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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인연
한용운문학상 수상 기념시집
샘문(도서출판) | 부모님 |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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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 설>

불교적 사유와 능란한 시어 구사 시편

- 손해일(시인, 문학박사, 국제펜한국본부 제35대 이사장)

1. 머리말
정승기 시인의 첫 시집 『유랑인연』 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특히 한용운문학상 기념 ‘감성시집’이라고 명기한 것은 이 시집이 ‘이성’보다는 ‘감성’ ‘감정’에 특화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여는 글에서 정승기 시인(이하 정시인)은 “나만의 글을 써야겠다는 다짐이 꽃처럼” 피어나 “시인이라는 비극적 업(業)”을 시작했다고 술회한다. 즉 시어와 문장 속에 산다는 것은 “불가항력적 중독이며, 허우적거리는 비련”이므로 창작의 기쁨보다는 ‘산고(産苦)’의 고통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첫 시집을 내는 비장한 의미와 역설적 기쁨을 말하고 있다.

흔히 시를 “말하기 시”와 ‘보여주기 시’로 나누기도 한다. 전자는 시를 대화처럼 설명하고 서술하여 감정에 호소하는 시이며, 후자는 설명 대신 비유와 상징으로 그림처럼 보여주는 시를 말한다. 정시인의 이번 시집은 ‘말하기 시’에 속하므로 쉽게 읽힌다. 시가 길고 짧음은 있지만, 표현된 행간의 의미를 음미하는 게 요점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정시인의 이번 시집 특징을 한마디로 “불교적 사유와 능란한 언어 구사의 묘미”라 규정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2. 불교적 사유와 ‘애별리고’의 세계
이번 시집 제목 『유랑인연』이나, 각 장의 주제를 ‘애별리고(愛別離苦)’로 나누어져 있음은, 정시인이 불교적 사유를 바탕으로 시를 쓰고 있음을 말해준다.
일반적 의미의 ‘유랑(流浪)’ 또는 ‘방랑(放浪)’은 정해진 거처가 없이 떠돌아다니는 무숙 상태를 의미한다. 이 시집에서는 ‘자유로운 영혼’의 ‘노마드nomad)적' 감성이 풍부함을 암시한다.

‘애별리고(愛別離苦)’는 불교의 팔고(8苦) 가운데 하나이다. 부연하자면 사고(四苦)는 (1)생고(生苦) : 출생으로 인한 고통, (2)노고(老苦) : 늙음으로 인한 고통, (3)병고 : 질병으로 인한 고통, (4)사고(死苦) : 죽음의 공포와 이별이다.

여기에 네 가지 고통 (1)애별리고(愛別離苦) :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고통, (2)원증회고(怨憎會苦) : 원망하고, 미워하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인한 고통, (3)구부득고(求不得苦) : 권력, 재물, 사랑 등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4)오온성고(五蘊盛苦) : 오온五蘊(색,수,상,행,식)의 집착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 등을 더하여 ‘팔고(八苦)’라고 한다.

장드리 부뤼에르는 “세상은 느끼는 자에겐 비극이며, 생각하는 자에겐 희극”이라고 했는데, 불교의 ‘팔고(八苦)’는 느끼는 자의 고통이라 하겠다. 정시인이 특히 ‘애별리고(愛別離苦)’ 즉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고통’을 강조하는 것은, 이 시집의 분위기가 감성 위주임을 말해준다. 정시인의 각 챕터 나눔 순서대로 몇 작품씩 살펴본다.

