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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수명을 줄여라
흐름출판사 | 부모님 | 2024.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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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추안급국안』을 바탕으로 글쓴이의 상상력과 통찰을 더해 재구성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추안급국안이란 ‘추안(推案) 및 국안(鞫案)’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중범죄인 재판인 추국에 대한 법정 속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속기의 특성상 한문 어법에 충실하기보다 이두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세세한 기록 속에 현장감이 살아있다.

  출판사 리뷰

경직된 사회에 균열을! 조선의 트릭스터 분투기
낯선 사건에서 기시감을 느끼다, 지금 우리는


이 책은 『추안급국안』을 바탕으로 글쓴이의 상상력과 통찰을 더해 재구성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추안급국안이란 ‘추안(推案) 및 국안(鞫案)’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중범죄인 재판인 추국에 대한 법정 속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속기의 특성상 한문 어법에 충실하기보다 이두가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세세한 기록 속에 현장감이 살아있다.

1부 맨땅에 헤딩하기

‘추국’은 역모 등 소위 대역죄를 대상으로 하여 왕의 직접적인 관여와 통제 아래 이루어진 재판이다. 이 엄중한 재판은 그 체급에 맞게 국가의 기강과 사회 질서를 뒤흔들만한 사건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처벌의 강도와 범위도 남달랐는데, 추국 대상 범죄의 특성상 애초에 범죄를 꿈도 꾸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추국 죄인이 받는 사형은 당사자의 죽음 그 자체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즉 죄인의 연고지에서 공개처형을 한다든지, 잘린 목을 높은 곳에 매달아 전시한다든지, 사지를 토막 쳐서 전국 각지에 돌려 보인다든지 하는 식으로 예비 범죄자들을 향한 경고를 담았다. 게다가 추국 대상이 되는 범죄에는 대부분 연좌가 적용되어 죄가 확정되면 본인뿐 아니라 일가친척, 때로는 그가 살던 고을까지 연대책임을 지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고 해도 심문받은 사람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기 일쑤였다. 당시에는 일정한 양식을 갖춘 고문이 심문의 일부로서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얽혀서 좋을 거라고는 한 가지도 없어 보이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어떤 인물일까? 짐작건대 역모 등을 통해 권력을 쟁취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큰 인물, 최소한 가만히 있다가는 잃을 게 너무 많은 인물일 것이다. 즉 역모가 실패했을 때 치러야 할 희생을 생각하면 거사의 성공으로 얻을 것이 실패로 잃을 것보다는 훨씬 커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역모 죄인, 대역 죄인의 대다수는 권력의 중심부는커녕 근처에도 간 적이 없는 서민이다. 아직 당황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피지배계층이 지배계층의 횡포에 저항하는 이야기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아마도 일종의 홍길동, 임꺽정 같은 서민의 영웅이거나, 권위주의에 도전하는 시민 영웅일 것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주인공들의 서사에서 그런 영웅적인 면모를 찾기는 아주 힘들다. 그들이 그 큰일을 벌여 이루고자 한 것은 출세(제주 삼성혈의 저주_양우철), 경제적 이익(왕족이 되고자 한 요승_처경, 왕의 수명을 줄여라_김응룡), 사적 원한 해소(어느 미역 장수의 음모_이운, 객사의 전패를 훔치고, 왕릉에 불을 지르다_최석산), 조세 회피(왕의 수명을 줄여라_오윤근), 공금 유용 은폐(객사의 전패를 훔치고, 왕릉에 불을 지르다_최하징) 등이다. 심지어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취한 방법은 무고한 타인의 삶을 희생시키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방식이다.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수준의 배포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공익적 목적이 없음은 물론 왕이나 수령을 직접적인 타깃으로 삼은 경우조차 사회적 성찰이나 정치적 고뇌에서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할 수 없다.

목적에 대한 평가는 차치한다고 해도, 그들이 취한 방법이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에 적합했는지조차도 매우 의문스럽다. 실패했을 때의 대가가 막심함은 물론 성공한다고 하여도 그 성공의 결실은 그들이 목표로 했던 바를 공히 뛰어넘는다. 합리적인 사고방식이든 민주화의 주역으로서의 민중 서사를 읽어내는 결에서든 그들의 행위는 난해하다. 그러나 독자의 이해가 어떻든 그들은 기어코 추국장에 다다랐다.

