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카를로스에 대해 논평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버지 에리히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카를로스는 아버지로부터 예술을 대하는 자세를 비롯해서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물려받았다. 지금은 음악계에서 에리히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20세기에는 그 존재감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에리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명예이기도 했지만 족쇄이기도 했다. 에리히 클라이버와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녹음한 흥미로운 음반도 있다. 그것은 바로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이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은 교향곡 뿐만이 아니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베버의 마탄의 사수 같은 오페라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에 대한 유일한 전기는 알렉산더 베르너가 썼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 특별한 지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고군분투한 예술가의 초상이 카를로스의 이미지에 투영되어 있다. 그는 많은 선정적인 신문 기자들을 몰고 다녔는데 카를로스는 자신의 예술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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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에 대해 논평하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아버지 에리히를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카를로스는 아버지로부터 예술을 대하는 자세를 비롯해서 그의 생애 전반에 걸쳐 타협하지 않는 태도를 물려받았다. 지금은 음악계에서 에리히의 위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20세기에는 그 존재감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에리히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는 명예이기도 했지만 족쇄이기도 했다. 에리히 클라이버와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녹음한 흥미로운 음반도 있다. 그것은 바로 보로딘의 교향곡 2번이다. 물론 아버지와 아들은 교향곡 뿐만이 아니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베버의 마탄의 사수 같은 오페라를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에 대한 유일한 전기는 알렉산더 베르너가 썼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이 특별한 지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고군분투한 예술가의 초상이 카를로스의 이미지에 투영되어 있다. 그는 많은 선정적인 신문 기자들을 몰고 다녔는데 카를로스는 자신의 예술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이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그는 거의 모든 가수와 오케스트라 주자들로부터 컬트적인 방식으로 존경받았다. 또한 이 정도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음악가는 손에 꼽힐 정도인데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에 견줄만한 지휘자는 없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조차도 그렇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까다롭고 섬세한 그러면서도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카를로스의 능력은 좁은 레퍼토리마저 그의 갑옷에 상처 하나 남기지 못했다.
이 책을 쓴 알렉산더 베르너는 산더미 같은 자료 속에서 구체적인 인간이자 살아 숨쉬는 예술가로서의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구현해 내는 데 성공했다. 타임라인을 따라 촘촘하게 이어지는 예술적 순간들은 분명 음악가로서 카를로스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알렉산더 베르너
1961년 카를스루에에서 태어나 문학과 역사를 공부했다. 1991년부터 잡지사의 기자로 일했는데, 1995년부터 풍쿠테(Punkte)에서 편집자로 2001년부터는 편집장으로 재직했다. 2009년부터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다양한 클래식 음악, 인터뷰, CD 리뷰에 관한 많은 글을 썼다. 1992년에 [막시밀리안 베르너와 1849년 바덴 혁명]을, 2007년 12월에는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출판했다.
목차
서문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계의 빛나는 별 .....................................................13
제1장
늦깎이 천재: 두 대륙에 걸친 긴 수업시대 ..................................................18
1. 1930년 베를린: 전설의 탄생 20
2. 1935년~1947년 베를린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륙 사이를 오가며 36
3. 1948년~1953년 부에노스아이레스: 지평선의 빛 50
4. 1953년 뮌헨: 오페레타 수업 68
5. 1954년~1955년 포츠담: 갑자기 끝난 데뷔 73
6. 1956년 취리히: 아버지의 죽음 88
7. 1956년~1957년 빈: 지휘대에 ‘공석 없음’ 92
8. 1957년~1960년 잘츠부르크와 함부르크: 막간극 99
9. 1957년~1960년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 오페라를 향해 112
10. 1960년~1962년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 마침내 카펠마이스터 123
제2장
완고한 남자: 두드러지기 시작하는 개성 ...................................................142
1. 1962년 뒤셀도르프: 암 라인의 파리 144
2. 1963년 뒤스부르크: 라벨의 발레음악 연주 152
3. 1964년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 라인 도이체오퍼의 피날레 157