제1부 사랑 애(愛)

‘애별리고’의 첫째는 사랑의 고통이다. 기독교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 중 으뜸은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사랑이란 다른 사람이나 대상에 애정과 관심을 갖고 그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는 감정”이다. 사랑을 고통으로 여기는 불교와, 축복으로 여기는 기독교를 비교하면 아이러니요, 역설적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랑을 일곱 가지로 분류했다. (1)에로스 : 육체적, 열정적 사랑), (2)필리아(philia) : 우정, 동료애, (3)스토르게(storge) : 가족 간의 사랑 (4)아가페(agape) : 무조건적, 헌신적 사랑, (5)루두스(ludus) : 놀이 같은 사랑 (6)프라그마(pragma) : 실용적 사랑, (7)필라우투아(philautia) : 자기 존중, 자기애 등이다. 이 시집에서는 남녀 간의 에로스적 사랑을 주된 모티브로 하고 있다.

죄를 지었습니다/ 들판에 너무나 아름다운 꽃 한 송이에 반해/
뿌리째 뽑아서 집 화분에 심었습니다/ 꽃이 당신을 닮았다는 이유였습니다/
꽃이 시름시름 앓습니다/ 꽃도 당신처럼 떠나겠지요

-「애별리고愛別離苦」 전문

이 작품에서 “애별리고”는 꽃=당신이라는 등가관계입니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꺾어온 꽃이지만, ‘떠난 당신처럼’ 시들면 버려져야 하는 것이 안타까운 숙명이다

첫눈이 내립니다
눈雪은 나의 발에 밟히고
당신은 나의 눈目에 밟힙니다
당신도 나의 첫눈인가요?

-「첫눈」전문

짧은 이 작품에서도 눈(雪)과 눈(目)을, ‘발에 밟힌다’와 ‘눈에 밟힌다’로 언어유희를 하며, “당신도 나의 첫눈인가요?”라고 반문한다.
그대 향한 사랑과 그리움은/ 태초 이래 시작된 처음과 끝이라
그 어떤 神도 만물의 무한함을/ 인간의 사랑에 비교하지 말지니//
사랑은 무한無限과 영원泳遠/ 시간과 공간을 넘어 존재하리라
이 순간을 영원으로 기억하리니/ 우리의 사랑은 끝없는 서사敍事가 되리라

-「영원의 서사」일부

그대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은 “태초의 처음과 끝”이다. “그 어떤 신도 인간의 사랑에 비교하지 말라” “우리의 사랑은 끝없는 서사가 되리라”라며 사랑의 절대적 가치를 강조합니다. 무조건 사랑 지상주의자이다.

시인의 시詩를 시류詩流에 흘려보내도/ 흐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당신을 향한 애증뿐입니다./ 아. 어찌할까요?
슬픔이라 쓴 우리의 표석이/ 산산이 부서집니다
재빨리 사랑이라 첨삭합니다

-「가을의 시류」일부

흐르지 않는 것은 “당신을 향한 애증뿐”이며, 슬픔 대신 “사랑”으로 대체한다. 성경에서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 이라 한 것과 같다.


어두운 절망 속에서/ 빛으로 다가오신 그대여/
그대는 누구신가요?/ 환한 봄꽃으로 다가오신 여인이여/
당신이 꽃을 피우라 하시면/ 저는 꽃을 피우며 당신을 반기겠습니다//
언젠가 만나겠다 하시면/ 나는 그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노래합니다/ 나는 당신을 위한 찬미讚美의 시詩를 씁니다//
나의 여왕이시여, 나의 창조자시여/ 당신 아래 피조물이 무릎을 꿇습니다/
사랑 아래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신가요?//