도대체 우리 주인공들은 왜 그런 이해하기 힘든 일을 저지른 걸까? 어쩌다 그 험난한 길로 들어서게 된 걸까? 그들은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범죄의 주모자로서 사건의 중심인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이름은 사건 기록에서 가장 정확하게 작성되어야 할 이름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 기록에서는 그 표기가 오락가락한다. 한자뿐 아니라 소리까지 바뀌는 경우도 간간이 보이는 걸로 봐서 단지 한자 표기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이는 추국 기록의 첫 부분에 격식을 갖추어 편재된 추국 관리의 이름들과 대비된다. 만약 그 이름들이 역모를 일으켰다면 사건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우리에게 익숙한, 모략과 암투가 판치는 정치 드라마 같은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 주인공들은 주인공의 자리에서조차 제 이름 하나 제대로 남기지 못할만큼 권력에서 한없이 소외되어 있었기 때문에 역모나 대역죄의 무게가 전혀 와닿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에게 굵직한 서사는 없다. 그러나 종종 일관성을 잃어버리는 진술 속에 비치는 그들의 삶의 양태는 한결같이 비루하다. 우리 주인공들에게는 절망스러운 현실을 타파하기 위한 비일상적인 한 방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고통이 익숙했기에 고문의 고통 따위는 간과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역모죄는 예비 과정도 처벌한다. 즉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질적인 실행이 없어도 죄를 받을 수 있다. 왕조 내지 사회에 대한 불만을 언급하는 것만으로 역모죄로 내몰릴 수 있었다는 뜻이다. 조선 말기로 향할수록 권력과 거리가 먼 인물이 포함된 역모 사건이 늘어난다. 이는 서민이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살만한 삶을 구축할 수 없어진 사회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에 매인 것은 식자 계층도 마찬가지였던 걸로 보인다. 예컨대 정조 시기 일어난 역모 사건(1785, 1786년 유태수 사건)에는 ‘거사居士’라는 부류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거사’의 사전적 의미는 ‘속세에서 불도를 닦는 남자’지만 실상은 불도에 전념하기보다 그 핑계로 조세나 역 등의 부담에서 벗어난 계층에 가까웠다. 그들은 대개 글을 알았고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에, 역모 사건에서 술사 내지 연락책으로 참여했다. 사정은 제각각이겠으나 글을 아는 것으로 보아 그들은 양반 내지 중인의 후예일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과거 등을 통한 입신을 포기한 채 술사, 장사꾼 등 소위 선비답지 못한 일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

한편 낯선 스타일의 역모 사건 속 우리 주인공들이 무척 의지하는 걸로 보이는 예언은 더욱 낯설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메시아적 존재라고 하면 대부분 예수님이나 미륵보살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그들은 이씨 성과 대비되는 성씨를 가진 인물이 그러한 역할을 하리라고 믿었다. 정씨 진인 등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메시아는 기력이 다한 현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열 성군 내지 성인으로 상상되었다. 이 외에도 예언을 이루는 요소, 진인을 찾아내기 위한 방법, 반란의 의례와 그 안에 담긴 상징 모두 낯설다. 아마도 조선과 대한민국 사이의 역사에 단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들의 믿음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역사를 되짚어봐야 할 테지만 지금 당장 짐작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사회 전반이 메시아적 존재를 꿈꾸는 상황, 예언이 생성되고 널리 퍼지며, 믿음만으로 예언을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활동이 도드라지는 상황이 어떤 지경인가 하는 것이다. 그들이 느꼈을 고통과 바람이 지금 우리의 욕망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포함해 모든 기록은 읽힘으로써 현현한다. 평범하다면 평범했을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간 익혀온 역사를 읽는 문법에서 벗어난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래 가장 영향력 있는 서사는 ‘성공 신화’이다. 신화 속 성공은 포기 하지 않는 인내와 노력의 성과이다. 실패는 성공의 전조로서만 의미가 있을 뿐 성공에 다다르지 못한 실패란 나약함, 패배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망 속에서 우리는 실패를 혐오하며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닦달하곤 한다. 성공, 좋다. 노력, 좋다. 그러나 그 노력이 공포에서 비롯되고, 자신을 외면하는 길이라면 그 성공이 진짜 성공일까.

