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지금으로부터 700만 년 전 무렵 아프리카에서 처음 등장한 인류는, 350만 년 전 무렵부터 돌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약 200만 년 전쯤에는 아프리카 밖으로 나와서 유럽과 아시아 지역으로 이동하였고, 180만 년 전쯤부터는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수많은 인간종이 지구에 등장했다 사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30만 년 전 어느 날, 현생인류의 직접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세상에 나타났다. 이 책은 그들이 만들어낸 특별한 능력에 관한 이야기다.캄캄한 동굴 안에서 작은 등불을 켜고 보는 사람을 황홀하게 만드는 황소 그림을 그린 예술가 사피엔스. 통나무를 단단하게 엮은 배를 타고 마다가스카르에서 하와이까지 인도양과 태평양을 건너간 항해자 사피엔스. 손에는 횃불을 들고 몸에는 가죽으로 만든 옷을 여러 겹 겹쳐 입고서 꽝꽝 얼어붙은 시베리아와 베링해협을 통과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탐험가 사피엔스. 이들은 무한한 상상력과 보이지 않는 것을 가지려는 욕망으로 이 모든 일을 이루어냈다. 이 과정에서 더욱 정교한 도구들이 출현했고, 음악과 미술, 원시 종교 및 가족과 돌봄 같은 정신문화도 발달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만 년 전부터 1만 년 전 사이에 생긴 변화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문화 1.0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원시’라는 고정관념을 걷어내고 우리 인간이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의 모습을 탐구해보자.
인간의 진화는 700만 년 동안 이어진 대사건이며,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중 도구를 본격적으로 만들고 사용한 것은 후반부 절반의 일이다. 고고학자들이 단단한 땅을 파거나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발굴한 도구와 뼈 화석을 과학 및 의학 분야와 함께 연구해서 고인류의 신체적·지적 특징과 능력을 비롯해 체질과 식이, 그리고 유전자 정보까지 생생하게 알게 됐다. 그것을 통해 사라졌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고인류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인류가 만들어낸 상징체계와 예술의 기원, 기술의 발전 과정 같은 정신의 영역까지 들여다보았다. … 그 끝에서 우리는 우리가 유별나고 도드라진 ‘점 ’이 아닌, 과거로부터 이어진 긴 ‘선’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_「들어가며」
어느 날, 어두운 밤 바위그늘 아래에서 모닥불을 지키던 인간들은 전과 달리 맞은편에 앉아 있는 동료의 얼굴이 확실히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닥불을 향해 둘러앉은 그들의 등 뒤로 어둠이 밀려나고 그 사이에서 그림자가 일렁이는 것을 마침내 알게 됐다. 그렇다, 불은 어둠을 걷어낼 수 있다. 어둠이 걷히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던 막연한 두려움도 사라진다. 불이 갖고 있는 빛의 속성을 처음 자각한 인간들의 눈에는 그 밝은 빛이 신기함을 넘어 경이롭고 신성한 어떤 것으로 비쳤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몸의 진화만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었던 ‘제3의 눈’을 갖게 됐다. _「따뜻한 불, 그다음은 밝은 불-등잔의 기원 ①」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상태
구석기 고고학을 전공하고 전기 구석기시대 뗀석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원도 양구군 상무룡리 유적 발굴을 통하여 본격적으로 구석기 연구를 시작했으며, 그 밖에 제주도 최초의 구석기 유적인 서귀포시 생수궤 등 여러 발굴에 참여했다.1996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로 박물관 업무를 시작했으며, 이후 유물관리부와 고고부, 전시팀 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며 관련 저술과 전시로 활동을 넓혔다. 국립제주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 등에서 일했으며, 도쿄대학교 문학부 고고학연구실에서 1년간 연구하였다. 2021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장으로 일하며 국립중앙박물관 최초의 진화인류학 특별전 〈호모 사피엔스: 진화∞관계&미래?〉를 주관했다. 현재는 국립나주박물관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인류의 진화와 도구의 발달 과정을 통하여 구석기시대 역사를 복원한 『단단한 고고학』, 구석기시대 도구를 연구한 『한국 구석기시대 석기군 연구』와 『한국미의 태동 구석기·신석기』(공저), 박물관 큐레이터와 큐레이터 지망생을 위한 실용적인 유물 관리 지침서 『박물관 소장품의 수집과 관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