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하늘재에서 문경을 바라보며 저기 저 아래로부터 재를 올라와 서울로 향하던 영남의 문인들을 생각한다. 하늘재 아래 경상도는 숲이 아니라 사과밭이다. 우리 충청도 사람들은 하늘재에 와서 영남의 사과밭을 보고 영남 사람들은 하늘재에 와서 충청의 소나무 숲을 본다. 하늘재는 영남에서 충청도를 지나 서울로 통하는 길이다. 옛날에는 고구려와 신라가 만나던 곳이다. 마중 나온 김유신이 김춘추를 만나던 계립령이 바로 여기이다. 나는 역사를 통해 김유신이 섰던 자리에서 김춘추를 맞아본다. 하늘재는 경계이기도 하고 소통의 길목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곳이 여기 하늘재이고 현재가 미래로 향하는 곳이 여기 하늘재이다. 민중이 권력이 되려고 넘던 고개도 하늘재이고 권력을 내려놓고 낮은 세상으로 넘어가던 고개도 하늘재이다.
자작나무는 무엇으로 살까. 죽어 스러진 겨울 산을 밟고 저렇게 푸른 하늘을 향하여 서 있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옹이마다 검은 눈이 되어 세상을 응시하며 무엇을 보고 있을까. 자작나무 하얀 몸통을 붙잡고 서서 푸른 하늘을 바라보노라니 나까지 경건해진다. 아, 자작나무들은 기도를 하고 있구나. 눈을 부릅뜨고 딱한 세상의 온갖 잡사를 하늘에 길어 올려 하소연하는 것이구나. 그러고 보니 수천 그루 자작나무의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무巫로 보였다. 하얗게 소복하고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당골이다. 파란 하늘[一]과 거친 땅[一]을 이어주는[丨] 사람[人]이다. 이어줌의 통로가 수천 그루의 나무의 형상을 빌어 서 있는 것이다. 수천의 무당이 엄숙하게 서서 하늘에 인간의 소망을 길어 올리고 있는 형상이다. 위로는 천문에 통하고[上通天文] 아래로는 지리를 살피어[下察地理] 그 합일점인 중통인의中通人義를 얻으려는 사제의 엄숙한 자세이다. 그것이 바로 무巫이다. 자작나무는 곧 중통인의라는 소망을 하늘에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다.
연풍 사과의 단맛과 야릇한 향기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과 농사짓는 연풍 사람들의 부지런함이다. 연풍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백두대간 기슭의 비탈진 사과밭에서 산다. 계절마다 힘들지 않은 때가 없겠지만, 사과 알에 살이 붙기 시작하는 초가을부터 늦가을 서리 내리기 직전까지 가장 어려워 보였다. 바닥에 비닐을 깔아 반사하는 햇볕까지 받아 당도를 올린다. 하루라도 더 볕을 쬐려고 사과나무와 함께 밤을 견디다가 서리 내리기 직전에서야 수확한다. 게다가 달려드는 원수 같은 까치 떼도 쫓아야 한다. 제아무리 연풍 사과라도 흠집이 있으면 제값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농민들의 말을 들으면 한 상자에 15만 원짜리가 3만 원 받기도 어렵다고 한다. 늦가을 주렁주렁 열린 사과나무를 보면 연풍 사람들의 가슴에 매달린 조바심처럼 보인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방주
청주시 죽림동에서 태어나 1998년 월간 『한국수필』 신인상을 받으면서 수필을 썼고, 2014년 계간 『창조문학』 문학평론 신인상을 받고 문학평론을 쓰기 시작했다.수필집 『축 읽는 아이』(2003), 『손맛』(2009), 『여시들의 반란』(2010), 『풀등에 뜬 그림자』(2014), 『가림성 사랑나무』 (2017), 『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2020), 『부흥 백제군 발길 따라 백제의 山城 山寺 찾아』(2020), 수필선집 『덩굴꽃이 자유를 주네』(2020), 문학평론집 『해석과 상상』(2021), 수필창작이론서 『느림보의 수필 창작 강의』(2022), 고소설 주해서 『윤지경전』(2011)을 냈다. 충북수필문학상, 내륙문학상, 인산기행수필문학상, 한국수필문학상, 신곡문학상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서원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교실 강사, 내륙문학회, 충북수필문학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한국수필가협회 부이사장, 수필미학작가회 회장, 세계직지문화협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티스토리 느림보 이방주의 수필마루 https://nrb2000-22.tistory.com
목차
작가의 말 • 늙은 좀이 되어
1. 길
지렁이가 품은 우주
램프의 향기
반야로 가는 길
원대리 자작나무
모깃소리
앉은뱅이 일으키기
흠집
따비
인연因緣 2
바람소리
새해 첫날 석천암에 가다
알다
2. 꿈
고희古稀의 꿈
미음완보微吟緩步하는 느림보
연꽃공원 가는 길
꽃보다 아름다운 것
느림보 서재, 소를 기다리다
나의 소주 반세기
완보緩步 그리고 노두老蠹
똥 꿈
적소謫所에서
10월 26일, 징벌과 사면
3. 우리
벌초냐 도토리냐
사내남男과 계집녀女 가르치기
첫눈
그냥 떠나신 아버지
바람의 기억
달기똥 묻은 달걀
쌀 한 가마
성城 그리고 나무
풍경 소리
4. 물음
이방주랑 버마재비랑
낙가리 포도밭 사람들
보련산 버마재비
일절만 하시지요
계란 한 판
나으리의 사려, 꼰대의 생각
개와 늑대
버립니다
관세음보살님 다 보고 계시는지요
열림이냐 닫힘이냐
5. 마당
영화와 거울효과
동주를 찾아가는 길
‘빨리빨리’냐 ‘천천히’냐
고복저수지 메기매운탕
낭만이 살아오는 술, 막걸리
고추장
된장이나 끼리쥬
죽
닭
조롱박꽃 피는 사연
뽀리뱅이와 흙
디아Dia를 따라가는 길
칭기즈 칸 마당에 세종대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