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옵서버》가 “2024년 최고의 데뷔작”으로 꼽은 니컬러스 파담시의 《영국은 나의 것》은 외로움과 분노, 소속되지 못한 세대의 정서를 예리하게 포착한 문제작이다. 이란계 청년 데이비드는 현실의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위로는 곧 외부를 향한 혐오와 분열의 언어로 바뀌고, 그의 감정은 점점 극단으로 밀려간다. 
파담시는 이 과정을 통해 청년 세대의 외로움이 어떻게 분노로, 분노가 어떻게 급진화로 변하는지 감정의 흐름으로 보여준다. 도스토옙스키를 연상케 하는 인간 탐구와 현대사회의 세대 및 계층간 갈등이 만나는 이 작품은 영국을 넘어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출판사 리뷰
				《옵서버》 선정 “2024년 최고의 데뷔작”, 고든 번 상 최종후보작.
온라인 급진화와 혐오의 시대를 정면으로 마주한, 지금 가장 뜨거운 사회소설.
《옵서버》가 “2024년 최고의 데뷔작”으로 꼽은 니컬러스 파담시의 《영국은 나의 것》은 외로움과 분노, 소속되지 못한 세대의 정서를 예리하게 포착한 문제작이다. 이란계 청년 데이비드는 현실의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처음으로 ‘소속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 위로는 곧 외부를 향한 혐오와 분열의 언어로 바뀌고, 그의 감정은 점점 극단으로 밀려간다. 파담시는 이 과정을 통해 청년 세대의 외로움이 어떻게 분노로, 분노가 어떻게 급진화로 변하는지 감정의 흐름으로 보여준다. 도스토옙스키를 연상케 하는 인간 탐구와 현대사회의 세대 및 계층간 갈등이 만나는 이 작품은 영국을 넘어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인종, 정체성, 남성성 그리고 극단주의를 탁월하게 해부했다”
캔슬컬처와 온라인 극단주의… 혐오의 시대가 낳은 고통
외로운 청춘들이 써내려간 가장 가혹한 성장 스릴러
★<옵서버> 선정 2024 올해의 데뷔소설·주목해야 할 신예소설가  ★고든 번 상Gordon Burn Prize 최종후보  ★2025 베티 트라스크 상Betty Trask Prize 최종후보
 
혐오의 시대, 청년의 분노를 정면으로 응시하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밈과 유튜브가 일상의 언어가 된 시대. 혐오의 언어는 빠르게 전염되고, 청년 남성의 외로움과 분노는 ‘정체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극단의 언어로 치닫는다. 니컬러스 파담시의 데뷔소설 《영국은 나의 것》(원제 England Is Mine)은 캔슬컬처, 온라인 혐오, 젠더 갈등, 이민자 혐오, 그리고 젊은 세대의 극단화라는 첨예한 주제들을 다루며 이 시대의 불안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이 책의 원제 ‘England Is Mine’은 1980년대 활동한 영국 밴드 더 스미스(The Smiths)의 노래 〈Still Ill〉의 가사 “England is mine, and it owes me a living.”에서 따왔다. (책 속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오다가 인종차별적 발언으로 ‘캔슬’당하게 되는 뮤지션 칼 윌리엄스는 ‘더 스미스’ 멤버 모리세이를 연상시킨다) 이 가사는 1980년대 대처 시대 실업과 경제위기 속에서 미래를 빼앗긴 청년들의 절망과 자조의 상징이었다. 저자 파담시는 이 제목을 통해 오늘의 젊은 세대 역시 “이 세계가 나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았다”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고 본다. 그는 이 감정을 냉정하게 추적하며, 경제적 불안과 정체성 혼란이 혐오라는 형태로 전이되는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언어, 위로와 급진화가 교차하는 공간
런던에 사는 이란계 청년 데이비드는 음악과 게임으로 힘든 시간을 버틴다. 하지만 그의 우상이던 싱어송라이터 칼 윌리엄스가 혐오발언으로 대중에게 ‘캔슬’당하게 되자 혼란에 빠지고 극우 이데올로기가 난무하는 온라인 세계로 숨어든다. 한편 무슬림 청년 하산은 대학을 준비하며 커뮤니티센터에서 자원봉사를 하지만, 술과 대마초에 빠진 친구들에게 소외당하고, 자원봉사마저 조롱받게 된다.
데이비드는 우상인 뮤지션이 혐오발언으로 ‘캔슬’당한 뒤, 게임 친구들이 모인 인스턴드 메신저 디스코드 채널에 점차 깊이 관여하게 된다. 그곳은 처음에는 음악과 유머, 밈을 공유하는 가벼운 공간이었지만, 이내 현실의 상처와 분노가 교차하는 감정의 실험실로 변한다.
놀랍게도 그들은 단순한 증오 집단이 아니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밀려난 자신들의 상처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고, “이해받지 못한 분노”를 공동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연대는 곧 외부를 향한 공격성과 결합한다. 파담시는 이 과정을 통해 혐오와 위로, 연대와 분열이 공존하는 디지털 시대의 모순적 감정 구조를 드러낸다. 데이비드는 그 안에서 처음으로 강한 소속감을 느끼지만,그 결속은 언제나 불안하다. 공감은 배제와 섞이고, 위로는 언제든 폭력으로 전이된다. 파담시는 청년들의 외로움·불안·상실감이 분노로 바뀌고, 그 분노가 다시 온라인을 통해 서로 퍼지고 조직되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감정이 어떻게 정치의 언어로 변환되는지를 탁월하게 포착한다.
 