우리 주인공들은 범죄를 저질러 평생 스칠 일 없던 높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판관들을 설득하려고도 해보고, 변명도 해보지만 대부분 불통이다. 판관들이 듣고 싶은 말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입맛에 맞는 말이 나올 때까지 우리 주인공들은 고문을 당하며 말을 만들어 내야 했다. 지금 꿈꾸는 성공이 내가 꿈꾸는 성공이 맞는가. 사회가 원하는 성공인가. 우리 고통이 정말 겪어야 할 고통이 맞는가. 우리 주인공들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고, 분노하다 맨땅에 헤딩을 했다. 잘 다듬어진 상징과 바람직한 서사에서 빗겨난 그들의 이야기가 답이 정해진 것처럼 달려가는 지금 우리의 일상에 작은 균열이 되기를 바란다.

2부 나아가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

2부에는 얼핏 사회 시스템이 덜 발전한 전근대 이전에나 일어났을 법한 황당하고 불편한 사건들이 실려 있다. 사회는 자연스럽게 진화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조선시대 때 저지른 실수나 잘못은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가?

어의 이시필은 부적절하게 치료를 거부하는 경종에 대한 실언 한 마디 내뱉었다가 추국을 받고, 경종이 수차례 판결을 번복하는 와중에 자살했다. 저자는 그가 자살 ‘당’했다고 표현한다. 이는 현대식으로 하면 갑질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재벌가 총수에게 인격적 모독을 당하고 직장까지 잃게 되었다는 사건, 성착취 가해자에게 역고소까지 당했다는 사건 등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어쨌든 이시필은 재판을 받았고, 절차를 밟아 처형되었다. 그러니 공식적으로는 권력자 한 둘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재판과 절차는 이시필 자신의 목숨을 보전하는 데 별 역할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재판장이 기울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헌법에 의해 재판청구권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현실에서 재판에 임하는 모든 국민의 처지가 평등하며, 재판 과정이 모두에게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사건의 피해자는 재판의 과정에서 다시 한번 폭력을 당하곤 한다.

다음 장에는 합법적 고문을 통해 창작 수준의 진술을 뽑아내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무신란(영조 4년, 1728) 가담자를 색출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추국 대상이 된 강위징은 234대의 곤장을 맞은 후 사건과 전연 무관한 두 사람까지 얽어 넣어 범죄 사실을 진술했다. 강위직의 자백 속에서 인물의 이력, 외모, 반란 장소, 계획, 행동 등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상세하다. 결국 강위징은 능지처사되었고, 그에게 고발당한 인물 중 한 명은 그 형까지 얽혀 들어가 고신(고문을 동반한 심문)을 받다가 그 와중에 둘 다 사망했으며, 다른 한 명은 종국에 풀려나기는 했지만 고문 후유증 등으로 고생했을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고문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한 제헌헌법에서부터 있던 규정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했는가. 좌익 내지 공산당을 색출한다는 핑계로, 민주화 운동 탄압의 도구로, 입맛에 맞는 범인을 만들기 위한 기술로 고문은 계속 존재해 왔다.

그래도 다음 이야기에는 시대가 바뀌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재들이 등장한다. 왕을 상징하는 나무패인 전패와 왕의 무덤인 왕릉이다. 이 사건의 범인들은 각각 전패를 훼손하고, 왕릉에 불을 질렀다. 그러나 그들은 손괴죄나 방화죄가 아니라 대역죄로 처벌받았다. 그들이 훼손한 게 왕의 상징물인 전패, 왕의 무덤인 왕릉이었기 때문이다. 왕의 권위가 중차대했던 조선시대에나 가능한 범죄 해석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범죄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여기서도 기시감이 느껴진다. 최하징이 전패를 훼손한 것은 그렇게 하면 수령을 쫓아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패가 훼손되면 해당 고을의 우두머리를 파면한다는 규칙은 이미 수년 전에 폐지된 상태였다. 그럼에도 지방의 향리였던 최하징 등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일종의 정보 격차이다. 지역과 계급에 따라 접근할 수 있는 정보에 차이가 있고, 선택의 범위가 달라지며 그리하여 대대손손 인생의 질까지 달라진다는 무서운 이야기. 이 괴담은 메가서울과 지방소멸 담론이 한창인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건재하다.

