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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책] 아네마리 몰, 돌봄의 논리
커뮤니케이션북스 | 부모님 | 20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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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돌봄은 의료 산업을 떠받치는 허드렛일의 총칭이 아니다. 아픈 몸을 보살피는 일을 이끄는 큰 힘이다. 어떻게 하면 돌봄의 힘을 더욱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과 다른 종류의 의료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을까? 돌봄을 건강과 질병에 관한 모든 실천의 기초 논리로 생각하자고 청하는 아네마리 몰의 작업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출판사 리뷰

돌봄, 필멸하는 모든 몸과 조응하기
우리 사회에서 '돌봄'의 가치는 무시되어 왔다. 환자의 몸에 직접 닿는 일, 돌봄에 가까운 일일수록 낮게 평가되었다. 소위 전문적인 '의료'와 관계없거나 의료가 되기에는 수준 미달인 일, 고작해야 의료 행위가 이뤄질 수 있게 돕는 부차적 일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돌봄이 없다면, 즉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면 그 어떤 첨단 의료 기술도 그 쓸모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스스로 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의 필요, 다치고 쇠약해진 이들의 필요에 응답하지 않을 때 몸을 고치는 기술로서 의료는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다. 돌봄은 의료 산업을 떠받치는 허드렛일의 총칭이 아니다. 아픈 몸을 보살피는 일을 이끄는 큰 힘이다.
어떻게 하면 돌봄의 힘을 더욱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지금과는 다른 종류의 의료를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책은 돌봄을 의료 영역의 기초 논리로 생각하자고 청하는 아네마리 몰의 작업을 통해 그 실마리를 찾아본다. '환자'와 '질병' 그리고 '의료'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고하고, 환자와 의료진을 시장 경제 원리로만 몰아가는 '선택의 논리'를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건강과 질병에 관한 모든 실천에서 돌봄이 주된 논리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할 때 과연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모색할 기반을 마련한다.
저자 서보경에 따르면 돌봄은 “필멸의 몸에 주의를 기울이고 차이에 조응하는 일”, “몸의 부서짐과 예측 불가능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질병을 함께 살 수 있는 것으로, 심지어 즐길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자 애써 보는 일”이다. 이 일의 연쇄 속에 지금 우리 모두가 함께 있고 또 함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 1958∼ )
인류학자, 철학자. 위트레흐트대학교에서 의학과 철학으로 석사 학위를, 흐로닝언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의료에 대한 인류학적 연구를 장기간 수행했고, 의료사회학과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을 해 왔다. 인류학적 연구 방법론을 기반으로 서구 철학의 주요 개념에 개입하는 작업을 발표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2010년부터 암스테르담대학교에 '몸의 인류학'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문화기술지에 기반해 질병의 존재론을 이론화하려 한 ≪바디 멀티플(The Body Multiple)≫, 당뇨병 치료에 대한 현장 연구를 기반으로 의료의 주요 구성 논리를 탐구한 ≪돌봄의 논리(The Logic of Care)≫, 먹는 행위의 일상성으로부터 인간 조건에 대한 철학적 개념화를 도모하는 ≪먹기를 이론화하기(Eating in Theory)≫ 등이 있다.

번역이 매개하는 의미망에서 의료와 돌봄은 모두 케어에 대응하는 말이 될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둘의 지위는 너무나 다르다. 특히 병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의료를 하는 사람의 지위는 너무 높고 돌봄을 하는 사람의 지위는 너무 낮다. 무수히 많은 의료 행위 중에서도 기술적 숙련도가 아주 높아야 하거나 높은 지식 수준을 필요로 한다고 여겨지는 노동일수록 더 높은 임금을 받고, 환자의 몸에 직접 닿는 일, 돌봄에 가까운 일로 여겨지는 노동일수록 가치는 낮게 평가된다.… 병원에서 의료와 돌봄의 위계는 환자들의 태도에서 다시 한번 굳어진다. 한국의 병원에서 현장 연구를 하다 보면 의사 '선생님'은 '병을 고쳐 주는' 사람으로 존중하면서 간호사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간호조무사와 간병인은 '남의 엉덩이의 똥이나 닦아 주는' 사람이라고 부르면서 하대하는 경우를 마주치기도 한다. 어떤 때에는 모욕이 질병보다 더 고통스럽다. 더 높은 사람과 더 낮은 사람으로 서로의 가치를 날카롭게 나눌 때, 병원은 험악한 공간이 된다.
엉덩이에 붙은 똥을 스스로 닦을 수 없는 환자를 보살펴 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 어떤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병원도 별 도리가 없다. 스스로 자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의 필요, 다치고 쇠약해진 이들의 필요에 응답하지 않을 때, 몸을 고치는 기술로서 의료는 반드시 실패하기 때문이다. 엉덩이에 붙은 똥은 피부를 짓무르게 하고, 병원균에 노출시키고, 감염을 일으켜 열이 나게 하고, 살을 썩게 하고, 결국 쉽게 아물기 어려운 상처를 만든다. 그 어떤 항생제도, 최고의 수술 기술도 엉덩이에 붙은 똥을 제대로 닦지 않고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의료와 돌봄을 서로 다른 것으로 여길 때, 우열의 지위를 부여할 때, 그래서 지위의 차이가 착취와 하대와 모욕으로 이어질 때, 의료와 돌봄의 '상식적' 구별은 거대한 문제가 된다. 아무도 돌보지 않을 때, 그 어떤 고도의 기술적 발달도 그 쓸모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_ “의료 실천에서 돌봄을 논리로 구축하기” 중에서