피해자와 가해자, 교차성과 입체성, 그리고 인간적 연대의 가능성
이 소설의 중심에는 도덕의 모호성과 인간의 복합성이 있다 소외의 피해자였던 이란계 혼혈인 데이비드는 스스로를 ‘아리아인’이라 주장하며 무슬림을 혐오하고, 그 혐오의 대상이 되는 하산은 정반대의 존재로 등장한다. 이처럼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가 모호한 복합적 인물 서사는 특정 세대나 계층, 이민자들을 절대악으로 규정하며 배제하는 오늘날의 세계와 맞닿아 있다. 이 두 인물의 대조는 소설이 던지는 중요한 질문을 드러낸다. “우리는 왜 이해 대신 분노를 택하는가?” 파담시는 그들의 관계를 통해 공감이 사라진 시대에 남은 마지막 인간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한국 사회를 돌아보다: 소통의 실패와 이해의 부재
이 소설은 현재의 한국 사회의 균열과도 놀라울 만큼 공명한다. 특히 소설은 가족 내 소통의 단절과 세대 간의 몰이해가 혐오를 키우는 구조적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데이비드의 부모님은 진보적인 활동을 하면서 자녀를 사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지만, 정작 아들이 겪는 소외와 상실감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나 훈계만을 반복한다. 이는 피해자를 ‘문제아’로 규정하고 그 내면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기성세대의 무력함을 상징한다. 《영국은 나의 것》이 던지는 질문은 영국을 넘어선다. 세대 간 단절, 젠더 갈등, 온라인 극단화의 확산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마주한 현실이기도 하다. 파담시는 혐오를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감정의 질병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은 타인의 분노를 이해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그리고 그 이해의 부재가 어떻게 사회 전체를 병들게 하는가를 묻는다. 문학이 다시 사회를 읽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영국은 나의 것》은 강렬하게 증명한다.
 
현실과 맞닿은 픽션 — 세계가 마주한 오늘의 현실
이 작품은 허구이지만, 그 현실적 울림은 놀랍다. 영국에서는 2025년 9월에 열린 반이민 집회에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고, 극우 정당 Reform UK가 주요 정당을 넘어서는 지지를 얻고 있다. 한국에서도 세대간, 성별간 갈등이 점점 극단화되고 있고, 최근에는 이민자나 중국을 혐오하는 집회가 열리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도 극우의 목소리를 내는 정치세력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QAnon, 독일대안당(AfD), 한국의 온라인 커뮤니티까지 그들의 감정 구조와 혐오의 양상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파담시는 이러한 사회적 분열의 뿌리를 경제 불안, 이민 갈등, 젠더 정치, 온라인 혐오의 결합에서 찾는다. 그가 그려낸 영국은 특정 국가가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전 지구적 풍경이다. 소설 《영국은 나의 것》은 어쩌면  ‘21세기 글로벌 분노의 지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트랜스 혐오 표현이 마치 전혀 해롭지 않은 양 ‘건전한 의견 차이’라고 말하죠. 말도 안 돼요. 표현은 해롭지 않은 게 아니니까요. 표현에는 결과가 따르죠. 만약 표현에 아무런 결과도 따르지 않는다면, 애초에 표현을 보호할 까닭이 뭐가 있겠어요?”
데이비드는 휴대폰을 꺼낸다. 뭔가를 보거나 읽는 건 용납되지 않겠지만, 공연 사진이 ‘좋아요’를 몇 개나 받았나 빠르게 확인하는 정도는 괜찮을 것이다. 더 받은 게 없다. 여전히 다섯 개다.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온다. 데이비드는 음식이 촉수처럼 뻗어나가는 자신의 두통을 완화시켜 주기를 바랄 뿐이다.
데이비드는 마치 피부 위로 벌레들이 기어가는 것 같다. 스티븐이 그의 트위터 프로필을 ‘우연히’ 봤다고? 분명 〈가디언〉이나 〈뉴욕타임스〉에서 칼 윌리엄스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읽은 뒤부터 데이비드의 소셜 미디어 활동을 감시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프리벤트(Prevent)에 신고할 준비를 하면서 말이다. 칼은 이슬람 혐오자다. 데이비드는 칼을 좋아한다. 따라서 데이비드도 틀림없이 이슬람 혐오자다.
믿을 수가 없다.
“알았어요. 그냥 잊어버려요.”
“젠장.” 앨릭스라는 남자가 맥주병을 손에 든 채 말한다. “이 새끼들 진짜 어디에나 있네!”
“파키!” 여자애가 외친다. “파키, 파키, 파키!”
하산은 여자애를 밀치고 지나가며 앨버트 드라이브를 계속 걸어간다.
“야.” 포켓 조끼를 입은 남자가 말한다. “파키.” 
마당 대문 열리는 소리가 삐걱거린다. 하산은 눈을 땅에 깔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아이폰 따위는 이제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저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야!”
그들이 하산을 따라잡는다. 앨릭스와 포켓 조끼 남자가 양옆을 막아서고, 여자애는 바로 뒤로 쫓아온다.
“우리 여동생한테 뭔 짓 하려고 한 거지? 그런 거 아냐?” 앨릭스가 말한다. “파키 페도 새끼.”
			
						
				  작가 소개
				지은이 : 니컬러스 파담시
영국 에식스에서 자랐다. 이스트앵글리아 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영국 언론 <옵서버The Observer> 선정 ‘최고의 신인소설가’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노리치와 런던 업튼파크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목차
				I • 9
II • 105
III • 201
IV • 325
V • 411
감사의 말•507
옮긴이의 말•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