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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살아 있다
직지 | 부모님 | 202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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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리뷰

화상

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기억은 물밑에 가라앉은 돌처럼 무겁게 떠오른다. 그 기억의 강물을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초등학교 2학년의 내가 서 있다. 그 시절 나는 누구보다 번잡한 아이였다. 교실은 내게 무대였고, 나는 그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춤추는 어린 광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시선은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던 한 아이에게 고정되었다. 처음에는 그저 얌전한 그림자처럼 보이던 그 아이가, 시간이 지나며 점차 교실의 중심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 아이는 더벅머리였다. 어린 내 눈에는 그 머리카락이 묘하게 낯설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난감처럼 보였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설치는 순간을 틈타 나는 재빠르게 그의 머리를 붙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의 머리에서 가발이 벗겨지며, 아래 숨겨져 있던 화상의 흔적이 드러났다. 눈 위부터 머리의 반을 뒤덮은 붉고 거친 흉터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교실은 순식간에 웃음과 손가락질로 가득 찼다. 아이들의 박장대소는 마치 날카로운 화살처럼 그 아이를 겨냥했다.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떨리는 손으로 가발을 주워 다시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의 눈에는 공포와 수치심이 뒤엉켜 있었다. 나는 그저 혼이 나간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내 어린 마음은 죄책감과 혼란으로 얼룩졌다. 하지만 그날의 일은 사과 한마디 없이, 마치 바람에 흩어진 먼지처럼 잊혔다. 그 아이는 다시 교실 구석, 조용한 그림자 속으로 돌아갔다. 그의 눈빛은 더 이상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연탄난로와 뜨거운 고통

시간은 시냇물처럼 흘렀고, 나는 3학년이 되었다. 그해 겨울, 집 거실 한가운데 놓인 연탄난로는 따뜻함과 위험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연탄불을 갈아야 했다. 난로 위에는 깊은 양동이에 물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기운이 넘쳤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언니, 내가 양동이를 들게. 언니가 연탄불을 갈아.”
나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양동이를 내 쪽으로 들어올렸다. 하지만 곧, 양동이의 무게가 내 어린 팔에 버겁게 느껴졌다. 당황한 나는 언니를 바라보았다.
언니는 이미 난로 뚜껑을 열고 있었다. 속으로 ‘이게 아닌데, 너무 무겁다’라고 생각한 순간, 양동이가 내 손에서 미끄러지며 뜨거운 물을 내 왼쪽 허벅지로 쏟아냈다. 뜨거운 물은 마치 불꽃의 혀처럼 내 피부를 핥았다.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비명을 질렀다. 바지를 벗으려 필사적으로 잡아당겼지만, 벗겨진 바지에는 내 허벅지 살점까지 딸려 나왔다. 고통은 내 몸을 갈기갈기 찢는 칼날 같았다. 나는 더 크게, 더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집 앞에서 장사하시던 엄마는 언니의 다급한 전갈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엄마는 내 새빨간 허벅지를 보시더니 참기름을 발랐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선택이었다. 상처는 더 깊어졌고, 고통은 배가 되었다. 엄마는 속이 상해 나를 오뉴월 개 패듯 때리셨다. 그 순간의 엄마 손길은 분노라기보다 절망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아픔은 우리 모녀가 서로 꺼내 이야기한 적 없는, 깊은 강물 속에 잠긴 비밀이 되었다.


화상보다 더 큰 흉터

화상은 치료 과정이 고통의 연속이다. 상처에 들러붙은 거즈를 떼어낼 때마다 살점이 함께 떨어져 나갔다. 그 고통은 마치 내 영혼까지 찢어내는 듯했다. 겨우 상처가 아물고 나면, 부끄럽고 창피한 흉터가 미래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 흉터를 숨기기 위해 늘 허벅지를 가리고 다녔다. 목욕탕 수영장을 갈 때도 남들의 눈을 생각하며 창피함을 이겨내야 했다. 짧은 치마는 내게 금기였고, 여름이면 긴 바지로 더위를 견뎌야 했다.

그 아이를 떠올렸다. 그의 화상은 얼굴과 머리에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드러나는 곳에 흉터를 안고 살아가는 그의 고통은 내 것과 비교할 수 없을 터였다. 나는 그에게 상처를 준 대가로 벌을 받은 걸까? 예순다섯 명의 아이 중에서 왜 하필 나였을까? 어쩌면 화상은 내게 운명처럼 다가온 깊은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아이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게 된 것은, 내 몸에 새겨진 흉터 덕분이었다.