병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특정한 시공간에 있는 몸에서 실행된다. 어떤 방식으로 질병을 다룰지에 따라 질병의 각기 다른 속성이 생겨난다. 이는 진단 방식이나 치료 방식의 발전이 단순히 이전에 알지 못한 몸의 신비를 밝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새로운 의학 기술이 도입되면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몸의 존재 양식이 등장한다. 의료라는 기술적 체계는 몸의 존재 양식을 필연적으로 다양화함으로써 변화시킨다.
이 관점을 확장하면 환자는 질병에 걸린 사람, 질병을 당하는 사람이 아니다. 질병과 함께 살아가며 질병을 실행하는 사람이다. 의료진도 마찬가지다. 진단과 치료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 즉 의사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임상병리사, 환자와 가깝게 살아가는 가족 역시 질병과 함께 살아가며 질병을 실행한다. 각각이 질병을 실행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의료라는 장에서 부분적으로 연결되고 해석과 조정의 과정을 거친다. 병원은 질병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곳이자, 그 차이들을 해석하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집적하는 곳이다. 의료는 질병과 함께 살아가며 질병의 형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여러 방식을 생성하고 실천하는 장이다.
_ “04 의료” 중에서

돌봄 논리는 선택 논리가 상정하는 환자-소비자 모델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의료의 작동을 설명한다. 무엇보다 의료인이 질병에 대한 표준적 지식을 전달하면 환자가 그것을 이해하고 행동에 옮긴다는 식의 선형 모델을 설정하지 않는다. 아픈 사람들의 몸은 모두 각기 다른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개입이 필요한지는 환자의 사정에 맞추어 이리저리 맞추어 보아야 알 수 있다. 선택 논리에서 의료는 각각의 단위로 나뉘고 쪼개질 수 있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돌봄 논리에서 의료는 언제나 과정이다. 치료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일이 되기도 한다. 몰이 주요 사례로 다루는 당뇨병은 완치의 시간성을 따르지 않으며, 환자는 당뇨병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해내야 한다. 혈당을 측정하고, 인슐린 치료를 지속해야 한다. 같은 일을 매번 다시 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여기서 생겨나는 상호 작용은 거래, 즉 재화와 대가를 서로 주고받으면 끝나는 형식을 취할 수가 없다. 환자와 의료진, 가족이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실천에 참여해야만 한다. 인터넷 쇼핑처럼 클릭하면 거래가 체결되는 것이 아니다. 혈당 조절의 결과가 어떤지에 따라 다른 방식의 접근을 다시 새롭게 시도해 보아야 한다. 당뇨병 환자에게 혈당 조절은 끊임없는 실패의 연속이기도 하다. 돌봄 논리에서 치료는 이 무수한 실패 속에서도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게 하는 것, 자책하게 하기보다는 실패를 용서하며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_ “05 환자-소비자” 중에서

  작가 소개

지은이 : 서보경
서울대학교와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태국과 독일, 한국에서 의료 보험 제도의 성립과 돌봄의 정치, 이주 노동과 여성 건강, 감염병 대응에 관한 연구를 이어 가고 있다. 2025년 현재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부교수로 있다. 주요 논문으로 “'역량강화'라는 사회과학의 비전”, “Patient Waiting: Care as a Gift and Debt in the Thai Healthcare System”, “Populist Becoming: The Red Shirt Movement and Political Affliction in Thailand”가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돌봄이 이끄는 자리: 모두를 위한 의료와 보살피는 삶의 인류학≫, ≪휘말린 날들: HIV, 감염, 그리고 질병과 함께 미래짓기≫,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공저), ≪아프면 보이는 것들≫(공저)이 있다.

  목차

의료 실천에서 돌봄을 논리로 구축하기

01 환자
02 질병
03 다양화
04 의료
05 환자-소비자
06 환자-시민
07 의료하기
08 의료의 선
09 선의 실패
10 실행의 공동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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