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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한 시간
시와사람 | 부모님 |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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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 소개

차행득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시간』은 서정시의 본질에 충실하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하는 시편은 말에 관한 탐구이다. 말이 지닌 소통의 기능을 넘어 말의 미묘한 감각을 통해 시인의 정신성과 그 정신성이 지향하는 세계를 읽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존재를 규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존을 탐구한 시편들에서는 시인의 정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진중한 음성으로 진솔하게 고백하는데, 감정을 억누르고 욕망하지 않으려는 품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지난한 것이어서 반성과 성찰의 태도를 갖는다. 근원적으로 삶과 자신의 존재를 조망하며 올곧은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버거워하면서도 담백하게 토해내는 가여운 목소리는 현실에서 만나는 여성으로서의 타자성을 드러내는 시편들이다. 여성의식, 세계의 경험들을 통해 아직도 우리 사회가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미학적 경험으로 후기 근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출판사 리뷰

작품론

존재의 규명과 관계의 시학
- 차행득 시집 『공손한 시간』


강 경 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서정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삶을 향한다. 그것은 가치있는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윤리와 맞닿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다움의 위의威儀을 지닐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으로 생물학적 생존만을 향해 욕망하는 뭇 생명체와는 다르다.
차행득 시인의 두 번째 시집 『공손한 시간』은 이러한 서정시의 본질에 충실하다. 이번 시집에서 특히 주목하는 시편은 말에 관한 탐구이다. 말이 지닌 소통의 기능을 넘어 말의 미묘한 감각을 통해 시인의 정신성과 그 정신성이 지향하는 세계를 읽어내기도 하고, 때로는 존재를 규명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실존을 탐구한 시편들에서는 시인의 정신이 지향하는 세계를 진중한 음성으로 진솔하게 고백하는데, 감정을 억누르고 욕망하지 않으려는 품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지난한 것이어서 반성과 성찰의 태도를 갖는다. 근원적으로 삶과 자신의 존재를 조망하며 올곧은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번 시집에서 버거워하면서도 담백하게 토해내는 가여운 목소리는 현실에서 만나는 여성으로서의 타자성을 드러내는 시편들이다. 여성의식, 세계의 경험들을 통해 아직도 우리 사회가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미학적 경험으로 후기 근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떨쳐버릴 수 없는, 떨쳐버릴 수 없어 껴안고 있는 가족사가 고통스럽게 여전히 시인의 의식에 갇혀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가족을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뜨거운 것을 역설적으로 그의 시가 전통적인 서정抒情을 간직하고 있어 반갑다.
말과 실존, 그리고 여성성과 가족사는 얼핏 보기에는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시적주체의 존재를 규명하고 관계와 관계의 간극을 촘촘히 이어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근원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2.
실존은 말의 옷을 입을 때 비로소 존재한다. 말이 처음 생겼을 때는 순수했지만 인간의 역사와 함께 타락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언제나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말을 찾는다. 때묻지 않은 말을 우리는 ‘날[生]것의 언어’라고 한다. 또는 ‘언어 이전의 말’이라고 부른다. 시인의 말에 관한 탐구는 더렵혀진 말에 대해 성찰하고 순수한 언어로의 회귀를 시도한다. 이러한 그의 말은 삶에서 만나는 날카로워진 말, 욕망하고자 하는 말, 뒤통수에 꽂힌 말, 이빨 사이에 낀 적상추 같은 말의 감옥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러므로 「첫」에서 책의 ‘머리말’조차 “누군가의 앞을 가로막고 무언가를 강조하는 일”을 “쇳소리 내는 혀”라고 말의 순수성을 강조한다.
다음은 시인의 일상에서 만나는 말의 벌판을 통해 우리사회에서 횡횡하는 왜곡된 말의 풍경을 보여준다.

리모컨이 중앙 통로를 여는 순간
소리들의 놀이가 시작된다
크게 벌어진 목구멍 속에는
육하원칙을 과장한
힘과 욕망의 연결망뿐이다

말 위를 맴도는 기묘한 무음의 거미줄들

순간만 살다가 소진될 충동어가
흔들어 놓은 오늘은 황무지 속에서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소리들

