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혼자’를 견디는 단단한 힘. 『좋아서, 혼자서』 이후 6년. 작가는 여전히 ‘혼자’ 책을 만들고, 글을 쓰고, 철학과 미술을 강의한다. 그러나 세상은 훌쩍 달라졌다. AI의 속도로 질주하는 세상 속에서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는 쓸쓸함이 밀려든다.
『멈춰서, 혼자서』는 ‘멈춤’의 태도와 ‘간격’의 미학으로 세상의 흐름을 관찰한 생활산문집이다. 적당한 거리 두기, 기대치 낮추기, 존재한다는 감각, 세상과 일의 진화, 인공지능과 인간, 돈, 공동체적 삶, 자기 계발의 허구성, 목적과 목표 없는 무한 게임, 자아와 자기, 자력과 타력, 시절 인연, 스피노자와 개인, 적적함과 적당함, 경청의 미학, 무상과 무위, 평범함에 대한 예찬, 시간의 사치…… 시대에 맞서거나 타협하지 않고 ‘일상의 철학’을 지키는 작가의 노력이 깃들어 있다.
일을 사랑하면서도 일에 휘둘리고 싶지 않은, 자유를 꿈꾸면서도 여전히 불안한 독립적 존재들을 위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산문집.
출판사 리뷰
기술의 속도 앞에서 주춤거리며 삶의 간격을 사유하기
시대에 맞서거나 타협하지 않고 ‘일상 철학’ 지키기
『좋아서, 혼자서』 그 이후, ‘비경제적 인간’의 생활 보고서
가볍게, 자유롭게, 투명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는 ‘혼자’ 일하고 놀며 하루를 작파합니다. 그 하루를 모아 졸저 『좋아서, 혼자서』를 지었습니다. 고용자도 아니고 피고용자도 아닌 혼자의 일과 생활을 적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첫 책 『좋아서, 혼자서』에서 저는 ‘자유의 기술’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가치관, 직감, 신념…… 거창한 단어를 입에 담을 형편은 아니었어요. 산책하고, 차를 마시고, 책을 읽고, 생각에 잠기고, 내게로 와줘, 내 생활 속으로~ 신해철의 저음을 주제곡 삼은 저의 ‘일상으로의 초대’가 누군가의 ‘생활’이 되길 바랐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자유’라는 보편 개념에 개인의 감정을 이입한 오류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더군요. 부끄럽습니다.
단순하고 경쾌하게. 첫 책을 쓰며 저는 이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빼어난 문장, 화려한 문장, 품격 있는 문장과는 거리가 먼 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태도는 무심하게, 문장은 간결하게. 메이저와 마이너, 주류와 비주류, 유물론적 사유와 절대적 믿음의 ‘간격’을 사유하려 했지만, 인쇄로 완성되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계도, 역부족도 모조리 제 것이겠죠.
두 번째 책을 내놓습니다. 그 사이, 저는 그만큼 나이를 먹었고 초라해졌고 허약해졌습니다. 돈, 큰 집, 빠른 차, 젠더, 명성, 사회적 지위를 일군 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AI의 속도로 망설임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에서 나만 혼자 주춤주춤 멈칫멈칫 머물러 있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기술의 특이점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세상에 순조롭게 적응한 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내놓을 자신이 이젠 없습니다. 그들이 제가 사랑했던 주인공들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어요. 애꿎은 ‘혁오’의 노래만 구슬프게 반복 재생할 뿐입니다. 슬픈 어른은 늘 뒷걸음만 치고~ 찬란한 빛에 눈이 멀어 꺼져가는데~ 아아아아아~
걷잡을 수 없이 멀어지는 시대를 지켜보며 ‘비경제적’ 인간으로 살아가는 ‘1인 출판사’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바늘로 샘을 파는’(오르한 파묵) 촘촘한 문학적 미감은 언감생심일 터. 삶에 텀벙텀벙 ‘간격’을 유지하고 싶은 바람 정도는 적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문화적 세계의 새로운 아우라에 밀려난 어제와 오늘을 몸을 구부려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멀리서 바라볼 때 두렵고 낯선 것들이 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위무하는 글을 몇 자 적었습니다.
