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소개
				감각적인 언어와 그로테스크한 환상적 이미지의 세계를 구축하며 “단 한번도 상투적으로 말하지 않는”(황현산 문학평론가)다는 평을 받아온 이민하의 신작 시집. 2022년 지훈문학상, 상화시인상을 수상한 『미기후』 이후 4년 만의 시집이자, 등단 25년 만에 선보이는 여섯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낯설고도 익숙한 세계”의 비애를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정동”의 언어로 펼쳐 보인다. 부조리한 세계를 직시하며 동시대를 증언하는 시편들은 “죽음보다 질긴 독백”의 형태로 서늘하게 와닿는다. 어둡고 무거우면서도 투명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우울’의 미학과 ‘경청’의 시학을 펼치는 『우울과 경청』은 슬픔 속에서도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로 남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 울릴 것이다.			
						
				
  출판사 리뷰
				“밤에 죽은 사람들은 조용하기도 하지.
내가 밖에 서 있는데 집 안에서 내 목소리가 들렸어.”
사라진 것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우울의 미학
감각적인 언어와 그로테스크한 환상적 이미지의 세계를 구축하며 “단 한번도 상투적으로 말하지 않는”(황현산 문학평론가)다는 평을 받아온 이민하의 신작 시집 『우울과 경청』이 창비시선 526번으로 출간되었다. 2022년 지훈문학상, 상화시인상을 수상한 『미기후』(문학과지성사 2021) 이후 4년 만의 시집이자, 등단 25년 만에 선보이는 여섯번째 시집이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삶과 죽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낯설고도 익숙한 세계”의 비애를 “고요하면서도 격렬한 정동”(황인찬, 추천사)의 언어로 펼쳐 보인다. 부조리한 세계를 직시하며 동시대를 증언하는 시편들은 “죽음보다 질긴 독백”(「우리가 시인이었을 때」)의 형태로 서늘하게 와닿는다. 어둡고 무거우면서도 투명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우울’의 미학과 ‘경청’의 시학을 펼치는 『우울과 경청』은 슬픔 속에서도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로 남아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오래 울릴 것이다.
“죽은 사람들은 죽어서도 할 말이 남아서
꿈속의 빈 의자를 찾아다니고”
제목 그대로 ‘우울’과 ‘경청’은 이번 시집을 꿰뚫는 가장 적확한 단어라 할 수 있다. 시인에게 ‘우울’은 단순한 슬픔의 감정이 아니라 일상의 부조리를 감지하는 감각이자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공명하는 윤리적 감수성이다. 시인은 “지난겨울의 천재지변과 누구나 아는 재앙 같은 것”(「진홍의 왕」)을 노래하면서도 “우리는 웃었다 믿음이 마르지 않았다”(「지그소」)라고 말한다. “밤낮 없는 암흑천지와 누구나 앓던 우울 같은”(「진홍의 왕」) 절망의 이야기 속에서도 피어나는 희망의 기운, 그것이 시인이 말하는 우울의 진짜 얼굴인 것이다. 당신의 슬픔에 귀 기울이고 슬픔을 함께 견디며 살아가는 우울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가닿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타인의 목소리를 향한 ‘경청’이 놓여 있다. “귀를 기울일수록 못 들은 말이 늘어나고”(「우울과 경청」) “밤이 계속되자 경청이 직업이 되었다”(시인의 말)는 문장처럼, 시인에게 있어 경청은 단순한 청취가 아니라 고통받는 타자의 목소리에 몸을 기울이는 행위, 타자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윤리이자 곧 살아 있음의 증거이다. 시인은 “나사처럼 천천히 숨을 조여오는 공포”와 “꺼지지 않는 어둠 속”(「공감각」) 저편에서 들려오는 “절뚝거리는 목소리”(「우울과 경청」)를 포착하고 이에 마음을 쏟는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귀신이나 천사, 지박령, 고양이 같은 비인간 존재들과 여자, 아이, 엑스트라 등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난 주변적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야말로 시인이 택한 세계와의 연대 방식이기 때문이다. 시인에게 있어 이들은 단순한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의 폭력에 가장 먼저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각의 주체이다. 이처럼 작고 약하고 여린 존재를 통해 세계의 폭력을 응시하는 시인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먼저 울고 먼저 듣는 자들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이며 경청의 시학을 완성한다.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뜻이지.”
기나긴 밤의 복도를 따라 울려 퍼지는 나지막한 목소리
전작 『미기후』에서 “세계적인 우울과 각자의 기후 속” 살아가는 인간의 사랑을 노래한 시인은 이번 시집 『우울과 경청』에 이르러 “삶의 고독을 너무나 잘 이해하면서도 그 고독이 결코 나만의 일로 그치지 않”(황인찬, 추천사)도록 우울을 통해 타인의 슬픔을 껴안고, 경청을 통해 서로에게 접속하고자 한다. 시인은 “죽음 앞에서 손 붙잡고 할 수 있는 것,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니까”(「우울과 경청」)라고 말하며 다시 한번 어두운 쪽으로 손을 뻗는다. 그것이 이민하의 시가 지향하는 공감과 환대의 윤리이자, 삶을 지키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죽음의 이름들을 기억하는 행위”(전승민, 해설)는 결국 “잊지 않겠다는 뜻”이며 “사랑한다는 뜻”(「사랑의 역사」)이 된다. 세계의 어둠을 견디는 모두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죽지 말아요/오늘은 죽지 말아요”(「제너레이션」)라 되뇌는 이민하의 주문은 기나긴 밤의 복도를 가득 채우며 투명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물과 물이 붙어 있었다. 어둠과 어둠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사람이 촛불을 들고 들어갔다. 자신의 몸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홀(hole)」 부분
아무리 천천히 먹어도 아이들이 나오지 않았다
주인에게 물어보니 모두들 수학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행인에게 물어보니 폐교라고 했다
텅 빈 운동장을 다시 가로질렀다
흘리고 온 이름표라도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내가 죽었던 의자」 부분
혼자에 대해 생각했다. 너무 멀리 혼자와 떨어져 있었다. 너무 오래 혼자였다. 눈물을 말리려고 하늘을 보았다. 구름의 빛바랜 줄무늬들이 하얗고 두껍게 칠해지고 있었다. 나는 잠깐 멈추었다. 알 수 없는 음악이 흘렀다. 혼자도 나를 보았는지 화들짝 페인트 통을 엎지른 것 같았다. 머리 위로 흰색이 쏟아졌다. 첫눈이었다. 보이지 않아도 볼 수 있었다.
―「혼자와 함께」 부분
			
