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공감을 자아내는 페미니즘적 시선과 일상적 시어의 비일상적 연쇄가 주는 신선한 목소리로 주목받아온 윤유나 시인이 두번째 시집 『삶의 어떤 기술』을 창비시선 514번으로 펴냈다. 시인은 한층 선명해진 주제의식과 활달한 상상력으로 시공을 넘나들며 “감각과 이미지의 직관적 연상을 따라 자유롭게 흘러”(최다영, 해설)가는 매혹적인 시세계를 펼쳐 보인다.시집 곳곳에서 “슬픔을 말하다 중단하고, 갑작스럽게 희망이 끼어”들기도 하는 “종잡을 수 없는 목소리”(양안다, 추천사)가 우리 모두의 삶을 대변하듯 요동치는 한편, 솔직하고 유연한 시인의 사고방식이 외롭고 지친 마음을 다정다감하게 어루만진다.물속에서는 물에 젖지 않아요잠 속에서는 잠이 들고요배덕은 이야기가 되나봅니다우리의 속은 언제나 흐르고 있는데흘린 것 없죠감사해요구름이 매일 잘해줍니다덕분에 밤이면 항복하고 싶어요사람들이 왜 거짓말을 안 하죠?짙고 깊은 허울을 기필코 보여주고요―「다른 세상의 모든 근황」 부분
말하는 바다. 속에서 말하고 있는 바다. 글자 없이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바다 앞에서 얼굴을 들이밀고 바다의 말을 구연했을 때 바다가 잠깐 사라졌다.바다가 눈앞에 있는데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졌다. 살아야 하는데. 억울하고 분해서 견딜 수 없고 쓸쓸해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는데. 내기가 끝났어. 좋아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졌어.좋아하는 마음, 나는.그래. 그냥 바다. 그냥 마냥 좋아하는 마음.한번도 본 적 없는 경치. 아무 말 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는다. 전체이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바다. 없는 바다. 비로소 눈앞에 나타난 바다. 검고 깊고 어리석은 바다.―「그냥 바다」 부분
먹다, 그저지저귀는 소리 날쌔다 따뜻한 냄새 내게 오다읽다, 야만만큼넘치다, 부레먹다, 자연은 몸이 아파여기 있다, 그저 너만담소하는언어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언어언어 없는 언어―「고유감각」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윤유나
2020년 『하얀 나비 철수』를 펴내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산문집 『잠과 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