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리뷰
초월 신경증 시대의 풍경화,
이 책은 세계 이해를 뒤흔드는 개념 미술이다.
“의식의 무한함과 경우의 수의 대결, 이것이 초월 신경증 시대의
당면 과제이다. 인간 의식의 확장을 통해 또 한 번의
커다란 도약을 시도할 것인가, 아니면 초월 감각의 착각 속에서
안주할 것인가의 기로 앞에 우리는 서 있다.”
이 책을 발행하며: 시대 감각의 핵심에 대한 통찰
김홍식의 <초월 신경증>이 ‘b-SIDE 문고’의 두 번째 책으로 도서출판 b에서 출간되었다. <초월 신경증>은 유튜브와 넷플릭스로 대표되는 매체의 소비에 중독되어 있는 당대인들의 ‘감각’ 자체의 전환을 스케치하고, 이를 전유하여 가능성으로 벼려 내려 시도하는 야심 찬 기획이다. 이미지에 대한 시뮬레이션적 소비가 개인의 욕망과 맞닿아 움직이는 매체 알고리즘의 시대에 인간은 이 모든 이미지를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소비할 수 있다는 ‘초월 감각’에 빠진다. 이 초월 감각으로 인한 착각, 또 초월 감각이 모든 것을 ‘진정으로’ 통제할 수 없음을 순간순간 느끼면서 발생하는 좌절, 그리고 무한히 반복되는 착각과 좌절의 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정신을 저자는 ‘초월 신경증’이라고 명명한다. 초월 감각과 초월 신경증에 빠진 우리는 사실 인간의 본질이라 할 수 있을 상상력을 포획당하는 셈이지만, 우리는 그 상상력의 포획을 상상력의 해방으로 믿으며 살아간다.
홍대 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과 회화를 전공한 후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만들어가던 아티스트인 저자 김홍식은 수많은 영화, 애니메이션, 역사, 철학, 미디어 비평을 해박하게 넘나들며 이 초월 신경증의 세계를 풍경화처럼 그려낸다. 이미 실재화된 이 환경을 전복하기보다는 새로운 감각의 훈련으로 이를 넘어서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것은 곧 시각 중심의 눈의 감각에서 촉각 중심의 손의 감각으로 감각의 전환을 이루는 일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초월 신경증>은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과 철학자이자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 그리고 문예 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영향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예술 작업을 하며 미디어 환경에 대해 섬세한 감각을 키워온 저자는 최근 우리 시대의 매체 변화가 사용자로 하여금 이미지를 완전히 통제하고 생산할 수 있다는 ‘잘못된’ 감각(‘초월 감각’)을 부여하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는 없었던 신경증적 상태, 판타지적 환각에 빠져 있다는 문제의식을 전면화한다. ‘초월 신경증’은 이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저자가 고안한 개념이다. 그리고 이 개념의 앞뒤를 두텁게 하기 위해 저자는 매클루언과 고진, 오구라 기조의 이론을 수용하고, <공각기동대>와 <킬 빌>,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 다양한 문화 텍스트를 활용한다.
혹자는 이 ‘개념화’ 작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개념을 만들어내긴 했으되 그 개념을 ‘과학화’하려고 시도하는 작업은 아니다. 이 책은 그보다는 아티스트의 머리에 꽂힌 이 개념적 단상, 현대 미디어 환경과 정신 환경의 변화의 핵심인 이 아이디어를 언어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원고지 위에 자유롭게 펼쳐 보이는 전략을 택한다.
이 책은 총 아홉 개의 챕터와 하나의 추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미지’ ‘내파’ ‘초월 감각’ ‘초월 신경증’ ‘전환’ ‘훈련’ ‘촉각’ ‘태도’ ‘문’ 등 하나 혹은 두 단어로 이루어진 챕터를 가진 이 책은 하나하나의 엄밀한 논문 혹은 학술적 글쓰기라기보다는, 저자가 초월 신경증 시대의 핵심 키워드로 선택한 단어/이미지를 둘러싼 컬러풀한 에세이적 스케치라고 하는 게 옳을지 모른다. 엄격한 철학이나 면밀한 비평을 벗어나, 대중문화와 예술과 인문학을 망라하며 연상과 은유로 가득한 개념을 전개하는 이 책은 그래서 저자의 말마따나 일종의 ‘개념 미술’ 작품이다. 예술가의 이론적 사유는 인문학자나 사회과학자의 이론적 사유와 다르다. 그의 독특한 ‘스타일’ 역시 이 작품의 한 매력이다. 가끔 작품 하나가 우리의 세계 이해를 뒤흔들 때가 있다. 두꺼운 사회과학 책이 아닌 한 점의 그림, 한 편의 음악이. 감히 말하면, <초월 신경증>은 바로 그런 작품이다.