언니

쉰여섯이 된 어느 날, 언니와 나눈 대화에서 나는 몰랐던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 뜨거운 물이 쏟아졌던 그날, 양동이에서 울컥 쏟아진 물을 언니가 울면서도 혼자 다 치웠다고 했다.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언니는 그 사고의 충격 속에서 나를 대신해 모든 것을 감당했다. 그동안 나의 고통에 갇혀 나만이 피해자라 여기며 살아왔다. 어렸던 언니가 느꼈을 두려움과 죄책감을 단 한 번도 떠올린 적도 없었다. 이 깨달음이 내 가슴에 또 하나의 누름돌을 얹었다.

더벅머리 그 아이에게 한참 늦었지만, 이제라도 말하고 싶다. “감히 내 어찌 너의 고통을 다 알겠냐만, 나는 네 만분의 일, 천분의 일은 될 아픔을 겪으며 살았다. 그때의 내 잘못을 사과할 길은 막막하지만, 내 마음 깊이 참회한다.” 이 말이 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친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

그녀는 나와 늘 비교의 대상이었다. 그녀는 부산 창신초등학교에서 ‘미스 창신’이라는 별명을 가진, 눈부신 존재였다. 큰 눈망울과 오뚝한 콧날, 차분한 말투와 느릿한 행동까지, 언니는 모든 면에서 완벽해 보였다. 그녀의 담임 선생님이 직접 붙여준 이 별명은 언니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왕관을 머리에 올려준 것만 같았다. 반면, 나는 성급하고 덜렁대는 주책바가지였다. 언니 옆에만 서면 나는 메주로 둔갑하는 이상한 마법에 걸리는 듯했다.

어른들은 언제나 언니를 칭찬했고, 나는 햇살인 언니의 그늘에 가려졌다. 그런데 딱 한 분, 나를 언니보다 예쁘다고 말해준 친척이 있었다. 그분은 내게 제 눈에 안경을 씌워준 의인이었다. 그분의 말 한마디가 어린 내게 따뜻한 햇살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분을 은인으로 여긴다.

겉과는 달리 언니는 동생들에게 빵점짜리였다. 배가 고프면 엄마가 밥상을 차려올 때까지 기다렸다. 결코 먼저 나서 상을 차리지 않았다. 그에 반해, 나는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스스로 밥상을 차렸고, 그제야 언니는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심지어 언니가 저지른 잘못마저 내가 뒤집어썼다. 어른들이 나를 혼낼 때, 언니는 자신이 저지른 사실을 고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억울한 누명을 쓰곤 했다.
때때로 언니는 이중인격자 같아 보았다. “이 주책바가지야, 분수 좀 그만 떨어!” “예쁜 척하지 마!” 그녀의 날카로운 말은 내 가슴에 상처를 남겼다. 걸음이 느린 나의 목뒤를 잡고 끌고 갈 때면,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보기 싫은 존재였다. 그때의 나는 언니를 미워하며 자랐다.

세월이 지난 후에 보이는 언니

세월은 바람처럼 흘렀다. 이제 언니는 남양주에, 나는 청주에 산다. 몇 년에 한 번 만나는 우리는 서로의 변한 모습을 보고 놀란다. 세월은 우리를 게으름이라는 이름으로 망가뜨렸다. 가끔 우리는 누가 더 게으른지 농담을 안주 삼아 다툰다. 그 베틀은 늘 막상막하, 도토리 키재기다.

쉰여섯이 되고 나니 내 곁에 남아 있는 건 가족과 정신과 의사뿐이다. 예상외로 그 빈자리를 채워준 사람이 다름 아닌 언니였다. 지금은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작년, 언니, 조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밥을 먹던 조카에게 말했다. “너희 엄마가 너보다 훨씬 예뻤어.” 천사처럼 예쁜 조카는 “말도 안 돼!”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나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조카와 장난스레 싸웠다. 언니를 옹호하며 조카와 다투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세월은 시간을 훔쳐 우리를 바꿔 놓았다.

언니는 여전히 미스 창신이고, 나는 여전히 덜렁이지만, 우리는 이제 서로의 흉터와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친구다. 화상의 아픔, 언니의 침묵, 그리고 우리의 다툼은 모두 세월 속에서 부드러운 추억으로 갈마들었다. 나는 이제 언니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거울이다.