- 「당신은 누구신가요?」 일부

그대는 누구신가요? “절망 속에서 빛으로 다가오신 그대” “환한 봄꽃의 여인”이다. 그대가 꽃을 피우라면 피우고, 떠나겠다면 기다리고, 당신을 노래하고, 찬미의 시를 씁니다. 사랑 아래 두려움이 없다고 한다.
“사랑이라는 돌덩어리를 밀며/ 매일 같이 산봉우리 정상을 향하지만 언제나 그 돌을 밀어내는 것은 당신뿐/ 끝없는 시지프스의 형벌. 정승기 「서시」 일부”이다.
당신이 창조한 사랑을/ 너무 오래 방치하지 마세요/
사랑도 오래 두면 변질이 돼요/
사랑을 보관할 때는 끓여서 냉동실에 넣어요/
그래야 그 사랑이 오래갑니다//
당신이 만든 사랑을 오래 방치하지 마세요/
사랑이 오래가려면 한 번씩은 충전을 해두세요//
당신이 만든 사랑을 녹슬게 하지 마세요/
오래된 사랑은 한 번씩 기름을 뿌려 주세요/
유통기한 내에 사랑을 가끔 꺼내서 확인하세요/.
사랑의 제조 일자는 없어도/ 유통기한은 있답니다

-「사랑 유통기한」일부

사랑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발상과 비유가 신선하다. 당신이 창조한 사랑을 오래 방치하지 말라. 변질된다. 사랑이 오래가도록 보관할 때는 끓여서 냉동실에 넣어라. 한 번씩 충전도 해라. 한 번씩 기름도 뿌려 주고, 가끔은 꺼내서 확인도 해보라고 권면합니다. “사랑에 제조 일자는 없어도/ 유통기한은 있기 때문입니다.

메마른 가지에/ 쭈그렁 그리움 하나가 매달려 있습니다//
긴 밤 지새우며 기다리는 애틋함에/
마침내 그리움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슬픕니다/
본디 당신의 사람으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겨울, 내 사랑이 얼지 않기를/
부디 내 사람이 얼지 않기를 기도 합니다

-「내 사랑이 얼지 않기를」 일부

메마른 감나문 가지에 남겨진 까치밥처럼, “그리움 하나가 매달려 있습니다” 본디 당신의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태어남 자체가 슬픔입니다. 그럼에도 부디 내 사랑이 얼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제2부 헤어질 별(別)

우리 인생에서 만남과 헤어짐, 즉 ‘회자정리(會者定離)’는 숙명이다. 만물은 유전하고 우리 생명 또한 유한하기 때문이다. 공간적인 이별, 시간적인 이별, 늘 같이 있어도 사랑 없는 정신적 이별 등이다. 대부분 직설적인 ‘이야기 시’들이므로 간단한 멘트만 붙인다.

환승역은 언제나 슬픔이 모이는 곳
비탄과 눈물에 몸부림치는 군상群像들의 눈물에
쇳덩이 궤도조차 무뎌진다

만남의 사랑, 떠나는 이별
그리고 환승 이별을 예고하는 진행형 이별
이별의 당사자만큼 더욱 비참한 것은 없었다

-「환승역, 환승 이별」일부

환승역은 탑승객이 행선지를 바꾸어 갈아타는 역이다.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이다. 이 시의 퍼스나가 인식하는 환승역은 “언제나 슬픔이 모이는 곳”이며, 그 눈물에 쇳덩이 궤도조차 무너진다. “만나는 시랑” “떠나는 이별”이 교차하는 환승역에선 이별의 당사자가 가장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은 거북이처럼 다가왔다가/ 이별은 도적처럼 떠나갔다//
그리워해도/ 그리워해도/ 닿을 수 없는 나의 애처로움이여!//
사랑이 죽던 날/ 나의 애처로움도/ 당신과 함께 묻어야 했다//
애처로움의 무덤에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자라지 못하는 폐허였다//
어둠은 언제나 죽은 간절꽃의 무덤/

-「애처로운 간절꽃」일부

사랑은 거북이처럼 왔다가 이별은 도적처럼 떠나갔다. “사랑이 죽던 날/ 나의 애처로움도 당신과 함께 묻어야 했다.” ‘간절꽃’이 상상인지, 실제 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어둠은 언제나 간절꽃의 무덤“이다.

눈이 수북이 쌓인 간이역을 들어간/ 한 쌍의 발자국,//
되돌아 나오는 길은/ 외쪽의 발자국만 선명하다/...
간이역에 이별을 두고 왔지만/ 여전히 몸과 마음은 슬픔이 짓누른다//``
아뿔싸!/ 이별의 그림자를 데리고 왔구나!

