글, 98쪽) 그런데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반응들을 내놓는다. 학생들이 동일시하는 것은 바로 P짱, 돼지다. 기를까 말까, 먹을까 말까를 논의하는 가운데 돼지는 그저 그 결정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뿐이다. 지금 대학생들은 이른바 ‘열린 교육’ 세대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학교에서 경험한 교육이 바로 P짱의 운명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학교가 폭력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넘어 폭력적이지 않은 교육이 과연 가능한지를 되묻는다.
이 시대에 우리가 이야기하는 ‘서사적 사랑’이란 불가능하다. 세상은 서사에 목을 매는 이들을 비웃는다. 그저 사랑을 즐기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유통기한이 지난 사랑은 과감하게 버리라고 조언한다. 사랑은 더 이상 무엇인가를 새롭게 생산하는 에너지가 아니다. 그것은 즐기고 낡으면 버리는 청바지와 같은 것이라고 속삭인다. 사랑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이 지속가능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사라진 것이다. _153쪽
이들이 불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한국의 낙후한 교육이 아니라 교육 그 자체이다. 교육 자체의 정당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들은 교육이 과연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다. 어찌 보면 학생들은 교육의 실체가 폭력이라고 교실에서 몸으로 깨달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교육이야말로 권력으로부터 가장 초월한 척하지만 권력의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 그래서 학생들이 가장 믿지 않는 말은 이 모든 것은 폭력이 아니라 너를 위한 교육이고 사랑이라는 말, 바로 그 거짓말이다. _120쪽
10년 전만 해도 자립해 벗어나야 하는 대상, 자신을 구속하는 대상이 가족이었지만 지금 20대들은 자신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허리가 휘는 부모님을 보면서 좋은 아들, 딸이 되기를 바란다. 대학 서열이 사회에 진출할 자기 정체성과 같으므로 인터넷에서 대학 서열을 놓고 배틀을 벌인다. 또 최저임금과 저임금에 자신들이 시달리고는 있지만 바보라서 가만히 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노예임을 알면서도 착취임을 알면서도 감수한다고 말한다. 최고가 되기 위한 노력, 그 과정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저자는 결론에서 ‘들릴 권리’에 대해 말한다.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좌파의 비난, 힘든 일을 싫어한다는 우파의 비난, 그리고 20대를 둘러싼 수많은 담론과 절망의 이름에는 정작 20대들의 목소리는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그동안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에서조차 소외당했던 20대들의 생생한 발언들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 야생의 시대를 홀로 견디며 버티고 분투하는 오늘의 청춘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나는 이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냥 말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말을 하기 위해서는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말할 권리뿐 아니라 이들의 이야기가 충분히 들릴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영어에는 ‘말할 권리’에 대한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말할 권리라고 하면 쉽게 ‘the right to speak’를 떠올린다. 그러나 영어에는 다른 표현이 하나 더 있다. ‘the right to be heard’, 들릴 권리이다. 혼자서 아무도 없는 산에 올라가 소리소리 지르는 것을 권리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권리가 권리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대방이 필요하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때 비로소 나의 말할 권리는 완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권리는 말을 하는 나의 용기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대방의 ‘듣는 의무’를 요청한다. 이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들려야 한다는 것은 이들의 거칠고 정리되지 않고 울퉁불퉁한 목소리를 우리가 진지하고 꼼꼼하게 듣는 훈련이 되어 있는지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 _238쪽
이처럼 대학의 서열이란 철저하게 소재가 어디인지, 그리고 그 소재에서 그들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중심으로 위계화되어 있다. 그리고 서연고, 서성한 정도의 몇 개 대학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그 이름은 조롱과 멸시의 언어로 불린다. 대학생들의 정체성이란 이처럼 대학의 안과 밖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 서열 체제 ‘안’에서 내가 다니는 대학이 어떻게 분류되는가에 따라 형성된다. 대학 서열이 인생에서 대부분의 차이와 차별을 결정하는 현재의 체제에서 자신은 어떻게 분류되고 있는가가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_<우리를 위한 자리는 없다>, 42쪽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는 […]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등등과 더불어 실력은 안 되는데 ‘수도권 대학의 타이틀’을 사칭하고 싶은 속물들이나 가는 학교로 오해받는 것이 특징이다. 만약 이런 내가 우리 학교 정문이나 학생회관에다가 “우리나라의 대학 현실과 사회 현실을 경멸하며 그러므로 대학을 거부한다”며 대자보를 붙인다면 여러분들은 주목해주시겠는가? 기자님들께서는 취재를 해주시겠는지? 물론 학내 신문,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 정도에 실리며 파장을 일으킬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으로는 고작해야 블로그에 올라가는 정도, 혹은 취재된다고 해도 수많은 기사 속에 묻히며 몇몇 분들이 선심 쓰듯 던져주는 ‘옛다 관심~’ 정도가 아닐지?