이쪽도 저쪽도 아닌
나의 귀는
언쟁의 각축장이 되었고
더러는 뱀의 혀처럼 교활한 언어의
몽상가들로 북적인다

그들의 계략 앞에
난독으로 똬리를 튼 나의 그
말의 벌판에서
이방인의 하루가
허름한 당나귀 등에 업혀
건너오기도 하였다
- 「말의 벌판」 전문

‘리모컨’으로 은유화된 “언쟁의 각축장”의 입구에 들어서면 “육하원칙을 과장한/힘과 욕망의 연결망”으로 이어진다. 자신의 힘과 욕망이라는 세속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담론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순간만 살다가 소진될 충동어”로 세계를 “황무지”로 만든다. 황무지는 생명이 뿌리를 내리기 힘든 불모지로 인간성이 황폐해진 세계를 말한다. 시적 화자는 이런 현상을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 되는” 세계이다. 힘과 욕망으로 의미화된 현실의 기표인 ‘말’의 타락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이때 시적 화자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나의 귀”는 타락하고 폭력화된 “뱀의 혀처럼 교활한 언어의/몽상가들로 북적인다”고 인식한다. 자본문명으로 작동하는 현대 시스템은 말의 홍수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수많은 정보가 넘치는 사회에서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지난한 시대이다. 그러므로 말의 진실을 헤아리는 시적 화자는 “난독으로 똬리를 튼 나의 그/말의 벌판에서” 헤어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즉 말이 많지만 참된 말을 만나기가 쉽지 않는 세계에서 “이방인의 하루가/허름한 당나귀 등에 업혀/ 건너오기도 하”는 것이다. 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작품은 ‘말의 벌판’으로 상징화된 현실에서 진실한 말 찾기가 어려운 오늘의 세태와 왜곡된 말의 풍경을 보여준다.
「말의 벌판」은 타락한 언어에 관한 성찰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노래한 시편이며, 다음의 「살가시에 찔리다」는 스스로가 뱉은 말에 자신이 찔리는 자가당착自家撞着적인 말의 폭력성을 지적하고 있다.

바닥을 훔치다
가시에 찔린 손가락 욱신거린다

손톱 주변을 정리하다 생긴 소스라침의 순간
눈엣가시처럼 날카로운 가시랭이가
그새 가시가 되었다

변방으로 내몰린 후
학연과 지연을 다 끊어내고 침략자 되어
다시 내 살 속으로 파고들었다

뽑아내려는 애착을 가질수록 깊숙이 박혀
아픔만 깊어진다

내 안에서 근근이 숨 쉬던
무수한 삶의 편린들이
가십거리가 되어 돌아왔다

내가 버린 것은, 다시 내 것이 아닐 텐데
지나간 사랑은 아픔일 뿐
다시 사랑이 아닐텐데

무심코 뱉어낸 말이 날 선 가시가 되어
찌르고 할퀴고 야박한 와영역이 되었듯이
- 「살가시에 찔리다」 전문

“손톱 주변을 정리하다 생긴 소스라침의 순간/눈엣가시처럼 날카로운 가시랭이가/그새 가시가 되었다”는, 시적 화자가 자신의 몸을 돌보다가 오히려 가시가 되어 스스로를 찔러 놀라게 한 사건이다. “뽑아내려는 애착을 가질수록 깊숙이 박혀/아픔만 깊어진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여서 “내 안에서 근근이 숨 쉬던/무수한 삶의 편린들이/가십거리가 되”고 “무심코 뱉어낸 말이 날 선 가시가 되어/찌르고 할퀴고 야박한 와영역이 되”는 경우를 경험한다.
시적 화자는 손톱 주변을 정리하다가 오히려 가시랭이를 만들어 가시에 찔리는 듯한 경험을 스스로 내뱉은 말에 자신이 상처를 받는 경험으로 말을 삼가고 바른 말을 해야 함을 성찰한다. 사랑도 마찬가지여서 내가 버린 사랑에 상처를 받기도 한 자기 체험을 통해 아프기도 했다고 고백한다.
말은 기호이면서도 의미와 감각을 지닌다. 그러므로 말은 존재, 또는 실존방식을 드러내는 소통수단이다. 말로 상호연관성을 맺고 관계를 이어가는 인간사회에서의 말이 갖는 다양한 모습을 묘파한다.
다음의 「자기야 라는 말」는 말의 감각을 통해 말의 힘을 탐구한다.

너를 나처럼
나를 너처럼 만들어 간다는 말이지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곁을 내어주기 위해 방지 턱을 허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너무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무심한 듯 한편으로 간지럼 타는 말이지

외람되지 않는 말이지

힘들어도 그 단어 위에만은
한숨을 싣지 않겠다는 말이지

지구의 중력 같은 말이지
- 「자기야 라는 말」 전문

이 작품은 짧지만 ‘말’의 형식과 본질을 잘 깨우쳐준다. 주지하다시피 말은 음성 기호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음성, 즉 소리는 감각적이어서 감정을 담고 있다. “자기야”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속삭이듯이 전하는 소리는 매우 부드럽고 사랑스럽다. 그러므로 “너를 나처럼/나를 너처럼 만들어” 가고, “서로의 경계를 허물”기도 하고, “곁을 내어주기 위해 방지 턱을 허”문다. 이렇듯 “자기야”라는 말은 “너무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감정이면서도 “무심한 듯 한편으로 간지럼 타는 말”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간지럼 타는 말’은 상대를 웃게 하고 행복하게 할 것이어서 누구든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시적 화자의 “자기야”라고 다정하게 거는 말이 “외람되지 않는 말”이어서, “힘들어도 그 단어 위에만은/한숨을 싣지 않겠다는” 의지가 드러낸다. 그러므로 “지구의 중력 같”아 “자기야”라고 부르는 사람과 그것을 듣는 사람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만약에 지구의 중력이 사라진다면 지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모든 물체가 서로 잡아당기는 힘이 없어 오늘 지구에서 누리는 존재성 또한 없어질 것이다.
이 작품은 ‘말’이 지닌 힘과 말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탐구가 배어있다. 그리고 말이 지닌 감각속에 정신성과 감정이 실어져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밖에 말에 관한 탐구를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둥글다는 말」, 「말의 풍경」, 「사이시옷」이 있다. 「둥글다는 말」에서는 남편을 잃어 슬픈 사람에게 ‘모두가 둥글게 살라’고 말을 하지만 시적 대상에게는 ‘어지러워져야 하는 일’이어서 절실하게 체감할 수 없다. 말이 삶이고 실천덕목임을 깨우쳐준다.
「말의 풍경」은 말이 단순한 소리의 전달 수단만이 아니어서 뒤통수에 꽂힌 말을 통해 시적화자의 감정을 뒤흔드는 불안과 의식의 차원을 지닌 것이 말임을 인식시킨다.
「사이시옷」은 사이시옷의 기능을 말에 적용시켜 이빨 사이에 낀 적상추에 대해 선뜻 일러주지 못하는 수수방관 같은 것이고 엄마의 빈자리 같고 그리움 같아 침묵 같은 어중간함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3.
앞에서 살펴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차행득 시인에게 ‘말’은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이며 존재성을 인식시키는 수단이다. 결국 ‘말’은 관계를 경험하게 하는 미학으로 작용한다.
다음의 시편들은 시인의 구체적인 삶과 존재를 경험을 통해 어떻게 정신의 깊이를 보여주는지를 보여준다. 주지하다시피 서정시는 일상의 정서적 사건들을 보편적이면서도 시인만이 지향하는 세계를 나타내는 문학양식이다. 더불어 시적 대상인 기표記票 이면의 기의記意가 함의하는 의미를 통해 시인이 바라보는 지점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고도의 전략으로 시를 전개할 때 보다 높고 깊은 사유의 폭을 확장시킨다.