- 간이역에 이별을 내려놓고」일부

간이역과 이별이라는 셋팅 설정은 약간 신파조이다. 눈이 수북이 쌓인 간이역에 한 커플이 들어갔으나 나올 땐 한쪽 발자국만 찍혔다. 이별을 내려놓고 왔지만, 몸과 마음이 아직도 슬픈 건 ‘이별의 그림자’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강물에 흘러가는 인연 하나가/ 잠시 머물러 숨 고르기를 한다//
내게로 멈춘 사람의 사랑은/ 언제나 종착점으로 믿었다//
나는 그대에게 나무가 되고/,큰 산이 되고 행복의 화목제가 되어도/
유랑하던 당신의 사랑은/ 내게 머물러 주지 않았다//
사람이, 사랑이 또 흘러간다/ 찰나刹那의 유랑 인연은 상처가 되고,/
흔적이 되어/ 영겁永劫의 슬픔으로 남는다//

-「유랑인연 1」전문

정시인이 서두에서 강조하던 주제가 ‘유랑인연’이다. “인연이란 억지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며, 바람처럼 물처럼 찾아와서 스치며 머물다가는 흐름“이라 규정한다. “잠시 만남이 있었고, 다시 흩어짐과 아우름”이 있었기에 ’유랑인연‘ 이라는 것이다. “강물에 흘러가는 인연 하나가/ 잠시 머물러 숨 고르기를 한다.” 내가 나무요, 산이요, 큰 화목제가 되어도 “유랑하던 당신의 사랑은 내게 머물러 주지 않았다.” 그 사랑이 흘러가면, 내겐 상처가 되고, 흔적이 되어 영겁의 슬픔으로 남는다.

제3부 떠날 리離

여기서는 일시적인 이별이나 헤어짐보다, 운명처럼 영원히 떠나버리는 슬픔을 노래한다. 생이별이 아니라 사별의 아픔이라고나 할까? 「주머니 없는 수의」 「박제사랑」「내가 죽은 이틀째」「마중물」「촛불 예찬」「나의 유품遺品을 태우며」등이 이에 속한다.

당신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사랑의 추억과/
슬퍼했던 아픔도 고이 접에 넣었네/
넣어도 넣어도 공허한 주머니는/ 먼 허공에 손짓하네/
그 무엇도 담을 수 없네/
주머니 없는 수의/ 어쩌면 처음부터 비어 있었을지도/...
그저 환영에 불과했으리//
흙을 덮은 뒤에 남은 것은/ 너와 나 사이의 숨결 그 하나뿐/
삶은 결국 빈 주머니처럼/ 그저 두 손으로 감싸던 바람이었을까?/
주머니 속에 넣지 못한 손은 차디찬데/
그대의 손은 지금도 따뜻할까?//

-「주머니 없는 수의壽衣」일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간다”는 무상함이 우리 인생의 원초적 명제이다. 이런 “공수래공수거”의 허망함이 ‘주머니 없는 수의’로 상징된다. 빈손으로 가는데, 수의에 주머니가 필요할까? 당신과 함께했던 사랑과 슬픔은 고이 접어 넣었다. 그러나 공허한 주머니엔 무엇도 담을 수 없다. “어쩌면 처음부터 비어 있었고, 그저 환영에 불과했을 것”이다. 흙을 덮은 뒤의 남은 것은 너와 나의 숨결뿐인데, 그대의 손은 지금도 따뜻할까?