도서출판 b의 새로운 시리즈: b-SIDE
도서출판 b는 지난 6월, 신우승의 <보르헤스와 열한 개의 우물>을 필두로 새로운 문고판 시리즈인 ‘b-SIDE’를 내놓았다. 이 시리즈는 (나이가 아니라) 생각이 젊은 작가(비평가, 연구자, 에세이스트, 번역가 등 누구나)가 자신이 천착하고 관심을 가진 주제를 많이 길지 않은 호흡으로 펼쳐놓는 저서 시리즈다. 그동안 한국의 인문학 저서 시장은 대학교수들이 중심이 된 ‘학술’ 분야가 한 편, 대중적 지식 커뮤니케이션이 중심이 된 ‘대중 교양’ 분야가 한 편을 이뤄왔다. 하지만 이 새로운 시리즈는 ‘학술’이면서도 난해하지 않고, 논문 형식을 피한, ‘대중 교양’이면서도 학문적 바탕이 탄탄하고, 도발적이면서 혁신적인 저서를 지향한다. 누구나에게 쉽게 말을 걸고 있지만, 그 내용은 소화 잘되는 ‘쉬운 인문학’이 아닌, 지금껏 흔히 본 적 없는 주장을 담은, 작가의 인장이 박힌, 주류 학계에서 출판되기 쉽지 않을 수 있는, 하지만 글의 깊이는 수준급인, 그런 글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시리즈의 저자들은 대학과 텔레비전과 유튜브에서 ‘잘 나가는’ 명사들은 아닐 수 있지만, 자기 분야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작가들이다. 첫 번째 작품인 <보르헤스와 열한 개의 우물>에 뒤이어 이번에 출간한 김홍식의 <초월 신경증>에 이어서, 늦가을에는 세 번째 작품으로 언어학자 나익주의 <세상은 은유>가 발간 예정이다.
고심해서 지은 이 시리즈의 이름은 ‘b-SIDE’이다. ‘b-SIDE’는 레코드나 테이프의 뒷면이다. 주력하는 히트곡은 주로 A-SIDE에 들어간다. 하지만 우리는 b-SIDE에 담긴, 알려지지 않은 명곡, 모두가 흥얼거리지는 않지만 누구에게는 주옥같은 노래에 주목하고 싶다. b-SIDE는 영어 단어 ‘beside’의 발음과도 같다. ‘beside’는 ‘옆으로 비켜나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는 중심보다는 주변, 주류보다는 비주류, 메인스트림보다는 언더독의 목소리와 시선과 사유를 담고 싶은 이 시리즈와도 통한다. 그래서 다시, 이 ‘b-SIDE’ 시리즈는 자신의 목소리, 자신의 형식, 자신의 내용을 맘껏 발산하고 싶은 모든 작가들에게 열려 있다.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 “모든 미디어는 잠재된 이미지를 끌어내는 샘플러다. 예술 작품과 유튜브의 쇼츠는 샘플러로서 동등하다. 예술 작품은 결과물을 매우 느리게, 하지만 지속적으로 산출한다. 실제로 그것이 작동하는지조차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우리의 잠재의식 어딘가에 기거하며 조용히 일을 처리한다. 이렇게 확보된 여유로움 안에서 우리는 이 샘플러의 피치를 조정할 시간을 얻게 되며, 그 조절 값은 특정 행동이나 사건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예술 작품이 선사하는 서사와 감각에는 빈 공간이 반드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쇼츠의 경우에는 짧은 시간 안에 서사와 감각을 자동으로 산출한 뒤, 다음 차례의 쇼츠에 자리를 넘기고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감각마저도 가상의 것이 되어버린다.