인기척에 자세를 가다듬듯 흩어진 마음을 정갈히 정돈한 갈대의 뼈대, 깡마른 몸짓으로 새로 나온 이파리들의 지탱을 도우려고 자빠지지 않고 서 계신다

너무 꼿꼿하지도 비굴하지도 말라고 바람을 탓하지 말라 하신다

속으로 속으로 울어야 하는 발 묻고 서 있는 곳이 딱 좋은 곳이라 하신다

모두 다 떠난다 한들 모든 게 끝나는 게 아니라고 갈 때는 가더라도 뿌리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 하신다

갈대의 내력이라 하신다
- 「내력」 전문

이 작품의 핵심 시어는 ‘갈대’이다. 흔히 갈대는 연약한 존재로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것을 의미한다. 관념에 기댄 작품이지만 그러나 갈대의 이러한 대중적 상징과는 결이 다르다.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인 바람에 흔들리기도 하지만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너무 꼿꼿하지도 비굴하지도 말라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기척에 자세를 가다듬듯 흩어진 마음을 정갈히 정돈”하는 것이 “갈대의 뼈대”이다. 뼈대는 갈대의 중심이며 바람에 흔들려도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한다. 이때 “깡마른 몸짓으로 새로 나온 이파리들의 지탱을 도우려고” 함으로써 외부의 물리적인 충격 앞에서도 의연하다. 갈대는 온몸으로 자신을 지키고 바로 서고자 함으로써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대는 “속으로” 우는 나약함을 간직하고 있다. 이렇듯 “발 묻고 서 있는 곳이 딱 좋은 곳이라”며 스스로의 정체성과 그동안 살아온 내력을 밝힌다. 즉 “갈 때는 가더라도 뿌리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근성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이른바 ‘갈대의 내력’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 있는데 시인의 태도를 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시는 시인의 정신성을 투사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보아왔던 ‘갈대’의 생태적 특징을 시인 자신의 삶의 좌표로 삼아 보여주고 있다.
다음의 「모고해」에서는 가톨릭에서 신성한 고백성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을 통해 성찰의 태도를 보여준다.

고해소 앞에 섰다
철벽같은 비밀을 절대적으로 믿으면서도
말문을 열지 못해
한 문장도 꺼내보지 못하고
속절없는 고뇌를 흘려보냈다

신 앞에 선 나를
이기지 못한 방종한 오만
일파만파 긴 긴 시간 모고해

끝끝내 그곳에 이르지 못함으로
무거운 죄의 덧게비 더 두텁게 짊어졌다

울컥 솟구치는 신열,
막막한 사위
너덜거린 내 허물 위로 내려 쌓인
새벽의 눈길을 홀로 나선다
- 「모고해」 전문

시적 화자는 고해소에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고뇌한다. 가톨릭신자라면 이러한 경우가 있을 것이다. 고해소 안에 신부가 신자의 고해를 듣지만 신적 존재인 하느님을 대신한다. 그러므로 죄를 숨김없이 알려 죄사함을 받는 것이 가톨릭신앙이다. “신 앞에 선 나를/이기지 못한 방종한 오만/일파만파 긴 긴 시간 모고해”에서 짐작할 수 있듯 자신이 지은 죄를 신적존재에게 숨김없이 알리지 못해 깊은 고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으로써 “무거운 죄의 덧게비 더 두텁게 짊어”지는 결과에 이른다. 죄를 씻기 위해 고해소에 갔다가 오히려 신성모독의 죄가 더해지는 어리석은 존재가 인간이다. 그러므로 고해소에서의 모고해冒告解를 통해 “울컥 솟구치는 신열,/막막한 사위/너덜거린 내 허물”을 겪게 되고 보게 된다. 그리고 그 허물 위로 쌓인 “새벽의 눈길을 홀로 나”서는 시적 화자는 죄를 감춘 죄 때문에 괴로워 “새벽의 눈길”로 상징되는 죄를 씻고자 하는 마음 속의 길로 향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차행득 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일 것이다. 생생하고 절실한 체험이 경험미학으로 형상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고백성사를 제대로 함으로서 죄사함을 받고,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죄를 짓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이며 나약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이 시를 통해 좀처럼 드러내기 힘든 고해소에서의 모고해를 고백하는 일이야말로 신성한 신앙고백이라고 할 수 있어, 이 작품으로 하여 시인은 세례받은 듯 죄사함과 정화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산사 한 채 입적에 들어」는 폐암 말기 환자의 모습을 통해 인생을 조망하고 있다.