죽지도, 살아있지도 못한 허공을 응시하며/ 벽에 걸린 흐릿한 동공/
오랜 기다림의 사랑은 박제와도 같았다/
사랑이란 천 년의 기다림은/... 박제가 되어버린 형벌이었다/
박제가 되어버린 의안義眼에서 눈물이 흐른다/
당신만이 내 형벌을 끝낼 수 있다/
당신만이 내 눈물을 닦을 수 있다/
-「 박제剝製 사랑」일부

사랑도 동물들의 박제나 압화처럼 말려서 보관이 가능할까? 그러나 박제된 사랑은 형벌이다. 당신만이 내 형벌을 끝내고 내 눈물을 닦을 수 있다.

초등학교 동창 녀석들은 문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서성거리며/
여전히 바닥에 침을 뱉는다//
눈두덩이가 부은 딸/ 말이 없이 상주喪主 노릇하는 아들/
부모님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도 왔을까?/
살아생전 내 목숨같이 사랑한 여인은/ 끝내 보이지 않는다//
처마 끝 조등弔燈이/ 초겨울 샛바람에 몸서리를 친다/
춥다,/ 아랫목에 누울 시간이다//

-「내가 죽은 이틀째」일부

‘의사疑死 체험 프로그램’이라는 게 있다. 실제로 자기가 죽은 것처럼 관 속에 들어가서 눕고 유서도 써본다. 이 작품에서는 자기가 죽은 뒤 이틀째의 상가 풍경을 내려다보는 가상현실이다. 문밖에서 담배를 피며 서성거리는 초등학교 동창들, 눈두덩이가 부은 딸, 상주 노릇하는 아들, 그러나 살아생전 목숨같이 사랑했던 여인은 보이지 않는다. “춥다!. 이제 누을 시간이다”

제4부 괴로울 고苦

‘애별리고’의 귀착점은 괴로움이다. 불교에서 팔고(八苦) 즉, 여덟 가지 괴로움은 이승에서 자신이 빚은 원인과 결과이다. 모든 괴로움의 근원은 삼법인(三法印) 즉,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자인지과(自因自果)‘ ’업(業)‘에 다름 아니다.
「벌초 길에 만난 유랑인연 1」「늙은 소년은 이미 바다가 되어있었다」「생生이란 보편적 논제」「솟대와 장승」 어느 창작자에게 권면勸勉」「수족관 속의 게」등이 여기에 속한다.

가느다란 명주실조차/ 손에 작은 상처를 남기는데/
인연의 끈을 놓을 때는/ 상대편 손과 마음은 치명적이리라//
함부로 잡지 말아야 할 것은/ 손에 잡은 끈과 마음이 잡은 끈이다/
잡고 있을 때는 모른다/ 끈을 놓아야 찢긴 상처가 보인다//

-「함부로 끈을 잡지 말자」일부

가늘고 질긴 명주실을 잡고 당기다가 잘못하면 손을 베인다. 하물며 인연의 끈을 놓을 때면 상대의 손과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치명적일까? 잡고 있을 때는 아픔을 모른다. 함부로 끈을 잡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차/ 누군가에게는 목돈으로 구입한 첫 차/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했던 차/ 또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간 차//
사연 많은 모든 차가/ 엔진이 분해되고 부품이 제거되어/
앙상한 뼈대만 남는다/... 시뻘건 쇳물로 자동차가 영혼을 소멸한다//
사라진 건 차뿐이 아니다/... 폐차는 또 다른 시작과 희망을 품는다/
삶 또한 그렇게/ 한 번은 부서져 사라지지만/
언젠가 어디선가 또 다른 운명으로 태어나리라//

-「폐차장, 부서진 꿈들의 재생」일부

폐차장은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었던 각종 자동차의 장례식장이요, 무덤이다. 쓸만한 부품은 추려내고, 나머지는 분해되고 부서진다. 사후 장기 기증하는 시신처럼 쓸만한 장기는 쓰이고 시신은 화장되어 한 줌 재로 변한다. 폐차가 용광로에서 녹아 쓸만한 광물로 재생되듯 인간도 재생하여 다른 운명으로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불교에서는 생전의 업에 따라 6도 윤회로 내생에 다시 태어난다고는 하지만...


