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두둑을 짓고 밭 장만이 끝났으니 오늘은 검정콩을 심어 볼까나. 이랑은 길고 심어야 할 콩은 두 마지기 15,000알. 이걸 언제 다 심나 걱정은 얼치기 농부의 몫. 진짜 농부는 지금 심는 콩 한 알만 생각하더군. 이따 심을 콩은 이따 심을 거니까 이따 생각하고 지금 손에 들린 건 그저 콩 한 알, 고추 한 포기.
전지는 모진 일. 종일 꽃눈을 자르고 돌아오면 손이 저리다. 날은 벌써 덥고 꽃눈은 저만큼 부풀었는데 어쩌다 나는 농부가 되어 이 이른 봄날 종일 꽃눈을 자르고 있다. 꽃을 자르는 건 섭섭한 일. 겨우내 가지를 치고 꽃눈을 땄으니 그만 섭섭해도 되는데, 피지 못하는 게 어디 사과꽃뿐이랴 싶은데……. 종일 꽃눈을 자르다 돌아오는 저녁. 아이고, 디다 디.
풀이 있어야만 흙이 살집니다. 풀이 있어야만 땅이 부풀고 풀이 있어야만 흙이 숨을 쉽니다. 그러니 또 얼마나 힘든가요. 풀이 많으면 제가 죽을 지경, 풀이 없으면 땅이 죽을 지경. 어머니 말씀이 사는 이치처럼 들리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참 적당하기가 힘들어라.”
작가 소개
지은이 : 변우경
서울살이 30년 동안 ‘안 되면 농사나 짓지’를 든든한 ‘빽’으로 믿다가 결국 귀향해 큰코다치고 있는 중. 검사 판사 의사 되라고 서울 보냈더니 농사를 짓겠다 내려와 이웃의 비웃음을 사고 있지만 어쩌랴 촌놈은 뛰어봤자 논두렁이고 올라봤자 고욤나무지. 고욤나무 대신 사과나무에 올라 사과꽃 피는 방향에만 골몰하다가 목 디스크로 골골 대고 있는 저질 체력 농부. www.facebook.com/rural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