그렇다고 허망한 소리만 늘어놓을 수는 없겠죠. 인생은 입고 먹고 자는[衣食住] ‘생활’로 이루어지니까요. 간격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방도를 찾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저에겐 생활을 꾸리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절반은 제가 읽은 ‘낡은’ 책의 추억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세계의 전체와 만나고, 그 전체에 참여하는 일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비록 읽기와 쓰기에 통달한 자는 아니지만 한때의 유행을 견딘 책을 빌려 일과 돈보다 소중한 ‘나’를 위한 우선순위를 정리했습니다. ‘나다운’ 것이란 어설프게 주체성이나 자신감을 갖는 게 아니라 자신의 ‘미숙함’을 아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에는 분명 저처럼 자기 계발, 효율성, 성장, 생산성 같은 단어를 끔찍이 싫어하는 사람이 계실 거예요. 속도보다 간격, 유행보다 태도. 각자의 고유한 리듬으로 살아가는 일에 ‘준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생계를 꾸릴 것인가, 생활을 지킬 것인가. 일과 돈과 행복의 ‘인생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그들에게 이 책이 가닿기를 바랍니다. 발밤발밤,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가볍게, 자유롭게, 투명하게 말이죠.
생계를 꾸릴 것인가, 생활을 지킬 것인가. 여지껏 내가 살아온 시간 가운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에 가장 진지했던 시절. 지금보다 가난했어도 눈빛만은 풍요로웠던 시간. 나는 토지나 물건보다 지식과 노하우에서 가치를 찾기로 했다. 고용자도 아니고 피고용자도 아닌 삶의 방식을 추구했다. 지금, 누군가 분명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있던 이야기의 속편이나 덧붙임 혹은 변주. 일과 돈과 행복의 ‘인생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는 일은 시대와 세대를 가리지 않는다.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정신적 골격이 허물어진 시대다. 바이러스가 간격을 강제하고, 기술이 인간을 통제하고, 내란 수괴가 일상을 파괴했다. 상실의 시대, 모두 허무하리라. 혼돈의 시대, 모두 버거우리라. 마땅한 방도는 없을까. 세상의 이편과 저편 사이 ‘어느’ 곳에 틀어박힌 안거. 거리 두기와 외로움이라는 ‘규율’을 스스로 만들어 지키는 것은 어떨까.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을 외부에 위탁하지 않기 위해 라테 비오사스(Lathe Biosas), 즉 ‘숨어 있는 삶’을 선택했다. 전통과 철저히 단절하고 현실과 멀찍이 거리를 두었다.
기왕 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세상의 진화와 일의 풍경을 ‘관찰’하고 싶다. 일과 일이 아닌 일을 ‘동시에’ 조망하고 싶다. 낡은 줄기와 새로운 줄기 사이의 ‘간격’을
주의 깊게 살피고 싶다. 일을 줄이되 남아 있는 일의 폭은 넓히고 싶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윤동희
북노마드 대표. 책을 만들고, 글을 쓰며, 미술과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좋아서, 혼자서』 『편집자의 일』(공저)을 썼다.
목차
들어가며
1부
적당한 외로움
인생의 원형
숫자에 흔들리는 사람들
일의 진화
깊이 일하라
다르게, 다르게
최종병기 인간 (1)
최종병기 인간 (2)
넉넉함이란 무엇일까
느슨하게 출판하기
언제까지 성장해야 하나요?
가능성이라는 거짓말
행운에 속지 마라
인생은 운이다
무한 게임의 주인공
나는 옛날 사람
나의 친애하는 커피
걸어도 걸어도
옹졸하고 소심하고 냉철하게
2부
나는 자유인이다
어디에 살고 있나요?
이서진의 타력
시절 인연
스피노자의 1미터
일인칭 단수
저공비행, 높게 날지 않아도 됩니다
관광객의 철학
편집의 미래
대화의 힘
무미 예찬
빨리 달리면서 오래 달릴 수 있을까
흘러가게 두어라
앵콜 요청 금지
인생의 때
마음껏 사치하라
해답은 없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나가며
글을 쓰며 읽은 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