기도문을 외운다

숨기고 싶은 거웃 두덩을 손으로 가린
아흔의 山寺 한 채 입적에 들었다

쏟아내고 뱉어낸 물받이의 삶이
누군가에게는 기도의 도량이기도 했던 그가
폐암 말기를 짊어지고 떠나갔다

거기, 꿈이 있던 자리에
사색 가득한 풍경도 있었고
풍성한 축제를 만들던 순간의
첫 시간도 있었겠지만
넘기 힘든 산의 문턱이 지워지고 있었다

또 다른 山寺 한 채
다시 침상을 채운 호스피스 병동
- 「산사 한 채 입적에 들어」 전문

아흔 살의 폐암 말기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시적 화자는 목도한다. 환자는 더 이상 보여줄 것도 없는 늙고 아픈, 그래서 뼈마디가 드러난 육신을, 마치 그가 살아온 90년 세월의 흔적, 또는 삶의 폐허를 벌거벗은 채로 보여준다. 초라한 육신이지만 한때 “누군가에게는 기도의 도량이었을, 그러나 결국 “폐암 말기를 짊어지고 떠나갔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본 시적 화자는 폐암으로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고 한 인간의 쓸쓸한 죽음에서 인간 존재에 대해 깊이 사색한다. ‘인간의 삶은 무엇인가?’ 죽은 사람도 한때는 “거기, 꿈이 있던 자리에/사색 가득한 풍경도 있었고/풍성한 축제를 만들던 순간의/첫 시간도 있었”을 것이다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넘기 힘든 산의 문턱이 지워지고 있”는 모습에서 시적 화자는 슬픔과 연민에 빠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의 죽음은 슬픔이지만 절망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시적 화자는 잘 알고 있다. 생로병사의 한 과정에서 죽음을 목도하며 죽음 이면의 여러 심상들에 대해 천착해 보는 것이다. 비록 죽음으로 병원 침상에서 치워지지만 그것을 산사 한 채가 입적한 것과 같은 무게에 비유함으로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숭고한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또다시 “또 다른 山寺 한 채/다시 침상을 채운 호스피스 병동”의 슬프면서도 허무한 풍경이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에서 시적 화자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깊이 사색하고 있다.
삶에 대한 생각의 깊이를 묘파하고 있는 작품으로는 「간이역」, 「노력하는 하루」가 있다.
「간이역」에서는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상에서의 정서적 사건을 통해, 마치 간이역에서 기차에 오르는 사람과의 만남 같은 것으로 비유하고 있다. 옆자리에 앉은 다양한 양태의 모습을 만나지만 또다시 “한 칸씩의 얼굴을 매단 사람의 기차가 떠들썩한 기적을 울리며 떠나”는 것과 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인식한다.
「노력하는 하루」에서는 시제처럼 ‘나은 문장을 찾지 않겠다’, ‘감정의 쓰레기에 붙들리지 않겠다’, ‘억하심장과 같은 변명이나 핑계로 일관하지 않겠다’, ‘욕망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겠다’ 그래서 ‘솔직하게 표현된 순간을 문장으로 쓰겠다’고 한다. 정직하고 순수한 모습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4.
차행득 시인의 시집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페미니즘 세계에 천착한 시편들이다. 우리는 성별을 막론하고 차이가 강조되는 후기 근대를 살아가고 있다. 2000년대 문학, 나아가 여성문학의 특징 중 하나가 탈주체, 혹은 성차性差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유희하는 주체나 여성문학에 대한 담론에서 여성주체를 새롭게 위치 짓고자 노력해야 한다. 여성주체를 둘러싼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사유하면서 현재 한국사회의 동향을 보면 여성을 둘러싼 환경들은 훨씬 더 복합적인 사고를 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행득 시인의 시는 여성의 타자성에 집중한다. 이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일면에 상존하는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체의 탈근대에 관한 페미니즘적인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성도 버림
이름도 버림

부모도 고향도 버림
형제도 친구도 버림

아파도 아프지 말아야 했다

차려입은 명절은 없고
널린 일만 천층만층

휴가도 휴무도 없이 무급 천직

센 불에 그을리고 찌그러진 양푼같이
백 번을 잘해도 한 번에 무너지는
뒷담화와 억측들

때로는 이탈음 같다가 더러는 알 수 없는 숫자였거나
무분별한 외래어 표기 같다가
기호처럼 부연 설명이 난해했던 삶
느닷없는 길흉의 뜻풀이가 되기도 하고
집안의 뒤 페이지쯤에 붙여진
부록 같은 사연들