제5부 신信과 신神

믿을 신(信)과 귀신 신(神)을 병치시켜 에피소드를 시화했다.
「이사가던 날」「달맞이꽃 해방둥이 소녀- 나의 어머니」「비탄의 피에타 –나의 아버지」「어머니의 쌍가락지」「신의 저울질」등이 수록되어 있다.

반백 년을 함께 했던/ 괭이와 나무 자루가 썩어가는 호미.../
먼지들과 좀벌레까지.../ 긴 침묵과 고요에서 잠을 깨어난다/ 장롱의 선반.../
태생을 알 수 없는 연장들,../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삿짐과 사람들/...
사명을 다한 붉은 기와지붕의 용마루.../
떠나려는 자, 말이 많고/ 남겨둔 것들은 말이 없다/
손鬼 없는 날, 이사 가는 날/ 손手 없는 먼지와 돈벌레도 주인 따라/
부리나케 이사 채비를 한다/

-「이사 가던 날」 일부

시골집에서 이사 가던 날의 풍경이다. 반백 년을 함께 했던 괭이, 호미, 먼지와 좀벌레들, 장롱 선반, 붉은 기와지붕과 용마루 등등도 다 인연의 산물이다. “떠나려는 자는 말이 많고, 남겨둔 것들은 말이 없다.

「달맞이꽃 해방둥이 소녀(-나의 어머니)」는 1945년 해방둥이로 일본에서 태어나 귀국한 뒤 조실부모하고, 이팔청춘의 꽃다운 나이에 결혼했지만, “눈물샘에 나온 물을 먹고 자란 소녀” 달맞이꽃으로 찢어지게 가난한 간난신고의 고된 삶을 살아온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사모곡이다. 본문은 지면상 생략한다.

「비탄의 피에타Pieta -나의 아버지」는 병석에 누워 “먹지도 못하고 배설조차 어려우며” “마른 소나무 장작처럼 가늘어진 허벅지“의 부친을 죄스럽게 바라보는 화자의 심정을 리얼하게 그렸다. ”생노병사“의 고통을 실감케 하는 작품이다. 지면 관계상 본문 인용은 생략한다.

3. 남다른 착상과 능란한 시어 구사
정시인은 첫 시집이지만 참신한 시상과 어휘 구사가 능란하다. 앞서 얘기한 대로‘말하기 시’여서 다변인 게 특징이다. 정시인이 여는 글’에서 “만년필 펜촉이 종이를 긁는 마찰의 촉감과 사각거리는 소리에 이끌려 시작한 詩와 노랫말의 필사, 그렇게 쌓인 글이 어느덧 3,500여 편. 울림과 감동 속에서 나는 시인의 생애를 더듬고 그 삶을 통과한 시색詩色의 결을 마주했다.”
“시와 노랫말을 필사한 것이 어느덧 350여 편”이라는 데서 습작 과정의 노력을 알 수 있다. 설명 없이 시상이나 시어 구사가 남다른 몇 편을 예시해 봅니다.

세상에는 모두가 제 짝이 있는데/ 정처 없이 나풀거리는 것은/
이불 홑청과 내 마음뿐입니다//
봄 햇살 좋은 날/ 널어놓은 빨래 밑에 떨어진 낙수落水를 먹고/
삐죽삐죽 솟아난 새싹처럼/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당신의 미소까지 그립습니다/

-「봄날 빨래를 널며」일부

누구나 가슴속에/ 못 하나씩 품고 산다//
못으로 인한 상처는 흉터가 되고/ 그 흉터를 헤집고 가시가 자란다/
가시를 가진 이들을 사랑하라/ 그 가시는 꽃으로 피리니//
가슴속에 아프게 품은 못/ 애써 뽑지 마라/
가시는 또다시 꽃으로 진화하리라//

