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특집 우리 사회의 기본적 가치와 기독교
「기독교사상」 지령 800호, 현대 인류가 추구해온 세 가지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살펴보며 기독교의 영향을 조명하다
– ‘자유, 정의, 평화’의 전개 과정, 그리고 ‘신학이 있는 목회’를 위한 성찰과 제안2025년 8월, 월간 「기독교사상」이 지령 800호를 맞는다. 1957년 창간 이후 68년,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함께한 「기독교사상」은 단지 신학과 목회의 영역만이 아니라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며 복음과 신학의 언어로 응답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 사회가 공통적으로 추구한 가치는 ‘자유’, ‘정의’, ‘평화’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번 800호에서는 이 세 가지 가치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를 거시적인 관점에서 조명하며, 기독교는 그 과정에서 어떠한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았다.
첫 번째 글에서는 ‘자유’ 개념의 굴절과 재정립을 통해,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가 반공 이데올로기에 어떻게 포섭되었는지를 비판적으로 진단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반공 자유주의’의 유산이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기독교는 인간의 존엄과 평화를 위한 해방적 자유의 신학을 새롭게 정립해야 함을 역설한다. 두 번째 글에서는 우리 사회가 추구해온 ‘정의’ 개념의 변화를 기독교의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운동 속에서 살펴보며 이에 대한 「기독교사상」의 실천적 응답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동시에 친일 청산 실패부터 혐오 담론까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정의의 과제 앞에서, 기독교가 성서적 해석과 복음적 해결을 제시해야 할 책임을 되새긴다. 세 번째 글에서는 한반도 분단 80년을 돌아보며, 통일운동 속 기독교의 공적 책임을 되묻는다. 반공 독재와 국가보안법의 벽을 넘어 평화와 화해, 통일의 희년을 향해 나아갔던 신앙인들의 여정을 따라가며, ‘이제 교회가 다시 나서야 한다’고 단언한다.
마지막 특별 좌담에서는 편집위원과 발행인이 함께 모여 「기독교사상」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한다. 좌담자들은 토착화, 민중신학, 여성신학, 평화운동 등 시대를 관통한 담론의 역사 속에서, 잡지가 신학의 울타리이자 토론의 공간으로 기능해 왔음을 재확인한다. 이들은 진보와 보수라는 낡은 이분법을 넘어서, ‘신학이 있는 목회, 목회를 위한 신학’을 지향해야 할 때임을 한목소리로 강조한다.
지령 800호 특집은 단지 과거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명을 붙드는 자리이다. 자유와 정의, 평화와 목회의 언어로 한국교회의 현실을 성찰하고, 에큐메니컬한 비전과 신학적 통찰을 통해 다음 시대의 길을 함께 모색하는, 이 시대 교회와 신학을 위한 깊은 제안이자 물음이다.
특집 요약
1. 분단체제 속 한국 기독교의 자유 개념 : 굴절과 재정립김흥수 교수(목원대학교 명예교수)는 이 글에서 해방 이후 한국 기독교가 자유를 어떻게 이해하고 실천해왔는지를 ‘굴절’과 ‘재정립’이라는 틀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필자에 따르면, 해방은 자유 개념을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냉전과 분단이라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 자유는 반공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며 특정한 정치 질서를 정당화화는 도구로 굴절되었다.
기독교는 해방 직후부터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며 국가 수립 과정에 적극 참여했지만, 실제로는 공산주의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한 ‘반공 자유주의’의 형태로 자유를 수용했다. 이 같은 협소한 자유 개념은 이승만·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더욱 공고화되었고, 교회는 이를 신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도 했다. 반면 1970년대 이후 일부 진보적 교회는 인권, 민주화, 통일운동 등을 통해 자유를 보다 보편적이고 해방적인 가치로 확장하고자 했다. 특히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은 평화와 화해 중심의 새로운 자유 담론을 신학적으로 정립한 전환점이었다.