4. 1964년 슈투트가르트: 어떤 스캔들 163
5. 1964년 뒤셀도르프와 뒤스부르크: 베르디를 끝으로 169
6. 1964년 프랑크푸르트: 무의미한 데뷔 172
7. 1964년~1965년 취리히: 반항하는 연주가들 176
8. 1965년 슈투트가르트: ‘동시대 최고의 지휘자’ 187
9. 1965년 취리히: 발레와의 이별, 프라하에서의 연구 193
10. 1966년 취리히와 슈투트가르트: <보체크> 스캔들 214
11. 1967년 뮌헨과 빈: 오케스트라 콘서트 지휘 248
제3장
까다로운 지휘자: 예술을 위한 격렬한 투쟁 ............................................. 260
1. 1967년 슈투트가르트: 두 예술가의 경쟁 262
2. 1968년 프라하: 다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278
3. 1968년 슈투트가르트: <카르멘>에 쏟아진 갈채 282
4. 1968년~1970년 뮌헨: 국립극장의 토네이도 287
5. 1969년~1970년 슈투트가르트: 최고 수준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298
6. 1970년 뮌헨: C장조의 폭발 302
7. 1970년~1971년 뮌헨: <보체크> 선풍 305
8. 1969년~1972년 슈투트가르트: 작업실 속으로 311
9. 1971년 슈투트가르트: <엘렉트라> 소동 319
10. 1970년 슈투트가르트: 또다시 <장미의 기사> 333
11. 1971년~1972년 슈투트가르트: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둘러싼 불화 336
제4장
롤 모델이 된 지휘자: 불멸의 연주 ............................................................ 340
1. 1972년 뮌헨: 영원한 <장미의 기사> 342
2. 1972년 쾰른: 아버지의 유산 352
3. 1972년 베른: 콘서트 형식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357
4. 1972년~1975년 슈투트가르트: 한 시대의 끝 360
5. 1971년~1973년 함부르크: 카를로스 클라이버를 향한 러브콜 370
6. 1973년 드레스덴: 첫 번째 음반 녹음 383
7. 1974년 함부르크: 괴로운 이별 397
8. 1973년 빈: 아버지의 고향에서, 열광의 폭풍 402
9. 1974년 취리히: 또다시 스위스로 417
10. 1974년 런던 : 코벤트 가든 데뷔 422
제5장
바그너 지휘자: 도전의 땅 바이로이트 ...................................................... 428
1. 1974년 바이로이트: ‘녹색 언덕’에서 430
2. 1974년 뮌헨과 일본: 극동의 매력 446
3. 1974년 브라티슬라바와 예테보리: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콘서트 데뷔 454
4. 1974년~1978년 빈: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녹음 462
5. 1974년~1975년 뮌헨: 샴페인의 취기와 같은 성공 468
6. 1975년 뮌헨: <라트라비아타>의 장애물 479
7. 1975년 바이로이트: 또다시 ‘녹색 언덕’으로 485
8. 1976년 밀라노: 마침내 이탈리아를 향해 490
9. 1976년~1977년: 플라시도 도밍고와 스튜디오에서 495
10. 1976년 뮌헨: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테르와의 협연 498
11. 1976년 바이로이트: ‘녹색 언덕’과의 이별 503
제6장
정점에 선 지휘자: 베르디 <오텔로>의 세계적인 지휘자 .........................516
1. 1976년~1977년 밀라노: 클라이버의 <오텔로>, 라스칼라 정복 518
2. 1977년 런던: 비르기트 닐손과 <엘렉트라> 공연 524
3. 1976년~1977년 뮌헨: 한 시절의 끝 529
4. 1977년 뮌헨: 존 노이마이어와 공연한 <오텔로> 535
5. 1978년 밀라노: 바그너와 바그너 547
6. 1978년 뮌헨: <오텔로>와의 작별 552
제7장
세계를 발밑에 두고: 4대륙에서 펼친 초청공연 ....................................... 562
1. 1978년 시카고: 자신의 그림자를 뛰어넘어 564
2. 1978년 빈: 텔레비전의 <카르멘> 574
3. 1979년 밀라노: 미디어 행사가 된 <라보엠> 586
4. 1979년 뮌헨: 필름 속 <장미의 기사> 594
5. 1979년 런던: 역사에 새긴 불멸의 이름 597
6. 1980년~1981년 드레스덴: 폭풍 같은 레코드 녹음 606
7. 1980년~1982년 밀라노와 뮌헨: 가장무도회 624
8. 1979년~1981년 빈: 빈 콘서트와 멕시코 연주 여행 634
9. 1981년 밀라노: 런던에서의 고난, 일본에서의 행복 647
제8장
잘 팔리는 지휘자: 원칙을 고수하는 스타 ................................................ 654
1. 1981년~1982년 뮌헨: 천재 지휘자에게 쏟아지는 러브콜 656
2. 1982년 베를린: 악보를 둘러싼 분쟁 668
3. 1982년 빈: 자연스레 이루어진 최고의 콘서트 680
4. 1982년 빈: 변덕스러운 여행 683
5. 1983년 암스테르담: 왕립 오케스트라 데뷔 695
6. 1983년~1984년 뮌헨과 시카고: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의 봄 703
7. 1985년 빈: 승리의 귀환 716
8. 1985년~1986년 뮌헨: 카니발의 도취와 각성 728
제9장
전설: 은퇴의 시작 ........................................................................................738
1. 1985년 뮌헨과 하노버: 은퇴의 길 740
2. 1986년~1988년 뮌헨: 뮌헨에서의 승리와 후퇴 745
3. 1987년~1988년 런던 밀라노 뉴욕: 결별, 그리고 뒤늦은 데뷔 759
4. 1988년~1989년 빈: 선풍을 일으킨 신년음악회 770
5. 1989년 베를린: 대통령을 위한 갈라 콘서트 779
6. 1989년 뉴욕: 축농증에 걸린 비올레타 798
7. 1989년~1990년 런던과 뉴욕: 두 도시 정복 805
8. 1990년~1991년 잘츠부르크: 뼈아픈 손실 812
9. 1992년 빈: 빈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관계 개선 822
10. 1991년~1993년 빈: <영웅의 생애>를 에워싼 분쟁 829
11. 1992년 도쿄와 뮌헨: 세르주 첼리비다케와의 대화 840
12. 1994년 빈과 도쿄: 또다시 <장미의 기사> 845
제10장
사라져가는 사람: 마지막 성공과 조용한 이별 ......................................... 862
1. 1994년 베를린: 대통령을 위한 고별 갈라콘서트 864
2. 1996년 잉골슈타트와 뮌헨: 활력과 호의 873
3. 1999년 카나리아 제도: 이별의 투어 콘서트 899
4. 1999년~2004년 그륀발트: 살아있는 전설의 피날레 909
후기
고통과 환희가 함께할 때: 카를로스 클라이버라는 현상 ........................ 936
미주 & 문헌일람 ......................................................................................... 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