묻히고 싶지 않아도 그 울타리에 묻혀야 하는
시詩집 아닌 시媤집에서
여자의 생각 따윈 송두리째 떨어져 버린
불임의 밤송이 같은

괄호를 헤치고 나와야만
詩集 속에서 간혹 발견되는
느낌표나 물음표가 거기 있었다
- 「괄호 속 살이」 전문

전통적인 가부장제에서의 여성들의 삶은 주체가 되지 못했다. 남성 중심의 체제와 이념은 여성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그림자와 같았다. 이렇듯 여성을 옥죄는 가혹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게 한 왜곡된 관념은 근현대를 거치는 동안 많이 극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그늘에는 여전히 여성은 “성도 버림/이름도 버림” 그리고 “부모도 고향도 버림/형제도 친구도 버”려야 하고, 심지어는 “아파도 아프지 말아야 했다” 여성 화자는 자신이 경험한 타자화된 주체의 상실을 열거한다. “차려입은 명절은 없고/널린 일만 천층만층//휴가도 휴무도 없이 무급 천직”이라고 고백한다. 부정당하고 상실당한 시적 화자의 삶은 인간의 존엄성이 침식당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현실의 그늘에는 아직도 윤리적·도덕적 무법지대가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작품 속 화자의 경험은 상흔이며 여전한 상처이다. 성姓과 이름은 존재성을 나타내는 표지인데 그것을 버린다(실제로는 버림 당함일 것이다)는 것은 인간됨을 포기하는 일이다. 더불어 ‘부모’, ‘고향’, ‘형제’, ‘친구’조차 버림은 시적 화자의 사회적 관계의 연결망까지 끊는 것을 의미함으로 아주 중요한 것들과의 단절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끝없는 노동의 강요만 있을 뿐 ‘휴가’, ‘휴무’ 등의 휴식과 노동의 대가조차 착취당한 존재로 전락했음을 말한다.
이밖에 시적 화자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정서적 고통의 폭력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특히 결혼을 통해 비롯되는 잔혹성에 여성의 지위가 얼마나 불행하고, 불안한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여성들의 위기를 ‘괄호 속 살이’라고 시적 화자는 비유한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괄호를 풀어헤쳐 나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위의 작품은 시집살이의 고통스러움을 여성해방일지처럼 보여주며 봉건적인 삶에서 타자성을 극복하여 탈근대를 모색하고 있다. 시집살이를 시적 배경으로 한 여성성의 불안의식을 「국멸치」에서는 미묘한 정서로 형상화시켰다.

한참을 버벅거렸다 많고 많던 식솔 그날따라 다 빠져나가고
시부모님과 달랑 세 식구 남아 점심상 볼 일 아득하였다
새색시 시절 시부모님과 겸상밥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눈치챈 어머님 “어짠다냐 한 상에서 그냥저냥 뜨자?” 하셨다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조심스런 밥상머리
된장국에서 건져 놓은 멸치를 시아버님께서 집어다 잡수시면서
“뭐든 잘 먹어야 건강해야” 하셨다

두 여자를 거느렸지만 다디단 삶은 아니어서 위태로움을 견뎌야 했던 지난날을 쓰다듬어 보시는지 진국도 골수도 다 빠져버린 당신 생 같은 국 멸치 대가리를 한참이나 우적우적 잡수셨다 입이 짧은 며느리에게 내보이는 옐로 카드처럼 사랑처럼
- 「국 멸치」 전문

결혼제도는 여성이 남성의 집으로 들어가 시집살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어색함은 새로운 가족이 되었지만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시적 화자는 “한참을 버벅거렸다”고 한다. 익숙하지 못해 자연스럽게 가족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시적 화자가 새색시 시절 “시부모님과 달랑 세 식구 남아 점심상”을 차리려 할 때이다. 시부모와 함께의 겸상이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서리자 시어머니가 “어짠다냐 한 상에서 그냥저냥 뜨자?” 하여 셋이서 식사를 하게 되니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조심스런 밥상”이 되었다. “된장국에서 건져 놓은 멸치를 시아버님께서 집어다 잡수시면서/“뭐든 잘 먹어야 건강해야” 하셨다” 시아버지는 “진국도 골수도 다 빠져버린 당신 생 같은 국 멸치 대가리를 한참이나 우적우적 잡수셨다 입이 짧은 며느리에게 내보이는 옐로 카드처럼 사랑처럼” 진국과 골수가 모두 빠져버린 국 멸치 대가리를 손수 잡수시는 모습이 시적 화자인 며느리에게는 “옐로카드”와 “사랑”으로 보여진다. 물론 시적 화자의 자의식에 의해 ‘아무거나 잘 먹어야 한다’며 입이 짧은 며느리에 대한 솔선수범이 지청구로 들리기도 하고, 더불어 며느리 사랑의 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시부모와 겸상하는 며느리’는 봉건적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고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므로 시부모와 함께하는 겸상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시적 화자의 새색시 시대에는 이러한 모습이 그저 관습일지라도 새신부에게는 버겁고 어색한 풍경이다. 삶의 주체로서의 여성성은 사라지고 타자성만으로 개별성이 무시되는 모습이 어색함을 조성하여 “버벅거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여성 주체를 둘러싼 새색시 시절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살펴보게 한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이 될 것이다.
「달맞이꽃의 시간」은 시적 화자가 전지적 시점으로 “몇 해 전 미망인이 된 그녀”를 바라보며 여성성에 대해 깊이 천착하고 있다.