샘플러의 습득, 잠재된 이미지가 샘플러를 거쳐 산출된 이미지 값과 이 과정이 반복되는 속에서 드러나는 차이를 반영한 새로운 샘플러의 생산을 다른 말로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 스테이블 디퓨전의 작업창에 자리한 샘플러 노드는 인간의 내맡겨진 상상력이다. 우린 이제 운명을 운운하며 삶에 대한 변명을 이어 나갈 수 없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운명이라는 단어는 사라지고 인공 지능이 계산할 수 있는 노선에 대한 새로운 용어가 그 자리에서 득세한다 해도 놀랍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영화 <매트릭스>는 이미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용되는 감각 측면에서는 현실이 영화보다 더 처참하다. 매트릭스에는 이미지(샘플러)가 통제되는 세상이지만 뇌의 전기신호로 구동되는 삶이 있다. 뇌가 인지하는 감각 그 자체만은 진짜인 것이다. 감각은 삶의 열매다. 우리는 이것을 먹고 산다. 현대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감각의 지각마저 시뮬레이션에 위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풍경은 다소 어둡고 흐릿하긴 하나, 매클루언이 언급했던 미디어를 통한 의식의 확장이 야기하는 ‘감각 마비’의 그림자를 드러낸다.” (1장 ‘이미지’ 중)
― “‘개선 가능성’과 ‘영원성의 가치’는 접착되어 있지 않을 때 서로 조화롭다. 기술은 시간과 공간의 압축, 즉 빈 공간 사이를 기술을 사용해 인위적으로 잡아당겨 이어버린다. 그리고 이것은 거대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바로 초월 감각, 그러니까 신적인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착각이 그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초월 감각이 인간의 창조적 발상의 원동력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기술 진보의 관성 유지와 재화 획득을 위한 잉여 가치 확보에 가담하여 상상력의 잠재 공간에 남겨두어야 할 ‘여백의 미’를 폐기하는 공정을 개발해 내고야 말았다. 스테이블 디퓨전 콤피유아이의 기본 회로에는 ‘엠프티 레이턴트 이미지’ 노드가 있다. 이것은 빈 캔버스 같은 역할을 한다. 생성 중인 이미지가 이 공정에서 이미지의 규격과 형태를 갖춘다. 여러 톱니바퀴의 조합과도 같은 스테이블 디퓨전의 작업 회로의 각 공정 중에 엠프티 레이턴트 이미지 노드는 가장 짧은 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이다. 연산된 데이터는 숙성의 시간을 거칠 필요 없이 이미지화된다. 꽤 미학적인 이름짓기임은 틀림없지만, 그 이름(비어 있는empty, 잠재된latent)에 상응하는 공간과 시간을 부여받지는 못한 것이다. 디지털은 상상력의 숙성을 아직 모른다. ” (3장 ‘초월 감각’ 중)
― “이와 같은 형식의 ‘관계의 미학’은 전기의 특성에서도 어렴풋이 솟아 있다. 전기는 전자의 활동 에너지다. 전자는 보거나 만질 수 없지만 존재한다. 원자의 부분 단위인 이것은 옮겨 다니는 힘을 가졌다. 우리는 그것을 전신電信이라는 관계망을 통해 느낀다. 인간의 의식과 신체활동도 전자 이동의 일환이다. 시각적으로 규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전자의 존재를 느낀다. 마치 ‘혼’, ‘기’, ‘영성’, ‘정신’이 그런 것처럼. 그렇다면 전자란 우주적 정신의 질료일 수도 있지 않을까? 적어도 이 추론이 영적 에너지의 실체에 최소한의 물질적 단서가 제공할 수는 없는 것일까?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 신경 체계의 특성이기도 한 전기 커뮤니케이션”은 관계가 이어지는 모든 것에 다가갈 기회를 준다. 전기 미디어가 “상호 작용의 장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장소는 촉발하는 세계, 즉 시뮬레이션이다. 결국 초감각에 다가가기 위한 길은 시뮬레이션상에서 ‘제3의 생명’을 감지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반영하게 될 것이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 능력 대부분을 대체하였을 때 남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태도뿐이리라. 다소 모호하고 불투명할지라도 우리는 촉발하는 생명을 붙잡아 의식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낯선 누군가와 관계를 맺기 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7장 ‘촉각’ 중)
작가 소개
지은이 : 김홍식
‘홍익대학교 애니메이션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개인전으로 2024년 <관객 공모>(스페이스 유닛 4), 2017년 <벌기 위한 기도>(갤러리 토스트), 단체전으로 2025년 <스트리트 오브 섬머>(광주 신세계 갤러리), 2014년 <거리의 미술 ‘그래피티 아트’>(경기도 미술관) 등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스트리트 아트의 미술사적 맥락과 저변 문화에 대해 기술한 <스트리트 아트는 거리에 없다>(모요사, 2023)가 있다.
목차
ㅣ들어가며ㅣ _ 9
1장 이미지 _ 15
2장 내파 _ 31
3장 초월 감각_ 47
4장 초월 신경증 _ 59
5장 전환_ 71
6장 훈련 _ 83
7장 촉각 _ 97
8장 태도 _ 111
9장 문 _ 127
추기 _ 145
ㅣ나가며ㅣ _ 1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