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김범송
1966년 중국의 두만강에서 태어남1990년 베이징에서 대학을 졸업베이징과 서울 등의 일한 기업에서 10여 년간 근무하면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베이징과 서울의 유수대학에서 경영학과 최고경영자 과정을 수료2011년에 귀국하여 포스코 CDPPC 대외 부사장으로 5년 동안 근무 현재 대련대학 한국학 연구원 초빙교수중앙민족대학 한국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흑룡강신문 논설위원으로 활약
제1부 산대왕(山大王)이 된 (中共)창건자
제1장 소산충을 이탈한 늦깎이 사범생
제1절 ‘개구쟁이’ 소년과 14세의 신랑(新郞)
1. 소산충의 ‘거인’, 석삼아자(石三?子)
2. ‘개구쟁이 소년’의 사숙(私塾) 생활
3. 14세의 소년 신랑과 ‘원배(原配)’ 나씨(羅氏)
제2절 ‘동량지재(棟梁之材)’와 말단 열병(列兵)
1. 동산소학당의 ‘동량지재(棟梁之材)
1) ‘6년 공부자’ 종료, 소산충 이탈
2) ‘왕따’ 당한 동산소학당의 ‘동량지재’
2. 호남 신군의 말단 열병(列兵)
1) 햇내기 중학생의 미숙한 정견(政見)
2) 신해혁명과 호남 신군의 열병(列兵)
제3절 성립(省立)중학교 입학과 도서관 독학
1. 성립중학교의 ‘걸작’, ‘상앙(商?’ 작문
1) 성립제1중학교와 ‘은사’ 부정일(符定一)
2) 모택동의 걸작, ‘상앙(商?의 사목입론(徙木立論)’
2. 반동 군벌 탕향명을 비호한 ‘사범생’
1) ‘탕도부(湯屠夫)’의 호남성 도독(都督) 부임
2) 성립도서관에서의 반년 간 독학
제4절 사범학교의 ‘은사’와 ‘사건사고’
1. 사범학교 시절의 모택동의 ‘은사’들
2. 모택동의 동향, 복벽파 양도(楊度)
3. 사범학교 시절의 ‘사건사고’
1) ‘친구 찾기’ 광고와 소책자 발간
2) ‘자퇴 신청’과 후자석(候子石) 전투
제5절 유심론자 양창제와 신민학회 창립
1. 유심론자 양창제의 ‘독실한 추종자’
2. 사범생이 숭배한 실학자와 ‘성현’
1) 실학자 왕선산(王船山)과 실사구시
2) 호남인들이 숭배한 ‘성현(聖賢)’ 증국번
3. 제1사범의 ‘학우회’ 총무, 체육 애호자
4. 신민학회 간사(幹事)
제2장 공산당 창건과 국공합작(1924~1927)
제1절 북경대학 취직, 마르크스주의 신봉
1. 두 차례의 ‘북경행’과 장사의 혁명활동
2. 무정부주의 추종자, 마르크스주의로 전향
제2절 중공 ‘창건자’, 노동운동 리더
1. 마르크스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로 탈바꿈
2. 노동운동 리더, 중앙국 진출
제3절 국공합작(國共合作)의 ‘열성 지지자’
1. 마링의 ‘당내 합작’과 공산국제의 ‘간섭’
2. ‘마링 전략’의 실패와 ‘중공 2인자’의 실각
제4절 ‘중공 창건자’, 국민당 ‘선전부장’
1. 국공합작의 결과물, 황포군관학교
2. 국민당 (代理)선전부장의 ‘고군분투’
제5절 기로에 선 농민운동의 ‘대부’
1. 농민운동 종사자, 농민문제 ‘전문가’로
2. 농민운동 ‘견해 차이’, 진독수와 결렬
3. 국공합작 결렬, 무장투쟁의 길 선택
제3장 정강산 ‘산대왕(山大王)’
제1절 남창봉기와 추수봉기
1. 중공이 지도한 첫 무장봉기, 남창봉기
2. ‘8.7회의(1927.8)’와 추수봉기
제2절 정강산(井岡山) 진출과 ‘당적 박탈’
1. 정강산 진입, 녕강 중심의 근거지 창건
2. ‘11월회의(1927)’와 ‘당적 박탈’ 와전
3. 정강산의 ‘환난지처(患難之妻)’, 하자진
제3절 ‘주모(朱毛)회사’와 ‘8월실패’
1. ‘정강산회사(會師)’, ‘홍4군(紅四軍)’ 창건
2. 정강산 근거지의 확장, ‘전성기’의 도래
3. ‘8월실패(1928)’와 근거지 회복
제4절 ‘홍4군’ 하산(下山), 군권 박탈
1. 하산 후 잇따른 패전과 기사회생(起死回生)
2. ‘주모분쟁(朱毛紛爭)’, 군권 박탈
3. 당중앙의 ‘9월편지’, 홍군 복귀
제5절 민서 근거지 확장과 정강산 근거지 상실
1. 고전(古田)회의 후, ‘홍4군’의 발전
2. ‘원왕(袁王)’ 사살, 정강산 근거지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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