어둠 속에 드러난 낱낱의 비밀같이
주름진 시간을 고스란히 내어놓은 꽃망울들

몇 해 전 미망인이 된 그녀의 슬픔은
기억 속에 가라앉아 꽃잎이 되었다

한낮의 열기를 비켜서서
자신의 세계를 엮어 온 시간의
흩어진 퍼즐을 맞추게 하는 꽃잎이다

밤의 무대는
달 속에 간직한 그녀 혼자만의 비밀일까?

“언니 이것 좀 봐!
달맞이꽃이 수없이 피었어”

별빛이 총총 쏟아지자
농담 같은 그녀의 밤으로 노오란 달빛을 쏟아낸다
- 「달맞이꽃의 시간」 전문

‘달맞이꽃’은 ‘기다림’이라는 꽃말이 말해주듯 달을 맞이하기 위해 밤에 피는 꽃으로 알려졌다. 낮에 해를 향해 피어나는 해바라기처럼 밤에 달을 향해 피어난다. 이들 꽃들은 사랑하는 이를 향해 있으며 ‘기다림’이라는 시간의 연속성을 함의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달맞이꽃에 대해 “어둠 속에 드러난 낱낱의 비밀같이/주름진 시간을 고스란히 내어놓은 꽃망울”이라고 한다. 사물의 비밀을 드러내는 ‘빛’을 감춘 어두운 밤에 비밀한 주름진 시간들을 드러내는 것이 달맞이꽃이다. 즉, 미망인이 된 그녀의 지난한 시간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녀의 슬픔은/기억 속에 가라앉아 꽃잎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달맞이꽃과 미망인을 동일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낮의 열기를 비켜서서/자신의 세계를 엮어 온 시간의/흩어진 퍼즐을 맞추게 하는 꽃잎”은 미망인이 견딘 슬픔의 시간들이 마치 달맞이꽃잎으로 피어난 것과 같음을 비유적으로 형상화하였다. 그녀가 살아온 무대가 밤의 시간 같은 것이었다면 “달 속에 간직한 그녀 혼자만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남편을 잃고, 남편을 그리워하는 일이 달맞이꽃이 달을 바라보는 것과 비견된다. 그러므로 “언니 이것 좀 봐!/달맞이꽃이 수없이 피었어”라고 동병상련의 달맞이꽃에 대한 유대감으로 “농담 같은 그녀의 밤으로 노오란 달빛을 쏟아”내는 별이 총총한 밤에 그녀는 깨어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달맞이꽃처럼 ‘밤’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무대삼아 살아가는 미망인의 삶을 형상화하였다.
이밖에 「불면」에서는 주체적 여성성을 드러내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시적 화자의 친구에 대해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면서도 서로가 일상이 바빠 안부조차 묻지 못하고 보내버린 날들, 그런 상황에서 뒤척이며 안부를 전하는 심리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잠은 잘 자는지, 아프지 않은지/아이들 잘 있지 같은 생각”을 하는 것과 “밤새 토막낸 생각을 복원하여 내비친 속뜻이/그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에서 보듯, 친구를 걱정하는 마음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나의 무사를 바라는 너의 하루는 교집합”일 것이라는 시적 화자의 생각에서 수많은 상념에 잠긴 복잡한 심사가 엿보인다. 주체적인 여성성에 다가가려는 몸부림의 과정이 이 작품 전면에서 나타나 있다.
앞에서 살펴본 작품들은 여성 주체의 타자성을 형상화시킨 시편들이다. 그러나 다음의 「공손한 시간」은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값진 작품이다. 이 작품은 시적 화자가 양파를 요리하기 위해 양파망 속에 있는 양파를 꺼내는 행위로부터 전개된다. 물컹한 양파의 껍질을 벗기며 썩어가면서도 비명을 지르지 못한 양파의 처지에서 “시간의 귀퉁이로 몰린 삶은 가슴에 못 박고 사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기에 이른다. 양파뿐만 아니라 간암으로 죽어가는 아비에게 사과 한 쪽을 입에 넣어줄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떼지 못한 눈빛으로 기도한 적”이 있는 시적 화자의 간절함을 되살린다. “숨 다 할 때까지 서로 감싸줄 요량으로/매운 눈물 따윈 찍어내지 않는 모습은/시든 양파 같은 사람들에게도 고통의 신비일 뿐”임을 깨닫는다. 예수 수난의 아픔을 나누는 가톨릭에서의 기도처럼, 썩어가는 양파처럼, 즉 죽어가는 사람에게 사과 한쪽을 내미는 간절함에 “하잘 것 없는 내 비명 따위 꼬리를 감추고만 싶었다”는 고백을 통해 시적 화자의 고통은 지극히 사소한 것이라는 깨달음을 말해준다. 성숙한 삶에 다가가고자 하는 화자의 진술이 설득력을 얻는다.

5.
차행득 시인의 시집 『공손한 시간』에서는 유독 가족사와 관련된 작품들이 눈에 띤다. 부모님과 오빠, 그리고 언니에 대한 시편들이 그것들이다. 시인들에게 가족사가 시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혈연을 통해 뗄 수 없는 관계의 흐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유년의 가족에 대한 기억에서는 시인이 성장한 후에도 의식에 작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며, 혈연의 유대관계 속에서도 시인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가족이 시인의 삶 자체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맺기를 떠나 인간에게 가족은 근원적으로 시공간 속에서 공통의 이야기를 공유하기도 하고 근원적으로 인지상정의 정서가 작용하기에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차행득 시인의 가족애를 노래한 시편들에서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롯한 오빠와 언니에 대한 생각이 깃든 작품들이 있다. 다음의 시편은 아버지의 고단한 일생을 노래하고 있다.