-「못의 진화론」일부

사랑이란 진흙 속에 빠져/ 쉽게 발을 뺀 사람은 축복일 테지만//
그 속에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은 형벌이겠지//

- 「축복과 형벌」일부

사람도 사랑도 외롭지 않습니다/
딱 하루씩만 살아가고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저에게 당신을 대체할 하루도 없고/
당신을 대체할 사랑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루살이 여자, 하루 사랑 남자」일부

엉켜버린 게 방패연과 실타래뿐이랴/
단추 하나 잘못 끼워/ 사랑에, 사람에 엉켜버린 내 생은/
단추 없는 옷을 입은/ 인연을 만나기 전까지/
절룩거리며 생을 마감한다//

- 엉키다」일부

당신의 존재存在는 나의 부재不在/ 나는 부재하는 또 다른 존재
미완未完의 대지로 변하고/ 미완의 개체가 되어간다

-「미완의 생生 」일부

곰삭은 한 올의 명주실을 엮어/ 당신 오시는 길목에 멍석 깔고 쌓아둔/
그리움 한 보따리 바리바리 풀어/ 사나흘 싸리문 걸어두고/
당신에게 사랑밥 지어 환대하리

-「사랑밥」일부

사랑과 인연에도/ 숨겨진 절취선이 있었다는 것을/
사랑이 시작될 때 절취선이 잉태되었다//
그래서 함부로/ 사람 마음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야

-「절취선截取線」일부

맺는말
이상에서 정승기 시인의 첫 시집 『유랑인연』의 시 세계를 “애별리고”의 주제별로 살펴보았다. 정시인의 불교적 세계관과 주제를 서술하고 정황을 설명하는 ‘말하기 시’가 특징임을 알 수 있었다. 불교적 ‘애별리고(愛別離苦)’의 세세한 설명은 생략하며 본문을 참고하기 바란다. 오랜 습작과 노력의 결실인지 정시인의 남다른 착상과 능란한 시어 구사 등은 특기할 만 하다.
첨언하면 1920년대 한국 시단의 주로이던 영탄조의 감상적 낭만주의 시류는 무척 낡은 유물이다. 서양에서도 사랑 주제의 감성적 시는 18, 19세기에 이미 끝났다. ‘문학은 시대의 거울’이라고 한다. 21세기 첨단 문명을 구가하는 대한민국에 걸맞게 시 또한 현대적이어야 한다. 현대 시가 난해하기는 하지만, 이에 걸맞는 서정성을 찾아야 한다. 현대 시의 특징은 ‘생략과 응축(condensation)’이다. 감성팔이의 장황한 ‘말하기 시’에서 비유와 상징을 활용한 ‘보여주기 시’로 전환을 권유한다. 더욱 전진하여 ‘큰 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감수 : 시인 이정록 교수]

  작가 소개

지은이 : 정승기
시인, 수필가경기도 안산시 거주(사)한국문인협회 안산지부 회원한국예술인복지재단 예술인 등재(사)문학그룹샘문 이사 (시분과)(사)샘문학(구,샘터문학) 이사(사)샘문그룹문인협회 이사(사)한용운문학 편집위원(주)한국문학 편집위원(사)샘문뉴스 회원이정록문학관 회원샘문시선 편집위원<수상>2021 월간시사문단 시 등단2022 빈여백동인문학상 본상2022 경인일보 공모전 입상2022 풀잎문학상23~24 안산시민 백일장 연속 입선2024 샘문학상 특별작품상2023 한용운문학상 특별작품상2024 한용운문학상 우수상(샘문)2025 신춘문예 샘문학상 최우수상<시집>유랑인연<공저>위대한 부활, 그 위대한 여정호모 노마드투스<한국문학시선집/ 샘문>이별은 미의 창조불의 詩 님의침묵<한용운시선집/ 샘문>개봉관 신춘극장만화방창 랩소디<컨버전스시선집/샘문시선>봄의 손짓 외 다수<안산문학>