한편 왕릉에 불을 낸 최석산은 왕의 권위를 이용할 생각조차 없었다. 그는 그저 자신을 체포했던 능졸들에게 복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가 처벌받게 된 이유는 무단으로 왕릉에 침입해 나무를 베었기 때문으로 무리하게 처벌받은 경우는 아니다. 게다가 왕릉을 지키던 능졸은 무단 침입한 그를 체포했을 뿐, 매질이나 유배 등 처벌에 관여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최석산은 유독 능졸에게 강한 앙심을 품고 유배지에서 탈출해서는 협박으로 동원한 몇몇 사람과 함께 왕릉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왕’릉이라느니 ‘왕릉’이라느니 하는 역사적 요소를 걷어내고 보면 최석산의 범죄도 은근히 익숙하다. 자기 위주의 시각에 함몰되어 피해 당사자로서는 인과관계도 예측하기 힘든 황당한 동기로 타인의 삶을 무정하게 훼손하는 류의 범죄. 복잡다단한 인간관계와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소원함이 양립하는 현대사회에서나 일어날 법한 범죄가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영조의 친국 사례를 분석한 글이다. ‘친국’은 왕이 추국장에서 직접 신문에 참여하는 추국이다. 왕을 포함한 고위 관료 다수가 참석하고, 그에 걸맞는 호위가 붙는 등 규모도 크고 갖춰야 할 것도 많아서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열리지 않는 추국 중의 추국이라고 할 수 있다. 영조는 유달리 추국을 많이 한 왕이다. 그는 추국장에서 다룰만한 일도 아닌데 추국을 열고, 그에 더해 친국을 거행하고는 했다. 이는 영조가 추국을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는 용도로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명분을 가진 공포 정치는 효과가 있었다. 피와 살이 터지는 재판장에 배석한 관리들에게 영조의 의사는 더 이상 정치의 영역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영조의 통제력은 강화되었고, 탕평책은 성공한 듯 보였다. 그러나 영조가 노쇠해 힘이 빠지자 탕평은 세도정치가 되었다. 부적절한 추국 아래 권력의 자정작용을 하던 언로가 막히고, 견제와 균형으로 동작했던 시스템의 근간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이 자리 잡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 공식적으로 무소불위한 권력자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법의 이름으로 인치를 행하는 권력, 법을 지키며 동시에 법망을 빠져나가는 엘리트 무법자들을 목도하곤 한다. ㄴ

결국 과거를 과거로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아가야 한다. 시간이 흐른다고 사회가 알아서 나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번의 성취로 누습(陋習)을 탈피할 수도 없다. 공식화·성문화는 표지가 되지만 그렇다고 법문이 알아서 사회를 바꿔주지는 않는다. 그때와 달리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민 모두는 공식적으로 나라의 주인이다. 나라의 주인으로서 걷는 끈질긴 걸음이 모여 과거를 과거로 만들고, 새로운 미래를 가져올 터이다.

3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마지막으로 이 책뿐만 아니라 원서에서도 침묵한 것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왕의 상을 가진 노비」의 주인공 박업귀는 식사를 가져다준 여성 도망노비를 겁탈하였다. 그러나 당시는 물론 추국장에서도 이 사건은 사건으로는커녕 어떤 문제로도 다뤄지지 않았다. 추국 기록에서 주범이 여성인 경우는 찾기 힘들다. 추국장 자체가 권력의 핵심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이름 자체는 어머니와 아내의 수만큼은 자주 나온다. 범죄자의 신상을 기술할 때 가계를 밝히기 때문이다. 단, 이들의 이름은 대개 ‘조이’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召史(소사)’라고 실려 있다. 조이의 이두 표기이다. 뜻풀이는 “양민의 아내나 과부를 이르는 말”이지만 양민은 물론 천민도 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아내나 과부뿐 아니라 어머니, 할머니를 이르는 말로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함부로 부르고 싶지 않은 여성의 통칭이 아니었나 싶다. 실제 그들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있기는 한 건가?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이 책에서는 여성의 이름 중 하나만 유의미하게 다뤄진다. 「왕족이 되고자 한 요승」의 묘향이다. 그녀는 처경의 범죄 사실을 밝히기 위한 증인 겸 참고인 격으로 추국장에 끌려왔다. 그러나 처경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고 확정판결까지 났음에도 풀려나진 못했다. 영의정 왈 처경이 왕족인 척하려고 했던 게 ‘묘향의 말’ 때문이라며 매질을 가해서 “범죄의 실상”을 마저 밝히자고 했기 때문이다. 이때 묘향의 말이란 처경의 생김새가 왕자님 같다고 했던 것, 행동거지가 왕족 같다며 소현세자의 잃어버린 아들이냐고 했던 것을 말한다. 그러나 후자의 발언은 처경에 의해 유도된 면이 있고, 이러한 정황은 심문 중에 이미 밝혀진 상태였다.