방천을 쌓기 위해
휜 다리를 저춤저춤 끌고 간다

후줄근히 젖은 술주전자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여 피워 올릴 때
새참 같은 당신 꿈 묻지 못했다

가난의 둑을 막기 위해
잠시 앉을 새 없던 분주한 산 아래서
벼들이 옹골차게 여물때까지
갈비뼈 드러난 옆구리로 물고랑 내던
당신의 손발은 다섯 아들의 강물이었다

벗어둔 고무신에는 아버지의 고단함과 내 은밀한
슬픔이 고여있었다

강제 징용과 하루하루 생을 치러낸 슬픈 근대사였던
고단함 켜켜이 껴입고
홍수에도 까딱없던 둑이 되었던 아버지

산아래 산 같았던
오봉산 푸른 능선 꽃봉오리들
오늘은 기지개를 켜고 꽃트림을 한다
- 「산 아래 높은 산」 전문

아버지의 일생은 우리의 근현대사의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강제 징용과 하루하루 생을 치러낸 슬픈 근대사”라고 시적 화자인 시인이 스스로 밝히고 있는데, “휜 다리를 저춤저춤 끌고” “가난의 둑” “갈비뼈 드러난 옆구리”가 말해주듯 아버지의 삶은 “벗어둔 고무신에는 아버지의 고단함”이 담겨있었다. 가족을 위해 “방천을 쌓”아야 하고, “가난의 둑을 막”아야 하고, “물고랑을 내”어야 했다. 이러한 아버지는 “새참 같은 당신 꿈 묻지 못했”는데, 아버지는 “다섯 아들의 강물이었”고, “홍수에도 까딱없던 둑”이라고 하는 시적 은유가 함의하는 커다란 산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오봉산 푸른 능선 꽃봉오리들/오늘은 기지개를 켜고 꽃트림을 한다”고 한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잠든 오봉산 푸른 능선에서 꽃으로 피어나 꽃트림을 한다고 시적 화자는 믿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시적 화자는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바라보며 슬퍼한다. 그런 까닭에 아버지가 떠난 이후 회상하면서 ‘산 아래 높은 산’이라는 시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버지를 ‘높은 산’으로 비유하며, 아버지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삐비꽃」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2년을 앞서가신 아버지가
어머니 상석에 제사 음식 올리는 모습을
꿈에 본 아들
한달음에 묘소 찾아 머리를 조아리다
뒤통수가 땅겨서 돌아보니
하얀 어머니가
가늘가늘 흔들리고 있습니다

비자나무 돌배나무 그늘에서
찬밥에 물을 말아 허기를 때우시던
어머니가

바람이 불어오자
서둘러 허공에 흩어지며
아그들아 밥 잘 먹고 간다고
가뭇없이 훨훨 날아가셨습니다.
- 「삐비꽃」 전문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태 후 어머니도 세상을 떠나셨는가 보다. 아버지가 “어머니 상석에 제사 음식 올리는” 꿈을 꾼 아들이 어머니 묘소에 가 “머리를 조아리다/뒤통수가 땅겨서 돌아보니/하얀 어머니가/가늘가늘 흔들리고 있”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선몽하게 되면 흔히 부모님이 자식을 그리워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이 작품에서도 아들, 즉 시적 화자의 친동기가 어머니 묘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자 어머니가 “비자나무 돌배나무 그늘에서/찬밥에 물을 말아 허기를 때우시”고는 바람결에 사라진다. 물론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어머니와의 만남은 시인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렇다고 믿는 것은 사무치게 어머니가 그리웁기 때문에 시적 상상력을 통해 어머니를 현현시키는 것이다. 찬밥에 물 말아 먹는 일은 생전의 어머니의 일상일 수도 있다. 맛있게 밥을 먹고 “아그들아 밥 잘 먹고 간다”고 허공에 흩어지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는 것은 시적 화자의 그리움이 간절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사를 노래한 차행득 시인의 시편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사람이 ‘오빠’이다. 시인의 오빠는 어쩌면 시인에게는 커다란 믿음이었기에 더욱 큰 상처와 그리움의 대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일게다. 차행득 시인의 시를 통해 나타나는 오빠에 관한 에피소드는 다양하다. 오빠와는 매우 친밀한 형제애를 나눈 것으로 보여진다. “시한부 같은 날들 속에 오히려 동생들 걱정하는 울오빠”로 시인의 가슴속 깊은 곳에 남아있다. 오빠에 대한 애틋함은 이제 시인에게는 그리움과 아픔의 상흔을 같이하는 대상이다.