할아버지의 섬

늦은 봄, 새벽의 고요를 깨는 언니의 목소리가 나를 꿈에서 끌어낸다. “드라이브 간대. 얼른 일어나!” 그 말 한마디에 잠이 달아난다. 동생과 나는 눈을 비비며 벌떡 일어나, 외할아버지의 새 차, 하얀색 포니에 오른다. 우리 자매 셋은 차 안에서 ‘홍콩 아가씨’ 노래를 흥얼거리며 새벽 댓바람에도 웃음꽃을 피운다. 새벽의 어둠을 뚫고 해운대 동백섬으로 향하는 길은 마치 꿈속의 모험 같다. 차창 넘어,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고 태양이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밀면, 산호색 파도가 반짝이는 해운대 바다가 우리를 맞는다. 그 풍경은 어린 내 가슴에 영원히 새겨진 보물이었다.

동백섬에는 가슴을 드러낸 인어 동상이 바다를 굽어보며 서 있다. 우리는 그 인어를 포토 존을 삼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 짭짤한 바다 내음, 언니와 동생의 웃음소리가 뒤섞인 그 순간은 내 어린 시절 빛나는 기억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 섬은 단순한 드라이브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외할아버지의 세계, 그의 꿈과 상처가 얽힌 섬이었다.

외할머니의 신데렐라 꿈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와의 결혼을 로또 당첨처럼 여겼다. 외할아버지는 키 크고 날씬한 몸매에 잘생긴 얼굴, 그 시대에 드물게 대학까지 졸업한 인재였다. 집안은 공장을 운영하며 부유했고, 그는 마을에서 빛나는 별과도 같았다. 반면, 외할머니는 키가 작고 외모도 평범한 편이었다. 그녀의 눈에 외할아버지는 마치 동화 속 왕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에게 달콤한 약속을 속삭였다.
“나와 결혼하면 돈만 쓰며 살 거야. 우리 집 돈을 비닐 부대에 가득 담아 가져와.”

그 말은 외할머니의 가슴에 황홀한 꿈을 심었다. 신데렐라가 유리구두를 신듯, 그녀는 부푼 희망을 안고 외할아버지와 결혼했다. 하지만 인생은 동화처럼 끝나지 않았다. 잔인한 현실은 그녀의 꿈을 산산이 부쉈다. 외할아버지의 공장은 두 번의 화재로 잿더미가 되었고, 부유했던 집안은 바람처럼 흩어졌다. 외할머니에게 남은 것은 모진 시집살이와 배고픔에 울부짖는 일곱 자식뿐이었다. 그중 한 명은 영양실조로 어린 생을 마감했다. 그 비극은 외할머니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녀의 날카로운 성정은, 어쩌면 그 고통의 메아리였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디 악한가, 선한가? 나는 아직 그 답을 모른다.

엄마는 고통의 그늘 속에서

외할아버지는 공장이 망한 뒤 기자로 일했지만, 곧 그마저 그만두고 백수로 지냈다. 고단한 삶의 무게는 항상 장녀인 엄마에게 쏟아졌다. 외할머니는 수시로 엄마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가스라이팅의 독이 담긴 말을 퍼부었다. “얼빵한 년”, “넋 나간 년”이라는 말은 외할머니의 입에 달린 방울처럼 끊임없이 울렸다. 엄마에게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를 세뇌시켰다. 어린 엄마는 그 폭력과 책임감 속에서 피난처를 갈망했을 것이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폭풍 속의 작은 배처럼 흔들렸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탈출을 감행했다. 꽃다운 열여덟 살, 언니를 뱃속에 품은 채 아빠와 결혼했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그 결혼을 반대하며 엄마를 개 패듯 때렸다. 하지만 아빠는 부유했고, 장모에게 돈을 아낌없이 주었다. 그 돈은 외할머니의 분노를 잠재웠고, 엄마는 가까스로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언니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아빠는 엄마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선언했다. 엄마는 우리 세 자매를 데리고 청주에서 부산의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때의 엄마는 마치 뿌리 뽑힌 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바람 같은 삶

아빠가 준 위자료는 외할아버지의 손에 독수리처럼 낚아채졌다. 우리는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우리 불고기 식당’에서 함께 살게 되었다. 식당은 장사가 잘돼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었다. 아빠가 보내준 양육비도 더해졌다. 삼촌들, 이모들과 함께 살며 나는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었다. 아빠의 부재는 어린 내게 큰 빈자리로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 집에는 또 다른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외할머니와 엄마는 밤낮없이 식당에서 뼈를 갈아 돈을 벌었다. 그들이 모은 곗돈은 생계를 위해 소중한 보물이었다. 하지만 그 목돈은 늘 외할아버지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마치 길들인 양 떼를 다루듯, 그 돈을 쥐고 춤추러 다녔다. 외할아버지의 바람기는 끝이 없었다. 수많은 여자와의 만남은 지속되고 결국 어린 나는 외할머니, 이모들과 함께 그의 첩을 잡으러 그녀의 집 문을 두드린 적도 있다. 그때의 기억은 내 어린 마음으로 남자에 대한 편견을 심었다. 잘생기고 멋진 남자는 모두 바람 핀다고 믿었다.