결국 묘향은 의금부로 끌려가 계속 형신을 맞다가 죽었다. 묘향에게 살 길이 있었을까? 첫 고신 후 임금은 “처경이 감히 흉악한 계략을 품은 것은 모두 묘향 때문”이라며, “특별히 엄히 매질하여 기필코 범죄의 실상을 알아내라”고 명령했다. 처음부터 그녀의 진술은 충실했고 반복되는 매질에도 일관성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추국관리들은 자백하지 않는다며 고신을 이어갈 뿐이었다. 그녀에게 변명의 기회는 없었다. 아무도 그녀의 결백을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재판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그녀의 재판은 없었던 셈이다. 그녀의 죽음이 특히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책의 말미에 부록으로 국역 『추안급국안』의 권별 사건 목록을 실었다. 원서에는 왕조를 뒤흔든 대박 역모 사건(인조 때 이괄의 난, 영조 때 무신란 등), 근대와 현대 사이 진통을 느낄 수 있는 서학(주로 천주교) 죄인 사건, 권력의 짬짜미 사건(숙종 때 환국 정리 등),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사건 등 다양한 사건 기록이 풍부하게 실려 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등이 양지 중의 양지의 기록이라면 『추안급국안』은 양지를 양지로 지켜낸 가장 짙은 어둠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의 어둠에는 시작도 못 해본 채 끝난 사건, 잃어버린 이름과 삶이 무수하다. 겪어내지 못한 사건은 돌아온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접힌 페이지를 열고 사건을 펼쳐 경험하는 것이다. 관심 있는 독자의 많은 성원 바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한승훈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에서 추국 자료에 나타나는 조선 후기 변란에 대한 종교사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저작으로 『무당과 유생의 대결: 조선의 성상파괴와 종교개혁』, 「전근대 동북아 종교 범주로서의 교(敎)」, 「역사적 최제우와 청림교의 비밀결사들」, 「종교 자료로서의 심문 기록」, 「개벽(開闢)과 개벽(改闢): 조선 후기 묵시종말적 개벽 개념의 18세기적 기원」 등이 있다.

지은이 : 편용우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졸업 후 도쿄대학에서 가부키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주대학교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저서로는 가부키 작가 연구서 『四世鶴屋南北研究』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지은이 : 문경득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및 전주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마쳤다. 『추안급국안』에 수록된 반란사건 중 영조 4년에 있었던 무신란(戊申亂)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 HK+연구단 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주요 연구로 「영조대 戊申亂 관련 邊山賊의 성격」, 「조선 후기 심문 진술 기록의 사료비판 방법론 연구-『무신역옥추안(戊申逆獄推案)』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1부 그들은 왜 그리고 어떻게 역모를 꿈꿨을까?
-왕족이 되고자 한 요승(1676년 요승 처경 사건)
-제주 삼성혈의 저주(1687년 양우철 사건)
-왕의 상을 가진 노비(1688년 박업귀 사건)
-두 명의 진인과 승려들의 군대(1697년 이영창 사건)
-어느 미역 장수의 음모(1712년 이운 고변 사건)
-거사들의 거사(1785, 1786년 유태수 사건)
-왕의 수명을 줄여라(1872년 김응룡·오윤근 사건)

2부 시대는 바뀌어도 역사는 이어진다
-소 궁둥이에 풀 먹이기(1723년 어의 이시필 사건)
-매 앞에 장사 없다(1728년 무신년 역적, 1731년 경술년 모반 사건 외)
-객사의 전패를 훔치고, 왕릉에 불을 지르다(1735년 최하징, 1725년 최석산 사건)
-영조 친국의 최후(1753년 조관빈 사건 외)

국역 『추안급국안』 권별 사건 구성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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