						
				  작가 소개
				지은이 : 이민하
2000년 『현대시』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환상수족』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모조 숲』 『세상의 모든 비밀』 『미기후』가 있다. 현대시작품상, 지훈문학상, 상화시인상을 수상했다.
			 
						
				  목차
				제1계절 ·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뜻이지
홀(hole)
사랑의 역사
검은 책
내가 죽었던 의자
사월에 감은 눈은 사월에 다시 떠지고
지그소
혼자와 함께
공감각
언니의 숲
우리가 시인이었을 때
제2계절 · 아프지 않으면 침묵할까요?
해변의 수인
홀로(holo)
검은 제복의 아침
테이블
개구(開口)맨
식물도감
내가 살았던 의자
밤과 시
여름의 끝
이 터널 선샤인
제3계절 · 당신이 나의 저자입니다
무엇
9201
크래커
옛날 영화
꿈속에 혼자
북의 기원
T-maze
일인용 식사
지구인
밤의 원주민
엑스트라가 주인공인 영화의 엑스트라들
제4계절 · 그러나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나의 귀일까
우울과 경청
영향력
신세계
벽에 갇힌 사람들
진홍의 왕
신비주의
지박령
복도와 그림자
12월 3일
제너레이션
제5계절 · 다음엔 우리 얘기만 해요
라이터
동시대
살과 뼈
마른 탯줄을 목에 감고
옛날 귀신
흙과 물
내가 없는 시간 속에서
우주의 한 점으로서 바라본 우주의 깊고 고요하고 무궁한 흰 발자국
영원
자연의 것
해설|전승민
시인의 말