  목차

여는 글 / 4
평설 _ 불교적 사유와 능란한 시어 구사 시편 - 손해일/ 7

제1부 : 사랑 애愛
소행성 무족영원 / 28
첫눈 / 30
정의定義 / 31
가을 시류詩流 / 32
영원의 서사 / 34
당신은 누구신가요? / 35
가을의 유서 / 36
라그랑주점 / 38
흰동백 / 40
사랑 유통기한 / 41
하루살이 여자, 하루 사랑 남자 / 42
무한한 사랑 / 44
내 사랑이 얼지 않기를 / 46
꽃말 / 48
서시序詩 / 50
묘환생猫幻生 / 51
봄날 빨래를 널며 / 52
사랑밥 / 54

제2부 : 헤어질 별別
환승역, 환승 이별 / 56
엉키다 / 58
슬픔을 먹는 반추동물反芻動物 / 59
칼의 춤 / 60
환멸적 사랑 / 61
파문波紋 / 62
애처로운 간절꽃 / 63
인디언 썸머 / 64
멸종위기 육식동물의 죽음 / 66
깨달음 / 68
외로움 한 그릇을 먹으며 / 69
미완의 생生 / 70
12월 달력이 전하는 말 / 71
사랑을 탐한 죄 / 72
간이역에 이별을 내려놓고 / 73
못의 진화론 / 74
여름 한 철의 소나기 / 75
유랑인연 1 / 76
유랑인연 2 / 77
유랑인연 3 / 78
유랑인연 4 / 79
천사의 탄식 / 80
축복과 형벌 / 82
절취선截取線 / 83
원죄론原罪論 / 84
애별리고愛別離苦 / 85
내 열매가 아니었음을 / 86
남은 마음, 떠난 마음 / 88
귀를 닫고 눈을 감으며 / 89
간절함 없이 산다는 것 / 90

제3부 : 떠날 리離
환상방황環狀彷徨 / 92
날 것들의 생生 / 93
주머니 없는 수의壽衣 / 94
한寒, 한恨, 한限 / 96
박제剝製 사랑 / 97
내가 죽은 이틀째 / 98
강에는 물만 흐르지 않는다 / 99
헌정시獻呈詩 / 100
마중물 / 101
문둥이 탈춤 / 102
촛불 예찬 / 104
낙화落花 / 105
평행선 사랑 / 106
나의 유품遺品을 태우며 / 107
사해에서는 눈물을 흘리지마라 / 108
우중雨中 / 109
서러운 용서 / 110

제4부 : 괴로울 고苦
벌초 길에 만난 유랑인연 1 / 112
벌초 길에 만난 유랑인연 2 / 114
늙은 소년은 이미 바다가 되어있었다 / 116
솟대와 장승 / 117
무탈한 불편의 저주 / 118
생生이란 보편적 논제 / 119
희망에 대한 소고小考 / 120
함부로 끈을 잡지 말자 / 121
백설공주 설화 / 122
폐차장 / 124
세상에서 가장 맛난 술상 / 126
주인 없는 시집 한 권 / 128
어느 창작자에게 권면勸勉 / 130
은비령隱秘嶺 / 131
신발 끈, 마지막 매듭 / 132
시인의 책 갈이 / 134
시인, 그 비극의 업業 / 136
수족관 속의 게 / 138

제5부 : 신信과 신神
이사 가던 날 / 140
달맞이꽃 해방둥이 소녀 / 142
비탄의 피에타Pieta / 144
권면勸勉 / 146
어머니의 쌍가락지 / 148
창조론, 진화론 / 149
슬픈 눈을 가진 여인을 보았네 1 / 150
슬픈 눈을 가진 여인을 보았네 2 / 152
슬픈 눈을 가진 여인을 보았네 3 / 153
미물성도微物聖徒 / 154
신神의 저울질 / 155
견우와 직녀 /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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