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박윤우의 시집 『감정 물리학_E404』는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감정’에 대한 해부의 기록이다. 시인은 인간의 감정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관리되고 통제되고 결국은 자본화되는 과정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시집 제목인 ‘감정 물리학’은 감정이 인간 정신의 신비로운 영역이 아니라 해부와 분석이 가능한 물질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표명한다.
출판사 리뷰
박윤우의 시집 『감정 물리학_E404』는 인간의 가장 사적인 영역인 ‘감정’에 대한 해부의 기록이다. 시인은 인간의 감정이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관리되고 통제되고 결국은 자본화되는 과정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시집 제목인 ‘감정 물리학’은 감정이 인간 정신의 신비로운 영역이 아니라 해부와 분석이 가능한 물질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표명한다. 인간의 본질을 형성하는 감정이 측정과 분석, 그리고 통제의 대상인 동시에 그 자체로 물질로서 관리의 대상이다. 시인은 이 시집을 통해 감정이 궁극적으로 자본가의 자원으로 등록되고 마는 현실을 비판한다.
시집 제목이 암시하듯, 인간의 감정에 대한 분석과 통제, 그리고 관리는 가능한 것일까. 시집 제목 끝에 붙은 ‘E404’는 이에 대한 시인의 비판적 태도를 드러낸다. ‘감정’을 물리학적 체계로 규명하려는 시도가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제목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E404’는 “Not Found”(찾을 수 없음)를 의미하는 디지털의 통신 에러 코드다. 웹브라우저에서 존재하지 않는 웹페이지 주소(URL)로 접속을 시도할 때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오류 메시지다. 이 시집에서 ‘오류(glitch)’는 단순한 착오나 실패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 시집을 관통하는 미학의 핵심 원리로 보인다. ‘E404’의 시집 제목 배치가 말해주듯이, 인간의 감정을 물리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가 바로 그의 시적 결과물이다. 즉, 감정 규명의 실패를 통해서 이 실패를 양산하는 사회 시스템의 이면을 폭로하고자 하는 것이 이 시집의 미학적 전략이다.
-박대현(문학평론가)
감정의 월간 보고서
5월의 감정 포트폴리오엔
초록빛 질투, 소량의 냉소
그리고, 리스크 헤징용 마음 접기 ETF가 실렸다
애정 수익률은 전월 대비 2.1% 하락
이중 고백자의 회수율은 36.4%를 기록했다
하지만 첫눈에 반한 적이 있음 문항엔
여전히 79%가 예라고 대답했다
이번 달도 당신에게 몰빵한 나는
투자가 감정의 선물시장이라 믿었다
연애 원론 1장에는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감정 시세는 우산은 버려졌고, 시는 남았다
감정공작소 폐업 공지
이곳은 한때
진심을 만들어내던 곳이었습니다
말을 깎고, 숨을 붙이고
기억의 단면에 맞춰
감정을 조립하던 공간이었죠
하지만 이제, 공정이 멈췄습니다
고백은 단가가 맞지 않았고
후회는 재고가 쌓였으며
기다림은 부품 공급이 끊겼습니다
감정 설계팀이 퇴사했어요
기억 생산 라인은 노후화되었고
운영자는 더 이상
새로운 마음으로 갈아입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공작소는 폐업합니다
단,
폐업 공지를 쓰는 이 손 끝에
아직 미세한 떨림이 남아 있습니다만
그건 마지막 잔열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늘의 감정 시세는: 가동 중지
감정은 생산되지 않지만
잔여 진심은 자동 순환됩니다
묵은 카펫에 물 뿌리는 저녁
그날 저녁,
우리는 오래 묵은 카펫에
물을 뿌렸다
감정들이 젖었고
때마침 저물어가던 빛이
올과 올 사이
침묵의 결을 따라 번져나갔다
물은 말보다 정직해서
감췄던 얼룩을 숨기지 않고 부풀렸고
카펫의 젖은 올들은
그간에 겪은 사연을
자근자근, 발바닥의 지문에 묻어
흘러나왔다
누가 먼저 울었는지 모르겠다
그 울음소리는
터지고 만 묵은 소리
실밥 뒤엉킨 바닥이 아니라
우리가 쏟은 발자국과 발바닥의 지문들—
올 사이에 스민
우리 각자의 무게였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박윤우
2018년 『시와반시』 등단시집 『저 달, 발꿈치다 없다』
목차
제1부 감정 물리학_E404
10 감정 정원
12 감정 재고 조사
14 감정의 월간 보고서 051
16 감정의 월간보고서 058
18 감정의 월간 보고서 059
20 감정의 월간 보고서 060
22 감정의 월간보고서 063
24 감정공작소 폐업 공지
26 민원센터
28 분류불가 항목들
30 슬픔은 적립되지 않습니다
32 두 사람 몫의 감정 사용 지침
34 감정 조미 체계의 위험성 보고
36 감정 항목은 작성하지 마십시오
39 감정은 이주하지 않는다
42 한방 감정학 서설 1
44 한방 감정학 서설 2
46 묵은 카펫에 물 뿌리는 저녁
48 아주 이상하게 좋음
50 벚꽃 항소문
52 벚꽃 감정, 한정 판매 중
54 ψ의 변명
56 관계대명사를 베란다에 두고 온 저녁이었다
58 서달진 씨, 노랑 모자를 썼다 벗었다
제2부 입 없는 것들의 수다
62 하찮음의 미학
64 못구멍에 대한 참 단순한 생각
67 직진 본능
68 귀소본능 증후군
70 발목
72 낙뢰
74 묘약
76 사과 고르기
78 시멘트
80 모서리
82 좌회전
84 콩나물의 분가
86 미뢰의 시간
88 출구와 무릎 사이
90 콜라병의 자아실험
92 입 없는 것들의 수다
94 출입국관리소 옆 시낭송회
96 환풍기에게 정당을 물어봤더니
98 소 발굽에서 꽃피고
100 설미 이야기
104 검지와 중지 사이
106 장작을 패다가
108 그리운 양밥
111 짐작의 기술
112 방이 되는 법
114 K형의 시론
116 쪽팔림의 민족 기술력
118 변기 물 방향 공청회
121 지구 생물의 머리 받침에 대한 보고
124 ‘비빔’의 국제어 등록 심사 공동회의
126 컷 없는 생
해설
130 감정 물리학의 정치성│박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