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이건 나밖에 말할 수 없다”
분노로 또박또박 말해온 서른일곱 곡의 노래
가사 뒤에 꾹꾹 눌러 쓴 삶의 자국들‘흰둥이 맥북’에 깔려 있는 기본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녹음한 노래들로부터 걸어 나와 세상의 울분으로 행진하는 거리에 울려 퍼지는 노래로 이어지기까지, 아티스트 이랑의 음악적 세계는 끊임없이 움직였고, 성장했고, 사람들의 마음에게서 마음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발표한 세 장의 정규 앨범 《욘욘슨》(2012) 《신의 놀이》(2016) 《늑대가 나타났다》(2022)를 통해 제14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노래상,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음반상과 올해의 음반상을 수상하며 시대의 호출을 받는 아티스트로 거듭나기도 했다. 한국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본과 대만 등을 오가며 삶이 걸어온 시간과 함께 폭넓어진 음악적 스펙트럼을, 그동안 발표해온 37곡의 가사와 그에 대한 뒷면의 이야기로 담아낸 이랑의 가사-말 『기타를 작게 치면서』가 아침달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책은 그동안 발표곡의 가사를 한데 모은 작업물이자, 노래마다 얽혀 있던 삶에 대한 진술로 이루어져 있다.
흔히 비유하는 ‘노래 가사 같은’ 내러티브에서 벗어나 경험 위에 자신만의 모양으로 이야기를 짓고, 솔직한 목소리로 노래해 온 이랑은, 세상에 대해 ‘말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 왔다. 자신의 일기를 기초 재료로 삼고,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경청하면서도 타인을 대신 말하는 듯한 이야기가 되며 세상과도 끊임없이 연결되어왔다. 청자와 독자들은 스스로 들어가 볼 수 없었던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이랑의 노래를 통해 알아차려 왔고, 그 공감은 마음의 투명한 연대를 만들며 아티스트도, 청/독자도 어떤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함께한다는 감각을 지우지 않으며.
20대부터 쓰기 시작해 어느덧 수십 권이 된 손바닥만 한 몰스킨 노트는 이랑이 부딪치고 수행해온 수많은 역사가 담겨 있다. 노래 가사부터 온갖 날들의 일기, 불러볼 수 없는 이름, 생활이 묻어나 있는 메모들까지…… 이 책은 삶을 지탱해온 기록의 무더기 속에서 출발했다. 이번 책에서는 실제 노트에서 가져온 낙서나 메모를 내지에 삽입해 이랑의 근원적인 이야기라는 징표를 더했으며, 앨범의 순서를 그대로 따르는 구성을 통해 ‘듣는 노래’에서 ‘읽는 노래’로 자연스럽게 재현하였다.
이 책은 단순히 가사와 가사에 대한 창작 노트에 그치지 않는다. 불러온 노래가 삶과 얼마나 맞닿아 있었는지, 울분으로 세상에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 온 그의 삶이 매 순간 얼마나 절박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또한 멜로디 없이 오롯이 종이 위에 그동안 불러온 노래의 가사를 담으며, 우리가 가진 이야기에 집중한다. 작가의 말처럼 사람들은 이야기 중독이지만,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은 세계는 용기 내어 ‘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랑은 그 용기를 쥐고 자신의 예술이 세상을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는 일을 궁리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를 너에게 전할 수 있을까요?”
말하기, 나타나기, 살아남기―이랑의 노래가 알려준 것들그동안 발표한 37곡에 관한 모든 이야기와 함께 가사가 뒤따르는 『기타를 작게 치면서』는 대학 시절부터 자신이 가진 ‘나’라는 악기를 조율하거나 하지 않은,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소리로서 ‘말하기’를 선택해온 아티스트 이랑의 유구한 역사가 담겨 있다. “나는 이랑의 역사에 참여하며, 이랑의 역사를 복기하고, 이랑의 역사 속에서 살아간다”라고 이야기하듯이, 어쩌면 우리 또한 이랑의 역사 속에서 그 역사가 어떤 쓰임이 되어가는지 지켜보는 중요한 자리에 있다. 이랑의 노래에는, 상대편의 입장이나 상황을 다른 차원으로 생각해보게 하는 힘, 말하는 일로 듣는 일까지 수행하는 힘, 분노를 사랑의 쓸모로 뒤바꾸는 힘이 들어 있다.