필자는 오늘날 한국 사회와 기독교 내부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반공 자유주의’ 담론의 지속성을 지적하며, 윤석열 정부 들어 다시 부상한 자유 담론 역시 국가 안보와 정치권력의 도구로 활용되는 경향이 강했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는 반공주의에 종속된 자유 개념을 넘어서, 신앙의 본질로서의 자유, 곧 인간의 존엄, 공동체적 책임, 해방과 평화를 위한 실천적 가치로서의 자유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새로운 자유 개념은 단지 담론의 전환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가 시대의 고통 속에서 감당해야 할 윤리적·신학적 책임의 갱신이라는 과제를 포함한다고 필자는 말한다.
2. 현대 에큐메니컬 운동의 ‘정의’ 이해와 「기독교사상」채수일 목사(크리스챤아카데미 이사장)는 이 글에서 20세기 이후 정의 개념의 신학적 발전과 「기독교사상」(‘기상’)의 역사적 사명을 입체적으로 분석한다. 필자는 1910년 에든버러 선교사대회부터 2022년 독일 카를스루에 총회에 이르기까지,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세계선교대회를 통해 논의된 정의 개념의 흐름을 ‘평등으로서의 정의’, ‘화해된 정의’, ‘경제적 정의’, ‘기후정의’ 등으로 구분하여 정리하고, 이에 대한 ‘기상’의 응답과 비판적 실천을 소개한다. 특히 1975년 유신체제하에서 ‘기상’이 편집장 해임과 판매금지 조치를 당한 사건은, 잡지가 시대의 불의에 저항해온 역사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로 언급된다. 또한 기상은 창간 이래 줄곧 ‘사상의 불안정과 빈곤에서 비롯된 사회적 혼돈과 무질서를 기독교 복음진리로써 해결하고자’ 했고, 시대의 아픔(인권, 민주화, 통일, 생태 위기)을 성서적으로 해석하며 그리스도교적 해결방안을 제시해왔다.
또한 필자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가 직면한 정의의 과제(친일 청산 실패, 국가폭력, 민주주의의 위기, 양극화, 성차별과 소수자 인권, 극우 기독교의 확산, 가짜뉴스와 혐오)를 돌아보며, 한국교회와 ‘기상’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소명을 강조한다. 필자는 ‘기상’이 단지 잡지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나침반이자 예언자적 목소리였다면서, 창간사에서 밝힌 ‘사회문제에 책임 있게 참여하고, 시대의 아픔을 성서적으로 해석하며, 기독교적 해법을 제시하는’ 사명이 지금 더욱 절실하다고 전한다.
3. 분단시대 80년의 평화통일운동과 기독교이삼열 박사(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는 이 글에서 해방과 동시에 시작된 한반도 분단 80년을 돌아보며 기독교가 걸어온 평화통일운동의 역사를 집중 조명한다. 특히 기독교가 실천해야 할 평화의 복음은 무엇보다도 적대적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남북이 함께 살아가는 통일의 길을 여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분단 80년의 통일운동사를 크게 두 시기로 나눈다. 1979년까지의 시기는 반공 독재 아래 평화통일에 대한 논의 자체가 탄압받았던 시기로, 조봉암과 함석헌 같은 이들이 평화통일을 주장했지만 국가보안법의 벽에 가로막혔다. 1980년 5·18 이후 민주화운동이 확산하면서 기독교는 통일을 선교적 과제로 인식하고 본격적인 평화운동에 나섰다. 특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1988년 ‘88선언’을 통해 평화체제와 교류 협력, 통일 희년을 제안하며 정부의 통일정책 전환에도 기여했다. 남북 간 교류와 세계교회의 협력을 통해 기독교는 민간 통일운동의 물꼬를 틔우는 데 앞장섰으며, 문익환·김관석·안병무 등 신앙인들은 통일신학과 평화운동을 통해 기독교의 공적 책임을 감당하고자 했다.