훗날, 서른한 살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나는 그 편견이 반만 맞았음을 깨달았다. 90%의 남자가 바람을 피우고, 10%의 성실한 남자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물론, 이는 내 경험일 뿐이다. 하지만 그 편견의 씨앗은 외할아버지의 삶에서 뿌려졌다.

빛나는 할아버지와 다방

내 기억 속 외할아버지는 항상 빛났다. 그는 멋진 양복에 백구두를 신고, 포마드 기름을 발라 머리를 뒤로 단정히 넘겼다. 그의 외모는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눈부셨다. 외할아버지는 매일 아침 그 모습으로 식당 위 ‘산수 다방’으로 ‘출근’했다. 나는 밥때가 되면 다방으로 그를 부르러 갔다. 다방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커피 향과 담배 연기가 뒤섞인 공기 속에서 외할아버지가 눈을 감고 음악을 들으며 혼자 앉자 계신다. 그곳은 그의 아지트였다. 그는 다방에서 자신만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낭만 뒤에는 외할머니의 한숨과 엄마의 눈물이 숨어있었다.
외할아버지의 삶은 동백섬처럼 아름답고도 아픈 곳이었다. 그의 섬은 바다처럼 넓고 깊었지만, 그 안에는 폭풍과 상처가 숨겨져 있었다. 어린 나는 그 섬의 진짜 모습을 몰랐다. 그저 하얀 포니를 타고 바다를 향해 달리던 새벽, 언니와 동생과 함께 웃던 순간만 기억했다.

세월이 남긴 것들

이제 세월은 많은 것을 바꿨다. 외할머니는 더 이상 식당에서 뼈를 갈지 않는다. 엄마는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켰다. 우리 자매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동백섬에서 추억은 여전히 내 가슴에 반짝인다. 그곳에서 찍은 인어 동상 앞 사진, 언니의 웃음, 외할아버지의 하얀 포니는 내 어린 시절의 보물이다.
외할아버지의 삶은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섬이었다. 그의 바람기와 무책임은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는 동시에 우리에게 드라이브의 추억을 선물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제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의 섬은 내게 가족의 의미, 사랑과 상처가 공존하는 삶의 복잡함을 가르쳐 주었다. 동백섬의 파도는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잔잔히 일렁인다.

그 파도 위로, 나는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간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백정화
청주에서 태어남. 51살에 책 읽기를 시작하고 56살에 글을 쓰기를 시작해 이제 글쟁이를 꿈꾼다. 게으름의 극치를 달리는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가도 좋은 작품 위해 20년 후를 바라보며 내인생을 초원의 빛은 75살이기를 빌며. 공저 《달빛 엿듣는 수요일 이야기》(부크크) 2024

  목차

저자의 말__ 5
화상__ 10
언니__ 14
할아버지의 섬__ 18
엄마__ 24
아버지__ 30
나는 누구인가?__ 36
취학 전 우리 집__ 40
어릴 적 꿈__ 44
송충이가 있는 풍경__ 48
영원한 노스텔지어, 시몽__ 52
강남 8학군에서 용인 시골까지__ 59
나, 아직 살아 있다!__ 64
흩어진 가족과 남겨진 기억__ 69
외삼촌의 그림자__ 74
핑크빛 신기루__ 80
금천동 땅의 배신__ 87
악몽__ 91
삼촌의 하울링__ 98
몽상가 그리고 사랑__ 103
파도치는 비극의 기억__ 109
지옥의 문__ 114
단단해진 시간__ 120
금천동 땅이 또__ 125
진흙탕에서 피어난 연꽃__ 131
자유의 바람을 타고 온 그림자__ 138
타이타닉, 내 마음의 항해__ 146
바람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영웅들__ 150
마음의 폭풍 속에서__ 164
예쁜 청바지__ 169
햇볕 아래 소용돌이__ 175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__ 179
이만 원이 물고 온 행복__ 187
메아리__ 192
동굴에서 나가는 용기__ 198
호수 위에 반짝이는 순간들__ 203
별은 지고 또 뜬다__ 206
살자__ 208

[발문] 영혼이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정이흔(소설가)__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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