동료 아티스트이자 자우림의 메인보컬 김윤아는 추천사 「꼭 안아주고 싶은」을 통해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이야기가 끝나버려 몹시 아쉬웠다. 다들 아는 것처럼 그런 책은 많지 않다”라고 이야기한다. “아픔이 문장이 되고 음악이 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는 다정한 시선으로 이랑이 써 내려온 ‘드라마’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1집 활동부터 애정으로 지켜봐 온 대중음악평론가 김윤하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속 제제에게 밍기뉴가 있었던 것처럼, 이랑의 노래를 “없었지만 마치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친구. 나라면 절대 못 했을 말을 언제 어디서나 같은 태도와 자세로 생각한 모양 그대로 세상에 내어놓는 친구”라고 소개한다. 노래와도 우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이랑의 노래를 통해 배웠다고 고백하는 진솔한 이야기가 추천사 「이랑의 노래: 울리고 웃기고 성장하는」에 담겨 있다.
배고프고, 잠을 잘 수가 없고, 사랑한다는 마음까지도 사치스러워 꾹 참으면서도, 고양이에게 주고 싶은 사랑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사람. 노래로 엮은 모든 매듭은 그를 세상에 남아 있게 해준 끈이자 ‘생존’이라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말하는 일을 참지 않고, 세상에 꼭 필요한 목소리를 노래로 들려주고 있는 이랑의 한 세계가 책 한 권으로 다 담길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여기에 적혀 있는 가사와 가사 뒷면에 꾹꾹 눌러 적은 이야기들은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청/독자들에게도 지나칠 수 없는 좋은 향기로 남을 것이다.
이랑의 노래를 들으면,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게 된다. 이랑의 노래를 다시 들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게 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것을 노래라는 이야기 주머니로부터 알 수 있다는 기쁨을, 이랑의 노래에게서 얻을 수도 있었다. 그 후로 이랑의 노래와 쌓아온 우정이, 자신을 지키고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용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이 책은 어쩌면 기나긴 편지, 누군가가 쓴 일기…… 혹은 여러 장소가 된다. 노래가 쉬는 곳, 노래가 일어서는 곳, 함께 일그러졌다가 펼쳐지기도 하는 곳, 서로를 숨겨주고, 서로를 나타나게 하는 곳. 누구든 듣기도 하고 말할 수도 있는 곳. 이 책의 문을 열고, 이랑의 이야기와 머물렀다 가기를 바란다.

“기타를 좀 칠 수 있게 된 스무 살 무렵부터는 잠이 안 올 때 하는 그 모든 행동을 기타 치면서 하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방 안을 산소와는 사뭇 다른 무게로 천천히 채우는 나지막한 기타 소리를 들으며, 그 소리와 박자에 맞게 입으로 일기를 썼다.”
―「친구에게 너무 칩착한다-02. 너의 리듬」
“1집 곡들은 대체로 작곡 전성기에 숨 쉬듯 토해내며 빠르게 만들어냈지만, 이 곡은 무척이나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들었다. 여러 번 실험을 거쳐 구성을 다듬고 구전 노래, 놀이 노래 등 어떤 요소를 붙일지 뗐다 붙였다 가지고 놀았다. 돌림 노래라는 콘셉트를 잘 살리기 위한 보컬 녹음 방식도 여러 가지로 고민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음악적 동료가 없었기 때문에 많은 시간 나와 흰둥이 맥북 내장 마이크, 그리고 포토 부스, 가라지밴드와 합을 맞춰 완성해나갔다. 실험하는 재미가 있었다. 스스로에게 미션을 주고 풀어나가는 게 창작자의 재미가 아닐까.”
―「스스로에게 숙제를 내고 푼다-08. 욘욘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