그러나 필자는 남북정상회담과 선언들이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행이 뒤따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권에 따라 대북정책이 춤추는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고 단언한다. 특히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며 평화공존을 언급한 최근 상황에 주목하면서, ‘한 민족 두 국가’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체결과 남북기본조약 수립이야말로 신뢰를 회복하고 체제불안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제안한다.
필자는 이제 교회가 다시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선언이 아닌 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체제가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기독교는 정의와 화해, 생존권 보장과 인권 수호의 사명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은 통일운동의 역사와 과제를 깊이 있게 성찰하며, 평화의 동력을 회복해야 할 이때 교회와 시민사회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묻는다.
4. [지령 800호 기념 좌담] 「기독교사상」의 과거와 미래지령 800호를 기념해 「기독교사상」의 편집위원[김흥수(목원대학교 명예교수), 박경수(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백소영(강남대학교 교수), 지형은(성락성결교회 목사)]과 발행인(서진한 목사)이 한자리에 모여 「기독교사상」의 과거와 미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들은 1957년 창간 당시를 비롯해, 1960년대 토착화 논쟁, 1970년대 민중신학, 1980년대 여성신학, 공산주의와 평화통일 운동, 나아가 오늘의 「기독교사상」이 직면한 현실과 미래 과제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주제를 논의했다.
먼저 김흥수 교수는 창간 당시의 시대적 흐름을 짚으며, 「기독교사상」이 주간지 「기독공보」, 기독교방송(CBS)과 함께 한국교회의 커뮤니케이션 3축을 형성했다는 점을 강조함과 동시에 창간 초기부터 에큐메니컬한 성격을 분명히 드러냈다고 회고했다. 이어 그는 1960년대 「기독교사상」이 토착화 논쟁의 장을 마련해 주었다는 점을 짚었다. 1970년대는 「기독교사상」이 민중신학을 발굴하고 본격화한 시기였다. 이에 대해 서진한 목사는 당시 정권 비판은 곧 생명의 위협이었으나, 이 잡지가 울타리를 제공했다고 회상했다. 1980년대는 한국 여성신학이 본격적으로 이론화되기 시작한 시기였다. 백소영 교수는 여성신학이 점차 엘리트 중심의 이론화로 흐르면서 현장과의 괴리가 생겨났고, 그 점이 과제로 남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논의는 평화통일운동으로 확장되었다. 박경수 교수는 평화가 통일보다 더 큰 개념이며, 교회의 에큐메니컬 정신이 통일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형은 목사 역시 「기독교사상」은 민중, 토착화, 통일 등의 주제를 대립이 아닌 연속적인 흐름으로 다루어왔다고 덧붙이며 잡지의 일관된 문제의식과 시대 진단을 재확인했다.
한편, 좌담 말미에는 향후 과제에 대한 제언도 활발히 오갔다. 서진한 목사는 지금은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을 넘어서 토론의 공간을 넓히고 화해와 환대의 신학을 펼쳐야 할 때라며, 전쟁과 증오가 아닌 공존과 평화를 신학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참석자들은 ‘공존’과 ‘공생’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더욱 담아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특히 지형은 목사는 현장 목회자들과 신자들이 갈급해하는 지금, 「기독교사상」이 성서를 중심으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를 수 있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며, ‘신학이 있는 목회, 목회를 위한 신학’이라는 편집 방향성에 공감을 표했다.
이번 좌담은 「기독교사상」의 68년 역사를 성찰하고, 에큐메니컬 정신과 복음적 사명을 바탕으로 미래의 방향성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이었다. “기독교사상은 시사저널만은 아니다, 전문 학술지만도 아니다, 목회 현장 보고서만도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믿을 만한 정론지이다.” 백소영 교수의 이 말은 「기독교사상」이라는 잡지가 지금껏 걸어온 길과 앞으로 나아갈 길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지령 800호를 지나며, 이제 「기독교사상」은 더 깊고 넓은 사유의 지평을 향해 다시 나아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