_45쪽, 본문 중 학생 글 인용
‘열린 교육’에서는 가만히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무조건 손을 들고 뭔가를 해야 했다. 역설적으로 이들이 경험한 ‘열린 교육’은 조용히 있을 자유, 혹은 혼자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였다. 한 학생은 “스스로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신의 생각을 발표하는 수업”을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요”받았다고 말한다. 수업이 있는 날이면 부모들이 와서 교실 뒤편에서 자신들이 수업하는 모습을 참관하는데, 자기 아이가 수업 내내 아무 말도 안하기라도 하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이를 질타한다고 한다. “너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아?” _<학교라는 이름의 정글>, 109쪽
지은이 : 엄기호
1971년에 태어났다. 울산 귀퉁이에 있는 시골에서 쭉 자랐다. 2000년부터 국제연대운동을 하면서 낯선 것을 만나 배우는 것과 사람을 평등하게 둘러앉게 하는 ‘모름’의 중요성을 배웠다. 답을 제시하는 것이 자신의 재주가 아니라 묻고 또 묻는 것이 이번 생의 이유라고 여긴다. 삶이 인과적으로 구성되어 분석될 수 있다기보다는 삶이란 우연이며 글과 말은 그 아이러니와 역설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 책 『단속사회』도 이 생각의 연장선에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지구 어느 한쪽 귀퉁이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사는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현재는 학생뿐 아니라 두루두루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배우는 일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 『닥쳐라, 세계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등이 있다.
들어가는글| 너흰 괜찮아
성장에 대한 강요 11 | 도덕적 비난이 된 성장 14 | 뒷문으로 성장하다 17 | 성장이 무엇인지 되물어야 한다 23
1부 어쨌거나 고군분투
대학1 | 우리를 위한 자리는 없다
서울에 가야 한다 35 | 대학 서열이라는 체제 40
대학2 | 우린 아직 인간이 아니다
청춘은 찬란, 했다, 옛날에는 52 | 잉여가 된 ‘지성인’ 55 | 자유가 잉여를 자학케 하리니 58 | 인간이 되기는 쉽지 않겠다 66
2부 뒷문으로 성장하다
정치 혹은 민주주의 | 혁명에 냉소한다
신성불가침한 민주주의 75 | 세상을 왜 바꿔야 하나? 79 | 뭘 해도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85 | 도덕이 된 민주주의가 문제다 93
교육| 학교라는 이름의 정글
상실, 성장을 위한 조건 100 | 학교는 폭력과 억압으로 작동한다 102 | 말하는 법조차 배우지 못했다 104 | 열린 교육에 갇혀 자라다 108 | 교실은 동등하지도, 평등하지도 않았다 112 | 폭력적이지 않은 교육이 가능한가 116
가족 | 멀쩡한 가족은 없다
철없는 자식이 되는 데도 자격이 필요하다 124 | 외로운 가족, 겉도는 가족 129 | 가족은 감정노동의 공동체 133 | 소통의 폭력을 넘어 137
사랑 | 이것은, 왜 또 사랑이 아니란 말인가
사랑, 가장 강렬한 성장의 드라마 148 | 사랑, 서사가 가능한가? 150 | 불안하지 않은 사랑이 있는가 153 | 사랑, 비싸다 157 | 사랑, 인프라가 필요하다 160
소비 | 팔리기 위해 나를 전시한다
전시, 필사적인 인정투쟁 167 | 다이어트, 몸이 최고의 아이템이다 176 | 자기관리와 자기감시 사이에서 182
돈 | 돈은 자유다
돈은 속임수다 189 | 삶을 옥죄는 학생 빈곤 193 | 돈이 자유라는 말의 의미 199 | 그리고 돈의 흐름 혹은 틈새 205
열정 | 잉여, 열정과 삽질 사이에서
삽질, 잉여들의 열정 215 | 열정이 무력화되다 224 | 열정을 착취하는 자본주의 229
조금 긴 결론 | 다시 교실에서
개념과 사유의 힘 243 | 집단지성, 그들의 삶 속에 이미 있다 248 | 교과서는 힘이 쎄다 254 | 도덕에 맞서다 257 | 다시 교실에서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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