생전에 남의 앞만 비추느라
핏줄 나눈 동기간에겐 빛은커녕
맹물 인심 한번 써 본 일 없이
엄격하기만 하던 큰오빠

얼마나 껄적지근했으면
저리 환한 웃음 선사하고 있을까

단단한 대들보 하나 세우기 위해
허둥거린다는 걸 뻔히 알기에
볼멘소리 한번 없이
애써 무심한 듯 모른 척만 했었다

강동 팔십 리는 갈 것 같던
웃음꽃 울타리 그늘 내막에서
한 점 슬픔 없이 묻혀 지낸 세월이
상현上弦처럼 환하고 향기로웠다고,
마지막 귀엣말 전하던 날

떨리는 내 목소리에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던 오빠
저리 환한 웃음으로 눈앞에 둥실 떠 있었네
- 「슬픔 없는 향기」 전문

오빠가 세상을 떠난 후 추억하는 이 작품 속에는 슬픔의 정서가 질퍽하다. “엄격하기만 하던 큰오빠”는 생전에 형제들보다는 남의 앞만 비춘 사람이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에게는 불편한 인식을 갖게 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떠나기 전에 “한 점 슬픔 없이 묻혀 지낸 세월이/상현上弦처럼 환하고 향기로웠다고, ” 마지막 말을 전한 것을 떠올린다. 오빠가 “단단한 대들보 하나 세우기 위해/허둥거”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자신의 꿈을 좇는 삶을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빠가 떨리는 목소리로 어깨를 들썩이며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오래 기억하며 ‘강동 팔십 리’로 의미화 된 오빠의 덕을 쌓은 삶을 잊지 않고 추억한다. 그러므로 시적 화자는 떠오르는 상현上弦의 “저리 환한 웃음으로 눈앞에 둥실 떠 있었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 시인은 언니에 관한 기억들도 소환한다. 「누룽지 인생」에서 언니의 “가장 낮은 복판에 깔려/뜨겁게 파삭거려야 했던 그녀의 삶”이라며 풀리지 않은 삶을 누룽지에 비유하고 있다. 결국 찬밥 같았지만 “끓이면 끓일수록 구수해지”는 것이 ‘누룽지 인생’이라고 언니의 삶을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살펴보았듯이 차행득 시인의 가족사를 형상화시킨 시편들은 대부분 슬픔의 정조가 시의 기저를 적시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연민을 시의 질료로 삼고 있다. 부모와 형제라는 가족간의 유대는 서로의 삶에 강물처럼, 핏줄처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여 서로의 삶에 깊숙이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맨 앞이라 말하기 위해 쇳소리 내는 혀가

누군가의 앞을 가로막고 무언가를 강조하는 일을 서슴지 않던

머리말

그ᄣㅐ

붉게 번져 흐르는 아파트 뜨락의 물결

영산홍 무리 속에 표류하는 흰철쭉의
열꽃으로 피어오른 격렬한 몸짓이
앞 동 뒷 동 누나들을
여자라 불러보고 싶은가 보다

거센 풍랑 속을 거스르며
꿈속을 헤엄쳐 오던 그는
어느 영지에 가 닿았을까

나도 모르는 상처에 몸이 아팠을
흰 철쭉 한 송이의
그ᄣㅐ


✽‘때’의 옛말인 ‘ᄣㅐ’는 15세기 문헌에서부터 나타는 ‘때’의 이형태이다.
이형태란 환경에 따라 글자 모습이 달라지는 것을 뜻함. (ᄣㅐ-> ᄠㅐ-> ᄯㅐ-> 때)

다마내기

기억이 아직 맵다

멀구슬나무 보랏빛 향기 짙던
오월

슬픔이 무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열한 살

네가 남겨 놓고 간
네 글자

다·마·내·기

누가 먼저 붙였는지 반 친구들이
그렇게 불러 주었다

서울말같이 순하고
사슴처럼 맑은 눈망울
동글동글했던 얼굴이
양파 속살처럼 참해 보였다

새끼손가락에 꽃물을 함께 얹고
성과 본이 같아서 자매 같았던 너

빈 책상 위에 풀꽃 한 움큼 꺾어다 놓았다

매운 봄날!

  작가 소개

지은이 : 차행득
월간 《詩 시 see》 추천시인상 당선2020년 《시와사람》으로 재등단국제PEN문학광주 작품상전남문인협회 편집국장 역임시집 『그 남자의 국화빵』 외 다수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그녀 혹은 그녀 앞의


그ㅐ
다마내기
고가구
도대체
너와 나의
띠꽃 향기
그녀, 혹은 그녀 앞의
봄날


시클라멘
10월
그 부부의 화합 비결
이런 것도 물음이 되나요
와온
내력

제2부 살가시에 찔리다

괄호 속 살이
말의 벌판
모고해
둥글다는 말
살가시에 찔리다
슬픔 없는 향기
그럭저럭
말의 풍경
자기야 라는 말
노력하는 하루
뿔도장
사이시옷
산 아래 높은 산
답서
소혼消魂
로또 공감

제3부 공손한 시간

민들레는 민들레
고추지
공손한 시간
국 멸치
누룽지 인생
불면
산사 한 채 입적에 들어
애기별꽃을 바라보는 일
노점의 노인
굴비 이야기
통닭콩닥
화북동 4440번지
간이역
회오리치던 바다
익숙한 낯섦
꾸꿈스런 꿈

제4부 안드렁물 후렴구

비자나무 숲에서
가을에서 여름을 본다
달맞이꽃의 시간
섬과 섬 사이
슬하의 10월
성산일출봉 안개 일출
삐비꽃
일몰
안드렁물 후렴구
엇박의 가을
타임 캡술을 열다
칠산바다
우두커니
여인송
단풍 속에 남아있는
묵언 수행

작품론
존재의 규명과 관계의 시학 / 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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